♣ 자 화 상(自畵像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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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서정주 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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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비는 종이었다.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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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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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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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…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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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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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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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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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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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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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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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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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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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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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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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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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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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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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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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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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화상 (시인: 서정주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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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박일 |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