세상 사람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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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은이:이정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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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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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마당을 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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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하나 / 역설의 사랑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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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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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 보지 않으려면 확실히 연애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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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사랑과의 해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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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존여비는 사이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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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식 사랑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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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세교육은 궁합에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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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 떠나 어디서 사랑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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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아 있는 부처 찾은 총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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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로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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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세상에 친구 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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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둘 / 마음으로 그리는 인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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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하며 그린 자화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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흐르는 물에는 비춰볼 수 없는 얼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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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기나는 인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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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기와 그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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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기지 않는 즐거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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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 자신을 알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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꽃에서 맡는 물 향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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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톱 밑에 쌀 한 톨 못 가져가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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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어야 할 이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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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셋 / 청학은 어디로 날아갔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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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아먹은 갓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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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은 어디로 날아갔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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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쭐난 NHK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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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만 내세우는 망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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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에 대한 오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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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종교 사회에서 사는 지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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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의 노예가 되려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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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상 최고의 목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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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넷 / 흔들리는 세상 풍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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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쓰고 당한 봉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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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꼽티 입은 아가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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텔레비전 씨에게 보내는 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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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의 투기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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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서갱유하고 싶은 세상의 횡설수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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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증 앓는 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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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에서 만난 두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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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당에서 만난 요즘 아이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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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자식이 상팔자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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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다섯 / 세계의 꽃으로 필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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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남 유자가 강북 가면 탱자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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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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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사물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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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의 방랑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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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만심과 열등 콤플렉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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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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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쓴 시위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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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시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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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의 꽃으로 필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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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지은이 이정석은 낙안 읍성에서 태어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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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십여 년 동안 구례, 남원, 논산 등에서 한학을 수학했으며, 현재 청학동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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훈장으로 후학 지도에 여념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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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동안 각기업체, 대학, 사회 단체에서 수십 회의 특강을 했고, 91년, 95년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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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에 건너가 교민들에게 강의를 통해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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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질 수 있도록 힘써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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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마당을 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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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안개가 어디서 올라오는지 궁금했다. 계절이 바뀔 때마다 스멀스멀 산자락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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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고 올라온 그 안개는 청학동을 넘어 천왕봉 쪽으로 사라지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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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제쯤이었을까? 나는 그 안개가 올라오는 방향을 따라 내려가본 적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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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도 가도 산이었다. 나는 다시 산으로 올라왔다. 해마다 안개는 그렇게 엷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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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두빛으로 올라와서, 옴싹 청학동을 하얗게 감싸 안았다가 연보라빛이 되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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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 너머로 달아나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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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어느새, 그 안개가 청학이려니 여겼다. 다시 어느 날, 나는 안개를 따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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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려갔다. 태백산맥 중턱에서 소백으로 갈라진 줄기가 좌로 휘감는 척하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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갑자기 솟아버린 그곳에는 지리산이 있었고, 그 산이 빠져내려간 바다 쪽으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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섬진강이 흐르고 있었다. 강변에 앉아서, 안개는 그 강에서 올라오는 걸거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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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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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세월이 흘렀다. 아니었다. 안개는 강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. 안개는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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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라오고 있었다. 그리고 나는 그 세상을 봤다. 세상도 나를 봤다. 우리는 그렇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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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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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는 사람들이 참 많다. 청학동의 안개만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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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그들을 보고 웃었다. 세월은 절로 흘렀고 우리의 그 웃음도 흘렀다. 그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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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 나는 그 세월 동안 만나 세상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싶다. 두런두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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밤이 새도록, 청학동에 날아오던 그 뽀얀 청학의 얘기며, 초봄에는 할미꽃이 바로 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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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더라는 얘기, 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 달맞이 꽃이 피곤 하더라는 얘기를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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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나는 안다. 세상 사람들은 이미 이런 얘기들에 시큰둥하리라는 것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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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면 너무 시시해서 큰 하품과 함께 잠이 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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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나는 또 안다. 그런 얘기가 시시하게 느껴질 때, 도시의 시멘트 벽 사이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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핏발 선 눈으로 발걸음을 재촉할 때 우리는 이미 사람 사는 얘기를 계속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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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는 것을, 인생의 멋은 이미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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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의 멋은 이미 어쩌면 먹거리의 맛과 같다. 맛없는 빵에서 먹는 즐거움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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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낄 수 없듯이, 멋이 없는 인생에서는 사는 즐거움을 찾을 수가 없다. 또 빵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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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에 바른 설탕만으로는 진실로 그 빵을 맛있게 할 수 없듯이, 인생의 겉멋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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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실로 사는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. 요즘 우리는 그 겉멋을 위해서 몸부림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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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지도 모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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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찌된 영문으로 베르디의 오페라 앞에서만 황홀한 표정이고 그 신명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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판소리 한 판 앞에서는 그토록 무덤덤한가? 피카소 앞에서는 지그시 눈을 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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척하면서 추사의 그 요염한 곡선은 볼 줄을 모르는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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로스앤젤리스의 거리를 걸어보라. 수많은 민족들이 자기 민족의 멋을 내세우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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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. 개방된 세계 속에서 내 멋을 찾는 몸부림이 그곳에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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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렇다. 세계화란 곧 우리화 되어야 옳다. 된장 한 사발이라도 우리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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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고 세계무대에 나서야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. 우리의 멋을 가꾸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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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라야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길이 되고 절로 사는 즐거움을 찾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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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이 되는 것이다.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? 혹자는 그렇게 묻는다. 사실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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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답은 스스로가 알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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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문제는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. 내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. 수만 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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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려온 세상이라지만 이 세상에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다. 역사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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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성이라는 게 없다. 사람에게 완성이라는 것이 없듯이. 역사는 역사를 완성하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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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 흐른다. 인생도 역시 자신을 완성해가는 과정일 것이다. 그래서 말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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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디도 인생이요, 눈빛 하나 태도 한 가지, 보고 듣고 느끼고 사랑하고 울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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웃고가 모두 인생이다. 인생은 그저 산다는 데는 별의미가 없고 뭔가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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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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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서 나는 본다. 뭔가 해야 할 인생, 완성해가야 할 인생을 포기해버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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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을 본다. 아니 어쩌면 팽개쳐버린 듯한 인생인지도 모른다. 안개는 해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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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으로 올라왔지만 오는 걸 봤을 뿐, 가는 걸 봤을 뿐 느낄 수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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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개는 그저 스쳐 지나갔다. 인생도 어쩌면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것인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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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른다.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. 압구정동의 그 젊은이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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얘기를 하자거나 권력을 잡고 어쩔 줄 몰라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는 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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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더구나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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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사람 사는 얘기를 해보자.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있는 우리의 그 멋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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얘기하고 홀로 돌아누워서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행복을 얘기해보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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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인소아 아소세--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고, 나는 세상을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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웃는다.("부응경" 중에서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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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웃음의 뜻을 누가 알까? 청학동을 가을로 만들어 놓고 천왕봉 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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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령치를 비켜서 소백산맥 줄기를 따라 오르고 있을 그 안개라면 알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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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여름 아빠 품에 안겨와서 한사코 내 수염을 만져보자던 세 살바기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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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녀라면 알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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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 사람들아! 그 움켜쥔 주먹들을 풀자. 그 옹골찬 눈빛도 풀자. 맺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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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이 있거든 안으로 울고 사랑할 일이 있거든 꽹과리로 울리자. 우선 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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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하고 때로는 다독거리고 덮어주고, 그래서 오천 년 살아온 그 멋 따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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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자. 세상 사람들아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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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 가을 안개가 오던 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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훈장 이정석 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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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하나 / 역설의 사랑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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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무리 궁합의 중요성을 말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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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개를 돌리는 사람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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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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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으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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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확실하게 연애를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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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연애를 하는 쌍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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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 기가 맞는 것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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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궁합으로도 결국 좋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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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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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의 반나절이 지난 시간에, 점심을 먹고 마루에 앉아 앞산의 능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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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어떤 희열을 느끼곤 한다. 말로 다할 수 없는 인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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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동이 능선을 타고 춤을 추는 듯하고,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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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궁무진으로 조화를 부리는 듯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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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앉아 있는 곳도 지리산이요, 바라보는 앞산도 지리산이니, 지리산에 안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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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리산을 바라보는 것이다.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를 바라보는 갓난아기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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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정이 이런 것일까. 어머니의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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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연하게 어머니의 젖을 빨아대듯 나는 어느새 능선을 타고 춤을 춘다. 마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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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미 거기에 가 덩실덩실 춤을 추니 몸도 덩달아 신명이 오른다. 자연은 진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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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요, 최고의 가르침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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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의 흐름 속에서 능선이 갈아입는 계절의 옷을 볼라치면, 왜 그것이 최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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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품이요, 최고의 가르침인 줄을 안다. 사람이 감히 흉내내기에는 너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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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묘하고 감동적이다. 어느 도공이 그와 같은 모양과 빛으로 도자기를 빚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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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며, 어느 음악가가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을 연주할 수 있겠나. 그러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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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설로도 당연히 그것을 다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다. 요즘 같은 가을의 능선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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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자체로 인생의 교과서가 된다. 능선에 깔린 뭉게구름이 어디론가 흘러가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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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그 구름을 따라가다가 그만 동심에 젖어버린다. 세상에 대한 꿈만으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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넉넉히 아름다울 수 있는 마음, 거기에 이르면 나는 구름 한 조각으로도 부러울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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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부자가 된다.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, 구름 한 조각이나 풀잎 하나 만으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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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자가 될 수 있으니 인간은 그 얼마나 축복 받은 존재인가. 아귀다툼에 찌들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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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이라지만 때로는 별 하나만 보고도 풍요로워질 수 있으니 인간은 그 얼마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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희망적인 존재인가. 더럽혀진 정신이 판을 친다지만 문득 돌아온 동심만으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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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을 씻을 수 있으니 인간은 그 얼마나 깨끗한 존재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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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연은 그러나 부풀기만 하는 가슴에게 눈을 뜨라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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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자가 된 나를 가난하게 만들어 버린다.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 속에 능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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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경은 시시각각 변화하고, 그 변화를 따라가다가 나는 그만 이렇게 묻고 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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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. 무상함에 인생이 사로잡히면 동심으로 콩다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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뛰었던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. 시리도록 서늘한 바람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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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을 움츠리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. 일상의 때로 막힌 가슴을 뚫어주곤 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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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라리 온몸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수 있는 무상함이다. 나는 왜 살고 있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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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그토록 가슴을 앓고, 왜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그토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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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로워하고, 왜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가. 다 부질없는 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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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닌가. 아니다. 그렇게만 묻는 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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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묻기고 한다. 무상의 바다를 떠도는 주제에 나는 왜 그리도 어리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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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버리지 못했던가. 무엇 때문에 나는 그 누구를 용서하지 못했던가. 무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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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나는 그 누구를 이해하지 못했던가. 무엇 때문에 나는 그 누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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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하지 못했던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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묻고 또 묻노라면 산은 묵직한 저음으로 대답한다. 네가 바라보고 있는 산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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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라고, 저기 흘러가고 흘러오는 구름처럼 살라고, 저기 계곡을 타고 흐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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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처럼 살라고. 그러면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인다. 옆에 있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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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아이들은 그 고갯짓이 무슨 뜻인 줄 몰라 저희들 고개를 갸웃거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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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도 커서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되면 그 능선을 바라보며 그렇게 느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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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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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을의 능선은 찬바람이 불어오면 겨울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다. 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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쌓이고 그 주위를 겨울새들이 간혹 날아다니며 적막을 깬다. 살아있는 모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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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들은 적막과 고요 속에 묻힌다. 겨울새마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면 바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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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때로 그 적막과 고요를 깨울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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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 주위에 있는 대밭에서 부는 바람이 적막에 묻혀 있는 나를 깨우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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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찌 들으면 소나기가 퍼붓는 것 같기도 하고, 어찌 들으면 가야금과 거문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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합주를 하는 것 같고, 또 어찌 들으면 파도가 철썩거리는 것 같기도 한 대밭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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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람 소리는 고요한 능선까지 흔들어 놓는다. 그러나 그 바람이 멎으면 주위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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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 깊은 적막에 휩싸인다. 적막을 깨우쳐 주기 위해 능선을 흔들어 놓고 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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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웠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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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요에 묻혀 귀를 기울이노라면 바람은 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. 계곡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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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고 흐르는 물 소리가 들려온다. 헌데 그 소리는 사람의 울음과 너무도 닮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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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막한 자연이 안타까워서일까. 살아 있어야 할 것이 죽은 듯이 보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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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펴져서일까. 아닐 것이다. 사람이 그저 그렇게 듣는 것뿐일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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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연은 안다. 죽은 듯이 움츠리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끝내 살아날 것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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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다. 자연은 말한다. 늘 피어 있기만 하는 꽃은 없음을 말한다. 죽음이 있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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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로운 삶이 있다. 적막함을 견뎌야 환희의 찬가를 부를 수 있다. 고독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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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픔을 알아야 어울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. 침묵의 무게를 알아야 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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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중함을 알 수 있다. 번뇌의 고통을 겪어야 평안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. 겨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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능선이 그렇게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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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인생에 어찌 고빗길이 없겠는가. 살아있는 사람의 입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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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. 한 번뿐인 인생임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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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여곡절은 참으로 많다. 일에서 실패하면 사람의 심장은 얼어붙는다. 꽁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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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어붙은 심장을 끌어안고 살아갈 의욕마저 잃어버린다. 도대체 무엇으로 산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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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인가. 그러나 겨울 능선의 풍경이 비록 적막하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소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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품고 있듯, 그렇게 얼어붙은 심장 속에는 따뜻한 피가 숨어서 흐르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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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이 의지의 눈만 세우면 언제나 볼 수 있고, 지혜의 손만 움직이면 언제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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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질 수 있다. 의지와 지혜를 외면하면 봄을 기다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, 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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와도 봄이 온 줄을 모른다.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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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깨에 묻은 눈을 털고 다시 봄의 옷으로 갈아입는 능선을 보라. 그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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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노라면 싹이 트면서 내뿜는 향기가 느껴지고, 생명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귓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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울린다. 오감이 다시 태어난 생명 앞에서 춤을 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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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는 듯하던 계곡의 물은 덩달아 노래를 부르고, 미심쩍게 날아다니던 새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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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껏 지저귄다. 대지에 딛는 사람의 발걸음은 경쾌해지고, 온갖 짐승들도 날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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뛰고 어슬렁거리며 찾아온 봄을 만끽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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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물었다. 그 시인은 빼앗긴 나라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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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이 옴을 이미 믿고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. 그러나 봄이 옴을 믿지 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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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좌절하고 변절하다가 그대로 죽었다. 얼어붙은 심장만 끌어안은 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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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이 옴을 믿지 않고,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겨울은 끝나지 않는다. 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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와도 봄이 온 줄 모르는데 어찌 겨울이 갔다고 말할 수 있겠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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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의 능선은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는지, 희망이 어떻게 사람의 가슴속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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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어오는지, 우리 삶이 왜 기나긴 인내를 요구하는지를 가르쳐 준다. 근엄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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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가 아니라 태연한, 너무도 태연한 자연의 소리로 말해 준다. 그토록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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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운 옷을 입은 능선은 때가 되면 다시 옷을 갈아입는다. 역시 너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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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연하게 몸을 바꾼다. 봄에 입은 옷이 아름답다 하여 그것을 고집할 필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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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다 그대로의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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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고, 끝내는 또 봄이 오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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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록 내가 앉아 있는 마루는 좁지만, 거기에 앉아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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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상향의 청학동도 끝내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. 푸른 학은 지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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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딘가에서 날고 있을 것이다.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우리에게로 날아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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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가슴 태우며 기다린 우리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태연하게,. 태연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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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오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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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 보지 않으려면 확실히 연애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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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애지상주의자들이 득세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풍경이 하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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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의 젊은 부부들이 중매 결혼이냐,. 연애 결혼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보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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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응들이다.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 측에서는 '연애요!'라고 개선 장군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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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당하게 대답하면서 중매를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의 수작쯤으로 여기기도 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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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매를 통한 측에서는 무슨 죄라도 지은 듯이 모깃소리로 '중매요'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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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답하면서도 묻지도 않았는데 중매 후에 사귀는 기간이 있었으니 '중매 반 연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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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'이라는 사족을 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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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애라는 화려한 말에 쫓겨 초라하고 불쌍해진 말 중매, 그에 못지않게 요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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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이들로부터 퇴물 기생 취급을 받는 게 또 있으니 바로 궁합이다. 궁합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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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만 나오면 대명천지 이 문명 사회에 무슨 미신이냐며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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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, 심심풀이 재미로 본다며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노리개 취급을 하기 일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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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궁합은 결코 서양식의 학문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말하는 미신도 아니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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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리개 취급을 당할 만큼 하찮은 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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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교건 직장이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상대방을 만나 서로 기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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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느끼고, 요즘 젊은이들의 표현대로 서로 온도가 맞는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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맞지 않는지를 경험하게 된다. 기질이 통하고 온도가 맞으면 가까위지는 것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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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지 않을 경우는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아도 잘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다.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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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럴까? 이상적으로 봐서 모든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고, 사랑할 수 있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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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으련만 왜 어떤 사람은 절로 끌리는데 , 또 어떤 사람은 나름대로 노력을 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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멀게만 느껴지는 것일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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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물이 그렇듯 사람에게는 생명의 근원 속에 기가 있고, 그것은 개인에 따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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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르게 드러난다. 누군가에게 끌리고 끌리지 않고 하는 것은 넓게 봐서 기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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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용이라 할 수 있다. 남자와 여자의 만남도 마찬가지다. 서로 기가 맞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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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으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. 100볼트 제품을 220볼트 전선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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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결시키면 당장 망가지듯 기가 맞지 않는 남녀는 행복하게 어울릴 수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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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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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의 기가 어울리는지의 여부를 보는 것이 바로 궁합이다. 그것은 동양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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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오한 자연과학인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으로, 서양 과학의 잣대로 함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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난도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. 근래에 들어와서 서양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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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양의 자연과학과 사상에 근접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이를 웅변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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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증한다. 사주를 가지고 두 남녀의 기가 맞는지 여부를 보는 궁합은 신비주의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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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신도 아닌 엄연한 과학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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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궁합이 심오한 자연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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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. 그들 가운데는 경험적으로 궁합을 비판하는 이들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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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다. 예를 들어 사주를 보는 어떤 사람을 찾아갔더니 하늘이 맺어 준 궁합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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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는데, 다른 사람을 찾아가니 같은 사주를 놓고 절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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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으로 말했다면 당사자는 혼란에 빠질 것이고, 당연히 사주를 바탕으로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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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. 실제로 이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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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?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. 요즘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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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주를 보는 사람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돌팔이들이라 할 수 있다. 음양오행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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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상과 과학은 난해하고 심오한 것으로 짧은 공부와 수도로는 그 깊이를 제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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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아낼 수 없다. 적당히 배운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고 흉내를 낼 때 문제가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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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는 것이다. 의사들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력이 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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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자라는 사람이 있고, 또 아주 돌팔이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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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 완벽한 의사가 없듯 완벽하게 궁합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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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릇이 아니다. 그러나 완벽한 의사가 없다고 병원에 가지 않을 수는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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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신뢰가 가는 의사를 찾아가서 자기 병을 고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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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 것이다. 궁합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로 생각하면 된다. 만약 어느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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쌍의 남녀가 궁합을 보았는데 절대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치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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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들은 어찌해야 할까. 사주를 보는 몇 사람을 더 만나 볼 필요가 있다.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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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병원에 가서 불치병 진단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다. 불치병 진단을 받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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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오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른 병원을 찾아보지 않겠는가. 오진이 적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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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다는 게 의학계의 현실이란 말을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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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다른 병원들에서도 마찬가지 진단 결과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자기 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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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. 궁합으로 결혼 불가 판정을 받은 남녀가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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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로부터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갈라서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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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설하고, 아무리 궁합의 중요성을 말해도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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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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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니, 바로 확실하게 연애를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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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가 맞지 않는 쌍을 제대로 연애를 할 수 없다. 바꾸어 말하자면 제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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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애를 하는 쌍을 서로 기가 맞는 것이고 그것은 궁합으로도 결국 좋다. 적당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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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건만 따져서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연애, 참모습을 감춘 채 상대방에게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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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모습만 서로 내보이며 적당히 만나서 적당히 즐기는 상대방에게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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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모습만 서로 내보이며 적당히 만나서 적당히 즐기는 연애, 될대로 되라는 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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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념 섞인 연애 등으로는 두 남녀가 진정 어울리는 한 쌍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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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이런 어설픈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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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혼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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확실한 연애를 통해 기가 맞는지 여부를 볼 수 있다고도 했는데, 여기에는 숱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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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제점들이 생긴다. 바로 요즘 사회,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성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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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란과 방종과 타락, 그로 인해 생기는 숱한 문제점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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섹스는 아름답고 신성한 것이다. 그것은 삶의 소중한 보석이요, 인간이 지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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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성의 한 극치요, 생활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활력소다. 옛시절에도 섹스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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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히 애를 낳기 위한 행위로 보는 선비와 섹스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만끽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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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비를 놓고 볼 때 뒤의 선비가 더 도가 높은 것이라 했다. 섹스를 동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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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성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미개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. 그러나 소중한 보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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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부로 다루는 것이 아니듯 섹스는 함부로 대하거나 조절 능력을 상실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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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에게 주어진 그 복을 금세 화로 바꾸어 버린다.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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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루지 않는 것에 대한 응징인 셈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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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이들에게는 감정을 조절할 능력이 부족하다. 궁합을 보지 않으려면 확실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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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애하라 했지만, 그런 연애를 하다 보면 감정 조절능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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숱한 성적 문제를 만들어 사회를 타락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만든다. 정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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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념이 점점 퇴색해지고 혼전관계에 의한 낙태, 미혼모 급증, 사생아 출산 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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뒤따르게 된다. 이런 현상들은 몇몇 개인의 불행이라는 차원을 넘어 이제는 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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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체의 문제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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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태의 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은 이미 전체 사회 구성원의 윤리 의식을 마비시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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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도로 타락한 양상이 되어버렸다. 근래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들을 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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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 나라가 탄식을 했지만, 그 저변에 깔린 인명 경시 풍조를 반성하고 참회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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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습은 희미하게만 보인다. 낙태란 엄격히 보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골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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뱃속의 자식은 자식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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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전 성관계를 가져야만 확실한 연애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. 남자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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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의 만남에 따라 가정의 행복이 좌우되고, 가정의 행복이 사회 평화의 기본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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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니 서로 이성을 잃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확실한 연애라 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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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뜨거운 연애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현실이 말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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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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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을 끝내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위해 편법이지만 확실한 연애가 필요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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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했다. 그런 연애 끝에 결혼을 해서 잘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, 그렇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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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숱한 문제들은 어떻게 할 것이다. 지혜로운 행복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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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건을 늘 염두에 두면서 연애지상주의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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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사랑과의 해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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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근에 서울에 사는 한 중년 여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. 생김새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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짐작할 수 없고 목소리도 낯서니 그저 중년 여인이라고 할밖에 없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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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 때, 그 이름 석자가 멍해진 머릿속을 톡톡 두드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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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, 내 가슴은 묵직하게 밀려오는 어떤 농밀한 향기에 감싸여 버렸다. 그 중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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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인은 바로 내 첫사랑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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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으로 맺은 사랑, 첫사랑. 세상에 이보다 더 가슴 뛰게 하는 말이 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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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까. 너무도 순수했기에 그 어떤 미숙함이나 부끄러움마저도 다 품어버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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빛나는 순수함, 그것이 첫사랑이다. 끝내 맺지 못한 미완의 꿈이었기에, 다른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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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꿈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아쉬운 꿈이었기에, 가슴속 저 깊은 곳에 숨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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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내미는 얼굴, 그것이 첫사랑이다. 너무도 아름다웠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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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마 꺾을 수 없는 꽃처럼 그저 향기만으로도 취하는 추억, 그것이 첫사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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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마을에서 자란 그녀와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. 구슬치기도 같이 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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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갖 장난으로 함께 웃고 울던 이웃집 소녀, 그것이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그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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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습이었다.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많은 놀이와 장난들 속에서 우리는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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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들을 나누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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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이 들면서 우리는 그 동화의 세계에서 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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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진무구했던 그 시절을 뒤로 하고 우리는 변해 갔다. 서로에게 의미있는 이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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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 것이다. 소 닭 보듯 서로를 바라보는 그런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. 상대방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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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재로 인해 가슴이 부풀고, 상대방의 부재로 인해 가슴조이는 그런 관계가 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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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런 감정이 어떻게 싹트기 시작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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갸름한 얼굴의 그녀는 선한 눈빛을 띠고 있었는데, 그 눈빛을 느끼면서 사랑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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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정이 시작된 것일까. 코 흘리던 시절에 쌓은 정이 그만 그렇게 번한 것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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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 수 없다. 사랑은 그렇게 알 수 없이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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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 나는 십대 중반의 나이로 객지로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. 철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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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정규 교육을 그만두고 각지의 서당들을 찾아다니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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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문과 유학을 배운 것이다. 그녀 역시 직장을 얻어 서울에 가 있었기 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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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기껏해야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밖에 볼 수 없었다. 명절 때 고향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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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는 발걸음은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더욱 가벼워지곤 했다. 그녀에 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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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상만으로도 가슴을 이미 벅차오르는 것이었다. 그러나 함께 고향에 와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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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도 사람들의 눈 때문에 마음대로 만날 처지는 아니었다. 어떻게 하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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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빛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 속에 속절없이 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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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나가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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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행히 우리 사이에는 충직한 파발꾼이 하나 있었다. 바로 그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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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동생이었다. 나는 귀여운 그 파발꾼을 통해 그녀에게 쪽지를 전하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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약속 시간을 주로 밤이었고 장소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이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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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었다. 어둠 속에서 확인하는 서로의 눈빛, 그 짜릿함은 지금도 잊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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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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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만남이 시작될 무렵에는 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오랫동안 기다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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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 그 시간을 가 보내곤 했다. 부끄럼 많은 어린 연인에겐 그것만으로도 벅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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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간들이었다. 결혼이라는 말만 나와도 얼굴이 붉어지던 시절이었다. 그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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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로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과 느낌을 말했고, 나는 서당에서 겪었던 경험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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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려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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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절과 명절 사이의 그 긴 시간 동안에는 편지를 주고받았다. 우리는 그 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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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 만나서 하니 못한 말들을 적을 수 있었다. 세상을 다녀 봐도 너처럼 마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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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편한 여자는 없더라, 라는 표현에서 좋아한다, 혹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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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한다는 표현까지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게 편지였다. 편지로 마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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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증을 달래다가 명절이 오면 우리는 다시 우리의 방식대로 남들의 눈을 피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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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날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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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이 익어갈수록 두려움도 깊어지는 것일까. 우리의 소박하고 순수한 만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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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날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. 그녀는 나를 따르며 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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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. 자기는 나의 이상적인 여성, 이상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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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려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. 비록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몇 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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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귀다 보니 우리 앞에는 결혼이라는 문제가 어느새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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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면서 사는 게 결혼이라며 그녀를 격려해 보기도 했지만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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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사이에 생긴 미묘한 틈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었다. 더구나 우리에겐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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싶을 때, 할 말이 있을 때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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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서당에서 저 서당으로 여전히 나는 객지를 떠돌며 공부를 해야 했고, 그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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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살이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. 그녀와 내가 함께 하지 못한 그 많은 시간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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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. 스무 살이 넘으니 서로의 생각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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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무나 달라져 있었다. 한복을 입은 나와 양장을 한 그녀는 서로 만나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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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색해졌다. 물론 옷 때문만이 아니었다. 우리 사이에 파고든 미묘한 틈, 눈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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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점점 커지고 높아졌다. 사랑이 어떻게 왔는지 명확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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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할 수 없듯 그 틈도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는지 딱 하나로 꼬집어서 얘기할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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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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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세월이리라. 사랑을 가져다 주었다가는 시샘을 하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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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별을 불러오고, 이별 후에는 또 추억을 새겨주는 것, 그것이 세월이 아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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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세월의 장단 속에서 우리는 주어진 생애를 나름대로 꾸려가는 것이다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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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하고 이별하고 추억하면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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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사랑이었던 그녀의 전화가 너무도 뜻밖이었던지라 나는 당황할 수밖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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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, 언제 만나서 차 한 잔 할 수 있겠느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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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었다. 그녀는 만나기가 두렵다는 식으로 대답했다. 두려운 것은 다른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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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었다. 현재 자신의 모습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쳐질지가 염려된다는 뜻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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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렸다.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이 달라진 현재의 모습 때문에 깨질지도 모른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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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두려움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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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면 그럴 것이다. 오랜만에 만나 차 한 잔 나누었다고 첫사랑의 추억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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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. 그러나 어쩌면 서로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추억의 상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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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분이 손상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. 차라리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, 세월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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흘러도 변하지 않을 영원한 사랑으로 남겨두고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. 가슴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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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중히 담아둔 채 어쩌다 가끔씩 그 순수한 열정을 떠올릴 깨 첫사랑의 추억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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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의 향기가 될 것이다. 그것이 아무리 쓰라렸던 것이라 해도 추억은 우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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좀더 아름답고 순수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. 어린 시절의 추억이 그러하듯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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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월은 그래서 때로는 마술사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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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는 지금 내 옆에서 잠들어 있다. 잠에서 깨어나면 불순할 수 없는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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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사랑의 추억을 아내에게 들려줘도 좋으리라. 아내는 웃을까? 아니면 공연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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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투의 표정을 지을까? 아마 웃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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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존여비는 사이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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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, 우스운 말이다. 뜻인즉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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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보다 여성이 위에 있다는 것일 텐데, 무엇으로 위에 있단 말인가. 가정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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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서 권리가 더 많고 위치가 더 높다는 뜻인가. 아니면 현대에 들어와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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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슨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나 남성보다 여성이 질적으로 우수한 인간이 됐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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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인가.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잠꼬대 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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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한 잠꼬대는 물론 아닐 것이다. 상대적으로 낮았던 여성들의 지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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높아졌다는 뜻일 것이다. 세상이 변했다는 뜻일 것이다. 여성이 남성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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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속당했던 지난날을 남성상위시대로 보면서 그 반발 작용으로 나온 표현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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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이렇게 따져 보면 여성상위시대라는 우스운 말이 나오게끔 만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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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상위시대라는 거만한 유물이 더 우습고 한심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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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와 여자는 누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. 남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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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대로 또 여자는 여자대로 각기 특성을 살려 서로 조화를 어울리는, 세상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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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아름다운 짝이 될 수 있는 그런 동반자다. 그것이 선현들의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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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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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 왜 이 땅에서 남성이 여성을 예속시키고 비하하는 잘못된 전통이 이어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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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 것일까.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교적 전통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다. 틀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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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라 할 수 없다. 그러나 덧붙일 말이 있다. 조선시대에 잘못 이해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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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법으로 사용된 유교의 원리 때문이지 유교 그 자체가 그런 불평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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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장했다고는 할 수 없다. 남존여비의 악습이 유교를 편법으로 이용한 대표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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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례라 할 수 있다. 남자는 높은 위치에 있으니 그에 합당한 권리와 지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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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리고, 여자는 그 아내 예속되어 순종하라 하는 것은 철저한 반상의 차이를 두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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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반 계급의 특권을 유지하려 한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식 유교의 폐해라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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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그 잘못된 전통이 오늘날까지 내려와 여전히 '어디 감히 여자가'식의 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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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기고만장한 남자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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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상하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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합리적인 역할 분담으로 나뉘었다. 세상에 태어나 할 일과 갖추어야 할 예의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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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의 구별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. 해가 달이 될 수 없고, 달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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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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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극히 평범한 남자와 여자의 풍경을 보자. 출산을 한 여자에게는 자식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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젖을 풀려 영양을 고급하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게 가장 소중한 일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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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남자가 대신할 수는 없다. 하기야 소젖으로 아이를 키우는 세태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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젖병으로 남자가 먹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대들 사람도 있을 것이다. 그렇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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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바람직한 육아의 방법을 말할 수밖에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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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면에 남자는 여자가 젖을 물려 아이를 기르는 동안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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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따지고 들어가면 남자와 여자가 할 일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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갖추어야 할 예의가 따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. 조화로운 역할 분담, 그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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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를 구분하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이유요 기준이 된다.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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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의 뜻은 단순히 남녀가 한자리에 앉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. 일곱 살쯤 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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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이 들 터이니, 남자와 여자의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라는 가르침이다. 그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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격은 상하를 말하는 게 아니라 역할 분담을 이르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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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서거나 앉을 때의 전통 예법을 보면, 그 둘의 관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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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. 예법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를 왼쪽에 두고 여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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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를 오른쪽에 두는데 그것은 상대에 대한 최고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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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습관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오른쪽 혹은 왼쪽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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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승서추라는 말이 있다. 동쪽에서 올라 서쪽으로 내려간다는 뜻인데, 태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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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롯해 세상 만물의 움직임을 가리킨다. 승은 양의 기운이요 추는 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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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운이다. 만물은 그렇게 음양의 조화에 의해 생성되고 변화한다. 그리고 모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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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명력은 태양 입자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남쪽을 향해 서는 것이 원칙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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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쪽을 향해 섰을 때 동쪽은 왼쪽이요, 서쪽은 오른쪽이다. 그런 연유로 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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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운을 가진 여자는 서쪽, 바로 오른쪽을 상석으로 삼고, 양의 기운을 가진 남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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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쪽, 바로 왼쪽을 높은 자리로 여긴다. 남자끼리 앉았을 경우, 어른이 왼쪽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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앉고 여자끼리의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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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을 때는 어떤가. 남자는 존경의 표시로 높은 자리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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왼쪽을 여자에게 내 주고, 여자 역시 존경의 표시로 오른쪽 자리를 남자에게 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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준다.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음양의 조화로 어울리는 것이다. 상하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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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분하기는커녕 역할 분담을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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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존여비는 입장이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말이지, 남자는 높으니 가치가 높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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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는 낮으니 가치가 낮다는 말이 아니다. 가치로 보면 둘을 같은 존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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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만 모든 물체에 양면이 있듯이 남녀를 양면으로 볼 때 남자를 앞면 여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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뒷면으로 질서를 구분하는 것뿐이다. 그렇기에 과거의 지배 논리인 그 뒤틀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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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고를 허물어야 참다운 남녀 관계를 볼 수 있다.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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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들이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품는 헛된 우월감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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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들도 스스로를 비하하는 열등감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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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남존여비의 잘못된 구습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이
|
있으니, 남녀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기는 인간 질서와 조화의 파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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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다. 남자가 할 일을 남자가 하지 않고 여자가 할 일을 또 여자가 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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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 성의 왜곡이 숱한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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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혼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문제를 보자. 언뜻 보면 그동안 소외받아 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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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이 직업을 통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, 성취욕도 느끼고 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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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. 물론 그렇게만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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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의 사회 진출은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할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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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한 것인가. 남성과 여성은 타고난 특성으로 부여받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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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각의 역할이 있다. 기본적으로 말하면 남자는 일을 하고, 결혼을 해서 아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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낳은 여자는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것이다. 가정을 꾸려가는 일은 사회의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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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다른 일보다 소중하고 우선이 되어야 한다. 남자가 밖에 나가 일을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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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도 따지고 보면 가정을 꾸려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. 인간 사회의 질서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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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화를 유지하려면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는 지켜져야 한다. 교묘하게 포장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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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그것을 함부로 난도질해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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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몸을 보면 손이 할 일이 있고 발이 할 일이 있는 것이다. 눈으로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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귀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. 모든 것은 순리에 의해 움직일 때 제 기능을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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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눈으로 들으려 하고 귀로 보려 하면 들을 수도 없다. 여자가 제 일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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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쳐둔 채 남자 일에 매달리고 남자 도한 그렇게 여자 일에 끼어들어 역할 분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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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물어졌을 때 가정과 사회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.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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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로 인해 평화는 깨질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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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혼 여성의 사회 참여를 무조건 반대하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 매도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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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아니다. 그것은 가치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선후의 문제로 봐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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즉 여성의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한다. 여성은 직장보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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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에서 우선적으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. 직장 일도 하고 가정에서도 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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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할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. 물론 그렇게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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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면야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. 그러나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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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혼 여성이 직업을 가졌을 경우 대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아닌 편법 속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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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은 자라고, 여인네의 손맛 대신 밥상 위에는 인스턴트 식품들이 진을 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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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의 훈훈함은 안주인의 부재로 유발된 냉기에 사라진다. 필설로 그 문제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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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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텅 빈 집에 늘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. 특히 편법 속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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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가 된다. 아이들은 바로 미래의 주역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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희망이다. 그 아이들이 제대로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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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까. 그 중요한 일의 상당 부분은 가정에 있는 어머니의 몫이다. 밖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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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을 한다는 핑계를 대로 정작 해야 할 그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십원을 벌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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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갔다가 백만 원짜리 집안의 보석을 잃는 꼴과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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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 분위기가 그런 역할 분담의 왜곡을 부추기기도 한다 가정에서 소중한 일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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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며 제 역할을 다하는 여성들 가운데도 스스로를 비하하는 이들을 가끔 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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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이웃집의 누구는 돈을 얼마나 벌고, 동창생 누구는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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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데, 나는 도대체 뭔가,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바심을 내는 것이다. 물질
|
숭배가 팽배한 세상이고 보니 만사를 돈의 척도로 바라보는 나쁜 버릇이 생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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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구분조차 못한다.
|
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소중한 역할을 내팽개치고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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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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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손해로 말하면 어머니의 역할, 아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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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기는 손해를 어디에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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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난한 처지에서 자식을 위해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들의 모정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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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물겨운 것이다. 그런 어머니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자들이 할 일도 가리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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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다. 그것을 두고 감히 역할 분담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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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두고 감히 역할 분담이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. 빼어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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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능을 지닌 여성이 결혼 후에도 그 재능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훌륭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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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 그 여성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가정을 꾸려간다면 그 또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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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경의 대상이지 결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. 이러한 예외는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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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역할 분담의 지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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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존여비식의 남성 지배 논리는 가정과 사회의 건강함을 좀먹는 악습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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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날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잔재는 끝내 타파되어야 한다. 그리고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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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리에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담이라는 조회의 성을 쌓아야 한다. 만약 세상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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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이 혹은 여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. 상상해 보는 것조차 끔찍하지 않은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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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성을 남성을 위해, 남성은 여성을 위해 조화의 축배를 들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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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식 사랑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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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눈에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, 한평생을 살다 보니 겨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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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이란 것을 느끼겠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, 온 세상을 다 뒤져보았지만 결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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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이란 것은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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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그렇게 제각각이듯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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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가쟁명으로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. 내게도 사랑은 영원한 주제요 삶의 포기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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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는 목적이 된다. 그래서 무엇이 사랑이고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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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의문을 늘 가슴속에 품고 산다. 그러면서 가끔 떠올리는 구절이 하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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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무차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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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유친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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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에는 차등이 없고, 베푸는 것은 어버이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다. 언뜻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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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, 그 뿌리를 캐 들어가면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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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부모의 사랑도 사랑이요 이웃 혹은 연인 사이의 사랑도 사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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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웃을 사랑할 때와 연인을 사랑 할 때 그 마음의 색깔은 다를 수 있다 해도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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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본적인 생각과 느낌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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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고,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연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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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. 그런 사람은 사랑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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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그 열매만을 이기적으로 따 먹으려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. 그 사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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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인에 대한 사랑도 온전한 것이라기보다는 얄팍하고 왜곡된 욕망의 부산물일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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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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흔히들 자식이나 친구 혹은 연인에게 '너만을 사랑한다'는 식의 말을 하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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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자기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려는 표현으로는 감격스럽기까지 한 것이지만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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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진정한 뜻은 '주위에서 많은 사랑을 느끼지만 특히 너를 사랑한다'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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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야 사랑의 본모습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리라. 사랑에는 이렇게 차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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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어야 그 뿌리를 알 수 있는 것이지만, 베품은 어버이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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흘려버릴 수 없는 진실이다. 자식을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사람답게 살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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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도록 애정과 가르침을 쏟는 것, 거기서 사랑은 시작되고, 사람은 그 품안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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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초로 사랑을 배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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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우리는 어쩌면 애유차등에 더 가까이 서 있는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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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겠다.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멸시를 보내고 넘치는 사람에게는 아첨을 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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힘 없는 이들을 짓밟으면서 힘 센 이들에게는 추파를 보내는 세태가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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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곳에 사랑이 자리할 곳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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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외 입양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. 돈을 받고 외국에 입양아를 가장 많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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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내는 수치스런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사실은 고개를 들기도 부끄러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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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 외국의 언론들은 입양아 수출로 돈을 버는 나라라고 냉소를 퍼붓는다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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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노릇이다. 해외 입양이 그렇게 많은 것은 근본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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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하면 버려진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지만, 현실적으로 국내 입양이 적기 때문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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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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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양에 대한 여러 얘기를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. 어쩌다 국내에서 입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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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만 그들은 대부분 예쁘고 똑똑한 아이들만 찾는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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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그래서 지체장애아와 같이 몸과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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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외의 양부모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.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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키우겠다는 것은 어쨌든 가상한 일이고, 예쁘고 똑똑한 아이만을 찾는 것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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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응당 보이는 태도라 할 수 있겠다.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한 것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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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처를 지니고 있는 아이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은 예쁘고 똑똑한 아이들이 당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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품고 있기에 좋은 줄 몰라서 더 어려운 선택을 했을까. 결코 그렇지 않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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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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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차등 없는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을 것이다. 예쁘게 생겼건 밉게 생겼건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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똑똑하건 바보스럽건, 몸을 제대로 가누건 가누지 못하건 따지지 않고 그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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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싶었을 것이다. 오히려 베풀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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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유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선택했을 것이다. 바로 그러한 태도에 차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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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진정한 사랑의 실체가 배어 있는 것이다. 그러한 사랑이 바로 어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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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난하고, 외롭고,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질지 못하고 베풀지 못하면 사랑을 말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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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다. 그래서 유가에서는 인을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으로 꼽아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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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민족은 본래 사랑의 은근함을 소중하게 품고 살아왔다. 배추속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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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이다. 잎을 하나 슬쩍 벗기면 속이 나오고, 다시 잎 하나를 벗기면 속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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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오는, 그러면서 그 속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그런 사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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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의 정표가 담긴 선물을 받았을 때도 '고맙다'는 식의 표현보다는 '뭐하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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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걸 사왔어'라 한다.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런 표현이 무슨 뜻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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줄 충분히 느낀다. 그러면서 뜸을 들여 밥을 짓듯, 사랑도 푹 뜸을 들여 익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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쉽게 만나고 또 쉽게 헤어지는 요즘의 경박한 사랑 놀이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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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근함이 배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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형제 혹은 친구와 나누는 애정도 은근함의 운치가 넘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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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상무일하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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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기상견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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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주금석하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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군자유연이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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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언제 죽을지 몰라, 서로 볼 날이 얼마 없으니, 술로써 오늘밤 즐겨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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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들의 잔치를 열어 보자는 내용이다. 정을 나누어도 이렇게 나눈다. 짧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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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 속의 소중한 만남을 말하면서 은근히 애정의 필요성을 서로 나누고, 마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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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 수 있는 술을 하나의 매개로 삼아 애정의 즐거움을 노래한다. 다른 그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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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 때문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를 나누고 싶은 마음, 그것이 사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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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을 나누고,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삶, 그것은 아마 가장 행복한 삶이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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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런데 그러한 행복과 사랑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요, 남이 갖다 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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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도 아니다.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. 사랑을 받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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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는 요건을 갖추려 애를 쓰는 것, 그것이 유교식의 사랑법이라 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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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건을 갖춘다는 것은 요령을 부린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. 스스로 사랑을 받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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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. 윤리를 배우고 도덕을 배우고 인간적인 도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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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워 실행할 때 그 사람은 사랑스럽지 않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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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머니 속의 돈이나 얼굴에 바른 분으로 사랑을 얻으려는 것은 얄팍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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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증스러운 요령에 불과하다. 남자는 남자로서, 또 여자는 여자로서 쌓아야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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덕목이 있다. 그 덕목을 쌓는 것이 바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추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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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사랑은 쉽게 맡을 수 있는 향수 냄새가 아니라 은은하게 가슴속 저 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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곳으로 느껴지는 꽃 향기와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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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식 사랑법이라는 제목으로 적어가다 보니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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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성동본인 남녀의 결혼 문제다. 때때로 이 문제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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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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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결혼을 반대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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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의 윤리가 바로 가정의 윤리요, 세상의 질서는 남자와 여자의 질서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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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. 그리고 그 질서라는 것은 나라마다 지역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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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름대로 가꾸어 온 관습에 따라 세워진다. 관습이 오래 되면 전통이 되고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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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은 곧 문화요 정신이라 할 수 있다. 결혼의 근친성 여부를 따질 때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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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에서는 사촌의 범위만 넘어서면 결혼할 수 있고, 또 어떤 곳에서는 그 기준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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십촌쯤 되는 곳이 있을 것이요,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동성동본 금혼의 질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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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켜온 곳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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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어떤 전통이 그릇된 것이라면 언제든지 바꾸어야 하겠지만, 그렇지 않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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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장점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. 동성동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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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하는 우리의 결혼관은 유전학적으로 봐도 훌륭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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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꾸어 와 미풍양속이 되었다. 관습과 전통이 무너지면 세계의 상놈이요, 종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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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다른 민족의 경우를 비교할 것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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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허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필칭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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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윤리와 질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과연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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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일까. 동성동본 금혼의 질서가 무너진 후에는 또 무슨 소리가 나올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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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마 십촌이 아니라면, 다시 육촌이 아니라면 하다가 사촌의 벽도 넘자는 주장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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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올 수 있을 것이다. 그것이 과연 자유요 권리인가. 물리 새는 작은 구멍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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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기 위해 더 큰 구멍을 뚫을 수 없듯이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위해 또 다른 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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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. 만일 동성동본 금혼법이 폐지되면 우리는 조상으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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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대손이니 16대손이니 하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. 민족을 이어 온 그 세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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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계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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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실적으로 안타까운 남녀가 있다는 것을 안다. 이미 결혼을 했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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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성동본이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부부가 못 되고, 따라서 그들의 자식들마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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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의 호적에 당당히 오르지 못해 여러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다. 이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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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한시적인 특별법으로 구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. 동성동본의 결혼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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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면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지킬수록 좋은 우리의 전통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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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킬 것은 무시하고 누릴 것만 말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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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세 교육은 궁합에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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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행스럽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빛을 말하는 선조의 지혜들이 있으니, 태교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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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가운데 하나다. 새로운 세대의 젊은 부모들까지 포함해 태교의 중요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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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인하는 부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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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산모를 비롯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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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란다. 세상과의 첫 만남은 뱃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. 그래서 뱃속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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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기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산모는 말과 행동에 조심하고, 먹는 음식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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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의하고, 아름다운 예술이나 풍경을 접하고, 현명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등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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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력을 한다. 참으로 가상한 모습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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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을 말할 때 청소년기나 성인이 됐을 때의 교육에 앞서서 유아교육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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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성이 강조되고, 유야 교육에 앞서서 태교의 영향력이 중시된다. 그러나 후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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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을 잘하기 위해서는 태교 이전부터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 있다. 바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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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부부 사이에서 생긴 자식은 태교를 받기 이전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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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미 여러 문제를 가질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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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가 서로 맞지 않는 부부 사이에서 좋은 후세가 태어나길 기대 할 수는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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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음식의 궁합을 예로 삼아보자. 어떤 음식들은 함께 먹으면 영양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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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게 있고, 또 어떤 음식들은 결합되면 서로의 영양가를 파괴하면서 몸에 나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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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향을 끼치는 것도 있다. 각각의 음식은 저마다 영양분이 아주 높다 해도 잘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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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합되면, 즉 궁합이 맞지 않으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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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을 쌓을 때도 돌끼리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해야 한다. 하나 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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쌓이는 돌끼리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성을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진다. 둥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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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독에 궁합이 맞지 않는 네모난 뚜껑을 덮으면 어떻게 될까. 바람이 불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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덜덜거리며 흔들릴 것이고 맞지 않아서 새긴 틈새로 벌레들이 기어들어갈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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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 결합된 음식이 영양가를 헤치고, 잘못 결합된 돌들이 성을 무너뜨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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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과 마찬가지로 궁합이 맞지 않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후세는 정도의 차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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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겠으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문제를 안고 태어나는 것이다. 그렇게 태어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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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후도 문제는 더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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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이 맞지 않는 부부는 심할 경우는 어느 한쪽이 죽을 수도 있고, 건강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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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빠지는 경우도 있다. 성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상대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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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달리기도 한다. 서로 밀어내는 자력처럼 사사건건 대립을 하다가 서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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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곤 하는 것이다. 그런 부부 아래서 이미 문제를 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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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어난 자식이 제대로 크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. 나무에 올라 고기를 구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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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과 마찬가지의 기대라 할 수 있다. 음식의 궁합이나 돌의 궁합은 눈으로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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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면서 남자와 여자 양성으로 나뉜 인간의 근본적인 궁합을 외면하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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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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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녀 교육열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부러울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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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교육열만 높다고 자랑할 것은 아니다. 치맛바람 휘날리며 자기 자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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점수 벌레로 만들어 출세할 수 있는 대학에 보내려는 게 참다운 교육관일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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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고, 사랑과 봉사를 외면한 채 자기 탐욕만 채우는 기능을 배우도록 유도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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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또한 올바른 교육관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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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관점과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. 남녀가 궁합에 맞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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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나는 것 자체를 태교보다 앞선 후세 교육이라 하는 것은 먼저 남녀가 질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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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이상적인 최상의 궁합 조건을 갖추어야 2세가 훌륭하게 태어날 수 있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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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다. 나라의 장래는 아이들에게 있고 아이들의 장래는 교육에 있다 할 때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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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인간의 근본을 외면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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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알지 못하고, 알려고 노력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전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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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 담긴 지혜를 무조건 부정하려고 덤비는 이들이 적지 않다. 그들은 서양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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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학만을 과학이라 하고 동양의 그것을 멋대로 깔아뭉개곤 한다. 음양오행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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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초한 궁합도 마찬가지다. 그것의 중요성을 알면 후세 교육의 관점에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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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으되, 그렇지 못하면 소 귀에 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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읽는 소리밖에 되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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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합과 교육의 관계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. 우리는 보통 사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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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명을 말한다. 운명은 운과 명이 어울려서 결정되는 것이다. 명이 선천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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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어진 요지부동의 결정 요인이라면 운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창조가 가능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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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인을 가리킨다.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기르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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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을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. 채소의 명은 그대로 있되 운을 바꾸어 변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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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져오게 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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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운명을 그 두 가지 요인의 상호 작용으로 변화한다. 명을 바탕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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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을 개척해 나가는 게 사람이 할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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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때로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나 사주가 똑같은 사람은 똑같은 운명으로 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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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. 먼저 답을 말하면 결코 같을 수 없다. 비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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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주가 같더라도 환경과 부모에 따라, 그 부모들이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생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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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고 무엇을 보고 듣고 즐겼느냐에 따라 태아가 받는 양분이나 영양 공급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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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라지기 때문에 사람의 기질의 청탁은 같을 수가 없다. 사람의 운을 개척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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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힘은 기질에 달려 있기에 기질이 혼탁한 사람은 운을 현명하게 개척 할 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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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렇기에 사주가 같다 해도 기질의 청탁이 다른 한 운명은 다르게 전개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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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는 것이다. 태교를 비롯한 교육의 중요성이 거기서 나온다.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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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주를 같고 태어났다 해도 태교 및 교육에 정성을 쏟은 신사임당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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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머니에게서는 율곡 같은 아들이 나올 수 있고, 그렇지 않은 어머니에게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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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나니가 나올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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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라만상은 저마다 타고나는 성격과 청탁이 있다. 바람직한 삶은 자신의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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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격과 청탁을 알아 분수껏 사는 것이다. 명에 따라 타고 난 저마다의 소질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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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는 삶이다. 소나무로 태어났으면 소나무로 살고 대나무로 태어났으면 대나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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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아야 한다. 단, 후천적 노력으로 운을 바꾸어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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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명을 바로 안다는 것과 후천적 노력을 통해 운을 제대로 살려가는 일은 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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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의 수레바퀴가 되어 인간의 삶을 싣고 간다. 태교가 명의 질을 좌우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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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이 운의 성패를 결정한다. 궁합을 맞게 하여 후세 교육의 근본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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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명의 기준에서 보는 시가이다. 태교와 교육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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둘의 조화는 궁합에 의해 결정되고 후세의 운명 또한 그것으로 정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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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 떠나 어디서 사랑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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덴마크의 변화하는 풍속도를 취재한 <세계는 지금> 이라는 텔레비전 프로를 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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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 있다. 프리섹스의 천국이라는 명예 아닌 명예를 갖고 있던 그 나라가 요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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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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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때 그 나라의 상당수 젊은이들은 프리섹스의 마력에 빠져 있었는데, 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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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류들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에 프리섹스의 장으로 삼았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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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니까 남자들과 여자들이 한 공동체에 섞여 살면서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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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택해 섹스를 하는데, 언제고 그 대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. 짝을 바꾸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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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며 빙빙 도는 춤을 추듯 공동체 안의 사람들과 사귄다는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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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기에는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하나의 쌍은 거의 없고 늘 달라지는 쌍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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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이었다. 당연히 공동체에서 아이들도 태어나는데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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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태가 될 수밖에 없단다.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이다. 헌데 그들은 한때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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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활을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까지 여겼다 한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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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그들은 달라지고 있단다. 그런 식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,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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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의 기쁨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. 그래서 하나의 쌍을 만들어 가정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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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 둘 돌아간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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섹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. 한때 여성들은 여성 해방을 외치며, 가정보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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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서의 자기 일을 더욱 중요시했다고 한다. 그러다 보니 사회 생활에 장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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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으려 하지도 않고,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동거부터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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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당연시했다는 것이다. 그런데 그런 의식도 차츰 바뀌어 요즘은 가정과 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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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가정을 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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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필귀정이다. 인류의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. 거기에 부모와 자식이 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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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편과 아내가 있고, 형제와 자매가 있다. 최초의 인류도 가정에서 시작되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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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요, 만약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그때도 인류는 가정을 품고 있을 것이다.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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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겠는가. 가정을 대신할 것이 인류에게 있을까.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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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은 가장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터전이다. 특히 동양의 전통적인 대가족제도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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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정을 보장하는 최고의 보험제도라 할 수 있다.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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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명체에서 개개 구성원은 전체 가족을 보호할 의무와 보호받을 권리를 동시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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갖는다. 그것은 계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립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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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이것만큼 가치 있고 효율적인 보험제도가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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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학자 토인비가 우리의 대가족제도를 찬양한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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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래에 들어와서 장점이 많은 대가족제도의 전통이 안타깝게도 점점 허물어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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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지만 그 본래의 장점까지 잃어버리면 안된다. 사랑이 시작되는 가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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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름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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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어찌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. 부모를 모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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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사회에 나가서 선배를 모르고, 형제를 모르는 사람은 동료와 친구를 알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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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, 어떤 사랑을 베풀 수 있단 말인가. 가정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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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사랑의 연습장이요 실천장이다. 가족을 통해 사랑과 봉사를 배우고, 그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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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탕으로 사회에 나가서 사랑과 봉사를 베풀 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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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.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만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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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족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올바른 역할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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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지 저절로 가정의 의미가 살려지는 법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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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아내와 자식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. 옛말에 자식을 낳아 놓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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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도둑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. 세상 살아가는 올바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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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도와 능력이 없을 때 남의 것을 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. 사회에서 구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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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못하는 사람들,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 부모를 떠올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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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 수밖에 없다.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욕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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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나의 자녀 교육관이다. 성장한 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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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 어느 곳에 던져지더라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. 그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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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특성을 잘 살펴야 한다. 그걸 무시하고 일방적인 강요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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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것은 홀로서기를 방해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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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남 3녀의 내 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형제이면서도 개성이 다 다름을 느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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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어떤 아이는 학구적인 태도를 보이고, 또 어떤 아이는 그림에 흥미를 느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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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가가 되고 싶어한다. 상대적으로 활동적인 아이도 있고 정적인 아이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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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원의 꽃들이 다 저마다 다른 모양과 향기를 갖고 있듯 아이들도 그렇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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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질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홀로서기 교육관의 출발인 듯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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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러한 교육관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나는 스파르타 식으로 자식들을 대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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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리 분별을 제대로 할 능력이 아이들에겐 부족하다. 따라서 제대로 엄격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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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치지 않으면 저마다 지닌 소질을 살려 줄 수 없다. 아이들은 저마다 소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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갖고 있으되 어떻게 해야 그것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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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에서는 그 일을 부모가 해야 하는데, 엄격함을 유지하지 않으면 성공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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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일을 해내기 어렵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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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들에게는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한다. 인간은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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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자체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. 탄생 자체가 구원인데 길러주기까지 했으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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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는 자식의 창조주요, 제2의 신인 것이다. 그런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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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겠는가. 마약 부모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논리있게 말을 해라. 자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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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이라도 옳은 부분이 있으면 들어줄 것이다. 단,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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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섭 말라는 말은 감히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. 부모의 깨우침을 간섭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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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부하고, 끝내 그 간섭이 싫다면 집에서 나가야 하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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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이야기가 있다. 나그네가 어느 날 낯선 지방의 여관에 묵었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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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관에는 새장이 하나 있었는데, 그 안에 있는 앵무새 한 마리가 '자유, 자유'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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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를 반복했다. 바람처럼 떠도는 나그네는 앵무새가 얼마나 새장을 벗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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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유롭게 날고 싶으면 저럴까 하고 생각했다. 마침내 나그네는 주인 몰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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앵무새를 하늘로 날려 모냈다. 며칠 뒤에 나그네는 그 여관으로 다시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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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. 자신이 분명 날려 보낸 앵무새가 다시 새장 안에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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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아닌가! 그 안에서 앵무새는 여전히 '자유, 자유'라는 소리를 반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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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그네는 앵무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. 앵무새에게는 새장 안이 자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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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간일 수 있겠구나. 갈 곳 몰라 무작정 날아야 하는 새장 밖의 허공이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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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새장 안이 자유일 수 있겠구나. 그렇게 생각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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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그네는 자유의 의미를 되짚어 보았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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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아와서 살고 싶은 곳으로 느꼈을 때 새장은 앵무새에게 자유다. 아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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홀로서기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자식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 것이라며 부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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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은 새장 밖은 무조건 자유라는 식의 태도와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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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멋대로 구는 문제아들도 결국에는 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을 많이 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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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렇게 늦게 후회하는 사람으로 자식들을 키우지 않으려면 부모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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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하고 엄격한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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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몇 가지 더 있다. 그 하나가 사람은 오기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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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. 그러나 남에게 오기와 질투를 보이라는 말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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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진정한 오기와 질투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.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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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름을 스스로 부르면서, 왜 너는 말을 함부로 해서 남의 미움을 받느냐 이 못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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놈아, 왜 너는 행동을 함부로 해서 남에게 욕을 먹느냐 이 나쁜 자식아, 왜 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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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보다 생활에서 뒤지고 왜 공부에서 뒤지느냐, 왜 행동이 바르지 못하느냐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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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서 어찌 사람 대접 받기를 바라느냐, 하면서 자신을 분석하고 검토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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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분하라고 이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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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사람은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열 가지 하기 싫은 일을 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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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는 것이다. 농부들을 보라. 추수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얼마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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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은 일을 해야 하는가. 그 많은 일들이 싫다해서 하지 않으면 곡식을 거둘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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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어디 농부들만 그런가. 세상 만사의 이치가 그렇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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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밥값을 해야 함을 늘 말한다. 밥은 그저 주어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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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아니다. 농부들이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곡식이 나오고, 부모들이 힘들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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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을 해서 그 곡식을 사 온다. 사 온 곡식을 또 어머니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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밥으로 짓는다.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식은 밥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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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밥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. 헌데 세상에는 밥값을 못하는 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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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무도 많다. 밥값도 못하는 정치가, 밥값도 못하는 지식인, 밥값도 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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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달들....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밥값을 해야 할 일이 있다. 그래야 아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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커서도 밥값을 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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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한 그 이치들을 아이들 스스로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게 보모의 의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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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요즘 일부에서는 과보호니 하는 풍조가 있는 모양이다. 제 자식 예쁘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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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싸고 돌면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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착각하는 부모들이 있다. 그런 태도는 씨를 뿌리고 싶지 않으면 그저 놀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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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을에 추수만 하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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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빗나간 부몰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빗나간 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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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연한 결과다. 고기 잡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늘상 주는 고기만 받아먹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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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란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못한다. 고기 잡는 방법을 모르니 그릇된 방법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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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기를 차지하려 하고, 거기서 온갖 문제들이 터져나온다. 올바른 가르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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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면한 채 부모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 가당찮은 일이다. 그런 부모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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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자식은 물론 세상까지 망치고 있는 것이다. 요즘 부모들이 다시 한 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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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이 있다. 가정은 사랑의 연습장이요 실천장이지 짐승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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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육장이 아니라는 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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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올바른 가르침과 효의 상호작용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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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해서 이루어진다. 수직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. 그렇지만 남남으로 살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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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나 한 가정을 만든 부부는 수평적인 관계로 서로의 조화에 의해 사랑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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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작되고 또 결실을 맺는다. 부부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을 때 참다운 가족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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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은 기대할 수 없다. 인연이 닿지 않았으며 남남으로 살았을 남자와 여자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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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. 참으로 오묘한 사랑의 조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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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닌가. 그러나 외관상 부부라 하여 모두 조화 속에서 살 수는 없다.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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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자라는 것은 보충해 주고, 다른 것은 맞추어 가면서 살 때에야 비로소 사랑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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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가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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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부부의 만남을 떠올릴 때 나는 그 상식적인 부부관을 새삼스레 느끼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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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스물 일곱 살 때 나는 아내와 중매로 만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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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천의 어느 찻집에서 선을 봤는데, 처음에 우리는 서로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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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만 호감을 갖지 않았다고 하면 아내가 섭섭해 하겠지만, 나중에 들어본 바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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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 역시 내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니 우리 둘은 다 상대방을 반려자로 삼고 싶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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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았던 것이다. 남남이 만나 첫눈에 그 모양이 되었으니 일은 끝난 것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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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였다. 어느 한쪽이라도 호감을 갖고 매달리면 그래도 가능성은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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터인데, 꼴이 그렇게 됐으니 우리는 깨끗하게 선을 보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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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연한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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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아저씨뻘 되는 중매쟁이가 포기를 하지 않았다. 당사자들이 관심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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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는데 중매쟁이가 그러니 우스운 노릇이지만, 우리는 웃어 넘길 수만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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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듭되는 종용에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만났다.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웃겠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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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만남도 있는 것이다.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집안 어른들의 의사로 결혼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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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보다는 그래도 우리는 신식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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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쨌든 궁합까지 봤는데 잘 어울린다고 나왔다. 그러자 문제는 중매쟁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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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원에서 벗어나 버렸다. 부모님이 결혼을 재촉하셨다. 그것은 권유보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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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요에 가까웠다. 자식된 도리로 부모님의 뜻을 단호히 뿌리칠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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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전통 유교 집안의 방식이었다. 결혼은 당사자가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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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사자간의 만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. 서로 다른 가족과 가족이 만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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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와 문화가 만나 어울린다. 당시에도 나는 이런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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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학자 집안에서 자란 아내 역시 그런 결혼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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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 우리는 첫눈에 서로 관심이 없었으면서도 주변의 권유에 기대어 만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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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어갔고, 마침내 결혼을 했다. 그것만 가지고 성급히 잘못된 결혼이라 말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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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부부의 참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라 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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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부부가 되면서 상대방의 장점을 격려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태도를 갖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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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었다. 우리가 이상적인 부부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. 다른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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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들처럼 우리도 서로의 조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. 내가 지금 잘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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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혼이라고 느끼는 것은 그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. 부부의 사랑은 함께 살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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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화를 위해 노력할 때 익어가는 것이다. 연애 시절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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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가 결혼한 부부도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사랑은 어느덧 미움으로 바뀌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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버린다. 근래에 이혼하는 부부가 놀랄 만큼 급증하는 현상은 대부분 거기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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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인하는 것이다. 처음부터 완벽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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착각이다. 특히 부부 사이의 사랑이 그렇다.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잎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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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게 한 후 꽃이 핏기를 기다려야 한다. 그 꽃은 화려하게 폈다가 금세 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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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간적인 정열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은은한 향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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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때로 기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. 사후에 천당이나 극락에 가겠다고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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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가운데 가정에 소홀하거나, 심할 경우는 아예 가정을 파괴하는 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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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사랑을 모독하는 짓이요, 넓게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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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를 파괴하는 짓이다. 그런 자들이 천당과 극락으로 간다면 거기는 이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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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당과 극락이 아니다. 사랑이 필요한 곳은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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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의 땅이다. 그리고 그 지상의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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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아 있는 부처 찾은 총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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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벅머리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.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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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에 밥을 먹으면 저녁을 걱정해야 하고, 저녁 밥을 어찌 해결하면 다음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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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. 가난도 가난이지만 총각에게는 남에게 내세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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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한 별다른 능력이나 장점도 없어 중매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고, 어쩌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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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을 보게 되어도 퇴짜를 맞는 게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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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가도 못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총각에게 내일은 희망이 아니라 쓸쓸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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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의 연장일 뿐이었다. 습관처럼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며 가난과 고독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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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로움을 달래 보지만 허전한 가슴을 달랠 수는 없었다. 꿈을 잃는 것만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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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터인데, 총각은 바로 그런 우울한 나날들 속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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묻혀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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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저기서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얼굴을 세상에 내미는 어느 봄날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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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물이 소생하여 생명의 향기를 내뿜고 있건만, 총각의 얼어붙은 가슴은 좀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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녹을 줄 몰랐다. 시든 꽃잎처럼 마루에 앉은 총각은 또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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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그때 한 스님이 탁발을 하기 위해 청년의 집으로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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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주할 만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쌀 한 줌을 스님에게 드렸다. 스님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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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서 길을 떠났다. 바랑을 등에 지고 가는 스님의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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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습을 바라보던 총각은 가슴이 뭔가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. 자유롭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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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유히 떠나가는 스님의 모습이 너무도 좋게 보였던 것이다. 총각은 스님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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떠나가는 모습이 너무도 좋게 보였던 것이다. 자유롭게 유유히 떠나가는 스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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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동경하다가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. 스님의 모습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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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러한데 진짜 살아있는 부처를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, 하는 것이었다. 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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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전했던 가슴이 뜨거워지자 총각 스스로도 놀랐다. 꼭 한 번 살아있는 부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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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나고 싶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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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총각은 부처를 만나 보고 싶은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났다. 어디로 가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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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처를 만날 수 있을까. 길을 떠났지만 막막했다.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 보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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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지만 미친놈 취급을 당한 후로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을 걸 수 없었다. 답답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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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정으로 며칠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총각은 어느 날 우연히 탁발을 하러 왔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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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스님을 다시 만났다. 합장의 예를 올린 후 총각은 스님에게 대뜸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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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스님, 어디로 가면 생불을 만날 수 있습니까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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총각의 얼굴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스님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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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살아있는 부처를 만나고 싶습니까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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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예. 부처를 만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습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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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일러줄 테니 잘 새겨 들으십시오. 저고리를 뒤집어 입고 고무신을 거꾸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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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은 분을 만나면 그 분이 생불인 줄 아십시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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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예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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총각은 잘 납득이 가지 않아 다시 물어 보았지만,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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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던 기로 유유히 떠나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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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불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치고는 좀 이상했지만 총각은 스님의 그 말밖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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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지할 것이 없었다.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저고리를 뒤집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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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거나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. 방방곡곡을 헤매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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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다님 세월이 어느덧 삼 년이 지났다. 지칠대로 지친 총각은 생불을 만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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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고 싶은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. 결국 총각은 오랜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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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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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문을 열고 들어간 총각은 어머니를 불렀다. 실로 삼년 만에 만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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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머니였기에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. 방문을 연 어머니는 아들을 보자마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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뛰어나왔다.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 하루 하루 살아 온 어머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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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무도 기뻐 정신없이 뒤집어 벗어 놓은 저고리를 그대로 입고 고무신을 거꾸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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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은 채 달려와 아들을 품에 안았다. 총각은 어머니를 보는 순간 '생불이다'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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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으로 소리쳤다. 달려오는 어머니는 스님이 일러 준 모습 그대로의 생불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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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하여 총각은 평생 홀어머니를 생불로 모시고 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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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이야기는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말해 준다. 부모는 제 2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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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이요, 하느님이시다. 자식에게 부모는 절대적 존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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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직장에서 상사나 사장을 어떻게 모시는가. 거기에도 나름대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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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성이 깃들어 있다. 헌데 우리 사회를 보면 부모를 모시는 일이 직장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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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사나 사장을 모시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. 자식의 죽음을 대신할 사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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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면, 자식의 출세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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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오로지 부모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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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상의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기에 부모의 은혜를 하늘과 땅처럼 가이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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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 했다. 종교 속의 창조주를 숭배하면서 바로 자신을 낳아 준 제2의 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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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바로 섬기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. 여기서 신을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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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의무와 도리상으로 보면 부모도 부모의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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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으로부터 50퍼센트의 호를 받고 싶으면 자식에게 100퍼센트 효를 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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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가 자식에게 무슨 효요, 100퍼센트는 또 뭐냐고 할 사람이 있겠으나, 그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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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에게 효를 깨우치는 일이다. 자식은 부모를 닮아간다. 말로만 제2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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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이라 하고 효의 중요성을 내세우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. 부모가 두 배의 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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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저 하라 함은 자식에게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
|
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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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이 아침에 부모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경우를 보자. 효를 말할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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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식의 도리만 강조한다. 그래서 문안 인사의 경우도 자식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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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켜야 하는 부분만 말한다. 그러나 부모가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한다. 자식이
|
인사를 하러 들어오기 전에 부모는 인사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으면 자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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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를 행할 무대를 잃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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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히 문안 인사의 법도만 그런 게 아니다. 부모는 매사에 효를 할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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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대와 시간과 여건을 자식에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. 부모와 자식간에 호흡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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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. 그런 노력을 외면하는 부모가 일방적으로 자식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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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행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용만 부를 뿐이다.
|
부모가 체벌을 가할 때도 마찬가지다. 내 자식 내가 때리는데 거기에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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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칙이 있냐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, 결코 그렇지가 않다. 때릴 수 있는, 자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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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장으로 보면 맞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모가 먼저 할
|
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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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이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매를 드는 것이니, 먼저 자식이
|
스스로의 잘못을 알게 하고 그것이 체벌을 받을 만한 짓이란 것을 느끼게 해야
|
한다. 그런 다음 매를 대면 본래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. 헌데 그런 분위기
|
조성은 외면한 채 무작정 체벌을 가하는 부모들이 많다. 그런 경우 자식에게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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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에 대한 뉘우침보다는 반항심이 먼저 생긴다. 그러면 반항의 기색을 엿본
|
부모는 또 매질을 한다. 그것은 올바른 체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폭력이라 하는
|
것이 옳을 것이다. 분위기 조성을 하지 않고, 즉 효의 무대를 만들어 주지 않고
|
일방적으로 훈육을 하려는 부모는 자식의 효를 기대할 수 없다. 요즘 세상에
|
효자 효녀가 별로 없다는 말은 효의 무대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부모가
|
적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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맹자의 어머니 이야기는 바로 그런 부모의 역할을 잘 말해준다. 맹자가 어렸을
|
때의 일이다. 이웃집에서 돼지를 잡고 있었다. 세상은 알고 싶은 것
|
투성이었으니 소년 맹자는 어머니에게 "왜 돼지를 잡습니까?"라 물었다.
|
어머니는 별 생각 없이 농담 삼아 "너 먹이려 잡는다."고 대답했다.
|
잠시 후 어머니는 자신의 대답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. 맹자에게 한 대답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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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이 아니었다. 농담이라지만 결국 거짓말이 된 꼴이었다. 자식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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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짓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
|
으른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사 와서 맹자에게 먹였다. 자식을 제대로 기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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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맹자의 어머니 같은 태도와 지혜를 지녀야 한다. 그래서 효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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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보다는 받는 쪽이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.
|
부모는 자식에게 신적 존재다. 그러나 부모가 부모의 도리를 못한다면 그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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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접을 받을 수 없다. 자식에게 효를 실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부모,
|
그들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가 아닌가.
|
|
때로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효
|
|
눈먼 아비를 위해 꽃다운 인생을 바다에 던진 심청,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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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녀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고 패륜을 저지른 망종들에 대한 우울한 소문만이
|
어찌하여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것일까. 신문을 펼치기가 두렵고 텔레비전을
|
켜기가 민망한 이 시대를 패륜의 세월이라 부를까. 온갖 문명의 쓰레기가
|
금수강산을 더럽히고 있듯 진정 패륜의 더러운 핏줄기 백의민족의 착한
|
가슴속까지 파고들어 왔단 말인가. 놀란 가슴을 쓸며 묻고 또 물어도 그저
|
아연할 뿐이다.
|
가슴앓이하는 세상, 그러나 패륜의 세월이라고는 부르지 말자, 비록 아비가
|
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
|
해도. 패륜의 핏줄에 이미 오염되어 있다는 말도 하지 말자, 비록 어미가 자식을
|
버리고 자식이 어미를 버리는 기막힌 풍경을 연속극처럼 본다 해도.
|
그러한 극단적인 인면수심의 이야기가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. 화두라면
|
너무나 서글픈 화두가 아닌가. 입에 담기조차 참담한 그 소문들이 진정 우리의
|
현실이란 말인가. 아니, 결코 그럴 수 없다.
|
차마 믿고 싶지 않으니 엄연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아 버리자는 소리가 아니다.
|
자식이 부모를 때리고, 버리고, 죽이는 이야기가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가 되는
|
그런 사회는 이미 패륜의 땅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.
|
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, 못된 깡패 세계에서 저희들끼리나
|
주고받음직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. 자식을 피와 살이 있는
|
인간으로 이 지구상에 태어나게 한 이가 바로 부모요 키우고 가르쳐 세상으로
|
내보냄 이가 바로 부모다. 그러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보려면 우리는 미꾸라지
|
몇 마리가 흐려놓은 연못이 아니라 넓고 깊은 바다를 봐야 한다. 부모와 자식은
|
천륜으로 맺어진 관계다. 연인이나 친구 관계는 사람이 선택을 한 것이고
|
언제든지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. 사랑과 우정을 나누다가도 어떤 연유로
|
시들해지면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는 것이다. 그러나 부모와 자식은 선택의
|
여지가 없는 하늘이 맺어준 관계다.
|
그러하기에 예로부터 우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함께 부모에게 자식된
|
도리를 다하는 것, 바로 효도를 사람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가치관으로 꼽아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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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그것이 사람다움의 기준마저 멋대로 왜곡시킨 현대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서
|
비틀리고, 깨지고, 무너져 때로는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참담한 모습으로
|
변질되어 버린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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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면 먼저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하고, 아름다운
|
가정을 만들려면 먼저 부모와 자식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야 함은
|
패륜아들도 끝내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. 그렇기에 자식된 몸으로 효도를
|
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. 그러나 참된 효도라는 것이 말처럼 그리
|
쉬운 일이 아니다. 특히나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요즘의 세상에서 어떻게
|
행동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진정 자식된 도리일까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
|
과제가 아닐 수 없다.
|
청학동에 찾아오거나 객지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효도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
|
품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. 그 가운데 만난 세 젊은이와의 추억은 지금도
|
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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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년 전의 어느 가을날이었다. 초췌한 모습의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.
|
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이었던 그 청년은 쫓기는 몸으로 청학동을 피신처로 삼아
|
온 것이었다. 쫓기는 사람의 불안과 피곤이 그 얼굴에 더덕더덕 묻어 있었지만
|
무척 예의가 바르고 명석한 청년이었다. 우리는 밤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는
|
별들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. 그 청년은 세상에 대해 할 말이
|
많았고, 나 역시 그 청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. 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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깊어 마을의 불빛이 하나 둘 꺼질 무렵 그 청년이 나지막하게 물었다.
|
"훈장님, 진정한 효라는 것이 무엇입니까?"
|
별빛으로 빛나는 그 청년의 눈에 물기가 보일 듯 말 듯 스쳐 지나갔다. 쫓기는
|
몸으로 낯선 마을에서 밤을 맞이한 청년은 아마 집과 가족들을 떠올렸을 것이다.
|
그리고 아마 힘들게 눈물을 참아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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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 잃은 양 같은 청년의 사연인즉슨 이랬다. 부모님과 아래로 두 여동생을
|
두고 있는 청년은 집안이 희망 같은 존재였다. 대학에 갓 입학할 무렵까지도
|
모범생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, 효성도 주변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지극했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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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그랬던 청년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 차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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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하기 시작했다. 뜨거운 혈기의 청년은 시위대에 끼기 시작했고 마침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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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동권 내에서도 남들의 주목들 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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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변화와 함께 집안의 고요한 평화도 깨지기 시작했다. 수시로 경찰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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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으로 찾아왔고, 그 감시의 눈을 피해 청년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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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식 잘 되기만을 고대하며 고생을 고생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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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지 않던 부모 입장에서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. 부모의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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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고생이야말로 다 형언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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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는 눈물까지 흘리며 자식에게 지난날의 그 모범생으로 돌아오기를 간청하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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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다. 그럴 때마다 청년은 멍든 부모의 가슴을 느끼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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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청년은 제 갈 길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. 부모에게 자식된 도리를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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싶고,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, 청년은 결코 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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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만을 위한 왜곡된 모범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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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 시절에 누구나 한번은 겪음직한 청년의 고뇌를 들으며 내 가슴 역시 아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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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었다. 나는 청년에게 먼저 운동권 학생들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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판단은 유보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런 말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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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때로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효가 되기도 하지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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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의 말이라면 무조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만이 효는 아니다. 물론 자식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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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지만, 우리는 세상을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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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들이 공존하고 있다. 그 가치관들이 때로는 서로 갈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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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때가 있다. 가족적 입장에서 본 가치와 사회적 입장에서 본 가치 역시 늘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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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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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숭고한 가치가 된다.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 온갖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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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초를 겪으며 나선 독립운동가, 부하들을 위해 수류탄을 제 몸 하나로 받아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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군인, 손에 쥘 수 있는 부귀영화를 물리치고 사회의 소금이 되는 사람들, 이 모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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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들의 희생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. 헌데 만약 어느 부모가 독립운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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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려는 아들에게 그 뜻을 굽히고 빼앗긴 나라에서 적당히 우리가족만 잘살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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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면 어찌될 것인가.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식의 권유를 하는 것은 결코 희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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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례가 아니다. 만약 그런 부모의 뜻만을 좇는 것을 효라 생각한다면 그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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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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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에서 말하는 효는 결코 그런 가족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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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가족을 중심에 두는 가족주의와 자기 가족의 영화만 위하는 가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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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주의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.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할 수 있을 때 참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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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가 된다. 효는 대의의 입장에서 봐야 그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. 예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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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현들은 친구간에 의리를 지키지 않는 것도 불효요, 전쟁터에서 비겁하게 굴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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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 목숨만 부지하는 것도 불효요, 사회 봉사에 나서지 않고 제 이익만 좇는 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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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효요,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지 않는 것도 불효라 하였다. 언뜻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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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겁하게라도 살아남아 제 부모 봉양하는 것이 효로 보일지 모르나, 그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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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효의 대표적인 표본일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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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선택이 인간으로서 진정 가치 있는 희생이라면, 설사 순간적으로나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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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라 하여도 넓은 의미의 효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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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가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러한 자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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희생을 진정한 효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. 세상에서 진정 자랑스러운 사람이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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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에게는 자랑스런 자식이 아니겠는가. 부모에게 자랑스런 자식이 되는 것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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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바로 효자가 되고 효녀가 되는 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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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청년은 내 말을 듣고 기운이 나는지 눈을 반짝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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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청년이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몇 마디의 말을 덧붙였다. 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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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절에는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다. 어느 한 시기에 보고 느낀 것만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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판단을 해서 자기가 가치 있는 희생을 하고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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끊임없이 반성하고 노력하면서 자기 길을 찾아야 한다. 젊은 혈기만으로 자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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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대의가 아니고, 따라서 효도 아니라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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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맙게도 청년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. 그 청년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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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. 진정한 효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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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의 갈등에서 비롯되는 효의 갈등은 자식의 진로 문제에서도 엿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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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근에 한 젊은 의사를 만났다.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리산을 찾아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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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었다. 서울에 사는 그는 시간만 나면 그렇게 화구를 챙겨 들고 스케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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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을 떠나는데,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. 사회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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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정받는 직업을 가졌고, 예술적 취미도 자유롭게 누리고 있으니 남들에게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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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였다. 그러나 술을 한 잔 마신 그는 뜻밖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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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은 지독히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했다. 그 역시 효에 대한 갈등과 후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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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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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부른 자의 투정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부탁을 하면서 그는 말을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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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. 장래의 희망도 당연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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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가가 되는 것이었다.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장래 희망 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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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민을 하기 시작했다.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, 그에게 의과대학으로 진학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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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권유했다. 그 자리에서 그는 거침없이 미술대학을 가겠다는 말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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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부터 부자간에는 갈등이 시작되었다. 아버지의 권유는 차츰 강권으로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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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령으로 변해 갔다. 이유는 단 하나, 자신의 대를 이으라는 것이었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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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는 만약 의과대학에 가지 않으면 학비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, 자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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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험한 말까지 했다고 한다. 결국 그는 반강제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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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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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는 곧 회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. 환자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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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 의무,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자위 등으로 스스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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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일러 보았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그림뿐이었다.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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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하는 것이 점점 더 짜증스러워졌다. 의사로서의 직업 윤리를 떠올리며 자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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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찍질해도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치솟는 어떤 응어리를 다스릴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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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케치 여행을 다니면서 잃어버린 화가의 꿈을 조금씩 달래본다는 그는 여전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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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를 곱씹으며 산다고 했다. 명령에 가까운 아버지의 뜻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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끝내 뿌리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까지 했다. 그러면서 그는 효의 허구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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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했다. 아마도 갓을 쓰고 있는 내 입에서 효란 무조건 부모의 뜻을 따라야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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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는 말이 나오리라 지레 짐작한 모양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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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부모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게 효라면 직업 선택에 관한한 저도 효자인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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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 지금 느끼는 불행 같은 것은 효자가 감수해야 할 몫입니까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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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에 대한 그의 기계적인 해석은 옳지 않지만 그의 항변에는 옳은 구석이 숨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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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효란 부모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할 때 그에 순종하며 자식이 자식으로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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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도리를 하는 것을 이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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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사의 경우를 보면 그 부모는 자식의 재능이나 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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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키워주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. 그것이 부모 된 도리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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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라 하는 부모는 그 자식에게 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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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순종을 기대하는 것일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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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그 의사를 만났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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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. 그래서 자식의 참모습을 알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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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면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의 선택을 존중해 줄 것이다. 만약 끝내 부모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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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방적인 강요만 한다면 그때는 자기가 선택한 길을 가라고 말이다. 최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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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득이 전제되었다면 순종하지 않은 그 선택을 불효라 볼 수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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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해 보자. 어떤 자식이 부모의 강요에 의해 자신의 재능이나 능력과는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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쪽으로 이끌려왔다. 그 결과로 그 자식은 불행 속에서 살게 되었다. 그때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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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감정을 갖게 되겠나. 효성을 쏟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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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할 경우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. 올바로 가르치는 부모에게 순종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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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효지만 사리에 어긋나는 일방적인 강요를 따르지 않는다고 불효라고 지탄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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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는 없는 것이다. 오히려 순간적으로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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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잘 살려 훗날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된 효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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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를 말할 때 가끔 떠오르는 청년이 한 사람 더 있다. 어느 지방 도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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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연을 갔을 때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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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연을 끝내고 막 나서려는데 한 청년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시간을 좀 내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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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느냐고 물었다. 청학동으로 돌아갈 차 시간이 빡빡했지만 진지해 보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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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얼굴을 외면할 수 없었다. 우리는 함께 찻집으로 들어갔다. 강연에 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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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례적인 인사치레를 하고 나서야 청년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시작했다. 그런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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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첫마디부터가 충격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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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사람 같지도 않은 아버지를 둔 자식에게 효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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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사람 같지 않다니요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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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제 아버지가 그런 사람입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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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정말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. 사기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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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치고 사는 게 일이요, 계집질은 밥 먹듯이 하고, 야비하기는 이를 데기 없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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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거짓말을 일삼으며, 술 마시고 가족들에게 폭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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휘두르는 등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. 혐오의 대상일 뿐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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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와는 부자간의 인연까지 끊고 싶다고 청년은 말했다. 결혼을 약속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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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인이 있으나, 아버지에게 인사조차 시키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. 불쌍한 어머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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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집을 떠나지는 못하지만 결혼을 해서는 어머니만 모시고 따로 살고 싶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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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래 계획까지 털어놓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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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라도 세상에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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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적지 않다. 그들의 자식들은 어떻게 낳아 주고 길러 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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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를 대해야 하는 것일까. 존경할 수 없고 때로는 혐오의 대상까지 되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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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라리 외면하고 청년처럼 부모 자식간의 인연까지 끊어 버리려 하는 것이 옳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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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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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코 그런 태도는 옳을 수 없다. 그들에게도 정성을 다해 쏟아야 할 효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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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부모의 잘못을 끝까지 막는 게, 막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자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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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이고, 그것이 바로 효다. 악행을 저지르는 부모에게 저 잘난 맛에 비난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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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삼고 외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악행이 될지언정 결코 자식된 도리가 될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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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백방의 묘책을 써서 부모가 악의 굴레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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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, 그것이 바로 가정과 사회를 밝히는 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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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움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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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그러한 효를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. 그러나 바로 제 부모를 제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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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시는 그런 노력도 못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. 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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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람 가운에서도 그러한 효를 외면하는 사람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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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러 볼 수 있다. 가정의 정의를 세우지 않고 사회 장의를 표방하는 것이 어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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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허하게 들리지 않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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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제 아버지를 표현했던 청년의 얼굴은 여전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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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두웠다. 효에 대한 나의 설명을 선뜻 수용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. 물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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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가족이 그 아버지로 인해 받았을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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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힘겨운 노력도 했을 것이었다. 그래도 변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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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청년의 침묵이 묻고 있었다. 차 시간이 촉박했지만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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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. 혐오스럽기까지 한 아버지에게 효를 행하는 방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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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식으로든 일러 주고 싶었다. 그래서 정도와 권도에 대한 설명과 그에 얽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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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고사를 덧붙여 들려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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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정도, 바로 정당한 도리로 살아야 한다. 그러나 때로는 그 정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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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우기 위해서 권도, 즉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임기 웅변으로 취하는 방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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써야 할 때가 있다. 권도는 어쩔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인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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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년의 경우를 그런 처지로 볼 수 있었다. 그의 아버지는 이미 정도로는 마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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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리기가 어려운 듯 보였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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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의 고대 제국인 한의 고조 유방은 적자인 해제를 제쳐놓고 첩에게서 낳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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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.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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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하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유방에게 직설적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할 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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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유방의 뜻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정도로 나섰다가는 뜻을 이루기는커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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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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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자방을 비롯한 신하들은 고민 끝에 정도로 되지 않는 일을 권도를 써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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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철시키기로 하고 묘책을 찾았다. 당시 유방을 신분을 감추기 위해 평상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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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고 신하들과 함께 궁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피곤 했었다. 어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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날 유방 일행이 상산을 찾아갔다. 거기에는 네 늙은이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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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늙은이들은 장자방이 미리 배치해 둔 인물들이었다. 유방이 구경 삼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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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가가자 늙은이들이 이미 약조해 둔 말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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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늙은이가 바둑 한 수를 두면 다른 늙은이가 '이 한고조같이 미련한 놈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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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 놔야지'하고, 또 한 수가 더해지면 '유방 같이 한심한 놈아, 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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놔야지'하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. 첩의 유혹에 빠져 정도를 벗어난 유방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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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책하는 말들이었다. 신하들은 유방에게 네 늙은이가 신선들인 것 같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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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했다. 충격을 받은 유방은 오랜 고민 끝에 생각을 바꾸어 다시 적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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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계자로 삼게 되었다. 장자방의 권도는 결국 절대권력을 가진 유방의 그릇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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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. 그는 신하된 도리를 다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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군주에게 바치는 신하된 도리가 그러할진대 어째서 부모에게 그러한 자식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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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를 할 수 없단 말인가. 정도로 되지 않는다면 권도를 써서라도 부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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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행을 막는 게 청년과 같은 입장에 있는 자식들의 도리요, 효다. 그 도리와 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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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우지 않으면 가정의 평화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. 가정을 지키는 것이 나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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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라는 공동체 사회를 지키는 길이 된다. 그 청년이 지금 자기 아버지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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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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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말에 부모가 소금 가마를 지고 물 속으로 들어가라 해도 그에 순종하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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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라 했다. 자식이 바른 길로 가기를 원치 않는 부모가 없을 터이니 그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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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유는 가슴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. 그러나 때로는 부모의 생각을 거스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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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참된 효가 될 때도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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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세상에 친구 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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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예수는 말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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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. 어떤 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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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저을 것이고, 또 어떤 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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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듯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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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런 친구가 없다고 지나치게 슬퍼할 일도 아니요, 있다고 함부로 떠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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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도 아니다.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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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예수는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한 것이다.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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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의 경지, 그것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. 허황해서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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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제라도 이루고 싶어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있는 꿈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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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다시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다. 서로를 알아 주면서 네 것 내 것 없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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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 나눌 수 잇는 그런 친구가 있냐고. 참으로 고맙게도 내게는 그런 친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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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 있다. 죽마고우와 다름없는 박완식, 언제 불러도 좋은 그 친구의 이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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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. 오래 전에 상투 대신 단발을 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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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며, 머지않아 대학의 교수가 될 것이다. 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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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식은 그렇게 조금 달라졌지만 우리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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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두 살이 되면서부터 나는 객지의 서당을 떠돌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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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절에 동문수학하는 벗으로 우리는 만났다. 스승을 찾아 서당을 찾을 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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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함께 했고, 서당마다에 새겨진 댕기머리 학생들의 즐거움과 고통도 더불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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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누었다. 우리는 그때 이런 글귀를 배웠으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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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문회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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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우보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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글로써 벗을 모으고, 벗으로 인을 보충하라는 뜻이다. 진정한 학문과 친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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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미를 가르쳐 준다. 우리가 꼭 그렇게 만나 사귄 듯하다. 함께 공부하며 숱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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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억을 쌓다가, 한 번은 죽음의 고비까지 함께 넘었다. 그러면서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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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에게서 인을 배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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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도 만날 때면 가끔 우리는 댕기머리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짓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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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은 어찌 그 모든 일들이 아름답게만 떠오르는지, 참으로 알 수 없는 조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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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석으로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추억이다.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어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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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골 서당에서 달을 바라보며 함께 즉흥시를 지어 읊고, 흥취를 주체할 수 없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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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는 술로 그 밤을 취하게 하곤 했었다. 그 술은 우리의 훈장님이 매실 따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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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실로 담근 것이었는데, 그걸 몰래 마셨으니 회초리를 맞아도 한두 대로는 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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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 일이었다. 회초리 맞을 일이 어디 그것뿐이었던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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훈장님이 은밀한 곳에 감추어 두고 드시는 눈깔사탕도 몰래 꺼내 먹다가 들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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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아리를 맞고, 달달 외워야 할 것을 외우지 못했을 때는 상부상조한다고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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컨닝을 하다 들켜 또 피가 맺히도록 회초리 세례를 받고, 이순신이나 성춘향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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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가 들어오면 훈장님을 모시고 가지만 호기심 자극하는 에로물이 들어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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몰래 한 사람씩 가서 차례로 보고 와서 떠들고.... 그 매 다 맞았으면 아마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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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리는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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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당이 있는 마을의 처녀를 두고 우리는 또 얼마나 장난을 했던가. 서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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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들 가운데 하나를 잡아 거꾸로 잡아 맨 후에, 한 처녀를 무작정 지목한 후 '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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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아가씨 좋아하지?' 라고 캐묻는다. 매달린 친구야 억울한 소리니 그렇다고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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리가 없다. 그러나 계속 부인하면 발바닥을 사정없이 맞으니 어쩌랴. 매에 장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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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고 매달린 친구는 숨을 헉헉거리며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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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 벌이 내린다.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동네 처녀한테나 눈길을 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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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니 친구로서 그냥 둘 수 있겠는가. 그러면 친구는 억울하기 그지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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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릇이지만 벌값으로 떡이며 과일을 사 와야 한다. 그렇게 해서 나누어 먹는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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맛을 세상 그 어는 음식에 비교할 수 있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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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로는 댕기머리 총각들을 흠모하는 동네 처녀들이 호박이나 오이 같은 것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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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고 찾아와 우리들을 싱숭생숭하게 만들기도 한다. 객지 생활이 워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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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핍했던지라 넙죽넙죽 잘도 받아 먹었다. 그러나 입 싹 씻고 처녀들을 고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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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려보낼 수밖에 없다. 정말 한눈을 팔았다간 공부를 놓칠 터이고, 그래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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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당에 있을 이유도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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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만 해도 즐거운 추억들 속에는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도 있었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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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와 함께 구례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. 서당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들의 모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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운봉에서 열린다는 전갈을 받고 우리 둘은 길을 떠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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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례에서 운봉까지는 150리 길이었다. 때는 음력으로 정월이었다. 몹시 추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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날이었는데 우리는 호기를 부린다고 그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. 평탄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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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이었으면 호기랄 것도 없지만 그게 아니었다. 구례에서 출발해 지리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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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고단을 넘어 달궁길을 거쳐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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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덮인 산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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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무도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. 그러나 노고단을 겨우 넘고 나서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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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진맥진해질 수밖에 없었다. 호기만으로 당해낼 수 없는 게 바로 자연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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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고단 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이 우리를 보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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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류를 하고 나섰다. 허나 이미 내친 걸음인데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.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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둘은 군인들에게 얻은 건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계속 눈 덮인 산길로 걸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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걸어도 고이 걸은 게 아니라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며 걸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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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모습이 오만하게 보였는지 마침내 자연은 참지 않았다. 내가 먼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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탈진해 눈 위에 쓰러졌다. 해가 서산으로 막 몸을 숨기려 하는 순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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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음의 공포가 엄습해 왔다. 인가도 없는 눈덮인 산야에서 한기가 들면 목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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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놓을 수밖에 없다. 친구는 나를 겨우 일으켜 부축을 했다. 어둠이 깔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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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작해 잠시 정신을 놓았다간 길마저 잃을 처지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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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번에는 나를 부축하며 힘들게 걷던 친구가 쓰러졌다. 부축하느라 그나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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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아 있던 힘을 다 써 버린 것이다. 이대로 죽는 것일까. 나는 정신이 번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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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었다. 뺨을 때리며 흔미해진 친구를 깨웠다. 눈을 겨우 뜬 친구는 더 이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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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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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가운 달빛이 눈 위를 싸늘하게 비추었다. 친구를 어깨에 메고 걷다가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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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께 나둥그러졌다. 그대로 포기하면 만사가 끝이었다. 친구를 눈 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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굴리면서, 함께 뒤엉켜 구르면서 우리는 겨우 겨우 죽음의 산에서 내려올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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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주위는 이미 캄캄한 어둠에 감싸여 겨울밤의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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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음의 고비를 겨우 넘겼지만 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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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 불을 밝히고 있는 집 하나가 보였다. 사정 이야기를 들은 집주인은 감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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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개를 쥐어 주었다. 우리는 그것으로 허기를 달래고 운봉에 겨우 도착할 수
|
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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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찌보면 무모한 일처럼 보이지만 당시 우리는 그런 패기를 자랑 할 나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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댕기머리들이라고 서당에 앉아 글만 읽고 있는 모습만 연상한다면 천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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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씀이다. 시간만 나면 자전거 여행을 떠나곤 했다. 휴전선 코 앞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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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주도까지 남한 땅에서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. 지금도 자전거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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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면 당시의 여행에 얽힌 추억들이 되살아나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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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. 그 친구와 내가 궁핍했던 시절에 있었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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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 칠십년대 말쯤으로 기억된다. 나는 순천의 한 서당에서 아이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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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치고 있었고 친구는 합천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. 어느 날 친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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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천으로 나를 찾아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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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이를 어쩌랴. 공부를 하고 있던 그 친구뿐만 아니라 나 역시 주머니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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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전 하나 없는 무일푼이었다.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받는 학채로는 끼니도 이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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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는 게 당시의 현실이었다. 그러나 멀리서 벗이 찾아왔는데 빈털터리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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넋만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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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일한 나의 재산으로 자전거가 있었다. 무척 아끼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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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었다. 그 돈으로 우리는 막걸리 집으로 갔다. 비록 가난한 처지였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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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둘은 술을 마시며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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벗과의 정겨운 술잔을 나누고도 친구가 돌아갈 여비가 남았으니 참으로 고마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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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전거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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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세상 살면서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좋은 벗 하나 만나는 것은 무엇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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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꾸고 싶지 않은 복이요 행운이다. 그런 복을 누리고 사니 내 인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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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망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으리라. 예수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. 친구를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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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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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둘 / 마음으로 그리는 인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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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친구가 성공의 과실을 따게 되었을 때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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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연히 친구로서 축하를 하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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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돌아서면 축하를 해주는 마음 한구석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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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쟁 심리가 발동이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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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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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하나의 얼굴이 그렇게 끝내 모습을 드러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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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를 어쩔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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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묻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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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누구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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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하며 그린 자화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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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 그 자체가 따지고보면 여행이겠지ㅁ, 마음에 때가 끼고 몸이 지치면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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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. 떠나고 싶은 그곳이 어딘지 몰라도 무방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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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은 미지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할 터이니 모르는 곳이 차라리 좋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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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나 그럴 것이다. 명색이 한 집안의 가장이요, 또 청학동의 훈장노릇을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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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지라 떠나고 싶을 때 늘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, 그래도 기회다 싶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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떠난다. 여행의 맛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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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단 떠나면 자신이 왜 떠났는지를 알게 된다. 일상을 벗어나 떠난 길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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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앞에 펼쳐지는 것마다에 새로움이 충만해 있고, 만나는 것마다에 희열과 감동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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담겨 있다.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! 대 자연은 이리도 아름답고 경건하구나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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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희열과 감동은 단순한 구경꾼의 것이 아니다. 바로 나 자신을 자극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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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어 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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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의 삶은 소중한 것이지만, 그것이 지속될 때 거기에는 갈등과 고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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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르게 마련이다. 나 역시 훈장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. 소중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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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들이겠지만, 나 역시 사람인지라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. 안으로 감추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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삭혀야 할 일들이 생기고,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경우도 빈번하다. 가장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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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할 역시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이다. 그런 생활의 반복은 갈등과 고민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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낳고, 그것은 생체 리듬을 파괴해 버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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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괴된 생체 리듬은 일상의 늪에서 빠져나와 나를 돌아보는 여행을 떠날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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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로소 조절된다. 여행이 아니어도 좋지만 내게는 여행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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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마음의 때기 씻기어지니 지친 몸도 원기를 되찾게 된다. 씻긴 몸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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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으로 나는 대자연의 온갖 에너지를 빨아들인다. 바람에 흔들리는 풀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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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기도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내려앉고, 낯선 아이의 웃음 소리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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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만한 기쁨으로 인간 존재의 심연을 두드린다. 이 얼마나 놀라움 경험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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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대 자연 속에 있는 하나의 소립자가 되어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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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끽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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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에는 그러나 걷은 여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. 앉아서 하는 여행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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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앉아서 하는 여행도 걷은 여행 못지 않게 즐긴다. 조용한 토굴이나 산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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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가, 내 몸 하나 둘 공간을 차지하고 멱을 바라보며 참선에 잠긴다. 아니, 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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토굴이나 산사가 아니어도 좋다. 내 몸 하나 온전히 지키고 있을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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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간이면 된다. 그렇게 앉아서 아무런 구애없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여행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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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그런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대개 나는 눈물을 떨구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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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 끝의 그 눈물은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눈물이요, 깨달음의 징검다리가 되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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빛나는 눈물이다. 일상의 늪에서 내가 미처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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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아들이고,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게 해 준다. 스스로에게 지은 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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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아보게 하고, 남들에게 끼친 죄를 참회케 한다. 감았던 눈을 뜨게 하고 닫혔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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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을 열게 한다. 그런 후에 본 세상,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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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상의 생활이 정적이었을 때는 걷는 여행을 하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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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고, 그와 반대로 동적이었을 때는 앉아서 하는 여행을 즐기는 게 좋다.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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앉아 있으면 서고 싶고, 서 있으면 앉고 싶은 법이다. 동과 정의 그 조화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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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의 방법에서도 참고할 만하다. 어떠한 여행을 선택했건, 그 길에서 마주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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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될 것이다. 미지의 땅을 걸으면서도, 그 새로움의 감흥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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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지면서도 나는 늘 자화상을 그려 보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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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나는 두 얼굴을 가진 자화상을 자주 그린다. 처음에 떠올린 하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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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굴만을 보면 제대로 그려진 것 같지가 않아 또 하나의 얼굴을 그린다. 나중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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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린 그림도 만족스런 것은 되지 못한다. 결국에는 그 두 얼굴을 합쳐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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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제야 겨우 나를 닮은 얼굴이 된다. 그러나 두 얼굴이 합쳐 본다. 그제야 겨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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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닮은 얼굴이 된다. 그러나 두 얼굴이 합쳐진 자화상이 온전한 그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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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겠는가. 일그러진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갈등에 빠져들곤 한다.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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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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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외자에 나가 강연도 드물지 않게 하는 편이고, 말을 듣겠다고 찾아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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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이라 대중 앞에 서는 기회가 많다.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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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정성을 다해 나는 들려주고 싶은 말을 한다. 그런 순간의 내 모습은 제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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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젓하고 똑똑해 보인다. 그러나 강연을 끝내고 혼자 있을 때, 나는 영원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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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부해야 하는 학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.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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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때 묻지 않을 수 없다. 나는 누구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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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에서의 내 모습을 봐도 그렇다. 부부는 무촌이라 할 만큼 가까운 사이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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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 앞에 섰을 때의 나와 아내 뒤에 있을 때의 나는 다른 모습이 된다. 대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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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으로서의 권위 때문에 그런 결과가 생긴다. 나는 아내 앞에서 당당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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떳떳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 한다. 그런데 때로는 아내의 지적이 옳고 내가 그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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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도 생긴다. 아내의 지혜를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이다. 그럴 때도 나는 아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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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에서는 당당한 얼굴을 거두지 않는다. 물론 뒤에서의 나는 자책으로 일그러진
|
얼굴이 된다. 그때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. 나는 누구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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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가 된다. 앞에서 나는 엄격하고 근엄한 어른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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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내가 선택한 교육의 방법을 스스로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때로 회초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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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. 그러나 이런 생각을 떨치지는 못한다. 천진난만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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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 가지고 뭐라 할 수 있는 것인가. 어른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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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성숙을 뜻하기도 하지만, 따지고 보면 때가 끼어 타산적이고 교활해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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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재가 아닌가. 그런 존재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꾸짖는 게 합당한 일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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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상태가 되면 또 묻는다. 나는 누구인가?
|
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또 어떤가. 어떤 친구가 성공의 과실을 따게 되었을 때,
|
당연히 친구로서 축하를 하게 된다. 헌데 돌아서면 축하를 해주는 마음 한구석에
|
경쟁 심리가 발동이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. 참으로 부끄러운
|
노릇이지만 또 하나의 얼굴이 그렇게 끝내 모습을 드러내니 이를 어쩔 것인가.
|
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다시 묻는다. 나는 누구인가?
|
두 얼굴을 가진 자화상 때문에 나는 죽는 날까지 고민하고 갈등할 것이다.
|
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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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 어떻게 그 두 얼굴을 조화시켜 하나의 얼굴을 만들 수 있을까. 아마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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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자신의 두 얼굴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정도에 따라 그 품격이 정해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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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찌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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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두 얼굴에 대한 고민과 갈등으로 괴로워도 나는 좌절하지는 않는다. 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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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굴의 갈등 때문에 누구라도 좌절해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. 아니, 그래서는 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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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 갈등은 어쩌면 사람이 일생을 통해 풀어야 할 화두가 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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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인들도 마찬가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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석가모니는 일생 동안 숱한 가르침의 말을 했으면서도, 자신이 말한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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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고 했다. 예수는 또 어떤가.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못박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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숭고한 모습을 보이면서도, 고통이 닥쳤을 때 왜 자신을 버리는 것이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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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느님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. 물론 성인이 보이는 두 얼굴은 범인들의 그것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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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것은 아니다. 진리와 사랑으로 말하면 성인들은 그것들의 최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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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유자이다. 그들의 두 얼굴은 가르침의 또 다른 표현이 되기도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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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세의 인간들 역시 자신의 두 얼굴에서 오는 갈등을 스스로에 대한 가르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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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단으로 삼으면 그 갈등은 인생을 살찌우는 영양분이 된다. 두 얼굴을 가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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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의 자화상을 그렇게 본다면, 다른 사람의 두 얼굴도 먼저 선의를 갖고 읽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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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자기 자신은 용서하면서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평하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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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혜롭지도 못한 일이 된다. 헌데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두 얼굴을 이해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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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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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선 긍정 후 부저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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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한다. 두 얼굴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을 보는 데에는 그런 태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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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요하다. 먼저 긍정하고 나중에 부정할 것을 부정하면 사물을 제대로 볼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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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만약 부정부터 먼저 해 버리면 긍정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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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욕을 했다고 치자. 욕을 먹고 기분이 좋을 리는 분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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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때 상대를 부정부터 해 버리면 사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. 상대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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욕이 터져 나올 것이고 다툼이 시작될 것이다. 상대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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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 욕은 점점 거칠어지고 다툼 역시 점점 심해질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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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먼저 상대를 긍정적인 눈으로 보면 달라진다. 비록 욕을 먹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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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더라도 상대가 욕을 할 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. 그러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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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욕을 먹을 만한 요인이 분명 있음을 알게 된다. 그러면 상한 기분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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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쩔 수 없지만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방지할 수 있다.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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억울한 욕이라면 상대를 부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일단 긍정을 한 후에 따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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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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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대의 두 얼굴도 그런 태도로 봐야 한다. 그런 태도가 없으면 자신의 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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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굴에서 오는 갈등도 인생을 살찌우는 방향으로 풀 수가 없으리라고 본다.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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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해 보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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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을 떠나 두 얼굴을 가진 자화상을 뚜렷하게 보자. 그런 후에 그 두 얼굴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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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로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자. 그것이 사람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.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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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화상도 보지 못하면 희망은 없다.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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흐르는 물에는 비춰볼 수 없는 얼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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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은 자동차 경주장으로 변해 버렸다. 요란한 굉음을 신음처럼 토해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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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주차는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속력까지 다 뽑아내 아슬아슬하게 달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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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주장에 들어선 차가 모두 그 지경이고 보니 서로 부딪혀 나둥그러지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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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사요, 제 속력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저 혼자 뒤집혀 아무렇게나 처박히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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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반사다. 나둥그러지고 뒤집히고 처박혀 경주자는 목숨을 잃거나 회복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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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불구의 몸이 되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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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숨을 건 경주라 하여 사람들은 또 박수를 치며 즐거움으로 삼는다. 그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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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주장 안에서 누리는 단순한 즐거움으로 끝나면 그만이다. 그러나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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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주장 밖의 세상도 별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. 나둥그러지고 뒤집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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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박히는 순간이 올지라도 뒤쳐지는 것은 참을 수 없으니 달려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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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습관적으로 달린다. 자기도 모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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엑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을 준다.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의 수레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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떨어진다는 생각에 마구 달리다. 속력은 이미 무의식 속까지 침범해 들어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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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식을 지배하기도 한다. 사람은 이제 자기도 모르게 달리는 지경에 도달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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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로 가기 위해 속력을 내는지도 모르고 달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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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왜 그토록 달리는 것일까. 남보다 앞서서 달려가 더 많은 욕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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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우기 위해? 달리지 않으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쫓겨날까 봐? 남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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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리는데 넋만 놓고 있을 수 없어서? 왠지 모르게 그냥 달리고 싶어서? 쫓아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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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 뭔지 모르지만 달릴 수밖에 없어서? 사람들은 온갖 이유를 댈 것이다. 그러나
|
속력을 내 마구 달리기만 하다가 넘어져 큰코 다쳤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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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말한 이유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.
|
"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을까?"
|
지리산 청학동으로 찾아오는 사람 가운데는 사업에 실패했거나 이혼을 했거나
|
하는 아픔을 지닌 이들이 더러 있다. 그들은 쉬고 싶어한다. 쉬면서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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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날을 돌아보는 것이다. 그리고 대부분 후회한다. 왜 그렇게 앞만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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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렸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다고,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뒤늦게 자신을 질책한다.
|
사고가 나고 문제가 터지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.
|
세상만사를 제대로 보려면 상하좌우를 모두 살펴야 한다. 헌데 그걸 보지 않고
|
앞만 보고 내달리니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. 밥을 지으려면 뜸들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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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이 필요하고, 뜸들인 밥도 적절히 쉬어가며 먹어야 한다. 빨리 먹으면 체하는
|
법이다. 헌데 체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 쉴새없이 숟가락질을 해대는 게 바로
|
요즘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다.
|
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. 그런 물에 한 번 얼굴을 내밀어 보라.
|
찌그러지고 흔들리는 이상한 모양만 보일 것이다. 그것은 본래의 자기 얼굴이
|
아니다. 그것을 두고 자기 얼굴이라며 세상에 내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.
|
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렇게 살고 있다. 상하좌우를 살피지
|
않고 앞만 보고 내달리는 사람은 자기의 얼굴, 그 본 모습을 보지 못한다.
|
자기 얼굴을 보려면 움직이지 않는 맑은 물에 비춰봐야 한다. 명경지수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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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 있다. 글자 그대로 하면 맑은 거울과 움직이지 않는 물이라는 뜻이다.
|
명경지수의 경지에 도달했다 함은, 잡념이나 가식 혹은 허욕을 떠난 맑고 잔잔한
|
마음에 이르렀다는 뜻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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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의 고전인 "장자"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. 왕태라는 사람이 있는데
|
뛰어난 학문과 높은 덕망으로 소문이 자자해 많은 제자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
|
들었다. 이에 시기심이 발동한 공자의 제자 상계가 어느날 스승인 공자에게
|
물었다.
|
"저 왕태인가 하는 작자는 특별히 잘난 구석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제자가
|
되겠다고 모여드는 이들이 그렇게 많을까요? 스승님께서는 왕태라는 자에 대해
|
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?"
|
왕태가 훌륭한 인물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공자는 제자에게 어째서 사람들이
|
왕태를 존경하고 동경하는지를 대개 이런 요지로 말했다.
|
많은 사람들이 그 어른을 동경하는 것은 어떤 일을 당하거나 보았을 때 추호도
|
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. 사람은 보통 자기 모습을
|
물에 비춰보려 할 경우, 고여서 움직이지 않는 맑은 물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. 제
|
모습을 바로 보려면 그러한 물을 찾듯 사람들은 그 어른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
|
찾게 마련이다.
|
흔들리는 마음은 사람의 올바른 사표가 되지 못하고, 흐르는 물은 사람의 본
|
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없다.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기에 바쁜
|
현대인들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려 하지 않고 세상만사의 상하좌우를 살피려고도
|
하지 않는다.
|
때로는 흐르는 물에 나타난 달라진 얼굴을 자기 얼굴이라 우기는 사람도 있다.
|
앞만 보고 달리다가 못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게 '너 본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'라고
|
주위에서 말하면, 맹목적인 자신의 질주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'웃기지마. 나 그런
|
사람이야'라며 눈을 부라리는 사람이다.
|
왜 이렇게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리는 세상이 되었을까. 본래 우리 민족은
|
여유롭고 넉넉한 심성을 지녔었다. 헌데 '빨리! 빨리!'라는 요즘 우리나라
|
사람들의 조급증은 이미 외국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. '대충! 대충!'까지
|
거기에 더해져, 그 참담한 결과물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보게 된다.
|
거대한 다리가 폭삭 주저앉는가 하면 번지르르한 백화점이 어느날 갑자기
|
땅으로 푹 꺼지고, 잠깐 사이에 신도시 몇 개를 뚝딱 만들어 놓고는 부실이
|
걱정되어 밤잠을 설친다. 늘상 터지는 사고를 당할까 봐 집 밖으로 나가기가
|
두렵다는 이가 있는가 하면, 붕괴가 두려워 집에 있을 수 없다는 아우성도
|
곳곳에서 터져나온다. 안팎이 이 모양이라 어디도 마음 편한 곳이 없다니 도대체
|
이따위 세상을 두고 사람 사는 곳이라 할 수 있겠나.
|
'빨리! 빨리!'와 '대충! 대층!'의 합작품은 비단 건설의 문제만은 아니다. 사회
|
전체가 그것으로 인해 중병을 앓고 있다.
|
자동차를 타고 도로에 나가 보면 정상적인 사람도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지
|
못한다. 무엇이 그리 급한지 저마다 앞서 가겠다고 경적을 울려대며 달린다.
|
남을 위한 양보는 어쩌다 보는 신기한 모습이고, 끼어들기에 차선 위반에 중앙선
|
침범까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해서 앞서서 가려고 몸부림을 한다.
|
그래서 교통사고율도 세계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다.
|
편리하다는 지하철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보게 된다. 어쩌다 서울에 가서 머물
|
경우 나는 대개 편리한 지하철을 이용한다. 어느 날 전동차에서 내려 막 출구로
|
향할 때였다. 앞선 사람들이 남녀를 가릴 것 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계단
|
위로 뛰어 올라갔다. 나는 무슨 급박한 일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다. 헌데
|
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. 모두 저마다 먼저 출구를 빠져나가려고 그
|
모양이었다.
|
버스 정류장의 풍경도 다름이 없다. 어쩌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
|
기분좋게 볼 수 있지만, 그 가운데 어떤 줄은 버스가 오기가 무섭게 흐트러진다.
|
그 다음 풍경은 뻔하다. 서로 먼저 타겠다고 어깨 싸움을 하며 소란을 떤다.
|
앞서 있던 노인네도 젊은것들의 어깨에 밀려난다.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볼
|
때마다 묻고 싶었다. 무엇이 그렇게 바쁘냐고, 혹시 부모님이 위독하다는
|
전갈이라도 받았냐고. 그러나 용을 쓰고 앞서서 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붙잡아
|
물어 불 수 있겠나.
|
길에서 볼 수 있는 이 기막힌 풍경은 요즘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
|
그려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. 그 바탕을 들여다보면 왜곡된 경쟁을 유도하는
|
사회 분위기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.
|
사회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. 능력과 노력이 앞서면 그렇지 못한
|
사람보다 앞서게 마련이다. 그러나 경쟁은 공정하고 선의에 의해 이루어질 때
|
모든 사람이 승복하고, 그 사회는 평온을 유지 할 수 있다.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
|
경쟁보다는 불공정하고 악의에 찬 것을 더 많이 경험하며 살아왔다.
|
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앞서려는 의식 속에
|
빠져버렸다. 순리에 의한 발전이 무시당하고 보니, 이득이 있는 회전의자에 먼저
|
앉으면 주인이요,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노래나 부른다.
|
왜곡된 경쟁에서 조금 앞선 자는 기고만장해지고 한 발 늦은 사람은 살 맛을
|
잃어버린다. 이런 풍토도 사람들을 앞만 보고 달리는 습성에 빠지게 했다.
|
욕망에 눈이 멀면 상하좌우는 커녕 눈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.
|
사기꾼의 농간에 속에 사업에 실패한 한 중년의 남자가 있다. 그는 실패한 후에
|
지난 일을 다시 돌아보니 참으로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했다. 자신이 조금만 더
|
냉정했어도 사기꾼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단다.
|
허나 실패한 후에 찬찬히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이지 사업 확장에만 매달렸던
|
당시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. 사기꾼이 던진 미끼는 달콤한 유혹이 되어 그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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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만 보며 달리게 만든 것이다.
|
주변에 진정한 친구가 없다는 한 남자의 쓸쓸한 고백도 떠오른다. 그는 결혼
|
직후 악착같이 돈을 모아 잘살아 보자고 아내와 약조를 했단다. 두 사람이 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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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주변의 욕을 먹더라도 뒤도 돌아보지 말자는 것이었다.
|
그래서 그 목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조리 외면했다. 친구도 가족도 그들의
|
안중에 없었다. 함께 어울리자는 제의를 받아도 시간이 아까워 거절했고, 돈을
|
빌려 달라는 소리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.
|
언젠가 자신들의 목표에 도달하면 그때 주위와도 어울릴 생각이었다. 그야말로
|
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십 년이 되었다. 그들 부부는 목표했던 바를 어느 정도
|
이루게 되었다.
|
그러나 그때 주위에는 이미 친구도 가족도 보이지 않았다. 어느날 갑자기 그
|
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남자는 지난 세월을 후회했다.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앞만
|
보고 달려왔던가.
|
요즘 세상은 사람을 자동차 경주장 같은 곳으로 내몬다.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
|
사람들은 마구 달린다. 때로는 자기가 진정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달린다.
|
그러다 넘어진 사람들이 곳곳에서 비명을 지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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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러한 세상에서는 쉬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. 쉬면서 왜 달리는지 어디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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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는지를 살펴야 한다. 쉬지 않고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춰볼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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움직이지 않는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춰보면서 자기가 누군지, 삶이 무엇인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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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하며 살 때 우리는 행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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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기나는 인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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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에게는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향기가 있다.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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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사람이 있다. 사람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. 멀리 있어도 늘 그리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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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있다. 사람의 향기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. 반면에 마주할 때면 고약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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냄새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. 그가 아무리 비싼 향수를 몸에 뿌렸다 해도 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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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싸쥘 수밖에 없다.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. 멀리 있을수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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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사람이 있다. 고약한 냄새를 맡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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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향기가 느껴져 행복하고, 어떤 사람은 그저 무덤덤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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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어떤 사람은 고약한 냄새가 나 불행할까. 사람의 향기라는 것은 형식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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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에 뿌리는 향수가 아니다. 그런 것이라면 너나없이 향수를 뿌려댈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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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기나는 사람이 되고픈 것은 모든 이들의 꿈이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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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돈이 많다고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요, 머릿속에 지식을 가득 채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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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고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. 또한 외모가 출중하다고 향기가 나는 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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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요, 힘이 세다고 향기가 나는 것도 아니다. 오히려 그런 것들은 잘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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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용되었을 때 악취를 풍기는 요인이 될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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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무엇으로 향기를 낼까. 다른 것이 없다. 인간으로서 인간의 도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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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할 때, 도리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때, 거기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. 왠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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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게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이 있다. 왠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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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유는 딱 하나, 인간적인 도리에 충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. 사회에서 받은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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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은 사람은 그것을 다시 사회로 돌려줄 생각을 해야 한다. 그것이 인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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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이고, 바로 사람의 향기가 된다. 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향기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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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다. 결초보은,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이 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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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래는 이렇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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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있었다. 그가 죽음을 앞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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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인 과에게 유언을 했다. 자기가 죽으면 자기의 애첩을 개가시키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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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었다. 헌데 노망이 든 위무자는 곧 그 말을 번복하고 애첩을 자기와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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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장시키라는 말을 아들에게 남겼다. 부모의 유언은 지엄한 것인지라 아들 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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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라야 했다. 그러나 개가와 순장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. 결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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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은 개가를 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. 노망이 든 상태에서 순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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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했으니 첫 번째 유언을 중시한 것이다. 물론 아버지의 애첩에 대한 인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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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도 작용했을 것이다. 사람을 생매장하는 것보다 개가를 시키는 것이 인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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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에도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. 아들 과의 결정으로 위무자의 애첩은 개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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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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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월이 얼마간 흘렀다. 때는 나라마다 싸움이 빈번할 때였다. 진나라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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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회라는 장군이 있었는데, 그의 군사와 위무자의 아들 과의 군사가 서로 싸우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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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었다. 두회에게 쫓기게 된 과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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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. 사기충천한 두회의 군사들이 말을 달려 과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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쫓다가 모두 쓰러졌다. 풀이 묶여져 있는 길을 달리다가 모두 그 묶여진 풀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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걸려 넘어진 것이었다. 위무자의 애첩이었던 여인의 아버지는 이미 저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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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었는데, 그 혼령이 나타나 풀을 그렇게 묶어둔 것이다. 풀을 묶어, 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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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초하여 보은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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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령은 자기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를 할 수 있도록 한 과에게 크나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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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고, 그 보답을 한 것이다.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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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이요, 죽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는 보은의 태도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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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것이 바로 인간적인 도리요, 여기서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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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사회에도 입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베풀며 사는 사람이 있다. 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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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을 즐기며 사는 이들이 있다. 그들을 보면 향기가 느껴진다. 탐욕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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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선의 향수로 자신을 치장하는 무리들에게선 결코 맡을 수 없는 향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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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, 바로 의리를 지키는 사람은 또 얼마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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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기로운 존재인가. 의리를 모르는 사람과는 한순간도 함께 있고 싶지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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향기는커녕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. 의리에는 친구나 동료간의 의리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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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고, 상하간의 의리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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춘추전국시대에 예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. 그는 지백의 신하였는데, 지백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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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국의 조양자에게 죽임을 당했다. 예량은 원수를 갚기 위해 조양자의 나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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갔다. 그러나 조양자가 있는 궁중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어 궁리를 하다가 스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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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인이 되었다. 죄인이 되면 궁중의 온갖 궂은 일을 하는 의무가 주어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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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다. 예상대로 궁중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 노역이 주어졌다. 예량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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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양자와 마주칠 기회만 엿보며 가슴 조이는 나날을 보냈다. 그러나 조양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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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하들이 먼저 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 잡아들였다. 예량은 죽음의 위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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몰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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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조양자는 예량을 죽여야 한다는 신하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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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백이 죽은 후로 멸족을 당해 그 대마저 끊어졌는데, 그 신하가 원수를 갚겠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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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선 것을 가상하게 여긴 것이다. 일단 풀려난 예량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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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번에는 온몸에 옻칠을 해 문둥이의 모습으로 본 모습을 감추었다. 그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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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완벽한 변장이었다. 그런 꼴로 시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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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아다니면 빌어먹는 거지 노릇을 했다. 조양자가 궁중에서 나와 행차할 때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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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다리며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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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기가 딱했는지 한 친구가 예량에게 이렇게 권유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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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자네 같은 재주로 차라리 조양자를 섬기면 얼마 가지 않아 총애를 받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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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먼저 그렇게 총애를 받은 후에 방심한 틈을 타 죽이면 자네가 하고 싶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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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을 쉽게 할 수 있지 않은가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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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구의 말을 듣고 예량은 고개를 저으며 이런 말을 남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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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들어보게. 내가 한 번 무릎을 꿇고 조양자를 섬기는 신하가 되고, 틈을 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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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그 자를 죽인다면 이는 두 마음이 아닌가. 그런 비열한 짓을 인간으로서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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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는 없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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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열한 짓을 거부한 예량은 끝내 원수를 갚지 못했다. 조양자가 지나는 길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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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리 밑에서 잠복해 있다가 조양자의 신하들에게 다시 잡혀 목숨을 잃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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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량이 신하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것도 의리를 지키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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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였지만, 그 방법에 있어서도 그는 의리를 아는 사람이었다. 두 마음을 갖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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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열한 방법으로 원수를 갚는 것 역시 의리에서 벗어난 짓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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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는 목숨을 버린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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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리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주먹 세계의 의리를 떠올리는데, 자기편의 이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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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 상대편에게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자들은 의리를 알지 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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망나니일 뿐이다. 그러면서도 자기편끼리는 의리가 있는 짓이라고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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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켜세우니 소인배라 아니할 수 없다. 주먹 세계만 그런 게 아니다. 목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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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루기 위해 주저없이 마음을 바꾸어 도리에 벗어난 짓을 일삼는 이들이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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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, 그 얼마나 비열하고 악취가 풍기는 사회인가.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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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가, 아니면 향기나는 사람들의 땅에 있는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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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나눔의 도리가 존중되느냐, 그렇지 않으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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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해 볼 수 있다. 탐욕스런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면, 결코 향기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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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라 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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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 송나라에 범문정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. 가난하게 살면서도 매사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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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실했던 그는 부재상의 벼슬에 올랐다.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함께 고생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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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았던 그의 아내와 어머니가 유명을 다리하고 있었다. 어려웠던 시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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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상하며 그는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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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가난할 적에 너희들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많은 고생을 하셨다. 할머니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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음식도 변변히 올릴 수 없었다. 그런데 오늘날 많은 녹을 얻고 사니 여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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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겼다만,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미 계시지 않으니 무엇을 대접해 올릴 상황이 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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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구나. 그렇다고 어찌 우리들만 최고의 복락을 누리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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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이 고을에는 많은 우리의 동족들이 살고 있다. 그 동족들은 촌수가 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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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까운 친소가 있겠지만, 먼 조상들의 눈으로 보면 다 똑같은 자손들이다. 친소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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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로 없는 것이다. 그런데 어떻게 우리만이 부재상에게 주어진 풍요를 누릴 수
|
있겠느냐. 부재상이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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음덕의 결과이니라.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를 내 것이라고 우리끼리만 누릴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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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것이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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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하여 범문정공은 부재상으로 받는 녹을 마을 사람들과 나눈 것은 물론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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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집과 밭을 마련해 차별없는 풍요를 누렸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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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나눔의 인간적 도리를 실천하는 사람, 참으로 향기로운 사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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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진스런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. 추운 겨울날에 농부는 짚무덤에 앉아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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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뜻한 햇볕을 쬐었다. 등이 따뜻해졌다. 그 따뜻함에 행복을 느낀 농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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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와 그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함께 즐길 사람을 찾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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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. 혹시 따뜻한 햇볕을 혼자 즐기기만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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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것은 아닌가. 어 나아가 남이 그 즐거움을 알아챌까봐 조바심을 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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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자만 즐기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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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향기를 품고 태어났다.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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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못난 대로 향기가 있는 것이다. 그러나 그 향기는 저절로 맡을 수 있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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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가슴을 열고 사람다운 도리를 다할 때 비로소 맡을 수 있다. 향기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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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, 함께 마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멀리 있으면 늘 그리운 사람,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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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. 나는 오늘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. 그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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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먼저 내 자신이 향기나는 인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, 그것이 또한 늘 삶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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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제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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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기와 그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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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기잡이 나가려는 한 어부가 정성스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. 이방인이
|
지나가다가 어부를 보고 멈춰서서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. 그러더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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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학가라도 된 양 심각한 표정이 되어 뜬금없이 어부에게 물었다. 고기가
|
중요합니까, 그물이 중요합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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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부는 이방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웃음이 나왔지만, 차마 웃을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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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답을 재촉하듯 바라보는 이방인에게 어부는 물론 고기가 중요하지요, 라고
|
대답했다. 삼척동자라도 그걸 모르겠느냐는 어부의 표정에 이방인은 이맛살을
|
찌푸렸다.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. 고기는 바다에 얼마든지 있는 것이고,
|
어부에게 그물이 없으면 고기를 잡지 못하는데, 그래도 고기가 더 중요합니까?
|
들어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 어부는 고개를 끄덕였다. 그러나 그물이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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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하다는 뜻은 아니었다. 헌데 어부의 고갯짓을 그물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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뜻으로 받아들인 이방인이 또 물었다. 그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바꾸신
|
모양인데, 고기가 없으면 그물이 무슨 소용이지요?
|
그물을 손질하던 손을 멈추고 어부는 이방인을 바라봤다. 철없는 어린애 같은
|
질문을 하면서도 이방인의 표정은 세상 고민 다 끌어안고 있는 듯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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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부는 물론 그렇지요,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. 나름대로 진지한 이방인의
|
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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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자 이방인은 시비를 걸듯 또 물었다. 무엇이 그렇다는 말씀이십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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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기와 그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? 따지듯 물어오니 어부의 기분도
|
약간 상했다. 그러나 되도록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. 결국 고기를 잡기 위해
|
그물이 있는 것이니 고기가 중요한 것이고, 그물이 없으면 고기를 잡지 못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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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물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. 헌데 그 대답은 어느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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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방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. 이방인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제 가던 길로 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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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 역시 종종 어부의 처지가 되어 이방인식의 질문을 받곤 한다. 저울로 달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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봐서 고기와 그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물음들이다. 나는 어부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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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저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이 있는 것이니 고기가 더 중요한 것이라 답한다.
|
세상에는 고기가 더 중요한 것임을 잊고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. 수단과 목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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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리지 못한다는 말이다. 우리는 학문이나 종교 등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면
|
인생을 깨우치고, 그 깨우친 것으로 보다 나은 삶을 이끌어간다. 학문이나 종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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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우치는 수단이요, 보다 나은 삶이 그 목적이 되는 것이다. 여기서 수단은 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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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은 삶을 낚을 수 있는 그물이 되는 것이다. 그런데 깨우침의 고기는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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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성이 덜해지고 수단의 그물이 되는 것이다. 그런데 깨우침의 고기는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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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성이 덜해지고 수단의 그물이 무기가 되어 세상을 혼미케 하곤 한다.
|
학문을 보면, 이제 그것은 깨우침의 수단이 아니라 출세와 부귀와 생활의
|
수단이 되었다. 중요한 목적은 사라져 버리고 수단이 제멋대로 놀아나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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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이랄 수 없는 목적을 만든 것이다. 목적이 뒤틀려 있으니 배우는 방법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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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바를 리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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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진리를 문자로 표기해서 배우는 부분이 많다. 여기서 문자는 수단, 바로
|
그물이요 문자가 품고 있는 진리가 목적, 바로 고기가 된다. 헌데 문자는 제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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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우면서 그 진정한 알맹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. 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
|
말은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할 때 피상적인 문자에 불과하게 된다.
|
꽃을 보면 아름다움을 배우고, 돌을 보면 무거움을 배우고, 아이를 보면 사랑을
|
배우고, 어른을 보면 존경을 배워야 한다. 그것이 참다운 배움의 방법이다. 높은
|
산을 보고 그 기상을 배우지 못하면, 그것은 피상의 앎은 될지언정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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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달음은 되지 못한다. 문자만으로 꽃이 어떻다는 말을 아무리 해봐야, 거기서
|
아름다움을 배우지 못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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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움과 생활은 결합되어 있는 것이요, 우리는 대자연을 스승으로 삼아 깨우쳐야
|
한다. 공자 역시 스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대자연이 스승이라 했다.
|
책으로만, 글자로만 배우는 것은 실체를 잃어버린 배움일 뿐이다. 마호메트가
|
말하길 탐구하는 학자의 잉크는 피보다 강하다고 했다. 피보다 강한 탐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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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단인 문자 그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일 수 없다. 탐구의 목적인 깨우침을 얻을
|
때 비로소 그 잉크는 피보다 강한 것이 된다.
|
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읽은 책의 줄거리를 말하라면 줄줄 읊으면서도, 거기에
|
담긴 뜻과 정신을 말하라면 쭈뼛거리다가 입을 다무는 이들이 많다. 그저
|
줄거리를 아는 것만으로 공부를 했다 하고, 그런 껍데기로 시험과 경쟁에서
|
이기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.
|
사회가 그러한 젊은이들의 그릇된 태도를 조장했다고 할 수 있다. 인간
|
교육보다는 밥벌이 수단을 가르치는 교육에 치중하고, 성공의 잣대를 인간적인
|
성숙도에 두지 않고 물질에 바탕을 둔 실용성과 기능적인 가치에 두어 무엇이
|
목적이고 중요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게 만들었다. 고기의 중요성은 사라져
|
버리고 그물만 이리저리 마구 던지면서 무엇이건 건져올리면 그만이라는 풍토가
|
되었다.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. 종교도 마찬가지다. 그것은 깨달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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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단인 것이다. 헌데 요즘 종교인들을 보노라면 종교 그 자체가 목적인 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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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. 중요한 것은 고기이지 그물이
|
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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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말했을 때 어부가 이방인에게 받은 반론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. 그
|
내용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전통 속에 살아 있는 격식과 의식의 문제다. 정신만
|
살아 있으면 되는 것인데, 지나치게 의식과 격식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는
|
이들이 있다. 의식과 격식은 그물에 불과하고 정신이 바로 고기인데, 어째서
|
그물을 그토록 중시하느냐는 것이다.
|
먼저 우리 문화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. 동양 문화는 모양 문화라 할 수
|
있다. 모양이라는 그릇에 정신을 담는 것이다. 제사를 지내도 물 한 잔 떠놓지
|
않고 고개만 숙이는 서양과는 다르다. 제사상에는 어떤 음식을 어느 자리에 놓고,
|
제사를 지내는 후손은 어떤 옷을 어떻게 입고,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절을
|
하는지를 정해 놓고 있다. 제사의 그 상세한 과정과 예법을 종합해 보면 그
|
의식은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. 외형적인 형식의 아름다움과
|
거기에 담는 정신의 고결함, 그것의 절묘한 결합에서 오는 제사 의식의 완성도를
|
보고 어찌 예술적 가치를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. 정신이라는 내면적 가치를
|
모양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다.
|
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의 예절도 그 관계에 따라 각기 예법이 다르다.
|
어른과 아이가 만났을 때,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, 친구와 친구가 만났을 때
|
인사하는 법이 틀리고 그에 따라 상대를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. 서양
|
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의 등을 툭툭 두드리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인다.
|
그것이 그들의 예법이겠지만 우리의 경우 아들의 그런 행동은 올바른 것이라 할
|
수 없다. 단순히 등을 두드리는 그 모양새만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. 그런
|
행동은 자식이 아버지를 대하는 정신 상태가 잘못됐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
|
때문이다. 아버지를 동년배 대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.
|
옷은 어떻게 입고 밥은 어떻게 먹고 길은 어떻게 걷고 인사는 어떻게 하느냐
|
하는 그 모든 일상의 예법 역시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
|
있는 것이다. 우리의 의식과 격식은 그 자체가 마음의 표현이 된다. 결코
|
형식적인 허례가 아니다.
|
나의 아내는 가끔 외출을 할 때 화장을 한다. 요란스런 화장은 아니지만
|
그래도 정성스레 얼굴을 매만진다. 모양을 내는 것이다. 그것을 허례라 할 수는
|
없다. 아내의 화장에서 느끼는 소감도 소감이지만 나는 화장품 그 자체를 보며
|
이런 생각을 해 본다.
|
화장품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 용기들이 참으로 각양각색이다. 화장품의
|
내용물은 그 품질과 성격이 다양할 터인데, 그 내용물만으로는 여인네들의 관심을
|
끌지 못하는 모양이다. 그것을 담는 용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여인네들의 손길이
|
닿기를 기다린다. 내용물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용기가 형편없으면 관심을 끌지
|
못하리란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.
|
그렇다면 여인네들에게 좋은 화장품이란 그 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
|
없고 그것을 담는 용기도 마음을 끌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된다. 제품의 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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높이면서 그와 함께 포장도 잘해야 한다는 것은 요즘의 산업 사회 현실이기도
|
하다. 디자인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제품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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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다. 그래서 요즘 곧잘 디자인 혁명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.
|
우리 전통 문화가 지닌 의식과 격식도 그렇게 내용, 즉 마음을 담아 그것을
|
표현하는 수단이다. 여인네가 오랜 시간 화장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,
|
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는 것을 지나친 의식과 격식이라
|
한다면 이는 한줌의 모래가 모래인 줄 알면서 넓은 백사장의 모래가 모래인 줄
|
모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.
|
우리의 모양 문화가 이러하다고 해도 그 이방인식의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
|
여전히 이렇게 물을 것이다. 모양이건 마음의 표현이건 중요한 것은 마음 그
|
자체가 아니냐. 그런데 고기보다 그물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냐.
|
고기보다 그물이 중요할 수는 없다. 그러나 그물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
|
고기를 잡을 수 없다. 그물의 구멍이 잡을 고기보다 크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.
|
그물을 던져 놓았다 해도 그것을 끌어당기지 못하면 역시 고기를 손에 쥘 수
|
없다. 그물은 고기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중요한 것이다.
|
어부는 이방인에게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이 있는 것이니 고기가 중요하고, 또
|
그물이 없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그물이 중요하다고 했다. 그 대답에는
|
모순됨이 없다. 단순하고 궤변적인 저울로 그 둘의 무게를 다는 것은 어리석은
|
짓이다.
|
목적을 잃은 수단은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그물과 같다. 그물이 고기를 잡기
|
위한 수단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다. 그렇다고 그물을
|
아무렇게나 만들고 던지면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. 목적은 있으되 수단이 없으니
|
당연한 일이다.
|
고기와 그물이 하나로 어울릴 수 있게 아는 어부, 목적과 수단을 하나로
|
조화시키고 내용과 형식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어부야말로 최고의 어부라 할 수
|
있다. 우리는 그런 어부에게 인생을 배울 수 있다. 궤변적인 저울을 들이대는
|
이방인은 잠시 머물다가 가 벌릴 수 없다. 그러고보면 진리라는 것은 참으로
|
평범하다. 그물을 잘 만들어 고기를 잘 잡으면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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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기지 않는 즐거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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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님으로 찾아온 점잖은 신사 두 분이 아내가 내민 밥상을 보고는 고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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끄덕였다. 한 신사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왜 그랬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는데,
|
듣고 보니 이러했다.
|
밥상은 나물과 야채 반찬으로 채워져 있었는데, 청학동 밥상이란 게 이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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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구나, 하는 확인의 표현인 것이었다. 산골이니 그러려니 짐작하고 있었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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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상 보니 정말 그렇다는 뜻이었다.
|
"이 곳 분들은 채식만 하십니까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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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주로 채식을 하지요. 그게 우리 몸에 좋으니까요. 그러나 가끔 고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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먹기도 합니다. 하지만 개고기는 절대 먹지 않습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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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대답을 들은 한 신사가 눈을 크게 뜨고,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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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 다시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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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개고기요? 아니, 그 좋은 것을 왜요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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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가지 이유로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배경을 설명했다. 두 신사는 고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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끄덕이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. 음식 얘기가 계속 이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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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신사는 예의에 벗어나게도 내 앞에서 개고기가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은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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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황하게 늘어놓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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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야기는 개고기에서 소의 불알과 혓바닥으로, 하동의 재첩국으로 계속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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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어졌다. 두 신사는 대단한 미식가임에 틀림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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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있지만, 정말 먹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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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만한 게 어디 있나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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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물 반찬을 맛나게 씹으며 한 신사가 말했다. 먹는 즐거움, 그것은 두 신사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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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는 것은 물론 아니다.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사람들이 음식물을 씹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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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가 온세상을 울리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. 어쨌든 눈을 감으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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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가 들리는 듯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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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 어디 먹는 즐거움만 있겠나. 보면서 누리는 즐거움, 들어서 느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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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, 좋은 옷을 입어서 생기는 즐거움, 여자를 만나는 즐거움, 남자를 만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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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, 담배를 피우는 즐거움 등 세상에는 즐거움이 참으로 많은 듯 보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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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는 즐거움만 해도 그렇다. 영상시대라고까지 불리는 요즘 세상에는 정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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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거리가 많다. 텔레비전, 영화, 비디오 등에 나오는 온갖 모습들이 현란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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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은 영화에서부터 온갖 살인 기술이 나오는 폭력물과 기막힌 포르노까지 불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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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게 없으니 누가 그 즐거움의 유혹을 뿌리칠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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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는 즐거움은 또 어떤가. 옷이 날개라는 말이 생활 신조라도 되는 듯 숱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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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옷가게들을 순례하다 마침내 하나 찾아낸다. 비장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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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드를 내밀 듯 그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척 나서서 반응을 살핀다. 어울린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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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한 마디 하면 만면에 미소를 짓고, 반응이 신통치 않으며 원수 대하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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옷장에 처박아두고 다시 옷가게로 달려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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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길 것이 이리도 많으니 세상은 무릉도원이 됐단 말인가. 천만의 말씀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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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길 거리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진한 즐거움의 농도를 찾아 떠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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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제의 즐거움은 이미 오늘의 즐거움이 아니요,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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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. 절제 할 줄 모르고 그렇게 쉬지 않고 즐거움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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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다가 끝내는 화근을 만나고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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먹는 즐거움만 들여다보자. 거기에 빠져 자제할 줄도 모르고 마구 먹어대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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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만해지고 성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. 성인병에 걸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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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에야 먹는 것을 조절한다 어쩐다 하지만 치료가 잘 되지 않을 뿐더러, 설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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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전된다 하더라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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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에 생기는 직접적인 병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.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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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, 식탐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많은 돈이 요구된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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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을 벌기 위해 제 몸을 또 얼마나 혹사시켜야 하는가. 벌어서 먹고, 좀더 맛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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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먹기 위해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. 음식을 쫓는 것은 결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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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을 쫓는 것이 되니, 힘겨운 돈벌이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. 그러다 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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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는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려는 사람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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득실거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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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. 먹지 않는 즐거움은 없을까. 굶는다거나 영양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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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제가 있을 정도의 소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적절히 자제하는 즐거움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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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즐거움도 있다. 먼저 성인병에 걸리지 않으니 건강해서 좋고, 맛있는 음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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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이 먹기 위해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서 좋다. 보리밥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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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물국을 먹어도 마음이 편하면 잘사는 것이다. 진수성찬을 먹기 위해 온갖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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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민과 갈등 속에서 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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먹지 않는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보지 않아서 누리는 즐거움, 듣지 않아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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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는 즐거움, 입지 않아서 생기는 즐거움, 여자를 만나지 않는 즐거움, 남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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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나지 않는 즐거움, 담배를 피우지 않는 즐거움이 있다. 즐기지 않는 즐거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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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한 세상에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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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사람들 가운데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따져보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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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인병에 걸리건 말건 일단 먹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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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사람들은 한심한 것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는다. 그런 태도의 배경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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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질과 정신에 대한 몰이해가 깔려 있다. 만물에는 양면성이 있듯 인간 생활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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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질과 정신이라는 양면성의 축이 있다. 물질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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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은 행복을 느끼게 한다. 그 둘은 수레의 양바퀴처럼 어울려 삶을 끌고 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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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그 둘의 작용을 굳이 선후로 따진다면 물질이 정신보다 앞쪽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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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.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먹어야 움직일 수 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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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후에 정신의 작용이 가능하니 물질을 앞세울 수 있는 것이다. 여기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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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후는 작용상의 선후를 말하는 것이다. 그러나 그 둘을 가치의 경중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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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져보면 달라진다. 물질보다는 정신이 앞서는 것이다. 헌데 이것이 뒤바뀌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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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세상은 물질을 숭배하고 인간을 경시하는 풍토에 젖어 버렸다. 가치상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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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후를 무시하고 작용상의 선후에 매달려 많은 사람들이 물질 숭배자가 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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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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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현실이고 보니 즐거움도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움보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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숱한 후유증과 고통을 몰고 오는 즐거움을 사람들은 더 탐닉하게 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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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질 숭배가 팽배한 현대에 와서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. 과거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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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건 문제가 있었기에 많은 성현들은 사람의 즐거움에 대해 음미해 불만한 말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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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겼다. 장자와 노자의 어록을 보자. 먼저 "장자"의 '지락편'을 보면 다음과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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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지의 대목이 나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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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은 있는가? 대개 천하가 즐거워하는 것은 몸의 편함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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맛있는 음식, 아름다운 옷, 좋은 빛깔, 좋은 소리인 것이다. 천하가 괴로워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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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몸에 편함이 없고 입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며, 몸은 아름다운 옷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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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지 못하고, 눈은 좋은 빛깔을 보지 못하고, 귀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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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래서 만일 이러한 것들을 얻지 못하면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니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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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뚱아리를 위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구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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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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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속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참으로 즐거운 것인가를 나는 모르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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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, 온 천하가 떼를 지어 달려서 비록 죽더라도 그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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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는 듯하여, 그래서 모두 즐겁다고 하지만, 나는 아직 그것을 즐겁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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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하지 않는 것이다. 그렇다고 해서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니, 과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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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이란 있는 것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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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무위로써 참다운 즐거움을 삼는다. 그러나 이것은 세속의 사람들이 크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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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로워하는 것이니, 옛말에 '지극한 즐거움은 즐거움이 없는 것이요, 지극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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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예는 명예가 없는 것이다'라 한 것이다. 지극한 즐거움이 몸을 살리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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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직 무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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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자는 얻기 위해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여길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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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고 했다. 즐거움이 없는 즐거움, 바로 세속의 즐거움을 넘어선 무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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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움이라 했다. 그것이 세 속의 사람들에겐 괴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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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적했다. 우리는 왜 장자가 인위를 가하지 않은 자연 상태인 무위를 즐거움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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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는지 음미해 보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. 즐기지 않는 즐거움을 느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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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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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자 역시 감각적인 즐거움을 버리고 내실 있는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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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도덕경"의 검욕의 장을 보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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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.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. 오미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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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입을 상하게 한다.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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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동을 방해한다. 이로써 성인은 배를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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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 눈을 위해 하지 않는다. 그래서 성인은 저를 버리고 이를 취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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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인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감각적인 즐거움에 빠지지 않는다. 배, 바로 내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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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우는 생활 태도를 갖는 것이다. 그러나 무위의 태도는 장자의 표현대로 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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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의 인간들에게는 괴로움이 되니, 눈이 머는 줄도 모르고 화려한 색에 빠져들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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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맛난 음식에 집착한다. 물론 보지 않고 먹지 말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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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가 아니다. 그것에 집착하고 거기서 지나치게 즐거움을 찾을 때 문제가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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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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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속에서 어찌 감각적인 즐거움을 좇지 않고 살 수 있으리요. 그 즐거움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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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의 맛을 더하는 조미료 역할을 할 것이다. 그러나 즐거움에서의 집착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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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. 즐기지 않는 즐거움의 지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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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져봄직하지 않은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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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 자신을 알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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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날에 아내와 함께 하동 시장에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. 내게는 다른 볼 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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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지만 시간도 남고 하여 갓을 쓴 채로 이리저리 둘러봤다. 시골 장터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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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들여다보면 없는 게 없었다. 아낙네들이 조금씩 들고 나온 농산물뿐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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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상인들이 파는 각종 공산품들이 너도 나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임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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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다리고 있었다. 조잡하기 그지없는 장난감에서부터 첨단의 전자제품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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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야말로 시장은 만물상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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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품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질도 다양했다. 어떤 상품은 형편없이 만들어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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헐값으로 내놓아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, 또 어떤 상품은 잘 만들어진 것이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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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며 당당하게 비싼 값으로 손님들 앞에 나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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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면서도 사람들은 그런 당당한 상품 앞에서 기웃거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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흥정을 하다 깨져 돌아서면서도 사람들은 잘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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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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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님들의 구미를 모를 리 없는 상인들은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갖다 놓기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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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를 쓰고, 그에 따라 당연히 제조업자들은 그런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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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래도 막상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면 값과 질은 천차만별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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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시장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세상살이가 꼭 그와 같음을 알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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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세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인간과 시장에 그러고 있는 상품은 다를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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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질 좋은 상품이란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. 그런 가치 있는 상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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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주목을 끈다. 마찬가지로 사람도 가치가 있을 때 세상의 주목을 받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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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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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. 그러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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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가치는 누가 만드는 것일까.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자기 스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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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드는 것이다. 지극히 당연한 이 진리를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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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닐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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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품 하나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면서도, 정작 자신의 가치를
|
높이는 일에는 태만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.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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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.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은 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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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밖에 없다. 바로 자기 가치를 스스로 만드는 길이다. 좋은 상품을 만들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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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 바치는 정성, 아니 예술품 하나를 빚어내기 위해 바치는 혼신의 땀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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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을, 자기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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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가치를 만들지 않고 주위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은 볼품없는 상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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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님들의 칭찬을 기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몰염치한 짓이요, 가능하지도 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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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남의 탓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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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이 한다. 자기 가치가 없는 것은, 그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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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. 추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 모양은 생각지 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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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울을 탓하는 것과 꼭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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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 있는 사람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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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. 자신을 비추는 주위 사람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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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울을 탓하지 말고 바로 자기 모습을 살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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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남자가 있다. 자기는 집안의 가장이니 당연히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존경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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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. 그런데 그 남자는 아주 경박하고 이기적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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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짓말쟁이다. 자식이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아내가 그런 남편을 존경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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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까. 결코 그럴 수 없다. 자신이 존경받지 못한다고 가족을 나무랄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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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자기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. 아내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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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편이 밖에 나가서는 어떨까.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 나간다고 달라질 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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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런 남자는 사회에 나가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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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도 마찬가지다. 아내로서 의무를 다하고 스스로 가치를 쌓을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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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편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. 그렇지 못하고 남편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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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내는 어디 가서도 마찬가지 신세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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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는 가르쳤다. 그것은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이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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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다. 바로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.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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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요,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. 남의 허물은 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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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면서 제 허물은 모르니, 그래서야 어찌 자기 가치를 만들 수 있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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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권리를 말할 때 보통 그것을 남과의 투쟁에서 얻는 성과물로 여기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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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향이 있다. 서양에서 주로 그런데, 그들은 권리 투쟁이라는 말을 즐겨
|
사용한다.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의식이
|
팽배해져 있다. 물론 투쟁을 통해서 얻는 권리들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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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시각을 달리해서 근본적으로 보면 사람의 권리는 자기 의무와 책임을
|
다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. 아내는 아내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, 즉 자기
|
가치를 만들었을 때 남편의 인정을 받고, 인정을 받으니 자연스레 아내의 권리를
|
누린다. 남편도 마찬가지다.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부부 사이만의 문제가
|
아니라 모든 세상살이에 해당한다.
|
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먼저 이렇게 자문해 봐야 한다.
|
무엇 때문에 나의 가치는 이렇게 떨어졌을까? 이기심 앞선 행동을 많이 했을까?
|
남을 속였을까? 욕심을 너무 부렸을까? 상처를 줄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? 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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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픔을 외면했을까? 남을 이해하는 아량이 부족할까? 잘난 체를 했을까? 비굴한
|
행동을 했을까? 얌체짓을 했을까...? 그렇게 묻다 보면 자기 가치를 떨어뜨린
|
여러 문제점들을 찾아낼 것이다.
|
답을 찾았다면 그것을 바로 잡는 일, 바로 떨어진 가치를 세우는 일을 해야
|
한다.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그 길밖에는 없다. 성공과 실패의 열쇠는
|
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다. 성공을 위해서는 남에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바로
|
자기 자신에게 매달려야 한다. 이웃은 동반자요, 경쟁은 자기 자신과 해야 한다.
|
흔히들 경쟁을 말하면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지만, 그 주변의 이웃은 더불어
|
함께 사는 소중한 존재들이다. 사람이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공동체를 만들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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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존한다. 고독을 느낀다는 말은 공존의 그리움을 느낀다는 말이다. 이웃은
|
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이다. 경쟁이란 것 자체가 상대가 있는 것이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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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상대와의 우열을 따지는 게 아니냐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이다. 그러나 그것은
|
외면적인 관찰일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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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다. 자신과의 경쟁에서 얻은 것이 그 사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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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과물이다. 그 성과물을 표피적으로만 비교할 수 없다. 각양각색의 사람이
|
제각기 내놓은 성과물들을 외형적으로만 보고 저울을 달아, 누가 누구한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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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쟁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노릇이 아닌가. 그런 식으로 따지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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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정사정 보지 않고 덤벼들어 이권을 많이 챙긴 사람이 남의 사정을 살펴 과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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욕심을 자제한 사람보다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. 물질에 탐욕스런 사람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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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이 부자인 사람을 두고 누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.
|
노자는 천하 제일의 장사는 자기를 이기는 장사라 했다. 자신과의 경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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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긴 사람이 바로 성공한 사람이요,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다.
|
그러하기에 자기를 이기는 것, 자기 가치를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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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인 서정주의 시 "국화 옆에서"에서 나는 인간이 자기 가치를 세우기 위해
|
얼마나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하고,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를 읽는다.
|
|
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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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부터 소쩍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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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울었나 보다
|
|
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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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둥은 먹구름 속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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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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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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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
|
인재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
|
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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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
|
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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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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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과 질긴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.
|
사람이 자기 가치를 세우는 일도 그러하다.
|
중국의 회남자가 말하길, 나이 50살에 49살 때의 잘못을 깨우쳤다고 했다. 이
|
얼마나 명쾌한 자기 확인인가. 잘못을 깨우쳤다 함은 자기 가치를 새로이 만들어
|
가겠다는 뜻이다. 사람은 일생을 통해 그렇게 산다. 학위인본이라는 말이 있다.
|
사람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요, 배우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라는 뜻이다. 배우면서
|
자기 잘못을 알고 자기 가치를 세워 가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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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. 불교경전에는
|
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. 어느 날 부처는 설법을 행할 곳을 찾아 길을 떠났다.
|
가는 길에 숲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. 그때 한 무리의 청춘 남녀들이
|
우왕좌왕하며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. 부처를 본 그들은 도망가는 한 여자를 보지
|
못했냐고 물었다. 사연인즉슨 이랬다. 그들은 숲에서 짝을 지어 놀고 있었다.
|
흥에 빠져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, 한 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. 그저 없어진 것이
|
아니라 그들의 재물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. 부처는 노는데 정신이 팔린 그들에게
|
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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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젊은이들에게 하나 물어 보겠다. 그대들은 달아난 여자를 찾는 일과 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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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을 찾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가?"
|
자기 자신을 잃고 정신없이 놀던 젊은이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. 그들은 자기
|
자신을 찾는 게 더 중요함을 깨닫고 그렇게 대답했다. 이에 부처는 그들에게
|
자기 자신을 찾는 길을 일러 주겠다며 설법을 행했다. 깨달음을 얻은 젊은이들은
|
후에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.
|
인생은 자기 가치를 찾으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.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
|
자신을 속이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. 나 역시 남을 속인 기억은 별로 없는데
|
나 자신을 속이는 죄는 종종 저질렀다. 오늘도 다짐하는 것은 그 죄를 다시 짓지
|
말자는 것이다. 나를 속이는 것은 가장 큰 죄요, 나를 아는 것은 가장 큰
|
행복이다.
|
요즘 우리는 반도체를 비롯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, 또 만들려고
|
노력하고 있다. 참으로 대견스럽고 흐뭇한 일이다.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
|
된다. 그런 제품을 만드는 노력을 바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만드는 데도
|
기울여야 한다. 그것이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할 일이다.
|
|
꽃에서 맡는 물 향기
|
|
저마다 꽃들은 피고, 저마다 꽃들은 향기를 내뿜는다. 장미는 장미의 향기로
|
국화는 국화의 향기로 스스로의 존재를 만끽하고, 또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.
|
벌과 나비와 사람은 그 향기를 찬양하며 기꺼이 꽃을 찾아나선다. 꽃과 그
|
향기를 찬양하기에 얼마나 많은 시인들의 시가 바쳐졌던가. 시인이 아니어도
|
좋다. 우리는 꽃 향기를 맡으며 삶이 그렇게 향기롭기를 꿈꾸고, 그처럼
|
아름답기를 소망할 것이다. 그래서 청춘도 꽃다운 청춘이 되기를, 아니 모든
|
인생이 꽃다운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.
|
이제 막 인생의 눈을 뜨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이 가슴 설레며 꽃말을 외워 보는
|
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리라. 개나리는 희망, 철쭉은 사랑의 기쁨, 해바라기는
|
숭배, 백합은 순결.... 그렇게 꽃말을 마음에 새겨 보며 꽃과 같은 인생이 되기를
|
상상해 보는 것이다.
|
그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 향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. 꽃이기에 당연히
|
향기가 있는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. 그렇지 않다. 꽃을 피워 향기를 나게
|
하는 것이 있다. 마침내 필 수 있도록 생명을 공급해 주는 물, 그것이 있기에
|
향기도 있는 것이다.
|
물은 그 자체로 향기가 되지 않는다. 그러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, 세상
|
먼지를 다 씻어 주면서, 강한 바위틈 사이도 마다 않고 흐르면서 생명체가 생명을
|
유지할 수 있도록 제 몸을 바친다. 제 모든 것을 오로지 자연의 순리에 바쳐
|
꽃에게는 개화의 찬란함과 향기를 선사한다. 그렇다면 우리는 꽃에서 물 향기를
|
맡을 수 있지 않을까. 비록 그것이 직접적으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
|
아니지만, 마음으로 그 향기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. 꽃에서 물 향기를 맡아보자.
|
흐르고 흐르며 제 모든 것을 바쳐 마침내 꽃을 피운 물, 그 얼마나 향기로운
|
존재인가.
|
사람들이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. 이름을 떨치며 주목받는 사람들이 있다.
|
그들은 꽃다운 존재들로 향기를 발산하고, 사람들은 그에 찬양을 보낸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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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보면 그 바탕에는 물 같은 인생이 흐르고 있음을 알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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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, 향기로운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한 이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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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 같은 인생, 이 얼마나 향기로운 존재들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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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젠가 한 문학 청년과 물 같은 존재가 주는 향기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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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야기를 듣고 나서 청년은 시 한 수를 들려주었다. 독일 시인 릴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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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엄숙한 시간"이라는 시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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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울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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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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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위해 울고 잇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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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웃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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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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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보고 웃고 웃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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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걷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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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속에서 정처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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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향해 오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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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세계의 어디에선가 누군지 죽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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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속에서 까닭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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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쳐다보고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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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양 사람들의 시를 별로 읽어 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, 릴케라는 시인이 무엇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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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래하고 싶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. 하나의 존재에게로 향하는 다른 존재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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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미, 그것이 절대자의 섭리건 낯도 모르는 사람의 공력이건, 그 의미를 느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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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참으로 엄숙한 자기 확인이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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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자는 상선약수라 하였다.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자신은 다투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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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다고 했다. 그런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땅에 있다. 그것이 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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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깝다 한다. 있는 곳은 땅을 좋아하고, 마음은 깊은 것을 좋아하고, 어울릴 때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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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진 것을 좋아하고, 말은 믿음이 있음을 좋아하고, 정사는 잘 다스려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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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아하고, 일은 능함을 좋아하고, 움직이는 것은 때가 된 것을 좋아하고, 다투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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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하니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. 최상의 선이라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물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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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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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이 없으면 꽃은 금세 시들 것이다. 저마다 앞다투어 꽃으로만 피려 하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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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작 물이 없으면 어찌 한 송이라도 필 수 있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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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로 물 같은 인생이 없으면 세상은 시들어 버린다. 앞다투어 이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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떨치려 하고, 앞다투어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밖에 없다면 세상은 이전투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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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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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정에서라면 현모양처를 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. 자식들이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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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실을 할 수 있도록, 재능을 살려 꽃다운 인생을 만들 수 있도록 어머니는 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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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 자식들을 보살핀다. 한국인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음악가들이 많은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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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뒤에는 한결같이 훌륭한 어머니들이 있다. 그것이 어찌 유명한 음악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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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머니들만의 역할이겠는가. 세상의 어머니들은 많은 희생을 한다. 어머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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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꽃이 되려 하기보다는 자식이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며 스스로 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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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 얼마나 향기로운 존재들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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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하고 존경받는 사람 뒤에는 또 훌륭한 아내가 있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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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련이다. 그런 아내 역시 남편에겐 물 같은 존재다. 아니, 그 존재의 의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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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편에게만 혹은 자식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. 현모양처의 훌륭한 여인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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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사는 사회를 기름지게 한다. 요즘의 젊은 여성들 가운데 현모양처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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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만 들어도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있다. 시대에 뒤떨어져 곰팡내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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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관이나 여성을 억압하는 남녀차별적 수단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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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태도는 어쩌면 물 같은 인생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연유되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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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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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 같은 인생들이다. 늘 거리로 나와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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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소부를 보라. 그들의 지위는 결코 높은 게 아니요, 보수 역시 높지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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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쉼없이 빗질을 하며, 사람들이 좀더 깨끗해진 세상에서 사는 것을 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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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스로 만족한다. 그야말로 세상의 악취를 쓸어내는 향기로운 존재들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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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저마다 앞다투어 꽃을 피우려는 사람들은 그런 향기를 맡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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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탐욕스런 자가 그 전리품을 고급 승용차에 싣고 청소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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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끗이 만들어 놓은 길을 달릴 때, 사람들은 청소부를 보지 않고 탐욕스런 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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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다. 그런 사람을 보면서 저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. 현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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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할 때 청소부 가운데도 자기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 줄 모르고 스스로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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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하하는 이들이 생기게 된다. 그저 특별한 다른 기술이 없고 뽐낼 만한 학력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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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는 등의 이유로 마지못해 청소를 한다고 자조하는 이들이다. 이 얼마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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딱하고 안타까운 현실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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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제 역할을 다하며 없어지는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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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이들 한다. 그러나 정작 소금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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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사람에겐 그런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그 소금의 덕을 보는 사람이 되고 싶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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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렇게 덕을 보면서도 소금이 된 사람을 존경하기는커녕 경멸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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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류도 있으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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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본성은 본디 착한 것이라는 성선설의 입장에서 보면, 사람은 본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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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물과 같은 존재들이다. "맹자"의 '고자편'에 보면 이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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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 나온다. 먼저 고자가 맹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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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성은 돌고 있는 물과 같습니다. 그것을 동쪽으로 터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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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쪽으로 놓으면 서쪽으로 흐르지요. 사람의 성에 선함과 선하지 않음의 구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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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것은 물에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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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자는 물을 그저 터 놓는 곳으로 흐르는 단순한 물질로만 보면서 사람의 성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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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와 같다고 했다. 그러나 이에 성선설을 주장하는 맹자는 다음과 같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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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박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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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물에는 진정 동서의 구분도 없고 상하의 구분도 없다고 보는가? 사람의 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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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한 것은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네. 사람을 보면 선하지 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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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없고, 물을 보면 아래로 흐르지 않는 물이 없네. 물을 쳐서 뛰어오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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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 사람의 이마를 넘어가게 할 수 있고, 밀어서 역류하게 하면 산에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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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라가게 할 수 있으나, 그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나? 외부의 힘으로 그렇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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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것이네. 사람을 선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데, 그 역시 물의 경우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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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로 외부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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맹자는 사람은 본디 착한 것이고, 그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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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라 했다. 단지 그것이 잘못된 외부의 힘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역류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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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이 악으로 변한다는 것이다. 외부의 힘, 그것은 지나친 욕망에서 비롯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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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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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꽃에서 물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것도, 물 같은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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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지나친 욕망 때문이리라. 꽃에서 감각을 자극하는 향기에만 취하는 것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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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기서 물 향기를 맡는 것,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이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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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도일까. 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. 다만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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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려울 따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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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톱 밑에 쌀 한 톨 못 가져가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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댕기머리 시절에 지독한 구두쇠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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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산으로 따지면 인근 마을을 다 뒤져도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부자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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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감이었다. 헌데 두구쇠 노릇이 어찌나 심한지 이웃에 쌀 한 톨 베푼 적이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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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물론이요, 집안의 식구들까지도 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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논에 나가 일을 하고 온 아들이 깎아서 담은 밥그릇을 다 비우고 좀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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먹을라치면 영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. 준 밥만큼만 먹어도 사는데 지장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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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데 공연히 뱃속만 넓히려 한다는 것이다. 뱃속이 한 번 넓어지면 늘 그만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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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워야 하고, 얼마 후에 또다시 넓히려고 할 터인데 그 밥을 누가 감당하겠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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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었다. 장정인 아들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면서도 감히 말대꾸조차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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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아들한테까지 그 모양이니 누가 감히 그에게 자비를 청할 수 있었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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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영감은 자기 자신에게도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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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이 아파도 약값이 아까워 며칠 동안 끙끙 앓기만 하다가, 도저히 참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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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게 되면 인상을 찌푸리고 의원을 부른다. 인상은 아파서가 아니라 돈이 아까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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찌푸리는 것이다. 고절 끝에 의원이 와서 삼일치의 약을 지어 주겠다고 하면 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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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득바득 우겨서 하루치만 고집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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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날 영감은 몹시도 고통스러워 의원을 불렀다. 늘 그랬듯 며칠 동안 신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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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를 내며 앓다가 마지못해 부른 것이었다. 헌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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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감을 진맥한 의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은 수명이 한 달 가량밖에 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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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다고 말했다. 가족들이 모두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, 영감은 이불을 뒤집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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쓰고 더 큰 신음 소리를 냈다. 죽는 것이 두렵거나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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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대체 그동안 모아 온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, 하는 고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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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었다. 밥이나 더 먹으려는 자식이나 가족에게 주기도 싫었고, 그렇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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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한테 주는 것은 더더욱 못할 일이었다. 결국은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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쌀 한 톨 저승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어쩌랴.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머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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굴려도 방법은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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몸이 아픈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. 영감은 죽어서 가져갈 수 없는 자기 재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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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울화통이 터져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했다.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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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 남았다는 수명마저 재촉하며 고민을 했지만 결국 영감은 쌀 한 톨 가져가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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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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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의 어린 마음에는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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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두쇠가 쌀 한 톨 못 가져갔으니 얼마나 고소한가, 하는 식의 단순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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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감이었다. 그러나 그것은 지독한 구두쇠 영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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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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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손톱 밑에 쌀 한 톨 가져가지 못한다. 공수래 공수거, 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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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다. 살아있는 동안 제 손에 뭔가를 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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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려고 그렇게 버둥거리다가 끝에는 빈 손으로 가니 인생은 얼마나 허무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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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릇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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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은 딱 한 번밖에 없는 단생이다. 윤회를 한다지만, 작년에 수확한 콩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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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해 수확한 콩은 서로 직접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고, 올해 수확한 보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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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년에 수확할 보리와 뚜렷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다. 마찬가지로 사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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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생은 특정한 그 한사람의 생애로 일단 끝난다.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허무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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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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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살고 있는 이 집도 언젠가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고, 입고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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옷도, 읽고 있는 책도, 아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렇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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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데 어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.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 인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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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석이 된다. 돼지처럼 밥만 먹고 살기엔 너무도 아깝고, 공작의 펼쳐진 깃털처럼
|
아름다운 옷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도 아까운 보석이다. 갈고 닦아 빛을 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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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보석이다. 어떻게 빛을 낼 수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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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. 공수래 공수거하는 인생이지만, 오직 한 번뿐인
|
인생이지만, 그렇기에 더욱 더 살아 있는 동안은 살맛이 나야 한다.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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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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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살맛이 날 때 행복하다고 하고, 그렇지 않을 때 불행하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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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을 찾는 것이 곧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. 그러면 행복은 또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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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을까. 행복이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. 단, 행복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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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행이 우리 인생에서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필 수는 있다. 삶은 고통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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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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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이 고통인지는 굳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. 그 때 우리는 불행하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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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세상에 고통 없는 행복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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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의 탄생이라는 축복도 어머니의 산고가 없으면 맛볼 수 없는 것이요, 산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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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상에 올라 누리는 환희도 오르는 고통이 없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요, 아름다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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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품의 향기도 창작의 고통이 없으면 결코 맡을 수 업다. 기다림의 고통 없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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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의 기쁨이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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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세상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. 행복을 맛보기 위해 감내해야
|
하는 고통을 거부하고 비켜가려는 이들이다. 오랜 인내와 고통 없이 사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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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려는 젊은이들을 보자. 그들은 기다림을 공연히 질질 끄는 낭비라 여기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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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도 감당할 필요 없는 부산물로 치부하려 한다. 그래서 편하게 만나, 편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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놀다가, 편하게 헤어지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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쉽게 만나 쉽게 헤어질 때 남는 것은 허탈과 환멸뿐이다. 그들은 순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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쾌락을 즐기는 것으로 젊음을 탕진하는 것이다.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태어나
|
젊은 시절 나름대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맛보지 못하니 불행하다고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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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다. 그런데도 인내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불행의 덫에서 스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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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져나가지 않으려 한다. 고통을 거부하는 것은 행복을 거부하는 것과
|
마찬가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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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쪽을 보지 못하니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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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을 거부해서 행복한 쪽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, 또 다른 문제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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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이 행복의 전제 조건임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좌절하는 사람이
|
있다. 고통에 빠져 있는 현실을 이겨낼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, 먼저 포기를 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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버린다. 자신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하고, 그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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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끝내 이겨내 행복을 맛보는 사람을 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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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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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면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을 늘 보면서 살아야 행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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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지할 수 있다. 주위의 불행을 외면하면 그 행복은 곧 깨진다. 주위에 자신의
|
행복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그 행복은 지속 될 수 없다.
|
행복해 보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.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짝이 되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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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을 느꼈다. 헌데 세월이 흘러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. 남자는 여자와
|
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반면, 여자는 불행을 느끼기 시작했다. 남자가 꼭
|
싫어진 것만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여자는 남자와 함께 있으면 불행을
|
느꼈다. 그때 남자는 여자의 불행을 알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다 한다. 여자의
|
불행을 알지도 못하고, 알았다 해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남자의
|
행복은 깨질 수밖에 없다.
|
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. 가져서 행복한 사람은 가지지 못해 불행한 사람과
|
자신의 행복을 나눌 때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. 나누어 준다는 행위 그
|
자체가 행복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, 나누지 않아서 생길 수 있는 온갖 불상사를
|
미리 막을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행복을 유지하는 길인 것이다.
|
행복과 불행의 관계가 이러하니, 인생의 고통 속에는 이미 행복이 살아 숨쉬고
|
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. 단지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잡아내느냐가 문제일
|
뿐이다. 이만하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일차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
|
있는 것 아닌가.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그 소유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
|
달려 있으니, 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. 짐승이나 수목에는 주어지지 않은
|
살맛나는 인간의 생존 조건이다. 인간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
|
축복받은 것이다.
|
손톱 밑에 쌀 한 톨 가져갈 수 없는 인생이기에,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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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헛되고도 헛된 일에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갖게 되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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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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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면서 자신의 악한 부분을 알아채거나, 남이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
|
이렇게 물어 보자. 손톱 밑에 쌀 한 톨 못 가져가는 인생인데, 무엇 때문에 그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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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이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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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면서 자신의 선한 부분을 알아채거나, 남이 선한 짓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
|
다시 이렇게 말하자. 손톱 밑에 쌀 한 톨 못 가져가는 인생인데, 그걸 살맛나게
|
하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오.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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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어야 할 이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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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인생길에는 허무의 강이 쉼없이 흐른다. 허무의 강 하나를 가까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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건너 얼마간 걷다보면 그 강은 또 저 앞에서 나타나곤 한다. 그때마다 나는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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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,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, 도대체 왜 산단 말인가, 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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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숨을 짓곤 한다. 사노라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그런 상태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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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져드는 경우도 있고,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그 덫에 걸려들기도 한다.
|
사랑하는 이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, 그 고통에 몸부림치다 보면 세상은
|
어느덧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.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던
|
사랑이었기에 마음으로 의지할 것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느끼게 된다. 다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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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할 수 있다는 것조차 부정해 버린다. 그 순간 허무는 배신당한 사람의
|
가슴을 사로잡는다.
|
어떤 일에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도전하고 싶은 희망마저 잃어버렸을 때도 허무의
|
그림자는 그를 덮친다.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산다는 것의 그 어떤 의미도
|
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. 그러면 산다는 것이 구차해 보이고, 삶에 대한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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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의욕도 시들어 버린다. 그 순간 허무는 실패한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다.
|
특별한 사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허무의 바다에
|
빠지곤 한다. 남들이 볼 대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때때로 허무의
|
한숨을 쉬고, 인생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난 구도자도 허무의 그림자를 밟으며
|
걷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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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모두 제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, 다른 생각들을 하며 살지만 허무의
|
바다를 무임승차로 건너지는 못한다. 내게도 허무는 줄곧 찾아온다. 그 덫에
|
걸려 한때는 죽으려 한 적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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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네 살 무렵이었다. 왜 사느냐고 자신에게 묻곤 했다. 산다는 게 뭐냐는
|
자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. 삶 자체는 만물의 적이다.
|
살아야겠다고 닭이며 돼지며 잡아먹고, 과일이며 곡식이며 따 먹는다.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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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만물을 죽이는데,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인생인가. 어차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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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으면 무의 세계로 돌아갈 터인데, 그런 식으로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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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답하면서 인생무상의 시를 짓곤 했다.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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복사꽃 오얏꽃은 명년에 다시 필 수 있건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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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말인생 다시 기약할 수 없구나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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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을 만물의 적이라 규정한 후 삼 년의 세월을 방황 속에서 보냈다. 살아야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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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유를 찾겠다고 보낸 시간이었다. 허나 그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. 그래서
|
나는 죽으려고 결심을 했다. 마침내 어느 날 죽으려고 극약을 샀다. 허무의
|
극단에 선 셈이었다. 극약을 품고 삼일을 고민했다.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
|
고통스런 시간이었다. 그때 내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.
|
"죽어야 할 이유는 뭔가?"
|
살아야 할 이유를 찾던 내게 그 역의 의문이 떠오른 것이다. 그에 대답해 보려
|
했지만 죽어야 할 이유 역시 찾을 수 없었다. 고민 끝에 극약을 버릴 수밖에
|
없었다. 그런 후에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. 죽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언제든
|
죽겠다. 그 이유가 생겼는데도 구차하게 살지는 않겠다. 그러나 그때까지는
|
열심히 살자.
|
십대 시절의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지금도 내게 유효하다. 누가 왜
|
사느냐고 물으면 나는 사랑이니 봉사니 하는 삶의 여러 목적을 말하기 전에, 먼저
|
죽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산다고 말한다. 소극적인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.
|
얼핏 들으면 죽어야 할 이유가 생길 때까지만 그럭저럭 살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
|
있겠다. 그러나 죽어야 할 이유가 없으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
|
것이다.
|
생명이 다해 땅으로 떨어져 바람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이 아니라 살아있는
|
잎이라면, 죽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떠올라 물결치는 대로 떠다니는 죽은 고기가
|
아니라 물 속에 살아 있는 고기라면 살아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. 비록 금세
|
낙엽이 되고 죽은 고기다 될 지라도 그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. 푸른 잎이
|
낙엽이 되고, 물고기가 허연 배를 드러내고 죽는 것은 순간이다. 우리 인간도
|
마찬가지다. 태어난 것은 늘 변화하다가 끝내 사라지지 상주하는 것은 없다는
|
무상, 그것이 인생이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. 그 무상한 인생도 금세 지나간다.
|
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.
|
부처는 그 무상한 짧은 생애의 중요성을 가르쳤다. 어느 날 부처가 제자들을
|
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.
|
활 잘 쏘는 네 명의 명궁이 있었다. 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한 사내가
|
나타나 큰소리를 쳤다. 명궁 넷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동시에 활을 쏘면 자기가
|
그 네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전부 잡겠다고. 그럴 수야 없는 일이라는
|
전제를 한 부처는 만약 사내가 정말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는 굉장히 빠른
|
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. 제자들은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다.
|
한 제자는 화살 제 개가 아니라 하나만 잡아도 빠른 속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
|
있다는 말만을 덧붙였다. 그러자 부처가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을 이어갔다.
|
|
사방으로 동시에 날아가는 화살을 잡는 사내보다 훨씬 빠른 것이 있다. 해와
|
달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. 그러나 해와 달이 하늘을 달리는
|
속도보다도 더 빠른 것이 있다. 죽음 향해 사람의 수명이 흘러가는 속도가 더
|
빠르다. 그러나 그대들은 스스로 이렇게 마음에 새겨야 한다. 사람의 목숨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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흘러가는 것은 해와 달이 하늘을 달리는 속도보다 빠르다. 그러니 허송세월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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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. 이 말을 늘 마음에 간직해 두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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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처의 가르침은 인생은 무상한 것이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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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상을 느끼지 못하기에 함부로 시간을 보내고 멋대로 군다는 말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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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울처럼 늘 꺼내 들고 되새겨야 할 가르침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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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 깊은 허무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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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, 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도 해 보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부류도 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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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류는 인생의 무상함도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. 그걸 아는 사람이 세월을 함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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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낼 리는 없는 노릇이다. 인생은 무상이니 아무렇게나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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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면 그는 무상의 참뜻을 아는 것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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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무 혹은 무상, 그것은 사람이 일생을 통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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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난한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건, 고통에 짓눌려 있는 사람이건 환희에 넘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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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사람이건, 그 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리라. 그 짐을 부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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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대로 인생을 사는 자극제로 삼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. 비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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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지혜를 알지는 못하지만 묵묵히 짐을 지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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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사람은 때대로 그 짐이 지고 살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느끼곤 한다. 그런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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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운데는 진리를 부정하고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허무주의의 늪에 빠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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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도 있고, 자살의 유혹에 빠져드는 이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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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인으로부터 고통스런 삶에 지친 어느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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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통사고로 자식이라곤 하나뿐인 귀여운 외동아들을 잃은 여인이었다. 자식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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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으면 어머니는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. 그녀는 모든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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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었다는 상실감에 삶의 의욕마저 잃어 버렸다. 그래도 어쩌랴. 살아갈 수밖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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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헌데 남편이란 사람이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. 거의 매일 술을 먹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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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어와 주정을 부렸다. 그녀는 처음에 자식을 잃은 슬픔 때문이니 이해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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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고 생각했다.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폭행하기 시작했다. 폭행을 하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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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가 자식을 죽인 것이라고 몰아댔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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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사람의 아들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는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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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편은 그녀에게 책임을 돌렸다. 집에 있으면서 애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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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느냐는 식의 일반적인 얘기였지만,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그녀로서는 참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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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괴로움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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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가 아픔을 함께 나누어도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. 헌데 하루가 멀다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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폭행을 당하고, 자식 죽인 어미로 비난을 받으니 그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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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했다. 그녀는 위자료조차 거의 받지 못했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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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송 같은 것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. 자식을 잃고, 다시 한때 사랑했던 남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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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고 빈털터리가 된 여인은 더 이상 살고 싶은 요구가 없어졌다. 며칠 동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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친정집 방에서 꼼짝도 않고 있다가 집을 나섰다. 목적지는 없었다. 무작정 가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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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니 해변가 마을이 나왔다. 그녀의 지갑에는 신경안정제가 수십 알 들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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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밤이 되어 그녀는 한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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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에 들어가 누워 있노라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. 그런데 여관 주인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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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머니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.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보더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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짐작했던 그대로라는 듯 할머니는 혀를 찼다. 할머니는 삶을 포기한 듯한 여인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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표정을 보고 그녀가 자기 여관을 자살할 장소로 선택했을 것이라 짐작했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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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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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가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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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네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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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물을 닦으며 여인은 무슨 뜻인지 모라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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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가라구. 여기는 산사람이 자는 방이지, 시체들이 누워 있을 곳이 아니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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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야. 어서 나가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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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...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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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없이 여인은 목놓아 울었다. 그러자 할머니는 여전히 퉁명스런 말투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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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에게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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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왜 죽으려는지 말해 봐. 죽을 만하면 내가 어디가 좋은지 가르쳐 줄 테니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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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머니는 자살할 장소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하고는 여인을 뚫어져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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쳐다봤다. 여인은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얼굴을 멍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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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라보았다. 매정한 말투와는 다리 할머니의 눈은 선하게 빛나고 있었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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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에 할머니와 여인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정확히 듣지 못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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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쨌거나 여인은 할머니의 그 말을 들은 후 죽겠다는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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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의 지인은 그 여인을 어느 암자에서 만났다고 했다. 자기의 살아온 이야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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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서 웃음을 살짝 짓기까지 했다니, 그 여인은 지금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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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여인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 그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며 왠지 모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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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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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식으로 말하면 그녀는 죽어야 할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. 그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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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한 고통이 별 게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. 그 아픔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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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러나 아무리 쓰라린 것이라 해도 아픔이 곧 죽어야 할 이유가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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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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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을 고해라 한다. 인생은 또 늘 허무와 무상을 만난다. 그러나 그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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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.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이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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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할진대, 그것을 이유로 삼는 것은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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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죽어야 할 이유를 따져 봐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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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나서 죽어야 할 이유가 없으면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적극적으로 찾아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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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단순한 갈대는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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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셋 / 청학은 어디로 날아갔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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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, 푸른 학이 사는 마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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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른 학이 세상에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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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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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푸른 학은 살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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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정신 속에서 훨훨 날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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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른 학이 사는 마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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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우리의 이상향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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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아먹은 갓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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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지에 나가면 갓을 쓴 나를 보고 사람들은 웃곤 한다.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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쑥덕거리며,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는다. 아이도 웃고 어른도 웃고, 처녀도 웃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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총각도 웃는다. 큰소리를 내면서 웃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웃는다. 갓을 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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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복을 입었다는 것 때문에 나는 구경거리가 된다. 요즘에도 여전히 웃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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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에는 단순히 웃는다는 정도가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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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아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거려야 했다. 도대체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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잡아가냐고 물으면 정신병자 혹은 간첩일지도 모른다는 신고가 들어왔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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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란다. 도대체 믿을 수 있는 일인가. 서양에서 들어온 옷을 입지 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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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전통 의복을 차려 입었다고 정신병자로 보이고 간첩으로 보이다니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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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. 허나 세월이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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걸 어쩌랴.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웃을 때 혼자 조용히 이렇게 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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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인소아 아소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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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고 나는 세상을 보고 웃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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넥타이를 목에 졸라 매거나 속살을 훤히 드러낸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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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상이요, 갓 쓰고 한복 입은 것이 비정상이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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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양만 따진다면야 크게 문제랄 것도 없다. 정신까지 그 모양이 되어 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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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을 쓰고 한학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발 붙일 곳이 없었다. 단순히 웃기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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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 공간도 주지 않았다. 노골적으로 말하면 한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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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지고는 일할 곳도 돈을 벌 곳도 달라진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. 학문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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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을 벌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, 그래도 호구지책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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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꾸어 말하면 그러한 현실은 우리의 전통 학문이었던 한학이 더 이상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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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리를 차지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. 한학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서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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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문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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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학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가난을 감수해야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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객지에 공부하러 다니면서도 늘 가난에 시달렸다. 소리를 내 글을 읽다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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금세 배가 고파져 말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. 꽁보리밥 감자밥으로 속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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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우고 보리개떡 등으로 끼니를 이으며 겨우 소리를 낼 수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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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부만 할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었다. 서당에서 공부 시간 이외에는 일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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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야 했다. 이십 리 길을 걸어 땔감 나무를 해 오고, 냄새 나는 통시(화장실)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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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우면서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. 꽁보리밥 도시락을 싸들고 나무를 하러 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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댕기머리 총각을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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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희망은 희망으로만 남아 있을 수 없었다. 갓 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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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복 입은 사람이 구경거리처럼 여겨지는 세상이었다. 그와 함께 한학이 발붙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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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. 나이가 들면서 한문 서당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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됐지만, 그 일로 호구지책을 삼을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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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채를 받아 호구지책으로 삼아야 하는데, 그 학채라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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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채를 대신하는 폐백을 받곤 했다. 폐백이라는 것은 본래 선생을 처음 뵐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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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리는 예물을 말한다. 헌데 그것이 학채 구실을 하게 됐으니 조기 몇 마리, 쌀 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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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 등의 폐백으로 살아야 했다. 그러니 내 입 하나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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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색이 학문을 하겠다고 나선 입장이니 참아야 했다. 그러나 집안 일을 생각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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늘 마음이 무거웠다. 장남으로서 가난한 집안 형편을 외면만 하고 살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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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스물 세 살 무렵이었다. 고민 끝에 엉뚱하게도 장사를 하겠다고 마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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먹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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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생 장사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놓으면 동생이 맡아서
|
하고 나는 본래의 길로 들어서면 된다고 생각했다. 집안의 재산인 논 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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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지기를 팔아서 식품 가게를 차렸다. 그러나 글만 읽던 사람이 장사를 제대로
|
할 리가 없었다. 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망해 버렸다. 스스로도 부끄러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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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면목이 없어졌다. 이왕 내친 걸음이라 빚을
|
얻어서라도 다시 장사를 해 보려 했다. 그러나 주위에서 만류를 하고 나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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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시 광양의 백운산으로 가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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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품 가게가 망했을 때도 망하고 남은 돈을 가지고 한라산으로 갔었다. 고무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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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고 한복 입은 채 올라가려 하니 사람들이 말렸지만 나는 끝내 백록담까지
|
올라갔었다. 토굴 안에서 참선을 하며 내 자신을 돌아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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싫은 것이 내 자신이었다. 지금도 누가 내게 세상에서 싫은 것이 무엇이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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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으면 나는 바로 내 자신이라고 답한다. 토굴 안에서 세 시간 가량 목놓아
|
울었다. 부모에 대한 죄책감, 수치스럽고 어리석은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몰려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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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마냥 울 수밖에 없었다.
|
산에서 내려온 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. 비록 세상이 당장 알아주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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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 학문이지만, 그 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. 차림새 때문에 수상한 사람으로
|
몰리기도 하고, 발붙일 곳을 찾을 수도 없었지만 나 자신을 버릴 수는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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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했는데, 사정이 나아질 이유가 없었다. 어려운 시절을 함께
|
한 아내를 조강지처라 하니, 나의 아내가 바로 조강지처였다. 객지를 떠돌며 한문
|
강의하는 것으로 집안을 꾸려가기는 참으로 난망한 노릇이었다. 아침마다 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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뜨면 끼니 걱정을 해야 했으니, 가장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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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. 때가 되면 배가 고파 오건만 갖고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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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곤 빈 그릇밖에 없었다. 앞을 보고 뒤를 돌아봐도 돈을 구할 방도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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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이지 않았다. 바로 그때 골동품을 수집하는 장사꾼이 찾아왔다. 장사꾼의
|
눈인지라 방 하나 차지하고 있는 집안 꼴을 보고 금세 소득이 없을 거라는 걸
|
눈치챘을 것이다. 헌데 내가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이 그나마 그의 관심을 끄는
|
이유가 되었다. 예상치 못한 곳에서 횡재를 많이 했을 터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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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나에게는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. 그것은
|
그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유감스런 일이었다. 무엇 이건 팔 수 있는 것이
|
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. 그런데 내 눈에 갓이 들어왔다. 쓰고 나가면
|
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갓, 서양 문물에 짓눌려 행세를 못하는 갓, 그렇지만 내게
|
세상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자부심을 주는 갓, 그 갓이 가난에 기를 펴지 못하는
|
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.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돈이 될 만한 유일한
|
것이기도 했다.
|
항설이고 망설이다가 나는 결국 장사꾼에게 갓을 내밀었다. 횡재를 하는
|
물건은 못 되지만 그래도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보고 만지고 하며
|
값어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. 내 머리에서 늘 점잖게 앉아 있었던 것이 장사꾼의
|
손에 놀아나고 있으니 그 짧은 순간에도 만감이 교차했다.
|
굶어 죽더라도 당장 장사꾼의 손에서 도로 찾아올까. 어쩌다 갓이 저런 신세가
|
되었을까. 갓을 바라보니 한탄이 절로 나왔다. 갓아, 너 주인 잘못 만나 수모를
|
당하고 있구나. 네가 어디로 팔려 가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그 사람의 머리에
|
앉을 리는 없을 것이다. 그저 골동품으로 구경거리로 사람들의 눈요기에 불과한
|
것이 될 것이다. 이를 어쩌면 좋으냐. 그러나 한탄도 마음놓고 할 처지가
|
아니었다. 장사꾼은 흥정을 재촉하고 나섰다. 갓을 내민 사람은 나였으니, 그의
|
재촉은 부당한 것이 아니었다. 내 머리에 쓰고 다니던, 내 삶의 상징이기도 하던
|
갓을 또 흥정을 해야 하니 그 얼마나 괴로운 노릇인가
|
결국 나는 갓을 팔았다. 갓을 판 돈으로 당장 먹을 것들을 샀다. 허기진 배는
|
오랜만에 느긋해졌다. 그러나 그 배에 손을 얹고 누워 허공을 보니 한숨이 또
|
절로 나왔다.
|
배를 진정시키니 이번에는 머릿속의 허기로 시달리게 된 것이다. 세상 탓으로
|
돌리면 무엇하리. 싫은 것은 바로 내 자신이었다. 갓을 팔아 베의 허기를 달랜
|
것은 잠시였고, 머리의 허기는 계속 지속되었다. 그래도 내 길을 갈 수밖에
|
없었다. 공부를 하면서 한문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고 달려갔다.
|
그런데 어느 날 청학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. 청학동 서당의 훈장으로 오면
|
어떻겠느냐는 제의였다.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. 청학동은 단순한
|
하나의 마을이 아니었다. 우리의 전통 속에 살아 있는 정신 문화를 찾으려는
|
곳이었으니, 내가 추구하는 정신과 상통하므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.
|
아내와 어린아이 그리고 괴나리 봇짐 하나와 그릇 몇 개가 나와 함께
|
청학동으로 들어갔다. 남의 집 골방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. 가난이야
|
이웃처럼 가까운 사이였으니, 거기에 의기소침할 건 없었다. 그 골방에서 사 년을
|
살면서도 제자들이 무럭무럭 커 가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희망을 찾았다.
|
한학이 결코 사라져야 할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을 보면서도 느낄 수
|
있었다.
|
마침 빈 집이 하나 생겼고,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.
|
객지를 고향으로 삼고 공부를 한다, 가르친다 하며 떠돌기만 했던 서생이 편안히
|
쉴 수 있는 집도 생겼고, 공부하고 가르치는 보람도 되찾았으니 나에게는 호강이
|
아니겠는가.
|
그러나 겨우 내가 머물 곳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니 이미 부모님은
|
이승에 계시지 않았다. 공부를 한다고 떠돌아다닌 자식은 부모님을 몇 개월도
|
따뜻하게 모시지 못했다. 늘 효를 말하면서도 내 자신이 불효자였다. 싫은 것은
|
바로 내 자신이었다.
|
갓으로 상징되는 내 삶을 살기 위해 팔아먹은 그 갓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.
|
골동품으로 모셔져 있을까. 지금도 나는 갓을 쓰고 있다. 골동품을 쓰고 있는
|
것이 아니다. 그것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. 지금에 와서
|
사람들이 갓을 쓰고 살 수는 없겠지만, 그 것으로 상징되는 정신마저 팔아먹지는
|
말아야겠다.
|
|
청학은 어디로 날아갔나
|
|
청학동, 푸른 학이 사는 마을이다. 푸른 학이 세상에 있을까. 눈을 씻고 봐도
|
찾을 수 없을 것이다. 그러나 푸른 학은 살아있다. 우리의 정신 속에서 훨훨
|
날고 있다. 푸른 학이 사는 마을, 그것은 우리의 이상향이다.
|
무릉도원이 중국인들의 이상향이고, 천당과 극락이 기독교인들과 불교도들의
|
이상향이듯 우리에게 푸른 학이 사는 마을은 이상향이다. 우리의 조상들이
|
그렇게 이름을 지어 놓았다. 고려시대 이인로의 "파한집"에도 이상향의 땅으로
|
청학동이 기록되어 있다.
|
청학동은 어떤 마을인가를 사람들은 묻곤 한다.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를
|
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있다. 그 물음 뒤에는 단순한 호기심도 있고, 오해
|
때문에 생긴 비뚤어진 시각도 있고, 진정 실체를 알고 싶은 순수한 의문도 있다.
|
그러나 처음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잘못된 정보와 기대를 가지고
|
있다.
|
이곳을 민속촌과 같은 관광지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, 이슬만 먹고
|
사는 신선들의 땅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고, 또 상투와 댕기머리와 한복으로
|
상징되는 것을 오해해서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식 유교 마을을 상상하는 이들이
|
있는가 하면,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폐쇄적인 종교 집단으로 여기는 이들도
|
있다. 그러나 모두 청학동의 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소문들에 불과하다.
|
청학동은 생활 종교를 실천하는 삶의 현장이다. 우리에게는 유불선 합일 갱정
|
유도교라는 종교가 있다. 선불을 바탕으로 하여 유교를 실천하는 사상을 신앙의
|
핵심으로 한다.
|
덧붙여 말하면 선불은 내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념과 사상 철학이요, 유교는
|
외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실천 철학이다. 선불의 이념과 사상 철학을 실생활에
|
접목하는데 그 수단과 방법을 유교로 삼는 것이다. 우리는 종교적인 이상을
|
실생활과 결합시키려 한다. 실생활 속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다. 생활 속에서
|
드러나지 않는 이상은 이상 그 자체일 뿐 별 중요성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.
|
그렇지 않겠는가.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진리가 무슨 소용이며 그것을
|
진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. 실생활과 신앙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, 그것이
|
우리의 주제요 과제다.
|
따라서 청학동은 수도하는 도량이자 삶의 터전이 된다. 좀더 구체적으로
|
말하면 이곳은 신도의 헌금이나 시주로 운영되면서 오직 수도만 하면 되는
|
곳이지만, 우리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하며 생활을 해야 한다.
|
반복할 필요도 없겠지만 단순한 생활 공간만인 것도 역시 아니다. 삶의
|
공간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현대 문명을 거부하지 않는다. 상투를 틀고 한복을
|
입은 것은 그것이 이어가고 싶은 우리의 전통이기도 하거니와, 그것을 평화의
|
상징으로 삼기 때문이다.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한복을 입고도 컴퓨터를
|
사용할 것이다.
|
최근에 작은 중고 승용차를 하나 구입했는데, 차가 필요하면 당연히 차도
|
이용할 것이다. 지난날 먼 길을 가는 데는 말이나 가마가 필요했다. 그러나
|
요즘 세상에 그걸 이용할 수는 없다. 그러면 그 대용이 될 것을 찾아야 하지
|
않는가.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가전제품들도 생활에 필요하기에 우리는
|
거부하지 않는다.
|
하지만 우리가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있으니, 바로 민족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
|
우리의 전통 속에 살아 있는 문화와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적인 모델을 개발하고자
|
하는 뜻이다. 현대 산업사회가 가져온 문물을 받아들인다 해도 전통적 가치를
|
살리면서 받아들인다.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
|
다름이 없는 것이다. 올바른 정신을 세우지 않고 물질의 편리함만 쫓으면 그
|
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.
|
그런데 민속촌 같은 관광지를 예상하고 온 사람들은 현대 문명의 이기들을
|
이용하는 우리를 보고 실망했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. 참으로
|
딱한 노릇이다. 단순히 구경거리로 만들어진 관광지와 수도의 도량이자 생활의
|
터전인 이곳을 어찌 비교한단 말인가. 문명은 거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
|
그것을 잘 이용해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
|
아닐까. 우리는 결코 폐쇄적인 땅으로 청학동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.
|
우리의 신앙 역시 폐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. 청학동을 이상향으로 삼는
|
것은 이 마을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만 잘살겠다는 것이 아니다. 우리는 넓게
|
봐서 우리나라 전체가, 더 나아가 세계 전체가 이상향인 청학동이 되기를
|
기원한다. 청학동 사람들은 365일 이른 아침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인류평화와
|
국태민안을 기원 치성 드린다. 청학동은 윤리와 도덕을 다시 밝혀 세계 평화를
|
인류 정신 속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학술 단체요, 밖으로는 평화
|
안으로는 우리의 독립을 표방하는 공동체인 것이다.
|
조상들이 말한 이상향의 청학동이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이냐고 물어오는
|
사람들이 더러 있다.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. 예로부터 전해오는 많은
|
이야기가 있고, 이곳의 아름다운 산수와 살기에 좋은 기후를 비롯한 자연 조건이
|
그에 걸맞다. 풍수지리로 따져도 참으로 좋은 명당이다.
|
그래서 먼 옛날부터 이곳을 이상향으로 믿고 사람들이 살아왔다. 그러나 현재
|
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육이오전쟁 이후에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이다. 전쟁 때
|
지리산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원래 이 마을에 살던 사람도 다 쫓겨날 수밖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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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던 것이다. 민족의 땅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는데, 이상향의 마을이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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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전할 수 있었겠는가. 그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후에 다시 청학동을 재건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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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러나 우리는 지리적인 위치만 가지고 이상향을 말하고 싶은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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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이상향의 꿈을 이곳에서 키우고, 끝내는 온 세상을 청학동화하는 염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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품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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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류 평화에 일조한다는 신념으로 우리는 여기에 살고 있다. 그러기 위해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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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저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 그 바탕 위에서 정신을 세워야 한다. 전통과 정신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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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찌 세계평화를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. 그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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걷지도 못하면서 뛰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. 청학동은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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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려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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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근에 한 신문에서 청학동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. 청학동에 와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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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망했다는 투의 내용이었다. 언론의 자유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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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상을 보지 못하고 한 번 슬쩍 훑어보고는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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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부로 펜을 놀리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겠나.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아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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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 대한 잘못된 여러 소문 가운데 하나를 믿고 찾아왔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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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서는 문제의 소지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.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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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우리의 신앙과 삶의 철학을 지키며 살았다. 세상에 알려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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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에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. 그러나 우리는 왜곡된 소문과 외부의 좋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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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은 영향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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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부에 청학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우습게도 어느 발효음료 회사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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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 문화를 소개할 겸 청학동을 텔레비전 광고에 소개하겠다고 찾아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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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이 장사임을 모를 리 없는 우리는 선뜻 응낙할 수 없었다. 일주일 가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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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랑이를 하다가 마을 어른들의 승낙으로 결국 광고의 배경이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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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청학동을 자기들 상품의 광고에 등장시키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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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저하지 않았다. 광고를 한 후에 돈을 벌면 서당을 지어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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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. 어쨌거나 그 광고에 장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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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을로 청학동은 소개되었다. 자기 들 상품을 마시면 장수할 거라는 복선이 깔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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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광고였다. 신비로운 장수 마을이라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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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텔레비전의 위력은 놀라운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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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학동까지 도로가 뚫렸다. 도로는 단순한 길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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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었다. 도로를 타고 외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. 도로가 없을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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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걸어서 걸어서 산을 내려와 백리 길인 하동까지 가곤 했었다. 하루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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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일을 보고 돌아오기 힘든 길이었다. 당연히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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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도로를 타고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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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려지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. 그러면서 우리의 환경은 점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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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라지기 시작했다. 모든 문명은 길을 통해 전해진다. 길이 없으면 문명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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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달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. 그러나 길은 또한 자연을 파괴하고 순수한 모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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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염시키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. 우리는 길을 통해 그 두 가지를 다 경험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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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길을 통해 들어온 물질을 통해 편리함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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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질로 인해 편리해진 만큼 우리는 또 다른 불편과 갈등에 시달리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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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 알려진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생긴 불편과 갈등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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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청의 입김도 우리에게 끼쳤다. 박정희 정권 때 우리 마을은 지붕을 개량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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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다. 초가를 슬레이트나 기와로 바꾸라는 것이었다. 정부에서 새마을 운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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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세워 반강제적으로 나오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붕을 바꾸었다. 헌데, 시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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좀 지나니까 이번에는 준민속마을이니 다시 초가로 바꾸라고 하면서,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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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알아챈 군청에서 군 예산으로 개량된 집들을 다시 초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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탈바꿈시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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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로가 생기고 그로 인해 활발해진 외부와의 접촉, 그것은 어쩌면 불가피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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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일 것이다. 우리 또한 폐쇄적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아니니 외부와의 접촉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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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. 청학동 출신 젊은이들도 청학동에서 배운 것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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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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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그러나 많은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고하고 너무도 많은 폐해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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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요즘 고민하면서 어떤 결단을 내야 하는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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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냐는 생각들을 나누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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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을 사람들 가운데 외부에 많이 알려지기 전의 청학동을 그리워 하는 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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점점 늘고 있다. 도로를 통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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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다. 이게 아닌데, 이게 아닌데, 하며 우리는 달라진 모습을 보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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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이 있다면 날아갔을 것이란 한탄을 하기도 한다. 청학이 날아갔다면, 과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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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청학을 날려 보냈는가?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. 그러나 우리는 도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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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징되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.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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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반성하고, 우리가 다시 우리의 이상향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을 먼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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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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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부 사람들도 우리의 갈등을 이해한다면, 단순한 관광지로 보는 등의 잘못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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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문만 가지고 우리를 보지는 않으리라 기대해 본다. 청학동은 수도의 도량이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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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의 터전임을, 신앙과 실생활을 결합시키려는 땅임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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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다면 우리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적극 환영한다. 우리가 환영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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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이상향의 꿈을 나누는, 넓게 보면 온 세상을 이상향의 땅으로 만드는 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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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누는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. 그렇게 꿈을 나눌 수 있다면,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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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과 정신을 바로 세워 그 꿈을 나눌 수 있다면, 이념과 정신이 있는 땅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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멸망하지 않듯이 청학동 또한 현실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, 푸른 학 또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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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드시 볼 수 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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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쭐난 NHK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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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민족의 전통 문화를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심심찮게 청학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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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오곤 한다. 자기 전통을 지키고 사는 아프리카 어느 종족의 마을을 방문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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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과 다를 것 없는 태도로 오겠지만, 그들은 대부분 진지하고 도 아주 탐구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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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한 호기심만 가지고 오는 구경꾼도 있지만, 이 땅의 전통을 그 뿌리에서 느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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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려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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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이야 외국인을 보는 게 별다른 일도 아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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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이 세상에 막 알려질 무렵 찾아온 외국인들, 특히 생김새가 너무도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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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양인들은 우리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. 세상에 별별 인종이 다 산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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걸 새삼 실감케 해주곤 했던 것이다. 그들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갖고 우리는 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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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에게 호기심을 가진 채 서로를 탐색하는 시선들이 순박하기조차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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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인생의 조미료와 같은 것이다. 새로운 것을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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듣고 느끼면서 사는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. 새로운 만남 들에도 그런 맛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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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히 외국인들과의 만남은 또 다른 맛이 있다. 당장 말도 다르고 생김새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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틀리니 마주하고 있노라면 별세계를 보는 듯하다. 그래도 서로의 눈을 보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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웃음을 나누고, 느낌을 나누다보면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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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사람으로 확인하는 게 무슨 대단한 경험이냐 하겠지만, 그건 자기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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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을 새삼스레 느끼는 것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. 더불어 사는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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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고 나면 친밀감이 새록새록 솟아난다. 그렇게 만난 외국인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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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운데 요즘도 가끔씩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. 영국인 아가씨 스잔 버빌도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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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운데 한 사람이다. 한국에 와서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다가 지금은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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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국으로 돌아간 처녀다. 아니, 지금쯤은 아마 결혼을 했을 것이다. 그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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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 와서 보름 정도 지냈었는데, 참으로 솔직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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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한국말은 서툰 구석이 있었지만,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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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누곤 했다. 누가 보면 연애한다고 오해할 정도로 정겨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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끊임없이 탐구하는 그녀의 태도가 그렇게 지낼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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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 아닌가. 그녀에게는 우리의 모습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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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지의 세계요, 탐구의 대상이었다. 동양 정신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봤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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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면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짓고, 선현들의 지혜가 담긴 말을 들으면 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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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이고 고개를 끄덕였다. 정신만이 아니라 옷이며 음식이며 사람들의 행동거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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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그녀의 의문 부호에 걸리고, 그것이 끝내는 긍정과 감탄의 부호로 이어지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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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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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그런 모습에 나는 솔직히 반했다.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. 미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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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의 모습은 순수하고 아름답다. 그런 순수함을 나눌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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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로가 인간임을 확인하고 그러면서 정이 쌓인다. 사 년 가까이 이 땅에 살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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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그런 정을 나누었을 것이다. 살면서 그녀도 나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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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끔씩 떠올릴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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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월의 마술 덕에 추억은 대개 아름답게 색칠되어 있다. 일본의 NHK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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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송국에서 온 사람들과의 사연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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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에 그 사연은 자못 심각한 것이기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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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이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. 어떻게 알았는지 NHK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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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을 취재하겠다고 찾아왔다. 여자 프로듀서를 비롯해 일곱 명의 일행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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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장비를 들고 왔다. 타국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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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온 사람들이었으니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도리였다.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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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가 일본이라는 데 있었다. 한때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고, 인간으로서 차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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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지를 수 없는 온갖 잔학한 짓으로 동포들에게 고통을 안긴 민족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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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릴 때 나는 그런 일본놈을 하나 죽이겠다는 비장한 다짐까지 한 적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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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부분도 역시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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품고 있었다. 백의민족의 가슴에 칼을 꽂은 민족이었으니,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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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겠는가. 그들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. 물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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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적인 분노가 솟은 것이지, 그 일본 방송인들에게 직접적인 어떤 위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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끼치자는 것은 아니었다. 우리의 분위기를 느낀 그들은 조심스럽게 촬영 준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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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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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우리의 뜻을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. 호락호락 그들의 카메라 앞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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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굴을 내밀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.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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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하나의 방법을 찾아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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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먼저 돌아가신 우리 조상님들께 위령제를 올리고,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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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죄하라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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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촬영의 조건으로 위령제와 사죄를 요구했다. 그러자 여자 프로듀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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몹시 긴장이 되어 우리 눈치만 살폈다. 우리의 요구는 그들에게 단순한 촬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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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건만으로 들리지 않았다. 왜냐하면 만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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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서 나가지 못하리라는 엄중한 경고를 덧붙였기 때문이었다. 목숨 운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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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소리에 그들은 아연 긴장했다. 낯선 산속 오지에서 하얀 옷을 입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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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그런 경고를 하니 그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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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고는 엄중한 것이었지만, 우리는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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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에 일본인들이 어떤 만행을 저지르고, 어떻게 동포들을 학살했는지를 말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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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었다. 취재를 온 당신들이야 직접적인 죄인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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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로 알고 사죄하라고, 우리나라 사람들의 뜻을 제대로 알라고, 우리는 점점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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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력하게 요구했다. 분위기는 험악해졌다. 취재차 왔다가 예상치 못했던 요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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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고 일본인들은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며 대책을 강구하는 듯 보였다.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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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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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일본인들을 안내하기 위해 온 정부 관계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만류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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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섰다. 국가 위신 문제 운운하면서 그는 우리의 위협과 요구를 거둬들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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취재에 협조해 다라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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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국가 위신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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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그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. 무엇이 국가 위신인가? 민족에게 크나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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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를 저지른 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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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면 사죄조차 요구하지 못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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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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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단호해지는 우리를 보고 일본인들은 마침내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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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구를 받아들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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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튿날 그들은 시장에 가서 제물을 마련해 왔다. 제단이 만들어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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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인들은 그 앞에 참회하는 표정으로 섰다. 그들이 진정 참회한 것인지, 아니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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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요구 때문에 그런 시늉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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표정들만을 진지하게 보였다. 억울하고 비통하게 목숨을 잃은 조상님들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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울리는 일본인들의 위령제는 엄수하고 경건하게 올려졌다. 그것만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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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상님들의 혼이 편히 쉴 수야 없겠지만, 후손으로서 할 도리를 하니 마음이 조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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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벼워졌다. 그 일본인들은 지난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해서도 사죄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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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령제도 올리고 사죄도 받았으니, 우리도 그들의 취재를 위해 적극적인 협조를
|
아끼지 않았다. 첫 대면에서의 갈등과 위기감은 사라지고 그들과 우리는 우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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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다. 지금도 텔레비전 뉴스에서 NHK를 보게 되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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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. 다시 생각해 봐도 당시 우리의 행동은 잘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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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었다. 그 일본인들도 많은 생각을 하며 돌아갔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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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인가. 일본의 지도급 인사라는 자들은 아직까지도
|
쉴새없이 망언을 해댄다. 지난날의 죄악을 참회하고 사죄하기는 교묘한 언술로
|
지난날의 잘못을 비켜가고, 심지어는 지은 죄 자체를 부인하거나 한 걸음 더
|
나아가 침략을 미화하기까지 한다. 우리 동포들은 죽음과 고통의 늪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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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뜨려 놓은 게 엄연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한일합방을 정당화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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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민지배를 이 땅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미화하고, 침략을 서구 열강으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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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을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호였다고 포장하고, 온갖 잔학한 학살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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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행을 부정해 버린다. 도대체 죄의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
|
작자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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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들이기에 이런 수작들인가. 같은 시기에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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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를 저지른 독일을 보면 일본이 보이는 태도와는 천양지차다. 독일은 자신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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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에 대해 진정으로 참회하고 혹독하다 할만큼 철저하게 반성한다. 아직까지도
|
그들은 전범들을 잡아들여 죄를 묻고,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를 당한 민족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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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죄한다. 그런 태도가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전제 조건임을 그들은 알고 있는
|
것이다. 과거를 망각하는 것은 현실을 망각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라고 그들은
|
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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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은 죄를 반성하지 않는 족속들과 어떻게 평화와 우애를 나눌 수 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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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일본은 후안무치한 민족인가. 반성할 줄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
|
족속인가.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은 망언을 내뱉은 후에 피해를 당한 주변
|
국가에서 들고 일어서면 망언을 취소하거나 반성하는 체하고, 잠잠해지면 다시
|
망언을 내뱉는 식으로 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.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오만함
|
때문에 그들 눈에는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다. 아니면 국민성 자체가 그렇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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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겨먹었다고 해야 할까.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. 일본인 가운데도
|
적지 않은 이들이 과거의 죄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하는 태도를 보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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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왜 반성하지 않는지 그 분명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국민성을 말할 수밖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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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것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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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일들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혹시 우리의 잘못도 있는 게 아닐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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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, 민족적 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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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중한 문책은 제쳐둔 채 그들의 돈과 기술을 부러워만 하고, 과거보다는 미래가
|
중요하다는 그럴 듯한 말로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없는 과거 망각증에 빠져서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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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를 만만하게 보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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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 우리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. 반성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성이 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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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한지를 가르쳐 주고 자극을 가해야 한다. 담을 쌓고 서로 다시 보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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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자는 식으로 살겠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. 그러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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궁극적으로 보면 평화를 나누며 살아야 하는 이웃이다. 대립이 아니라 평화가
|
우리의 진정한 목적이다. 그 평화를 위해, 참된 이웃의 관계를 위해 반성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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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 자들에게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.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면서 끊임없이
|
자극을 주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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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 와서 위령제를 올리고 사죄를 한 NHK 사람들이 진정으로 참회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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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는지를 알 수 없다. 세월이 또 흐른 지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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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 수 없는 일이다.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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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지는 똑똑히 알았을 것이다.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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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만 내세우는 망나니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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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마 전에 청학동에서 참으로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. 구경삼아 찾아온 한
|
청년이 있었다. 헌데 이 청년이 대낮에 술에 취해 온갖 추태를 부렸다.
|
수도하는 청학동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, 그것도 대낮에 그런 꼴불견을
|
보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. 처음에는 점잖게 청년을 꾸짖었다. 헌데 청년은
|
더욱 기고만장해져 소란을 피웠다. 할 수 없어 마을 어른 한 분이 청년의 뺨을
|
몇 대 때렸다. 말로는 통하지 않아 뺨으로 훈계를 한 것이었다. 사람으로서
|
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도 망각하고 있으니 당연히 벌을 받은 것이다.
|
헌데 사태는 이상하게 돌아갔다. 뺨을 맞은 청년은 반성은커녕 경찰서에
|
찾아가 폭행을 당했다며 신고를 했다.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했기에 훈계를 한
|
것인데 폭행이라니! 참으로 답답한 심정으로 청학동 사람들 몇이 경찰서로 갔다.
|
그런데 경찰관이 말이 또 놀라웠다. 청학동 사람들은 사람으로 취라 도리, 바로
|
윤리를 말했다. 윤리에 너무도 벗어났기에 그것을 가르쳐 준 것 뿐이라고
|
말했다. 그러나 경찰관은 청년과 마찬가지로 법을 내세웠다.
|
청년이 폭행을 당했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이상, 자기의 관심은 그것밖에 없다는
|
투였다. 벌금을 물 수도 있으니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청년을 잘 달래라는
|
것이었다. 법대로 하면 훈계를 한 쪽이 벌을 받는다는 얘기였다.
|
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. 인간 같지 않은 행동을 했기에 따끔한 훈계를 한
|
것인데, 그것이 법으로 보면 죄가 된다니.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지만 문제는 이런
|
일이 결코 예외적인 불상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. 윤리는 땅으로 떨어지고, 그
|
자리에 법이 대신 우뚝 서서 눈을 부라리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. 조금이라도
|
갈등이 생기면 윤리로 봐서 죄를 지은 자도 법대로 하자고 덤벼들곤 한다. 그때
|
법은 사회를 유지하고자 만든 약속이 아니라 윤리 파괴를 정당화하는 수단이
|
된다.
|
윤리를 저버린 자가 법적으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으니, 이 얼마나 기막힌
|
노릇인가. 그런 세상이고 보니 지나가다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누구
|
하나 충고하는 이들이 없다. 인사를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
|
없다. 충고는커녕 인사는 받지 않아도 좋으니 봉변만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는
|
어른들이 태반이다. 길거리에서 못된 짓을 하는 청소년들을 봐도 모두 슬금슬금
|
피하기만 한다. 공연히 훈계를 하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.
|
환경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서 못된 짓을 하는 아이들은
|
점점 더 나쁜 세계로 발을 들여 놓게 된다.
|
현실이 이러니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것이 길가는 노인네에게 담배를
|
좀 달라고 하는 짓을 거리낌없이 하는 게 아닌가. 노인네가 담배가 없다고 하자
|
어린 것 왈, 담배 좀 가지고 다니라고 했단다. 그리고는 침을 탁 뱉고 가더란다.
|
그 소리를 듣고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. 어쩌다 세상이 이
|
지경까지 되었단 말인가.
|
이제는 어른도 아이도 따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.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는
|
망종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. 선생도 없고 선배도 없는 무례한 것들이 얼굴을
|
빳빳이 들고 다닌다. 심지어는 부모를 죽이고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기만 하면
|
살 수 있다고 믿는 인간 아닌 인간들까지 등장한 세사이다. 이 모든 일들이
|
도대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어찌 벌어진단 말인가. 동방예의지국이
|
아니어도 좋다. 어찌 사람 사는 땅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. 인간의
|
도리, 윤리가 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.
|
왜 이토록 윤리가 땅으로 떨어졌을까. 말할 것도 없이 사람 교육이 잘못
|
되었고, 우리의 현대사가 그렇게 조장한 탓도 있다. 윤리를 세워 사회를
|
이끌어가려는 세력은 점점 영역을 잃어버리고, 법만으로 사회를 유지하려는
|
세력들이 득세한 세상이 바로 이 나라의 현대사이다. 물론 법만을 내세운다고
|
법을 자 지킨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. 윤리가 서지 않았는데 법이 제대로 설 리도
|
없다. 그래도 목소리 높여 법만 계속 앞세운다. 그러다보니 윤리에 어긋나는
|
짓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법망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 안도하는
|
이들이 구더기떼처럼 들끓는다. 권력을 잡기 위해 숱한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
|
만들어 놓고도 법망만 교묘하게 피하면 된다고 믿는 무리들이 그 표본이 아닌가.
|
공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라 했다. 양심의
|
부끄러움을 모르면 세상에 못할 짓이 없다. 윤리 의식이 마비된 상태에서 양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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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끄러움을 느낄 수 없다. 따라서 문제는 바로 윤리인데, 사람을 만들어야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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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교 교육의 현실을 보면 그것은 입시에도 영향이 없는 천덕꾸러기 과목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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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락해 버린 정도다. 가정 교육의 현실도 오십보 백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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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사는 땅이 이래서야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. 이네라도 국가는 윤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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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세우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. 각종 제도를 법보다 우선적으로 윤리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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접목시키고, 교육의 목적도 그 앞자리에 윤리를 두어야 한다. 법은 어떤 행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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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과만을 보고 판단하지만, 윤리는 그 근본적인 원인에 시선을 둔다. 병을 치료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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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도 근본적인 원인을 캐야 온전한 치료가 되지, 밖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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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만 다룰 때는 진정한 치료라 할 수 없다. 윤리에 대한 강조를 제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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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덕군자연하는 자들의 공연한 한담이라고 치부하지 말라. 윤리 회복의 시급성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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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성을 간과하노라면 세상은 망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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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코 그냥 한번 해보는 엄포가 아니다. 이제 세상은 천재지변보다는 인재를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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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려워하고 있다. 과거에는 천재지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으나, 오늘날 그것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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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가 망하리라 우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. 그 대신 인재가 불러올 재앙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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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를 망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실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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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표적인 것이 핵 귀신이다. 통제력을 잃은 괴물 같은 인간이 핵전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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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으킬 수 있다. 그 결과는 물론 공멸이 될 것이다. 이것은 현실성 없는 단순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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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상이 아니라,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화 될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. 인간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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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가 만든 무기를 사용해 보지 않고 폐기해 버린 역사가 없다. 현재 지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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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고 있는 문제는 모두 인간의 문제다.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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몰고 올 수도 있고, 유익한 문명으로 가꾸어 나갈 수도 있는 문제들이 지천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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깔려 있다. 핵 귀신, 공해 귀신, 전쟁 귀신, 에이즈 귀신.... 숱한 귀신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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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을 노려보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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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물이라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. 인간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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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에 따라서 뱀이 될 수도 있고, 소가 될 수도 있다. 어떻게 사람은 뱀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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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소가 될 수 있을까. 첨단 과학 기술을 익혀서? 지식을 머릿속에 가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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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워서? 법을 유일한 독본으로 삼아서? 아니다, 그 모든 것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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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로지 길 하나가 있을 뿐이다. 인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. 문명과 문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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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조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인간의 질을 높이는 것뿐이다. 그것은 인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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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, 즉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하는 일이 된다. 그렇게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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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면 핵, 공해, 전쟁, 에이즈를 비롯한 그 어떤 귀신도 두려울 게 없다. 사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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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선적으로 세워야 할 것이 윤리요,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또한 윤리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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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이 낮은 인간들은 윤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.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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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법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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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열한 사기꾼들은 법망에 피하려고 갖은 교활한 꾀를 다 생각해 내고, 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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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묘하게 이용해 선량한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. 법의 허점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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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이 늘상 노리는 단골 수단이다. 어찌된 셈인지 세상에는 비열한 사기꾼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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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이 윤리에 눈감아 버리는 인간들이 득실거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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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보다 물질을 더 믿는 기계적인 인간은 윤리보다는 수치에 더 마음을 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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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보다 돈을 더 믿는 경제 동물 같은 인간은 윤리보다 이익에 더 마음을 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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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보다 권력을 더 믿는 출세지상주의 자들은 윤리보다 힘에 더 마음을 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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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이외에도 인간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들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많다. 이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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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맑은 물을 우유가 아니라 독으로 만드는 존재들이다. 핵 귀신을 비롯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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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갖 죽음의 귀신을 불러올 수 있는 자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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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리는 바로 세우면 좋고,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 선택 과목이 아니다.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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땅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느냐, 없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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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의 최우선적인 필수 과목이 되어야 한다. 비록 윤리가 땅에 떨어졌지만, 다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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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는 비관적인 소리는 하지 말자. 지금부터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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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으로 향하는 물꼬를 트면 된다.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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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 있고 가정과 개인이 할 일이 있다. 국가를 이끌어가는 기본 발상에서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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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의 제도까지 모든 물꼬는 윤리를 세우는 인간 쪽으로 향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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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법상에서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. 우리 전통 속에는 성년식이라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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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나이 스무 살이 되면 남자는 관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찐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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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식에는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고,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음과 동시에 의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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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어진다. 이를 관혼상제의 앞머리에 있는 관례라 한다. 이런 성년식을 부활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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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관습으로 삼는 것도 윤리를 세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의 예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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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자상을 받으면 남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효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. 주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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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경은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. 성년식을 통해 스스로 성인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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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각하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. 성인으로서 할 도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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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게 되는 것이다. 형식적인 성년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. 우리 모두가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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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들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윤리의 중요성을 삶 속에서 깨닫고 실천하자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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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노력 없이 땅으로 떨어진 윤리가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지지는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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윤리가 바로 서는 날이 오면, 작게 보면 인간의 도리에 벗어난 짓을 해 어른한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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뺨 몇 대 맞은 것 가지고 법으로 달려가는 망나니는 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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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게 보면 파괴를 재촉하는 어떤 귀신도 인간 스스로 물리쳐 평화로운 지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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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 수 있는 것이다. 그런데도 법만 앞세우고 윤리를 뒷전에 처박아둘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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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에 대한 오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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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 일이 있어서 외지로 나갈 때마다 나는 묘한 기대감 같은 것을 갖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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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눌까.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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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게 무엇을 기대하고, 나는 또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. 특히 사사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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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이 아니라 강연을 비롯한 공적인 만남일 경우 그 기대는 자못 크다. 낯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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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과의 대면은 가까운 지인들과의 반가운 회동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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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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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선 만남들이 신선한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하는 말들이 그 상대방에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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익숙하지 않은 것이 되고, 상대방이 내게 하는 말 역시 내겐 낯선 것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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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다. 서로의 인생관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, 하루하루의 생활과 관심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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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리라. 다르다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. 그렇게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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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없다면 어떤 만남에 새로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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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그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에 때로는 서로가 오해의 늪에 빠지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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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데, 그 늪에서 빠져나올 길을 찾지 못하면 서로에게 짜증스러움을 느끼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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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오해를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자신이 오해를 하는 게 아니라고 끝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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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장하는 상대방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짜증이 생긴다. 상대방도 자신이 오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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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고 있음을 모르니 내게 짜증이 날 것이다. 물론 내가 오해를 하면서 오해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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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도 있을 것이다. 내가 낯선 사람들과 만나면서 가장 자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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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유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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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연차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만남 한 지식인 청년이 있었다. 그 청년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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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학을 다녀와 대학에서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. 가벼운 술자리에서 일행들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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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께 어울렸는데, 처음엔 말없이 앉아 있던 그가 말문을 여는가 싶더니 이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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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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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의 말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지는 대충 이랬다. 유교는 지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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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데올로기일 뿐 이간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도, 사상도, 철학도 아니라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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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서 그는 다른 종교와 비교까지 했다. 속세의 사사로운 것과는 인연을 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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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의 깨달음을 찾아가는 불교는 그 나름의 종교적인 의미가 있고, 기독교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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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한 내세관을 가지고 있는 등 종교적 바탕이 되어 있다고 했다. 그런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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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는 왕을 잘 받들고 부모 잘 모시고, 하는 식으로 상하관계의 윤리만 강조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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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게 현대 사회에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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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격이 느긋한 편이 못 되지만 나는 그의 열변을 묵묵히 다 들었다. 오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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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운데서도 조금 안다는 사람들의 오해가 풀리기 힘든 법이다. 우선 나는 그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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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, 그는 무슨 그런 질문이 있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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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으로 쳐다봤다. 그래서 조금 구체적으로 물었다. 혹시 율곡이나 퇴계에 대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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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을 아느냐고 물었다. 그의 대답은 두 분이 조선시대 사람이라는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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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도였다. 다시 논어나 대학 같은 유교 경전을 읽어 봤냐고 물었다. 술기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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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금 오른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.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군신유의, 부자유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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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했다.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 보았다. 수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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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 평천하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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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질문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. 이제야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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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왔다는 표시였다. 헌데 이게 어찌된 셈인가. 그는 다시 기회를 잡았다는 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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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어긋난 비난을 퍼붓는 게 아닌가. 학교에서 그 기본적인 뜻을 배운 모양이라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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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저 뜻풀이부터 시작했다. 자기 수양을 하고 나서 집을 제대로 정돈한 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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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라 했다. 그런 후에 그것이 바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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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문제가 되는 가족 이기주의의 뿌리가 되었다고 엉뚱한 비판을 하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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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닌가. 수신과 제가를 앞세우다 보니 유교적 전통에 빠진 사람들이 도대체 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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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제 집만 잘 꾸미고 제 가족의 행복만 찾는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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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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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어불성설!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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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짜증이 난 나는 그의 독설을 가로막을 수밖에 없었다. 수신 제가 치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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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천하는 유교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것이다.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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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 상태에서 엉뚱한 비난을 하는 것을 참고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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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그와 일행에게 그 말의 참뜻과 가르침을 좀 말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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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말하고 싶은 유교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. 다행히 모두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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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꺼이 동의해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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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학은 예로부터 논어나 맹자보다 앞서서 배워야 하는 것으로 그 중요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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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조되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. 그 대학에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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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 말이 나온다. 먼저 수신부터 나오는 경전의 가르침을 그대로 보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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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바 자신의 덕을 닦는 것(수신)이 자기의 마음을 바로하는 데 달렸다는 것은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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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마음에 성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의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고, 그 마음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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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의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고, 그 마음에 좋아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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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의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고, 그 마음에 근심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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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있으면 그것의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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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, 들어도 들리지 않고, 먹어도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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맛을 느끼지 못한다. 이런 것을 두고 자신의 덕을 닦는 것(수신)은 자기의 마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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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하는데 달렸다고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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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신의 장은 제가의 장으로 이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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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바 자기 집을 제대로 정돈하는 것(제가)이 수신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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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란 자기가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것에는 치우치게 굴게 마련이고, 자기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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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하게 생각하고 미워하는 것에는 치우치게 굴게 마련이고, 자기가 두려워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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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경하는 것에는 치우치게 굴게 마련이고, 자기가 슬프고 불쌍히 여기는 것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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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우치게 굴게 마련이고, 자기가 오만하고 게으르게 다루는 것에는 치우치게 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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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련이기 때문이다. 이렇기에 좋아하면서도 그것의 나쁜 점을 알고, 미워하면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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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의 좋은 점을 아는 사람이 천하에 드문 것이다. 예로부터 사람이란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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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의 악한 면을 알지 못하고, 자기 곡식의 싹이 큰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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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것은 수신이 되어 있지 않으면 자기 집을 제대로 정돈 할 수 없음을 말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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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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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의 장은 다시 치국의 장으로 이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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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려면(치국) 반드시 먼저 제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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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을 가르칠 수 없으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이 때문이다. 그래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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군자는 집에서 나가지 않고서 나라에 가르침을 이룩한다고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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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도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길이 되고, 우애라는 것은 어른을 섬기는 길이 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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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애라는 것은 여러 사람을 부리는 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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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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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집안이 인자하면 온 나라에 인자한 기풍이 일어나고, 한 집안이 겸양하면 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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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에 겸양하는 기풍이 일어나고, 한 사람의 탐욕이 지나치면 온 나라가 난동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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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으킨다. 그 기틀이 이와 같다. 이것은 곧 한 마디의 말이 일을 깨뜨리고,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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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나라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을 이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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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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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자기가 갖춘 후에 남에게 그것을 갖추도록 말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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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가 먼저 비난받을 소지를 없앤 후에 남에게 그것을 비난한다. 자신이 갖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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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것을 남의 경우에는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서 그 일을 승복시킬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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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없다.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자기 집을 제대로 정리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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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에 달려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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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국의 장에는 이런 말들이 덧붙여져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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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안 사람들에게 잘해야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, 형에게 잘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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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생에게 잘해야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,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형으로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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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생으로서 본받을 만해야 백성들이 본받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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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안에서 아버지로서 본받을 만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이웃의 본받을 만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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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되고, 많은 대중들의 본받을 만한 사람이 되겠는가. 너무도 당연한 이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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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닌가. 치국은 제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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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평천하의 장은 그것이 또 치국에 달려 있음을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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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것(평천하)이 치국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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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모시면 백성들 사이에 효성의 기풍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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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기고,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모시면, 백성들 사이에 우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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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풍이 생기고,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고아를 불쌍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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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 법이다. 그렇기에 군자는 척도로 살펴보는 방법을 갖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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웃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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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랫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웃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,
|
앞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뒷사람에게 먼저 하지 말 것이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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뒷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앞사람과 상종하지 말 것이며, 오른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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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왼쪽 사람과 사귀지 날것이며, 왼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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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는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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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태도는 덕이 있음을 뜻한다. 평천하의 장은 더욱 강조한다. 덕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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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면 그것에 따라 사람이 생기고, 사람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땅이 생기고, 땅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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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면 그것에 따라 재물이 생기고, 재물이 있으면 그것에 따라 쓰임새가 생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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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적인 것이다. 헌데 근본인 덕보다 말단인 재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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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요시되면 백성을 서로 다투어 빼앗는 짓을 하게 된다. 화평을 깨지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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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진리를 가족 이기주의로 비난한 것은 어긋나도 한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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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긋난 말이 아닐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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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마음을 바로하지 못해 수신을 못하고서 어찌 자기 자식은 자식의 악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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면을 알아챌 수 있을까. 자식의 악한 면조차 보지 못하니 집을 제대로 정돈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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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. 또한 제가를 못해 가족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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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는 사람이 어찌 이웃과 대중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. 존경받지 못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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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을 줄 수 없는 처지에서 치국을 논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. 또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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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국을 이루지 못하면서 천하의 화평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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덕이 없어 오른쪽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그런 태도로 나 역시 화풀이로 왼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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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대할 때, 거기에는 다툼이 생길 뿐 화평을 기대할 수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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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단히 말해 바로 앞에 있는 아버지 혹은 아들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인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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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.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기계적인 단계를 말하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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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덕이 바탕이 되는 이치요 진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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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냇물들이 맑아야 그것들이 모이는 강물은 맑을 수 있고, 강물들이 맑아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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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다가 맑을 수 있다. 수신과 제가를 앞세우는 것은 바다가 맑으려면 근원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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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 시냇물과 강물이 맑아야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. 헌데 그 전체를 보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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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고 제가를 마치 강물만 맑으면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니 딱한 노릇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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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단 그 강사만 유교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. 어떤 이는 여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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억압하는 이념이라고, 어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봉건 시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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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물이라고, 어떤 이는 허례 허식에 치우친 고리타분한 예법이라고 오해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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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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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많은 사람들은 그토록 유교에 대해 오해하고 있을까. 가장 큰 이유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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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의 문제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. 전통 문화와 전신에 대한 교육은 수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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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핥기식이거나 아예 없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. 모두 서양 학문에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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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달린다. 서양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는 줄줄 외우는 사람이 퇴계와 율곡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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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가르침을 주었냐고 물으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. 학문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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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관이며 서양 귀신에 홀리지 않은 것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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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자신을 보지 못하고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찾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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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를 알지 못하고는 남을 알지 못하고 우리를 알지 못한다. 자신이 누군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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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는 처지에서 남을 안다고 똑똑한 체하는 것은 세상의 첫 번째 웃음거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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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우리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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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다면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가야 할 길로 가야 할 것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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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종교 사회에서 사는 지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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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남자가 있다. 그는 종교적인 성향으로 보면 참으로 복잡한 사람이라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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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그는 직장에서는 기독교적인 태도를 지닌다. 합리적인 판단과 개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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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중하고 세계관 역시 다분히 기독교적이다. 천당에 가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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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아야 하고, 지은 죄는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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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그는 고향에 가면 태도가 조금 달라진다. 유교적인 가치관을 존중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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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관계에서도 유교적인 예법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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덕성을 찾는다. 그 가치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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치밀거나 멸시하는 마음이 생긴다. 집안의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, 그는 어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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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부터 익숙한 유교적 전통이 몸에 배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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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의 변화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. 친구의 요절을 비롯해 가까운 주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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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그는 허무를 느끼고 불교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. 죽음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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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두 슬픈 것이요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는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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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죽은 이들이 천당이나 지옥, 어느 한 곳으로 갔다는 생각은 그에게 들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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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다. 그저 가슴에 차오르는 느낌은 허무다. 그는 공수래 공수거하는 인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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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무에 빠져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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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사업체를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또 다른 모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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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인다. 개업식에서 고사를 지낸 것은 물론이요 점쟁이를 찾아가 부적을 쓰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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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무속 신앙에 의지한 셈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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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만 사업이 망해 버렸다. 그때 그의 마음속으로 파고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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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도교적인 인생관이다. 사람의 인위적인 행위들이 무위의 도 아래서 하찮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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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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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한 여자가 있다. 그녀에게 가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은 끊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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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는 유혹이 된다. 운명철학관을 찾아가 어떤 남자와 자신의 궁합을 맞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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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기도 한다. 또 어쩌다 여행을 떠나 사찰에 가게 되면 부처상 앞에서 합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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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데, 거기에 거리낌이 없다. 명절날 온 가족이 모일 때 유교적인 분위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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젖어드는 데도 마음에 걸림돌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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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남자와 이 여자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참으로 기이하게 보일 것이다. 물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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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국인이 아니어도 어느 한 종교의 독실한 신자들은 두 사람을 질책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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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이 남자와 이 여자를 별스런 사람으로 보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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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는다. 왜냐하면 바로 자신들의 모습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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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나라를 종교 백화점 혹은 종교 박람회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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냉소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표현이다. 어쨌거나 여러 민족 종교를 비롯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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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상에 널리 퍼진 종교 가운데 들어오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종교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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저마다 사람들을 차지하고 있다. 각 종교단체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를 합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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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다는 소리도 들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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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현실이고 보니 종교백화점이라고 냉소적으로 불러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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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다. 물론 종교의 수가 많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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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종교가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해서 어떤 풍성함을 느끼기보다는, 그것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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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한 타락성을 훨씬 많이 보아 왔다.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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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표적인 것이 외형에 치우치는 종교의 부실함이다. 대부분의 종교가 내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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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하기보다는 양적 팽창에 몰두해 왔다. 많은 종교가 존재하니 서로 먼저,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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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을 자기들의 세계로 잡아당기려 한다. 적지 않은 교회와 사찰은 그 규모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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커지는 것이 목적인 양 거기에 매달린다. 자기들 세계에 참여하기만 하면 구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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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는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, 자기들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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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다고 가당찮은 협박을 하는 이들도 있다. 모두가 자기들 종교의 영향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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넓히려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. 그러한 팽창 현상은 종교의 목적과 수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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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동시키기까지 한다.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목사와 교회를 더 중시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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듯한 태도, 진정한 부처의 가르침보다는 승려와 사찰을 더 숭배하는 듯한 태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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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정한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유림과 사당을 더 숭상하는 듯한 태도, 이런 왜곡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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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도들이 종교 현자에 널리 유포되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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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. 그래서 어떤 이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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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나라에 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놀랄 정도로 많지만 불행하게도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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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인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. 종교 단체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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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지만 참다운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적다는 뼈아픈 충고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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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제로 나는 성직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장사꾼보다 더 세속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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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락한 이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. 장사꾼은 물건을 파니 스스로의 할 바를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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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러나 타락한 성직자들은 감히 성스러운 말을 입에 올리면서 그 대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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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속적인 욕망을 누리려 한다. 그들은 성전을 위선적인 이익 단체로 전락시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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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자기들 단체를 유지하고 팽창시키는 수단으로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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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용한다. 거기에 참다운 신앙이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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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종교의 타락이 다종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만은 결코 아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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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백화점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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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는 많은데 진정한 종교인은 드물다는 이 기이한 현상은 종교인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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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형보다는 내실에 충실할 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. 종교가 많아서 문제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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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내실을 기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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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우리나라에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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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남자가 아침에는 기독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가 저녁에는 불교적인 태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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갖는 것 역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다. 우리는 천지인 심신일체사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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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본 바탕으로 다종교 속에서 살아온 민족이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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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나라를 보면 대개 국교라 부를 정도로 상대적으로 우세한 종교를 하나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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갖고 있다.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 국가라 부를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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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들이 있고, 또 회교 국가, 불교 국가 등으로 불리는 나라들이 있다. 일본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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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이 외래 종교가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나라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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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우리의 경우는 다양한 종교가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룬 채 상존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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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 5백년 유교를 바탕으로 역사를 이루어 왔고, 의식의 기저에 그 정신이 배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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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어 나라 안팎에서 유교적 전통을 지닌 국가라 부르기는 하지만, 요즘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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딱 꼬집어 유교 국가라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. 그렇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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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교 국가 혹은 기독교 국가라 부를 수도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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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이런 종교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삼신일체사상에서 기인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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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. 그러나 이러한 성향이 하나의 종교를 구교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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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지고 있거나 외래 종교가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 성향보다 열등한 것은 결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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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오히려 넓고 크게 포용하는 깨어 있는 민족임을, 그런 민족의 성향임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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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부해야 한다.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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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종교 일체사회에서 사는 지혜를 익히면 독특한 우리의 종교적 성향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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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점으로 키워갈 수 있다. 다행히 우리는 다종교 사회라 해도, 종교간의 갈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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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 심각한 편은 아니다. 종교의 타락상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이지 종교끼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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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은 평화를 깰 만큼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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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역사와 현실을 보면 종교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각하고 적대적인 것이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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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.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떤가. 한 건물 안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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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회와 성당 그리고 사원이 어울려 있다는 것을 군대를 갔다온 사람이면 누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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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 것이다. 또 국장이나 사회장을 보면 어떤가. 거기에는 으레 목사와 사제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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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장하고 독경하는 스님도 함께 나온다. 그러한 광경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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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놀라운 진풍경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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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는 곳곳에서 종교 전쟁을 치르고 있다. 노골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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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를 앞세우는 전쟁은 아니라 해도, 속내를 들여다보면은 종교 전쟁과 다름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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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들이 많다. 회교도와 유대교도 사이의 전쟁은 중동을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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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었고, 유교 연방에서 분리된 나라들은 지금 민족과 종교의 차이로 참혹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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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쟁을 치르고 있다. 그 전쟁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말까지 나온다. 종교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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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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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독교도와 회교도들의 반목과 전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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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어지고 있다.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다. 힌두교도, 불교도들도 타종교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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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쟁을 회피하지 않는다. 같은 종교 안에서도 싸움은 치열하다. 기독교를 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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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교와 구교가 서로 다투었고, 그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. 같은 형제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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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교도 안에서도 파벌을 지어 심각하게 갈등하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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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 전체를 보면 그야말로 다종교 사회라 할 수 있다. 그런데 더불어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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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화를 누리며 사는 지혜가 없기에, 저마다 자기 종교만을 앞세우고 다른 종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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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정하지 않는다.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국가는 적이 되고, 그래서 늘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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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하며 갈등이 극에 달하면 전쟁을 일으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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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종교 사회인 지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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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대 종교를 적대시하는 성향에 빠져 있지는 않다. 타락한 부분을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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질책하기는 해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원수가 되지는 않는다. 이 얼마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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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혜로운 종교적 태도이며, 우리는 또 얼마나 훌륭한 양면성을 갖춘 민족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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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한 종교에도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히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사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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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 것이다. 그러나 나는 그렇게 냉소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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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혜로운 성향이라고 말하고 싶다. 왜 그럴까.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이 부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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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인 자비와 어떻게 적대적일 수 있고, 부처의 가르침인 자비가 공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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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인 어짐과 어떻게 반목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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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의 본 모습을 찾고 참된 신앙에 들어가면 다른 종교는 적이 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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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 종교가 내세우는 성인들의 진정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다른 종교인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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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의 대상이 될 수 없다.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지 않을 때 공연히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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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에서 트집을 잡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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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생의 입장에서 선생님들을 보자. 한 학교에 훌륭한 선생님이 몇 분 계신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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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자. 어느 학생은 그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을 특히 존경 할 것이다. 또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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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생은 다른 분을 존경할 수 있을 것이다. 이럴 경우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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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고 다른 선생님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. 다른 선생님을 존경하는 다른 학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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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비난하고 경시할 수 있겠는가.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, 그것은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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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. 또한 어느 한 선생님만이 아니라 여러 선생님을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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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경한다고 그걸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가. 편을 가르고 모두 자기만 옳다고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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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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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학동에서 유불선 합일의 삼신사상을 신앙의 근본으로 삼는 것은 보다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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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르침을 얻고,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깊게 깨우치기 위해서다. 유에서 깨달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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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있고, 불에서 깨달을 것이 있고, 선에서 깨달을 것이 있는 것이다. 성부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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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자와 성신이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듯,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어울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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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 도를 얻을 수 있듯, 다양한 가치를 하나로 모아 최고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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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리산의 최고봉은 청왕봉이다.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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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오르는 길은 다르지만 오르고자 하는 곳이 천왕봉이라면 목표는 하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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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오르는 길이 다르다고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다. 일단 천왕봉에 오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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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것이 다 내려다보인다. 숱한 길이 다 내려다보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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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천왕봉이 하나라고 아무렇게나 오를 수는 없다. 잘못된 길을 고집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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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코 천왕봉에 오를 수 없다. 잘못된 길, 그것은 종교로 말하면 다른 종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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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하는 게 아니라 타락한 종교, 사이비 종교를 말한다. 산을 헤맬 뿐인 잘못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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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과 결국 천왕봉으로 오르게 되는 다른 길은 구분되어야 한다. 가장 빠르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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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르는 길만 내세울 일도 아니요, 풍경이 좋은 길만 자랑할 것도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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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, 그것이 종교의 가장 중요한 존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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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유가 아니겠는가. 그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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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로 여러 길이 있다. 어느 한 사람이 이 길로 가 보다가 저 길로도 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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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고 할 수도 있다. 다른 사람이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존중할 수밖에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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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길이 다른 것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. 바로 결국 하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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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 만나는 최고의 고지로 오른다는 것 그 자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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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의 노예가 되려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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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은 과연 존재하는가? 어떤 사람은 존재한다고 경건하게 대답할 것이고,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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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부정할 것이다.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신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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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었다고 침통하게 말할 것이고, 어떤 사람은 존재 여부에 관심이 없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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퉁명스럽게 대꾸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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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. 신의 존재를 믿기에 이렇게 다시 물어 본다. 신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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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존재하는가. 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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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겠지만, 적어도 그 존재를 믿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답해야 한다. 도대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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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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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에 대한 대답 역시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을 것이다. 신의 존재는 그 자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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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의 섭리이지 인간이 따져물을 것이 아니라고 근엄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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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고,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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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고, 그 존재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고 답을 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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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신의 유일한 존재 이유라고 믿는다. 인간을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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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은 왜 있겠는가. 설사 그 어떤 다른 이유를 댄다 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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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이미 인간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.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인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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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는 것이다. 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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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이 명제가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. 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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혹은 신을 앞세운 종교 집단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 같은 현상이 보이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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왜 이렇게 되었을까? 먼저 신과 인간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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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주의 중심은 은하계의 핵인 태양계이며, 태양계의 중심은 지구이고, 지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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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심은 바로 인간이다. 바꾸어 말하면 태양계를 중심으로 우주는 운용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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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계는 존재하며, 인간의 기를 중심으로 지구는 운용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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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 우주의 주인공은 인간이다. 우주는 형체요, 그 주인공인 사람은 형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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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미있게 하는 혼이요 넋이요 생명력이니 한 마디로 신인 것이다. 혼이 없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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넋이 없고, 생명력이 없다면 우주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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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주를 의미있게 하는 주인공이 사람이요 신이라면 그 둘은 어떻게 구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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될까. 모든 사물에는 본말과 내외의 양면성이 있으니, 형이상 내면심계로
|
도달하면 사람을 구분하여 신이라 하고, 형이하 외면물계에 얽매여 있으면 신을
|
구분하여 사람이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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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말하면 사람의 내면인 뿌리는 신이요, 신의 외면인 결과는 사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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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뿌리인 신 또한 사람 안에 존재하니 내외는 일체요 본말은 하나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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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과 사람은 둘이 아니다. 내면만 있는 신은 반쪽의 존재밖에 되지 못하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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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면까지 더해져 신이 입체화된 것이 바로 사람이다. 그러니 사람은 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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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제품인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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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리를 입체화한 것이 신이라면, 그 신이 내면뿐 아니라 외면까지 갖춘 완전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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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재로 현상된 존재 역시 사람이다. 신의 씨앗은 섭리요, 신의 결과는 사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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씨앗의 가치는 그 결과로 인증받듯이 신의 가치 또한 사람을 통해서 인증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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빛이 나는 것이다. 사람은 신을 때로는 섭리로, 때로는 도로, 때로는 이름 그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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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으로, 때로는 우주의 생명력인 에너지로 알고 그렇게 부른다. 그 모든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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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 하나다. 불완전하다고 스스로 느낀 사람이 우주의 주인공으로서 역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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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 위해 섭리니, 도니, 신이니, 우주 에너지니 하는 것들을 찾고 그렇게 부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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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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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본래의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. 신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? 신은 인간에게
|
섭리니 도니 하는 진리를 전달하는 수단이요 매개물로 존재한다. 진리를 얻기
|
위한 목적으로 사람은 신을 모델로 내세운 것이다.
|
예수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다. 부처는 천상천하에 자신이 가장
|
존귀하고, 중생이 깨달으면 모두 부처라 했다. 예수가 말한 자신과 부처가 말한
|
자신은 누구인가. 바로 사람이요, 사람이 도달하고자 하는 모델이다. 동학을 연
|
수운 최제우는 인내천이라 하여 사람이 하늘이요, 하늘이 사람이라 했다. 사람이
|
곧 하늘이요, 깨달으면 부처요, 예수를 본받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이다.
|
사람은 스스로 예수의 인격, 부처의 인격, 공자의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고
|
판단했기 때문에 그 성인들을 존경하고 모델로 삼으려는 것이다.
|
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 성인들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. 법을 행하고 진리를
|
따르면 그것이 제자가 되는 길이다. 그러나 제자가 아니라 노예가 되는 일이
|
많이 벌어진다. 스스로 법을 행하고 진리를 따를 생각은 않고, 종교라는 이름으로
|
그 성인들에게 매달려 성인들이 무슨 은총이라도 내려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.
|
법을 행하고 진리를 따르며 사는 삶은 뒤로 제쳐둔 채 숭배만 하면 은총이
|
내린다고 믿으니 노예가 아니고 무엇인가.
|
십자가건 부처상이건 공자의 영정이건 그 자체를 신성시하여 믿는 것은 노예가
|
되는 길이다. 그것들은 하나의 상징이요 이념의 장일 뿐이다. 진정 신의 존재를
|
믿는 다 하는 것은 그 성인을 모델로 삼아 자신이 예수와 부처와 공자와 닮은
|
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을 이른다. 진리를 배우면서 매달릴 곳은 성인이나
|
신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세계가 된다. 자기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.
|
복을 누가 주는가. 내 자신이 내게 준다. 죄는 또 누가 주는가. 내 자신이 내게
|
준다.
|
내 자신부터 자신에게 사랑받고 존경받고 신뢰받도록 노력해야 한다. 그리하면
|
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받을 것이다. 노력을 하지 않아 내 자신부터 자신에게
|
사랑받고 존경받고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
|
존경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.
|
세상 누구도 사람을 버리지 못한다. 버릴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.
|
내가 먼저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남들이 버릴 뿐이다. 한 마디로 인생의
|
길흉화복은 내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.
|
사람이 먼저 깨달은 성인들을 존경하는 것은, 몸과 마음을 활용하고 관리하는
|
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본체를 찾아 그 성인들과 같은 인격을 갖추고자 모델로
|
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. 성인을 숭배하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고
|
행하는 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요, 사람이 할 일이다. 신과 종교의 노예가 되어
|
무엇을 기대한단 말인가. 사후에 어디로 간다는 것, 그것을 기대하는 것인가.
|
우리는 삶을 얘기해야 하고, 그러기 위해서 성인의 제자가 되어 인간의 본체로
|
돌아가야 한다.
|
신의 목적은 사람에 있고, 성인의 목적 또한 사람에게 있다. 어찌 인간의
|
목적이 신에 있겠는가. 그것은 삶의 목적이 죽음에 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.
|
사람이 사람을 믿고 사람을 섬기고, 사람을 존경하고,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
|
진리도 신도 성인도 필요한 것이다.
|
나는 종교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. 성직자이건 신자이건 가릴
|
것 없이 일부 신앙인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. 자기들이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면
|
구원을 받을 수 없고, 천당이나 극락 같은 사후의 이상향에도 갈 수 없다고 한다.
|
무신론자들만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.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
|
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한다.
|
그런 태도를 지니고 있는 신앙인들은 자신들의 성전에 온갖 정성을 다 바친다.
|
불쌍한 이들을 위해 제대로 쓰이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오로지 현금을 많이
|
하면 복받는 것으로 믿고,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것이 자기 신을 제대로 모시는
|
것인 양 착각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,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만드는 것으로
|
신자의 역할을 다했다고 믿고, 심지어는 같은 종과 안에서도 다른 곳의
|
성직자보다 자기가 속해 있는 곳의 성직자가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마음이
|
놓이는 이들이다.
|
맹목적인 신앙에 눈이 멀고, 돈으로 믿음의 척도를 재는, 어긋나도 한참
|
어긋나고 타락해도 한참 타락한 이들이다. 이렇게 사람들을 어긋나고 타락케
|
만든 장본인들이 있다.
|
먼저 일부 잘못된 성직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. 그들은 신도들에게
|
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보다는, 성전을 높이고 물질적
|
이익을 쫓는 일에 더 힘을 쏟는다.
|
그런 것을 쫓기 위해서는 신도들에게 더욱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 할 수밖에
|
없게 된다. 잘못된 길이라도 무조건 따르게 해야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기
|
때문이다. 그런 성직자 아래서 명예를 누리는 신자들이 또 있다. 성직자가
|
그릇되게 요구한 것을 충실히 따르면서 신앙 단체 안에서 포장된 신앙심을
|
과시하는 이들이다. 법을 따르고 진리를 행하는 일은 외면하면서도 단체가
|
요구하는 일에 충실하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존경받을 수 있는 신앙인으로
|
보여지기를 바라는 무리들이다.
|
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.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 가르쳤고, 부처는 자비를
|
가르쳤고, 공자는 어짐을 가르쳤다. 실제로 삶 속에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
|
사람이 진정 그 성인들의 참된 제자들이다. 예수와 부처와 공자가 바라는
|
인간상도 바로 그런 것이다. 그런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이다.
|
헌데 본래의 목적과 필요성은 어디로 가 버리고 헛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. 왜
|
그렇게 되었을까. 그들은 종교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이다. 종교와 신은 인간이
|
좀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, 진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있는 것인데,
|
노예가 되어 종교와 신이 목적인 양 착각하기 때문이다. 사랑과 자비와 어짐을
|
실천하지 않으면서, 거대한 성전 안으로 들어와 오로지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
|
매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와 부처와 공자는 무슨 말을 할까. 성전에서 나가
|
사람들의 세상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하지 않을까.
|
종교의 노예가 된 현실은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그 극단적인 모습을 볼 수
|
있다. 재림 예수를 자처하며 신도들을 현혹한 한 목사의 행태는 참으로 기가
|
막힌다. 그 사이비 목사는 노골적으로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면서, 나중에
|
구체적인 액수까지 밝히면서 수억 혹은 수십 억의 돈을 보상받게 해주겠다고 했다.
|
신도들은 또 그 말을 믿고 헌금을 한다. 이쯤 되면 종교의 노예라 할 것도 없다.
|
어찌 종교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.
|
말세를 말하면서 자기들이 믿는 종교의 신자가 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
|
못한다는 것도, 종교의 노예가 되라는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. 이웃집에서
|
실천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요, 자기집의 사랑만 사랑이라는 식의 이 주장이
|
과연 타당할 수 있겠는가.
|
성인들의 충실한 제자가 되지 않고 노예가 되려는 사람들은 눈을 떠야 한다.
|
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신과 종교를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. 사람의 세상에서
|
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 된다. 인간은 지구상 최고의 목적이다.
|
사람의 가치다 바로 신의 가치요, 신의 가치가 바로 사람의 가치다. 헌데 인간이
|
목적임을 외면한 채 무슨 이유로 종교의 노예가 되려고 그리도 몸부림을 하는가.
|
|
지구상 최고의 목적
|
|
누가 만약 사후에 천당에 보내줄 테니 현실 속의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라
|
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절할 것이다. 누가 만약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해줄 테니
|
현실 속의 인간적인 삶을 가벼이 여기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거부할 것이다.
|
다시 누가 만약 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해줄 테니 가족과 친지들과의 인연을
|
끊으라 하면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. 누가 만약 최고의
|
명예를 누리게 해줄 테니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버리라 한다면 나는 두말없이
|
코웃음 칠 것이다. 왜냐하면 나는 지구상 최고의 목적은 인간임을 믿고 있기
|
때문이다. 천당이니 해탈이니 도니 명예니 하는 그 모든 것은 인생을 빛내고
|
살찌우는 수단일 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.
|
도를 깨우쳤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,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하는
|
이들이 있다. 진정한 도를 얻기 위해서는 부모를 버리고 떠나는 아픔을 알아야
|
하고, 속세를 버리는 고통을 견뎌야 하고,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
|
인정해야 한다는 말들이다. 그러한 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
|
지나치게 이상에 치우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. 이상에 치우쳐 있다 함은 인간의
|
본모습에서 어긋나 있다는 뜻과 다를 게 없다.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가는
|
것이 그런식의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하찮은 것이 될 수 있다.
|
유명한 어느 스님의 출가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. 그 스님은 출가하기
|
전 속세에서 결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.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는 시장으로
|
달려갔다. 미역을 사 가지고 와 부인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. 헌데 미역을 사기
|
위해 시장으로 간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. 미역을 사려는 순간
|
무엇을 깨달았는지, 아니면 아이를 낳고 미역을 사는 그런 식의 삶을 스스로
|
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그 길로 출가를 한 것이다. 부인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
|
시장으로 간 남편이 미역을 사 들고 돌아오기만 기다렸다.
|
스님들의 출가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. 또 미역을 사러 간 스님이
|
그런 식으로 출가를 한 것에 대해서도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을 덧붙일 필요는
|
없다. 다만 그런 식의 태도가 신비화되고, 그런 식의 이야기 속에서 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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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달음이 얘기되고, 그런 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참된 삶을 보려는 성향에 대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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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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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실 속의 삶을 왜소하게 보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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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 사람들의 비뚤어진 시각이라고 본다. 그런 시각을 가진 이들은 실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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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활에서는 참다운 행복도 찾을 수 없고 드높은 인간적 도리도 깨달을 수 없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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믿는다. 그래서 자꾸 인간의 실제적인 삶을 떠난 그 어떤 곳을 가리키며 그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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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자고 한다. 자꾸 저 높은 곳으로만 가자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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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인간의 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다. 저 높은 곳에 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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낮은 이곳이 아니라, 속세를 떠난 곳에 비해 참다운 행복이 없고 드높은 인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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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를 깨달을 수 없는 이곳이 아니라,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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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이곳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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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에게는 오만보다도 더 지독하게 한심스러운 면이 있다. 바로 자기 자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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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하하는 것이다.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부심마저도 자기 비하의 늪에 빠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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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팽개치는 사람이 있다.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엄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.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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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엄성을 아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존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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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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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대 인도에 왕과 왕비가 있었다. 왕이 어느 날 왕비에게 물었다.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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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비 자신보다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냐고. 그러자 왕비는 자신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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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스런 존재가 없다고 대답했다. 이번에는 왕비가 왕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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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 역시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존재는 없다고 같은 대답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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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과 왕비는 어느 날 부처에게 물었다.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존재가 없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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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들의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알고 싶어서였다. 부처는 빙그레 웃으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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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과 왕비에게 이렇게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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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사람은 자기 생각을 어디로건 끌고갈 수 있다. 그러나 어디로 끌고가건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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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보다 사랑스런 존재를 찾아낼 수는 없다. 마찬가지로 남들도 다 자기 자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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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사랑스러워 한다. 그러니 자기 자신을 사랑스러워 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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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쳐서는 안 된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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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계율을 말하는 것이지만,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가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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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할 수밖에 없음이 그 바탕이 된다. 자신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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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이 자기 존엄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. 가장 사랑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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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에서조차 그 존엄성을 느끼지 못하면 자기 이외의 사람에게서는 말할 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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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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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을 사랑할 때 남을 사랑할 수 있다. 자신이 괴롭고 불안하면 남을 편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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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수 없다. 자신이 가난할 때 남을 풍요롭게 해줄 수 없다. 자신의 존엄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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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 때 남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. 인간이 자기 존엄성을 알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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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류의 평화는 그 싹을 마련한 것이 된다.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높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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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이다. 높은 가치란 바로 평화로운 삶을 가리키는 게 아니겠는가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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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비하의 늪에 빠지면 세상은 비극 속에 빠진다.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렸으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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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을 우습게 보고 아무렇게나 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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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 가지 존엄성을 어디다 찾을 것인가. 천당과 극락에서 찾을 것인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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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세를 벗어난 해탈의 경지에서 찾을 것인가? 희노애락의 일상에서 벗어난 도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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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지에서 찾을 것인가? 아니다. 그런 것들은 존엄성을 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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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기에만 매달린다는 것은 일상 생활 속의 자신을 비하한다는 뜻과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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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활 속에서 찾아야 한다. 거기서 존엄성을 찾고 가치를 찾고 사랑을 찾아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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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가족과 이웃과 동포와 더 나아가 인류 전체와 더불어 살면서, 그 안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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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엄성을 찾고 삶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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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교에서는 말하는 해탈은 일체의 속박이나 번뇌로부터 벗어나 근심이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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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안한 상태를 이른다. 그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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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착하지 말고, 매달리지 말고, 고집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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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더 나아가 아예 자신을 둘러싼 어떤 문제로부터 기피하는 것을 해탈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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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법으로 여기기까지 한다. 그러나 기피하고 도피하는 것에서 인간의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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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탈을 찾을 수 없는 것이고, 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고집부리지 않는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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능사가 아니다.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은 해탈로 가는 기리 아니라 현실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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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인간적인 삶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.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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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을 보자. 타인인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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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쁨이지만,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반면에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갈등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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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이 끼어들곤 한다. 온통 기쁨만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만, 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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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럴 수만은 없는 게 바로 사람의 삶이다. 수많은 소설과 시, 영화의 음악 등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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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품이 사랑으로 인한 온갖 갈등과 고통을 담고 있는 것은 그런 현실의 반영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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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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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고통과 갈등 때문에 사랑 그 자체를 포기할 수 있을까. 포기한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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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과연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. 포기한다는 것은 기피한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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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다. 갈등과 고통을 피하고 싶어 차라리 사랑 자체에서 벗어난 삶을 살겠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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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것은 적어도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한 인간적인 삶을 버리는 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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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런 상태에서 해탈의 경지를 느낄 수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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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의 구체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능사로 아는 사람들은 두 남녀의 사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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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소평가하고, 헛된 것으로 보이게 하려 하고, 결국에는 그 사랑에 매달리느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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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라리 뿌리치라고 할 것이다.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. 갈등과 고통이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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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? 그런 마음을 소중한 사랑을 포기하는 식으로밖에 얻을 수 없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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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연인에게 더욱 집착하고, 매달리고, 사랑을 고집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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끝내 그 갈등과 고통을 이겨낸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. 그때 비로소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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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탈과도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. 아니, 그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해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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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해도 무방하다. 결코 기피하지 않고 인간적인 가치에 충실했으니, 삶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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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 가운데 하나를 성취한 셈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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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. 사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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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누며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숱한 갈등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편협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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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상주의자들의 책략에 불과하다. 갈등과 고통이 없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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놓고, 현실을 떠나 그리고 가자고 유혹하는 것은 기만적인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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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이 가치가 있고 존엄한 존재라 하는 것은 인간의 땅에서 스스로 갈등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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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을 이겨내고 끝내 사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. 그런 존재이기에 인간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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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체가 지구상 최고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. 저 높은 곳을 가리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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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말하는 천당이나 극락 같은 것이 살아 있는 인간의 삶보다 앞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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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이 될 수 없다. 저 높은 곳을 가리키는 것은 인간을 위한 수단인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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농부는 농삿일을 통해 자기 가치와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. 자신의 땀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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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니 그 얼마나 가치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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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엄한 일인가. 그러나 만약 농부가 농삿일에서 자기 가치와 존엄성을 갖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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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면 농부뿐 아니라 농부가 지은 양식을 먹는 모든 사람까지 불행해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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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서 알찬 결실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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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자는 올바른 가르침에서, 정치가는 참된 정치에서, 구두닦이는 구두를 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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닦는 일에서 자기 가치와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. 또한 아버지는 아버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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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에서 아들은 아들의 도리에서, 남편은 남편의 도리에서 아내는 아내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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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리에서 자기 가치와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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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단에 불과한 것이 목적인 양 나서는 것은 비단 종교만이 아니다. 물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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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인 양 나서서 추태를 부리고, 전쟁이 목적인 양 앞서서 광기를 드러내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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권력이 목적인 양 드러내 놓고 칼을 휘두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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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뒤바뀐 수단과 목적이 제자리를 찾을 때 인간은 이상향의 땅으로 가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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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가갈 수 있으리라. 누가 뭐라 해도 인간 그 자체가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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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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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넷 / 흔들리는 세상 풍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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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철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던 시절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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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에 와서 일행과 함께 전철을 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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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내려야 할 역에서 문이 열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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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느긋하게 출구 쪽으로 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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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을 쓴 체면에 경망스럽게 내릴 수도 없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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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 사람이 다 내려야 문이 닫히는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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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의 발걸음은 느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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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내가 막 출구 앞에 섰을 때 문이 닫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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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르르 닫히는 문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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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내게 까마득한 절벽이요, 캄캄한 어둠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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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쓰고 당한 봉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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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상전벽해라는 말을 가히 실감할 수 있다. 뽕나무 밭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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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른 바다가 된다는 그 비유에 조금도 손색이 없게 세상은 나날이 변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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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푸른 바다가 전에는 뽕나무 밭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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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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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피부로 직접 느끼면서 사는 도시 사람들도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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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하는데, 산속에서 갓 쓰고 사는 사람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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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죽하겠나. 어쩌다 나가 보면 어안이 벙벙하고 눈이 휘둥그래진다. 현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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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명이라는 것이 귀신이 둔갑술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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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에는 그래도 조금 낫다. 가끔 나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, 변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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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리 예감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을 덜 수 있는 것이다. 그러나 여전히 현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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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명과 그 안에서 사는 도시인들은 내게 당혹스러움을 번번이 안겨 주곤 하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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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지로 나가면 나는 잔뜩 긴장 할 수밖에 없다. 긴장의 끈을 놓치면 무슨 봉변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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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. 공연한 두려움이 아니다. 지난날 나는 지금 생각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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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너무나 사소한 일로 봉변을 당하곤 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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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에서 공부하던 댕기머리 시절부터 당혹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. 그 가운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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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 공중전화라는 놈이었다.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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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일이 있어서 산에서 내려와 시내로 갔다. 전화기를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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얘기를 들어 본 적은 있으니 두려울 게 없다고 자신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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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막상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니 막막했다. 돈을 넣어야 한다는 데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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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대체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, 송수화기는 언제 어떻게 들고 다이얼은 또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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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리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. 전화기를 바라보고 너 이놈, 하고 호령을 해 봐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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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용없는 일이요, 사용법을 모르니 그것은 그저 괴물일 뿐이었다. 전화번호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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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은 쪽지만 들고 나는 그저 막막함에 몸둘 바를 몰랐다. 설사 어떻게 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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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화를 걸었다 해도, 거기에 대고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. 상대방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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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명 무슨 말을 할 터인데, 거기에 대꾸할 용기마저 없었던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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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민 끝에 나는 일단 부스 안에서 나왔다.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전화를 거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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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법을 몰래 엿보았다. 한 사람의 시범으로는 안 되어,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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송수화기를 들고, 동전을 놓고, 다이얼을 돌린다. 그리고 말을 하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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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쉬운 일이다. 허나 그것이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막막한 미지의 세계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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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이다. 문명의 이기라는 것들이 모두 그렇다. 일단 사용하기 시작하면 공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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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시듯 편안한 마음으로 다루지만, 그것이 낯설 때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괴물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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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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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자에 나는 일본 교포 2세인 어느 분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갔었다. 거기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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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 일을 보려고 화장실엘 갔다. 헌데 그 안에서 좌변 세척기라는 낯선 놈이 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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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다리고 있었다.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마주했던 공중전화기와 다름없이 내게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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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난감한 물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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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냥 고민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, 조작해 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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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한 것을 조심스럽게 눌러봤다. 무엇인가 쏙 나왔다가 들어가는 식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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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뭔가를 눌러서 물이 솟아 뒷처리를 해준 것까지는 좋았다. 신기하군, 사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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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사용을 만족감에 젖었지만 이내 불상사가 벌어졌다. 어찌된 셈인지 솟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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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. 당혹스러움에 나는 앉지도 서지도 피하지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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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했다. 백의민족의 하얀 옷이 물에 흥건히 적셔졌다. 손님 체면에 그 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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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장실에서 나가려니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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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에는 단순한 생활을 해서 그랬겠지만 물건이 하나 나와도 사용법 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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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게 고민하지는 않았다. 헌데 요즘 새로 나오는 문명의 이기들은 사용법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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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책자를 꼭 달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. 그걸 열심히 읽어 보지 않으면 사용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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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다. 복잡한 사용법이 없는 것이라 해도 처음 대하는
|
사람에게는 낯선 거들이 많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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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철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던 시절이었다. 서울에 와서 일행과 함께 전철을
|
탔다. 우리가 내려야 할 역에서 문이 열렸다. 나는 느긋하게 출구 쪽으로 갔다.
|
갓을 쓴 체면에 경망스럽게 내릴 수도 없었고, 또 사람이 다 내려야 문이 닫히는
|
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었기에 나의 발걸음은 느렸다. 헌데 일행이 다 내리고
|
내가 막 출구 앞에 서는데 그만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닌가. 스르르 닫히는 문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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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내게 까마득한 절벽이요, 캄캄한 어둠이었다. 몸에 식은땀이 나고 정신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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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득해졌지만, 열차는 무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. 순간적으로 일행과 다시 못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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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 같다는 절망과 이대로 가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이냐는 아득함이 스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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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나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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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간의 황망함은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기계적인 야멸참에 대한 당혹감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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섭섭함은 버릴 수 없었다. 긴장의 끈을 잠시라도 끌러 놓으면 바보가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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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이 아닌가. 어떻게 사람이 나가려는 데 작두로 짚을 썰 듯 무시무시하게 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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닫아버리는가. 기계적인 입장에서 보면 주어진 시간에 빨리 나가지 못한 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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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이라 할 것이다. 그러나 그 주어진 시간이란 것도 사실은 사람이 정한 것
|
아닌가. 사람의 입장에서 그 시간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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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빨리 빨리 움직이고 열심히 사용법을 익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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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할 모양이다.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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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기가 생길 때가 있으니 어쩌랴. 작두 아래 놓인 짚 같은 신세가 될지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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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의 평상시 걸음으로 전철에서 내리고 싶고, 큰 건물에 있는 회전문에 갓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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끼어 망가지더라도 좀 여유롭게 출입하고 싶다.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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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을까. 그렇다면 기계적인 것에 사람이 매달려 쫓아가기보다는 기계적인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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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 쪽으로 뜰어당겨야 하지 않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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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식당 정도에서 나는 고집을 부려 본다. 처음 양식을 대했을 때 나는 역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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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선 것이라 약간 당황했다. 먹는 데도 나름대로 방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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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방식을 배우려고 눈여겨 보기도 했었지만,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. 포크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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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이프를 어떻게 쥐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. 내 식으로 들고 먹으면 그만인 것
|
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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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익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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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러나 나 같은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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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기들은 좀더 인간적이 태도를 가져야 하리라고 본다. 그렇게 만드는 일은
|
사람의 몫이다. 인간이 주체가 되지 못하면 문명의 이기는 살인 무기가 될 수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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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지 않은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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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명의 이기 못지 않게 사람들 역시 내게 숱한 봉변을 안겨 주곤 한다. 악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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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것이기에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, 웃을 수만은 없는 경우가 많으니 낸들
|
어쩌리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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머리를 땋고 지내던 시절에 목욕탕에서 종종 당하던 일이야 즐거운 추억거리가
|
된다. 땋은 머리를 풀면 여자처럼 긴 머리가 된다. 그런 모습으로 남탕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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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어가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. 마치 내가 남탕과 여탕도 구분하지 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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푼수없는 여자라도 되는 양 보니, 나는 그저 고개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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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모만 보고 오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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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시에 가서 시내버스를 타면 기막힌 섬김을 받곤 한다. 내 나이 이제 불혹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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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 넘겼는데, 삼십대 때부터 겪은 일이다. 갓 쓰고 한복 입고 수염 기르고 있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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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 그렇게 보일까.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요, 나보다 한참 연장자가 되는 분들까지
|
벌떡 일어서서는 하는 말,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. 난감하기 그지없는 공경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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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다. 언젠가는 나이든 노인까지 내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. 내 얼굴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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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난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그런 얼굴이 아니다. 사람들은 그저 내 외관만 보고
|
그렇게 짐작하는 것이다. 젊은 사람이 갓을 쓸 리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,
|
그들의 착각도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리라.
|
한번은 아내와 함께 외출을 했었다. 아내는 나보다 네 살 아래다. 헌데 잘
|
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한다고 말을 붙여왔다. 인사를 고마운 노릇이지만 이게
|
도대체 무슨 말인가. 며느리와 어디 가십니까,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. 황당해서
|
돌아보니 아내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.
|
속이 상해, 그래 나 며느리와 함께 사는 패륜 인간이다, 라고 소리를 질러주고
|
싶었지만 단순한 오해 때문에 생긴 일이니, 참을 수밖에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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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로는 나에게 호의를 베푼다고, 또 때로는 나를 곯려주려는 의도를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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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혹스럽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.
|
언젠가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겪은 일이다. 상점에 가서 요구르트 하나를
|
달라고 했다. 헌데 예쁘장하게 생기 점원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방긋 웃는 것이
|
아닌가. 실없는 것이 아니라면 웃는 낯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.
|
나도 미소를 지으며 돈을 내밀었다. 그렇게 거래가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
|
아가씨 왈, 그거 드실 줄 아세요, 하는 게 아닌가. 졸지에 당한 엉뚱한 물음이라
|
나는 그 아가씨를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. 내 표정을 보고 역시 먹는 방법을
|
모르는 모양이라고 단정한 모양이다.
|
아가씨는 빨대를 꽂아 먹는 시늉까지 직접 실연해 보이고는 내게 요구르트를
|
넘겨 주었다. 그런 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까. 하기야 청학동에서는 옛날
|
동전을 쓰지 않냐고 진지하게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으니, 그 아가씨의 친절에
|
고마움을 표시해야겠지.
|
갓과 한복은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, 사람에 대한
|
믿음이나 신뢰 같은, 우리가 잃고 사는 것들에 대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.
|
서울역 광장에서 겪은 일이다. 기차 시간이 남아 있고 해서 나는 광장에 서서
|
높은 빌딩들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. 헌데 한 여인이 두리번거리다가 내게
|
다가왔다. 여인의 손에는 커다란 짐보따리가 하나 들려져 있었다. 화장실을
|
가야겠는데 짐을 좀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.
|
기꺼이 나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. 헌데 그날따라 왜 그리도 많은
|
사람들에게 짐이 부담이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. 서너 사람이 그 여인처럼 내게
|
다가와 짐을 맡기고 제 볼일을 보는 게 아닌가.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았다.
|
헌데 왜 하필 내게만 부탁을 한단 말인가.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사람에 대한
|
믿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. 그런 사람이 제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지는 않으리라는
|
믿음,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졌다. 낯선 나를 믿지야 못하겠지만 갓을
|
믿고 한복을 믿은 것이었다.
|
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의 차림새가 마음의 고향을 떠올리는 상징물이 되고
|
있으니, 감격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. 그러나 믿음도 좋고 감격도 좋지만, 짐을
|
맡겼으면 빨리 볼일을 보고 찾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. 기차 시간이 다
|
되었는데도 짐 보따리 하나는 여전히 내 앞에 있었다.
|
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되었다. 헌데도 짐 주인은 보이지
|
않았다. 그렇다고 그대로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. 조바심이 나 주위를
|
둘러보는데, 저쪽에서 태연하게 천천히 짐 주인이 걸어오고 있었다. 그와 눈이
|
마주치는 순간 나는 기차를 향해 내달렸다.
|
나를 의도적으로 곯려주려는 사람들도 역시 무슨 악의 가 있어서는 아니다.
|
그렇지만 내가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낄낄거리며 즐기니, 취미로 말하면 결코 좋은
|
취미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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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다. 나 같은 사람도 예비군 훈련을 받냐고 묻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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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있으니, 거기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도 아닐
|
것이다. 어느 날 포복을 한다 뒹군다 하고 보니 긴 머리가 밤송이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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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예비군들이 자꾸 흘끔거리며 쳐다보고, 노골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도
|
있었다. 나 역시 산발한 내 모습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. 그러나 몸을
|
마구 다루는 훈련인데 선비의 모습을 갖출 수도 없고 어쩌랴. 참을 수밖에
|
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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휴식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오락을 하자고 나섰다. 오락이라야 딴 게 없었다.
|
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즐기는 것, 바로 노래부르기였다. 이미 주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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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상이었던 내가 노래 부르라는 강권을 피해 갈 길은 없었다. 어쩔 수 없이
|
일어서 나는 춘향가 중에서 "쑥대머리" 한 대목을 불렀다.
|
|
쑥대머리 귀신형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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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막 옥방 찬 자리에
|
|
춘향이 쑥대머리로 감옥에 갇혀 있는 장면이었다. 헌데 억지로 한 곡조 뽑고
|
있는데,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. 조교라는 자도 웃다가 다분히
|
조롱하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. 쑥대머리 어디 따로 있나, 당신 머리가
|
쑥대머리지.
|
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, 그런 반응은 갓 쓰고 한복 입으며 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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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에 대한 조롱이기도 했으니 나는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. 왜 우리 것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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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것일까. 세상은 왜 이렇게 변해야만 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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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묻고 또 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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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일도 있었다. 머리를 땋고 지내던 시절이니 오래 전의 일이었다. 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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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내게 바람 좀 쐬라며 서울의 지인들이 초청을 했다. 마침 여행도 좀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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싶었던 차라 서울로 올라갔다. 지인들 가운데 아주 괴팍한 사람도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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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이미 작정을 했는지, 아니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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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상한 곳으로 데려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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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이트 클럽이었는데, 거기에서는 여자들이 옷을 다 벗고 춤을 추는 스트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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쇼가 벌어지고 있었다. 참으로 망측한 모습이었다. 동방 예의지국에서 이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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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괴한 짓이란 말인가.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. 더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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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인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손님들도 벌거벗은 여자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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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복을 입고 그렇게 앉아 있으니 자기들 눈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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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양이다. 나는 쩔쩔매며 시선 둘 곳을 찾았다. 지인들은 그런 나를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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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아라 웃어댔다. 사람을 초청해 놓고 그 모양을 만들어 놓았으니 봉변치고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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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주 해괴한 봉변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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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산업이라 부르는 게 기이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향락 산업이 날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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번창한다고 하니,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. 내가 봉변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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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향락에 깊이 빠지는 나라 치고 잘되는 꼴을 본 적이 없다. 그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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타락으로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나 같은 사람들을 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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낄낄거리겠지만, 그렇게 살다가 큰 봉변을 당하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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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쓰고 당하는 봉변이야 갓을 쓰고 사는 사람이 감수하면 된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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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수만 한다고 능사가 아닌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. 인간이 주체가 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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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는 문명의 이기, 우리 것을 기이하게 여기는 왜곡된 정신, 그것들은 갓을 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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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지 않는 사람에게도 끝내는 크나큰 봉변을 안겨 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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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꼽티 입은 아가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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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름에 도시에 가 보면 눈에 쏙 들어오는 게 있다. 여자 배꼽들이다. 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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음탕한 사람이라서 눈을 이러저리 돌리며 찾아내서 보는 게 아니다. 차마 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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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망해 시선을 돌리려 해도 여기서 쑥 내밀고, 저기서 쑥 내밀며 다니는 데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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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주로 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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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꼽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 옷을 입고 다닐 터이니, 그런 아가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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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나면 배꼽을 뚫어지게 쳐다봐 주면 좋아할까. 그리고는 그 배꼽 참 예쁘다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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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꼽 참 귀엽게도 쏙 들어갔다는 식의 찬사를 덧붙이면 더 좋아할까. 그 배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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섹시하다고 하면 회심의 미소를 지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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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통을 쳐 봐야 남의 시선 따위는 이미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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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 터이니 소용이 없을 테고, 무슨 말을 해야 할까. 배꼽 보기 싫은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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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관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고, 배꼽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라고 할 터이니 그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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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시하고 가 버리면 될까. 그러나 아무리 따져봐도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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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다. 개성도 좋고, 남의 눈에 띄고 싶은 욕구도 좋고, 섹시해 보이고 싶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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욕망도 다 좋지만, 성도덕의 타락과 방종으로 병들어 가는 이 땅의 현실을 생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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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 결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넘겨 버릴 수는 없다. 이런 말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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야용회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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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장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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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한 노출과 같은 지나친 꾸밈은 음욕을 부르고, 엉성하게 감추면 도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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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른다는 뜻이다. 배꼽을 드러내 놓고 다니는 아가씨들은 때로는 멋을, 때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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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함을 내세워 자기 옷을 정당화할 것이다.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음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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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러일으키려는 유혹으로, 시선을 끌기 위한 바람기의 발동으로 먼저 보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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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도덕의 타락과 방종을 성폭행이 기승을 보루고 있다. 대부분 인면수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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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된 남자들이 저지르는 짓이다. 가정을 파괴하고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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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폭행범들은 진정 인간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무리들이다. 많은 정숙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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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인들도 그들의 희생이 되니,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겠다. 그래도 짚고 넘어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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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있다. 배꼽을 쑥 내밀고 다니는 여자들처럼 스스로 사람들의 음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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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은 성폭행과 같은 죄악의 일정 부분 영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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끼쳤음을 인정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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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동물과 구분된다. 그러나 그 능력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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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. 가정과 사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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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서 그 능력을 배운다. 그래서 조절 능력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사람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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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까워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동물에 가까워진다. 사회가 지나친 노출과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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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쁜 환경 속에 빠지면 동물에 가까운 사람의 동물성을 자극함은 물론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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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에 가까운 조절 능력을 가진 사람도 흔들어 놓아 자기 능력을 조금씩 잃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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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든다. 사람들을 그렇게 나쁜 쪽으로 변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성폭행과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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죄악, 타락, 방종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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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꼽티 입은 아가씨는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. 자신은 그저 개성대로 입은 것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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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 언제 성폭행을 하라고 말한 적이 있냐고, 성폭행을 저지른 놈이 나쁜 놈이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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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가 무슨 상관이냐고. 그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. 그러나 옳다고 얼굴 빳빳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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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워 주장할 것도 없다. 옛말에 훔쳐간 사람보다 잃어버린 사람이 더 문제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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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다. 잃은 사람이 훔친 사람의 도심을 발도시키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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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. 노출이 심하거나 행실이 정숙하지 못한 여자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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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자들은 동물에 가깝도록 만드는, 음욕을 발동시키는 잘못이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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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의 노출과 정숙하지 않음이 문제가 되지만, 그 말을 여자가 제대로 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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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해 사회에 성 문제가 만연하고 있다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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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. 여자와 남자는 서로 대결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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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라 조화로 관계를 맺는다. 단,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지켜야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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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있다.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면 소중한 것을 잃는다. 너무도 당연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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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과가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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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극을 보기 위해 지인과 함께 서울의 동숭동을 간 적이 있었다. 거기서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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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만 차마 눈 뜨고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.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느 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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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녀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. 그것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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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주 열정적으로. 갓을 쓴 내가 눈을 부라리며 다가가도 그들은 아랑곳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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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았다. 나는 참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. 대강 이런 말이 오갔다.
|
"자네들 그렇게 좋은가?'
|
"네?'
|
"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꼭 이래야 하는가?"
|
"뭐가 어때요? 솔직한 것이 좋은 거 아니에요?"
|
"솔직하다니 뭐가 솔직하단 말인가?"
|
"왜 이러세요? 서로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고, 그게 솔직한 모습이 아니냐는
|
말입니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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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야.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...."
|
"누가 혼자 산다고 했어요?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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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자네들 사람과 개의 차이가 뭔 줄 아나?"
|
"네?"
|
"감정을 조절할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게 사람이고, 그렇지 못하고 제멋대로
|
구는 게 개야."
|
"뭐라구요? 지금 우리가 개라는 말이에요?"
|
"왜, 그런 말은 듣기 싫은가?"
|
"그걸 말이라고 하세요?"
|
"내 말은 자네들이 개라는 소리가 아니야. 사람이라면 어떤 것이 가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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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동이고, 어떤 것 이 가치 없는 행동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야. 어디서
|
배웠는지 모르지만 자네들 이러는 거 형편없이 가치가 떨어지는 짓이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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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. 알겠나?"
|
"흥, 별꼴이야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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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지막 말은 실실 웃기만 하고 있던 젊은 여자가 한 소리였다. 그들은 결코
|
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다. 결국 내가 먼저 그 자리를
|
뜨고 말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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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젊은이들을 두고 이른바 X세대니 신세대니 하는지는 모르겠다. 그 세대를
|
두고 소비 문화에 물든 부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,
|
다양성을 추구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개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세대라고 인정하는
|
이들도 있는 모양이다.
|
새로운 세대들은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기성세대들의 오래된 좋지 않은
|
습성이기도 하다. 기성세대의 잘못이 그대로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지는 것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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큰소리만 칠 일도 아닌 것이다. 그러나 새로운 세대에게 옳은 것은 옳고 그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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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기성세대다. 비록 새로운 세대가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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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점을 지니고 있다 해도, 그것이 인간적인 성숙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. 그렇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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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그 장점을 인간적인 성숙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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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로운 세대를 위해 기성세대들이 가르치고 도와 줄 일도 바로 그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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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하기에 따라서 사람에 가까울 수도 있고, 동물에 가까울 수도 있기
|
때문에 우리는 늘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따질 수밖에 없다. 배꼽을 드러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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놓고 다니는 아가씨나 남들이 보건 말건 포옹하는 신세대 연인들만의 문제는
|
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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텔레비전을 보노라면 보기 민망한 꼴을 자주 접하게 된다. 이른바 지성인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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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리는 여자들 이 카메라 앞아 앉아 있는 꼴을 볼 때도 그렇다. 상당수가 다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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꼬고 앉는다. 아마 서양 여자들의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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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는 서양이 아니다. 여자가 앉을 때 갖추어야 할 예법이 엄연히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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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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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리를 꼬고 앉을 수 있단 말인가. 배꼽을 내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발 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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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끄러운 짓이다. 다리를 꼬고 앉아 성폭행이 만연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말하는
|
여자 지성인이여, 먼저 그 다리 좀 제대로 하고 앉아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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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개성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. 개성이 없는 사람들은 인생의 멋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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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지 못한다. 그러나 함께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성도 가치의 잣대로 재 봐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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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인간적 가치를 떨어뜨리는 개성은 참된 개성이 아니라 타락이요 방종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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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이다. 사람들에게 내보일 것은 배꼽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로 빛나는 얼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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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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텔레비전 씨에게 보내는 편지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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테레비전 씨, 기제후 일양만강하옵신지요. 문명 사회의 한복판에 우뚝 서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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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. 사람이라면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빠짐없이
|
바라보고 있으니 이 사람 즐겁게 해주랴 저 사람 비위 맞춰주랴 고생이 이만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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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닐 것입니다. 그런데도 모두 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대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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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하고 계십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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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히 바보상자라 하여 텔레비전 씨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으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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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연히 저까지 화가 날 지경입니다. 그러니 당사자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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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가 먼저 그 누명부터 벗겨드리고 싶습니다. 옛말에 이런 게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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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불취인 인자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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색불미인 인자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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텔레비전 씨도 이른바 한글 세대이니 한자는 잘 모르시겠지요. 그 뜻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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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습니다.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저 스스로 취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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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고, 남녀간의 욕정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저 스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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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혹됨에 빠지는 것이라는 얘깁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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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식으로 말하면 텔레비전 씨가 바보상자이기 때문에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게
|
아니라 텔레비전 씨 앞에서 사람이 저 스스로 바보가 된다는 뜻입니다. 그렇지
|
않겠습니까. 천재도 텔레비전 씨와 사귀는데 그는 귀하와 바보스럽지 않게
|
어울리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천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. 사리가 그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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줄도 모르고 바보상자라 손가락질을 하니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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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테레비전 씨, 저의 말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. 저는 일방적으로 누명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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씌워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것일 뿐입니다. 귀하는 옳고 귀하를 바라보는
|
사람들은 그르다는 얘기가 아닙니다. 저는 귀하를 예찬하는 사람도 아니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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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부를 하려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.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귀하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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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보상자라는 누명을 쓸 만한 원인을 제공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, 거기에 대한
|
반성은 하고 계시는지요?
|
먼저 청학동에서 처음 귀하를 만난 일을 말씀드리죠. 아마 팔십 년대 초로
|
생각됩니다. 그때는 아마 귀하가 색깔 있는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였을
|
것입니다. 그러나 그때 청학동으로 들어온 딱 한 대의 텔레비전은 흑백의 옷을
|
입고 있었습니다.
|
당시 생명부지의 귀하를 보고 청학동에는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. 어떤 변고가
|
생긴 것은 아니고, 귀하의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주 역시 신통했기
|
때문이었습니다. 지난날 뜻밖에 찾아온 가설극장 앞에 들뜬 사람들이 모이듯,
|
마을 사람들 모두 귀하 앞에 모여 그저 입을 벌리고 신기해 했었지요. 그것은
|
충격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. 그만큼 귀하는 처음 대하는 순간부터 대단한
|
존재였습니다.
|
세월이 흐르면서 귀하의 대단함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. 신선이 되면
|
천리안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, 귀하는 벌써 천리안의 능력을 갖고 계시니
|
신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. 지구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을 귀하의
|
얼굴에서 볼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겠습니까.
|
그러나 텔레비전 씨, 오늘 이 편지를 쓰는 것은 귀하의 능력을 추켜세우기
|
위해서만은 아닙니다. 아무리 좋은 면만 보려 해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들이
|
있기에 붓을 든 것입니다. 저 나름대로는 예의를 갖추어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
|
아무쪼록 화를 내시지는 않기를 바랍니다.
|
먼저 획일화를 강요하는 귀하의 독재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. 귀하가
|
무엇이 좋다 하면 사람들은 모두 그리로 우르르 몰리고, 변덕을 부린 귀하가 다시
|
다른 것이 좋다고 하면 또 사람들은 그리로 달려갑니다. 귀하는 내가 언제
|
독재를 부렸냐,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른 것뿐이지, 라고 전가하시겠습니까.
|
그게 아닙니다. 물론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 역시 응분의 책임을 져야
|
하겠습니다. 독재자를 만든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듯이 말입니다. 그러나 귀하는
|
자신의 영향력을 잘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말을 하곤 합니다. 언젠가 채식만이
|
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저 개인적으로는 꼭 잘못된
|
주장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. 그러나 귀하의 주장은 독재자의 구호처럼
|
사람들을 사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. 고기를 지나치게 많이
|
먹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경고가 될 수 있지만,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고기를
|
지나치게 먹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까?
|
아닙니다. 대부분 고기를 많이 먹지 못합니다. 어쩌다 날 잡아서 먹는 게
|
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.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저도 가끔 먹는 고기에 대해
|
걱정하도록 귀하는 일방적으로 선동했습니다. 골고루 먹는 게 영양에 좋다는
|
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, 독재자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는 국민을
|
보고 즐기듯, 귀하는 자신의 선동에 사람들이 말려드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까.
|
그래놓고는 시간이 조금 흐르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귀하는 입을 싹
|
닦습니다. 독재자의 뻔뻔한 식언과 너무도 닮은 태도 변화입니다. 어떤 계기가
|
생기면 돼지고기가 몸에 좋다고 떠들고, 그러면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으려고
|
아우성을 칩니다. 어디 먹는 것만 이렇겠습니까.
|
요즘 사람들은 귀하를 보면서 얼굴도 닮아가고 입는 옷도 닮아가고, 끝내는
|
생각마저도 닮아간다고 합니다. 왜냐하면 귀하가 일방적으로 강요하기
|
때문입니다. 자기 분수와 직분에 맞게 개성적인 가치를 살려 창조적인 모습을
|
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귀하는 무척 인색합니다. 그저 어느 순간에 하나의
|
표본을 일방적으로 제시하고,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표본을 내세워 일방적으로
|
제시하는 식입니다. 귀하 앞에서 스스로 바보가 되는 사람들은 귀하가 제시하는
|
표본을 닮지 못해서, 흉내를 내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습니다.
|
소비를 부추기는 것도 그런 귀하의 독재성에서 나온 아주 나쁜 습성입니다.
|
요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사니 다른 사람들도 좀 보라는 식으로 귀하는
|
끊임없이 말을 합니다. 단순히 보라는 게 아니라 따라 해보라는 은밀한 유혹임을
|
귀하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입니다. 그런데 귀하가 내세우는 이런 식이라는 것이
|
거개가 일반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. 흉내를 좀 내려면 가랑이가
|
찢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. 그래도 사람들은 흉내를 내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.
|
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즘 세상에서 뒤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. 그것이
|
귀하가 노리는 것입니까?
|
드라마에 나오는 생활 수준이란 것도 예외는 있지만 대개가 일반인들의 생활
|
수준을 넘는 것들입니다. 심하게 얘기하면 남의 나라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
|
말입니다. 그런 것들을 보며 일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? 그 수준에
|
이르지 못해 갈등하고, 그 수준에 이르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 아닙니까?
|
그래서 물질만능 풍조가 팽배한 것이 아닙니까? 왜 소박한 삶 속에서의 사랑과
|
진실은 말하지 않고,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짓거리를 주고 말하는 것입니까?
|
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? 독재자처럼 굴면서 진짜
|
재미를 만드는 능력이 그렇게도 모자라십니까? 껍데기가 아닌 인간의 알맹이
|
진실을 캐내면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재미를 느낄 것입니다. 그럴 능력은 없으니
|
포기하고, 기이한 얘기들만 하는 것입니까?
|
성 문제를 말하는 귀하의 태도는 참으로 가관입니다. 드라마라는 것이 외도,
|
불륜, 이혼, 탈선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는 듯 지나치게 자주 그것들을
|
등장시킵니다. 가족들과 함께 보고 있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. 재미를 주기
|
위해 그런 것들을 주로 내세우시는 모양인데, 정말 딱하십니다. 설사 그렇다 해도
|
귀하는 그것들을 그렇게 지나치게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? 소중한
|
가정의 가치와 인간적인 만남의 중요성을 말해야 하는 것이 귀하가 할 일이
|
아니겠습니까?
|
물론 외도니 불륜이니 하는 것들이 재미있는 구경거리임은 분명 할 것입니다.
|
그러나 그 재미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. 귀하가 고작 그
|
정도의 존재입니까? 불 구경을 사람들은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. 물론 자기
|
집과 상관없는 불일 경우겠지요. 사람들이 그렇다고 불 구경을 위해 아무 곳에나
|
불을 지르는 것이 과연 사람이 할 짓이겠습니까.
|
귀하가 명심해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. 귀하는 저녁 시간에 모든 사람들을
|
사로잡습니다. 그래서 가족간의 대화마저도 막아 놓았습니다. 물론 귀하의
|
잘못만은 아니지만 책임이 없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. 그러니 귀하는 가족간의
|
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말하고, 그런 프로를 만들어야 합니다. 귀하를 보는
|
데만 시간을 투자하도록 강요하지 말고, 가끔은 텔레비전 씨를 끄고 가족간의
|
대화를 하라고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. 그래야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
|
지는 것입니다.
|
무리한 요구라고 하겠지만 조금만 바꾸면 엉뚱한 요구만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.
|
차마 귀하 입으로 자기를 보지 말라는 소리를 못하시겠다면, 어떻게 하면 귀하를
|
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지를 말하십시오. 돼지고기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말만 할
|
게 아니라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또 어른들대로 어떻게 이용하면 귀하를
|
유익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때까지 말하십시오.
|
그것도 무리한 요구라 하시겠습니까?
|
말씀드릴 것은 많지만 한 장의 편지에 다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, 마지막으로
|
한 가지만 더 고언을 드리겠습니다. 다시는 힘 있는 사람들의 편만 들지
|
마십시오.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귀하를
|
보면 구역질까지 나곤 합니다. 모욕적인 언사에 마음이 불편하시겠습니다만, 귀하
|
스스로 반성해 보면 저의 고언이 공연한 트집이 아님을 아실 것입니다. 평소에는
|
그런대로 평형 감각을 갖고 계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, 무슨 특별한 일만
|
생기면 귀하는 힘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나팔수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까.
|
저는 귀하의 적이 아닙니다. 오히려 귀하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는
|
편에 서 있습니다. 귀하 덕에 전세계의 많은 정보를 얻고, 스트레스도 풀고
|
합니다. 그래서 귀하에게 붙여진 바보상자라는 누명을 벗겨드리고 싶습니다.
|
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. 그렇다면 귀하도
|
그런 사람들을 위해 고언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,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하는
|
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?
|
부디 귀하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빌겠습니다. 귀하가 건강해지면 귀하를
|
아끼는 많은 사람들도 건강해질 것입니다.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해 보면서 이만
|
글을 줄이겠습니다.
|
|
최고의 투기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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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이란 놈은 요물이다.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다가 금세 얼굴을 바꿔
|
배반하는가 하면, 울리다가는 웃기도 웃기다가는 또 울린다. 배고픈 사람에게는
|
구원의 얼굴을 내밀다가 배부른 사람에게 가면 탐욕의 얼굴로 둔갑을 부리기도
|
한다.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놈이다. 그러면서 세상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떡
|
버티고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거드름을 피운다.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.
|
사람들이 너나없이 그 놈을 먼저 차지하려고 덤벼들기 때문이다. 주머니가 빈
|
사람은 비었다는 이유로 주머니가 찬 사람은 더 큰 주머니를 만들려는 이유도
|
모두 덤벼든다.
|
워낙 요물스럽기에 사람들은 돈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 왔다. 그런 게 없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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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물에게 언제 피해를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. 그래서 잘만 이용하면 선의 도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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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지만 잘못 이용하면 악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. 돈이란 요물을 만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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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 사람이니 사람이 잘만 쓰면 그야말로 세상을 잘 굴러가게 하는 돌고 도는 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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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러나 탐욕스런 투기꾼들에게 돈은 포식의 대상이 뿐이다. 돈이란 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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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사스런 짓을 하건 말건, 악의 도구가 되건 말건,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, 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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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머니에 그것을 넣는 것이다.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. 그런데 그 주머니는 입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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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무는 법이 없다. 아무리 처넣어도 늘 입을 해 벌리고 있다. 참으로 염치없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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족속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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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투기꾼들 가운데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. 첫번째로 꼽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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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투기꾼은 정치가요, 구 번째는 종교인이요, 세 번째는 일반 투기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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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가는 참다운 정치를 꿈꾸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정치 장사꾼을 말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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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인은 존경받는 성직자를 제외한 일부의 종교 장사꾼을 말하고, 일반 투기꾼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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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흔히 보는 투기꾼을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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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가가 왜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투기꾼이 될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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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가니 커서 국가와 민족을 담보로 해서 투기를 하기 때문이다. 선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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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때 정치가들은 투기를 목적으로 많은 투자를 한다. 투자하는 꼴을 볼라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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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가 막힌다. 남에게 그렇게 돈을 주고 싶은지, 들키지 않으려고 도둑고양이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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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밀히 주고, 받지 않을까봐 무릎을 꿇고 주고, 부담스러워할까 봐 웃음을 실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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흘리며 준다. 천성이 그래 평소에도 그런다면 오죽 좋으련만, 투자할 시기에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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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니 애석한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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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불법적인 투자가 아니어도 그들은 엄청난 투자를 한다. 이미 부자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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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몇 억 몇십 억을 우습게 꺼내 뿌리고, 돈이 좀 적은 사람은 집 팔고 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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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고, 은행 융자받고, 주위 사람들 주머니까지 뒤져 속으로 울면서도 누가 볼까 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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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뿌린다. 뿌리는 게 돈만은 아니다. 선심성 공약이란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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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구 뿌려댄다. 다리를 놓아준다, 도로를 닦아준다, 공장을 유치해 준다, 또 뭐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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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준다 하면서 투자 보따리를 잔뜩 풀어 놓는다.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이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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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약을 많이 하는데, 그들은 입법부에 있으니 입법이 최우선적인 일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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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다리 놓고, 도로 닦는 게 제 일인 양 여기며 환심을 사려고 마구 공약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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뿌려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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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의적으로 뿌리는 게 또 있다. 지역 감정을 조장하거나 지연, 학연, 혈연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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총동원해 파벌 의식을 조장해 이익을 보려 한다. 정치가들이 제 이익을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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뿌려놓은 지역 감정은 이미 망국의 병이 되었다.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이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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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탄스런 한이 쌓여 있는데, 그것도 모자라 경상도가 어떠니 전라도가 어떠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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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청도가 어떠니 하며 갈가리 찢어져 한을 더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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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한 성씨가 다르다고 원수를 만들어 놓고, 출신 학교와 마을이 다르다고 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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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지게 만들어 놓으니, 그 죄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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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국가와 민족이 어떻게 되건 말건 그들은 일단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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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원해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. 말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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늘어 놓으며 국가와 민족을 멍들게 하고 있으니, 도대체 이런 정치가들의 목적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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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이란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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뻔하다. 선거 때 투자를 해서 일단 당선이 되면, 본전은 물론이요 몇 배 몇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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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의 이득을 취한다. 그것이 정치 투기꾼의 목적이다. 순진한 사람들은 이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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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할 것이다. 당선이 됐다고 해도 법적으로 받는 월급이나 세비가 뻔할 텐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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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. 그러나 순진한 국민들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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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제 다 안다. 불법적으로 온갖 이득을 취해 투자한 돈의 몇 배 몇십 배를 긁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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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으는 것을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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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선으로 주어진 권력을 이용해 온갖 이권에 개입한다. 이권으로만 본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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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 일에 이권 다툼이 없는 곳이 거의 없으니, 어디고 제 특기대로 손만 뻗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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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이 굴러 들어오는 모양이다. 그래서 선거 때 아쉬움 없이 돈을 뿌려댄 부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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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가들은 제 통장을 빠져나간 일부를 다시 채워넣는 것은 물론, 통장을 더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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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툼하게 만든다. 돈이 적어서 집 팔고 땅 팔고 융자 받고 주위 사람의 주머니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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뒤진 사람은, 더 큰 집 사고 더 넓은 땅 사고 융자 받은 은행에 저금하고 주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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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청탁을 받아들여 그들의 주머니를 다시 채워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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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 자금이니 비자금이니 하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쓰이는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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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. 억도 그냥 억이 아니라 동그라미가 몇 개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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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해진 억이 거래되니 그 천문학적 숫자에 먼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.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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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가는 얼마나 긁어 모았는지 부하들에게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씩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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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별금으로 뿌리기도 했단다. 그것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또 다른 방편이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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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니 선거가 끝나도 투기는 계속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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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과 선심 공약과 지역 감정 조장과 파벌 조작 등을 투자해 이득을 취하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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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치 투기꾼들이 설쳐대는 한 우리나라는 희망에서 점점 멀어진다. 국가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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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을 좀먹는 이런 투기꾼들 대신 진정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치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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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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맹자는 벼슬아치가 자기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고, 옳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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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말을 받아들이게 하지 못하면 역시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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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. 어찌 맹자의 말이기만 하겠는가. 주어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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직책은 제쳐둔 채 투기꾼이 되어 이익을 쫓는데 급급한 정치가들은 마땅히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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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. 물러나는 길만이 그들이 말로만 떠드는 국가와 민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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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하는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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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 장사꾼들도 정치 투기꾼 못지 않게 폐해를 가져온다. 신성 모독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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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분수지 그들은 감히 신을 팔고, 신앙을 팔고, 말씀을 판다. 정치 투기꾼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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겉으로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듯 그들은 신을 내세운다. 거룩한 신을 내세우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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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감히 의문을 던지지 못한다. 신앙을 내세우니 신자들은 오로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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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달리기만 한다. 말씀을 내세우니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. 그렇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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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으면 신의 은총을 기대할 수도 없고, 천당이나 극락 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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믿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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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종교 장사꾼들은 종단이니 교단이니 하는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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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고, 그것을 키우기 위해 시주금과 헌금을 열성적으로 모은다. 신에게 바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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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이라는 신념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불어넣는다. 물론 그런 돈들이 가난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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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쓰이거나, 신앙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성전을 짓는 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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쓰인다면 신에게 바치는 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. 참된 성직자들은 실제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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돈을 그렇게 사용할 것이다. 그것은 단순한 돈의 사용법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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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된 신앙의 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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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적지 않은 종교 장사꾼들은 내실보다는 외형을 키우는 일에, 자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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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락과 탐욕을 채우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쓴다. 성전이 커지고 성직자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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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살아야 종교가 성공한 것으로 믿게 만들기 위해 그들은 무척이나 노력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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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 장사꾼들의 농간에 속은 사람들은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그저 따라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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간다. 자기가 속한 교회나 사찰을 크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현금과 사주를 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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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자 수를 늘리기 위해 열심히 사람들을 끌어들인다. 그러다보니 엉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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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앙인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. 이웃에 사랑과 자비와 어짐을 베푸는 일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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별 관심이 없는 듯 태만하고, 인간적인 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일은 외면하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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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 장사꾼이 요구하는 것에는 충실하려는 이들이 많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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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.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아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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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와 함께 사는 여자였다. 여자는 교회 다니는 데 아주 열성적인 기독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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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자였다. 주일날만이 아니라 교회가 필요하다면 언제고 달려가는 열성을 갖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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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외견상 보면 훌륭한 신앙인이라 할 법도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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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같은 교인이 아닌 이웃 사람들은 그녀를 좋게 보지 않았다. 때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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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난도 서슴지 않았다. 왜냐하면 그녀의 행실이 너무도 인간적인 도리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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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. 그녀는 늙은 시어머니를 몹시도 구박했다. 밥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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차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, 하루가 멀다하고 큰소리로 시어머니와 싸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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늙었으면 빨리 죽으라는 말도 거침없이 시어머니에게 퍼부어대곤 했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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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니 이웃 사람들에게 보인 잘못된 행실을 열거할 필요도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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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적인 도리로 보면 참으로 형편없는 그 여자가 교회에서는 신앙심이 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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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인으로 대접을 받는다. 헌금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일이라면 만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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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쳐두고 하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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딱한 노릇이다. 종교가 왜 있는 것인가. 인간적인 도리를 배우고 실천하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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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. 그런데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, 껍데기일 뿐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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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에만 매달려 그것을 신앙 생활로 착각하고 있으니, 껍데기일 뿐인 일에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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매달려 그것을 신앙 생활로 착각하고 있으니, 신이 보시면 크게 노하실 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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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닌가. 종교 장사꾼들이 있기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. 종교 장사꾼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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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를 집단 이기주의의 늪으로 몰아간다. 거기에서 종교의 진정한 존재 의미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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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는 것은 불가능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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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재림 예수가 나타난다면 그를 가장 박해할 사람들은 기독교를 내세우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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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 장사꾼들일 것이다. 마찬가지로 만약 미륵이 나타난다면 그를 가장 미워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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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불교를 내세우는 종교 장사꾼들 일 것이다. 투기꾼의 눈으로는 예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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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륵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, 중요한 이유가 또 있었다. 더 이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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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를 팔아 장사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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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 투기꾼과 종교 장사꾼이 적지 않은 세상이니 부동산 투기꾼을 비롯한 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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놓고 돈 먹기를 하는 일반 투기꾼들이 설쳐대는 것을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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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투기꾼들의 악영향 때문에 참된 일꾼이 되려는 사람들도 점점 사라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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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못된 투기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망해 버려라. 그래야 세상 사는 맛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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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대로 느끼며 살 수 있지 않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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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서갱유하고 싶은 세상의 횡설수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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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단행한 인물로 악명이 높다.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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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책이라는 책은 모조리 불태워 없앴고, 조정을 비난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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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자들을 마구 잡아들여 구덩이에 묻어 생매장을 시켰으니, 포악한 독재자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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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의 반역자란 악명을 들을 법도 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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로마에 불을 지르고, 불타는 도시를 즐겁게 감상한 네로 황제의 광기에 비견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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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을까. 광기라면 광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. 수백 명의 학자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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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매장시키고, 학문과 문화의 보고인 책을 모두 태워 버리는 걸 광기라 하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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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으면 무엇을 광기라 하겠는가. 그러나 광기라 해도 내막은 있었다. 진시황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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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날 갑자기 광기가 발동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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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날 진시황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열고 있었다. 그때 순우월이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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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진시황에게 자기 의견을 고했다. 당시 진시황은 대제국을 만들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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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앙집권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. 순우월의 의견은 중앙집권적인 제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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폐지하고 예전처럼 봉건제를 부활하라는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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봉건제를 부활해야 하는 이유로, 황실의 안녕을 내세웠다. 즉, 봉건제를 채택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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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방마다 제후를 두어 다스리게 하면, 황제에게 충성하는 그 제후들이 안전판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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될 수 있다는 것이다. 침략을 당하거나 누가 반란을 일으켜도 제후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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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성심으로 나서서 황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. 그런 제후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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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재를 부정하는 중앙집권적인 제도 아래서는 황실을 지킬 세력이 없어지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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재고해 달라고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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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우월의 말이 무조건 틀리다고만 할 수 없어 진시황은 신하들에게 제도에 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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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견을 말하라 했다. 그러자 이사라는 신하가 나서서 순우월의 시각을 단호하게
|
비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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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사의 주장은 이랬다. 과거 제후들은 두던 봉건제 시대에는 많은 문제점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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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제후들끼리 서로 세력을 키우려고 싸움을 일삼았기 때문에 늘 천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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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란스러웠다. 그러나 그 천하가 통일되어 법과 권위가 되살아났으니, 세상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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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평해졌다. 그런데 달라진 세상의 장점을 알지 못하고, 책에서 배운 학식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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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천하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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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이사는 아주 냉소적으로 보면서 위험한 존재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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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각시켰다. 그들은 자신의 학식만 가지고 법률이나 정책을 늘 도마 위에 올리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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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정에 나와서는 입을 다무는 주제에 밖에 나가서는 계속 논쟁거리를 만들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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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로는 의견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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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세력이야말로 후에 화근이 될 수 있는 위험스런 존재들이라며 이사는
|
진시황에게 문제의 분서를 단행하라고 청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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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내용인즉슨, 삶에 꼭 필요한 의술과 복술을 비롯해 농경에 관한한 글과 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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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체에 대한 역사적 글을 제외한 모든 책들을 태워 없애라는 것이었다. 그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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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문에 학식을 바탕으로 논란을 일삼는 무리들이 생긴다는 이유였다. 그러면서
|
이사는 책에서 배운 자식으로 논란을 하는 사람들을 처형시키는 등의 형벌까지
|
제안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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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시황은 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여 분서를 단행했다.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
|
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다. 물론 그 논리가 학식을 갖춘 사람들의 비판을
|
거부하고,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독재적인 것이었지만 단순하게 미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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짓으로만 볼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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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자들을 구덩이에 생매장한 갱유의 사연은 또 이랬다. 진시황은 후생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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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생이라는 두 학자를 몹시도 아껴 후하게 대접했다. 그런데 두 사람은 진시황의
|
호의 속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재물까지 충분하게 챙기게 되자 먼 곳으로 도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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갔다. 도망을 가서 두 사람은 진시황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아 나쁜 소문들을
|
만들어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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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에 진시황이 진노한 것은 물론이다. 진시황은 자기가 그렇게 호의를 베푼
|
사람들이 그 모양이니, 다른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짐작했다. 생각만 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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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로운 일이었다. 그래서 몰래 사람들을 거리로 보내 알아보게 했다. 예상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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많은 학자들이 조정과 진시황을 비난하는 게 현실이었다. 진시황은 그들을 모두
|
잡아들여 구덩이에 생매장하는 참혹한 형벌을 가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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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서와 갱유, 그것은 독재자의 광기어린 만행이요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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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문화적 폭거라 할 수 있다. 진시황이 아무리 자기 행동의 동기와 정당성을
|
주장한다고 해도, 결코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. 그러나 가끔, 아주 가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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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도 분서갱유하고 싶다고 느낄 때가 있다. 물론 모든 책을 다 태워 버리거나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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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를 생매장하고 싶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. 그런데도 세상의 그 많은 헛소리,
|
횡설수설, 잡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것들을 분서갱유하고 싶어진다.
|
세상을 어지럽히는 헛소리, 횡설수설, 잡소리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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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양한 의견이 많다는 소리가 아니다. 다양성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고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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속에서 참다운 창조가 가능할 수 있다. 스스로 깨우쳐 생각하는 자각적 사고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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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 없다는 것이다. 그런 상태에서 이론이 넘쳐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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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각적 이론이 아니라 입으로 달달 외운 이론이 홍수처럼 세상을 휩쓸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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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9퍼센트의 이론보다는 단 1퍼센트의 실천이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. 헌데 요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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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을 보노라면 1퍼센트의 실천도 하지 않는 무리들이 온갖 소리를 해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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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갖 헛소리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온갖 횡설수설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온갖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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잡소리로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. 순정이 없는 기생의 교태처럼 겉만
|
번지르르한 말과 이론들이 서로 잘났다고 고개를 내미는 꼴을 볼라치면 구역질이
|
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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잡지를 비롯한 온갖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온갖 소리들이 대부분 허황하게만
|
들린다. 단순히 허황한 것만도 아니다. 때로는 아주 가증스럽고 간악하다.
|
무엇이 인간과 사회에 유익한 것인지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이고, 그저 흥미거리로
|
사람들을 붙잡으려고 온갖 헛소리, 횡설수설, 잡소리를 늘어놓는다.
|
서양물 먹고 돌아와 행세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,
|
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. 교묘하게 이론을 엮어
|
가지만, 실체는 텅 빈 것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. 서양물 먹지 않아도
|
그와 다를 바 없는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 역시 어찌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
|
끊임없이 입을 놀리고 펜을 놀린다. 그런데 제대로 쓸 만한 말이나 글은
|
찾아보기 힘들다. 오로지 말이나 글을 밥벌이와 명예를 얻는 수단으로 삼기
|
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.
|
자식을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허풍쟁이들도 온갖 헛소리, 횡설수설, 잡소리를
|
일삼는다. 그들은 모르는 게 없어 보이지만 어제 한 말이 다르고 오늘 한 말이
|
달라지기 십상이다. 삶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고 실천하는 그런 말 그런 이론이
|
아니라 그저 허영 때문에 내뱉는 것이기 때문이다. 책임지지도 못하는 말로
|
비난과 중상을 즐기는 부류들도 많다. 비난할 먹이만 생기면 기회다 싶어
|
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지만, 정작 자신은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다. 자신의
|
임무는 비난과 중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듯 구는 한심한 족속들이다.
|
이런 현실이니 미래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 청소년들도 나쁜 습성에 빠져들곤
|
한다. 생활에 입간한 실천 교육을 받지 못한 상당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잘못
|
때문에 뭐가 뭔지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놀려댄다. 그저 즉흥적으로
|
느끼는 대로, 자기 편리한 대로 말하고 주장하고 고집을 부린다.
|
가끔 아주 가끔 나는 이런 현실에 분통이 터지면 분서갱유를 하고 싶어진다.
|
이런 나의 말을 듣고 어느 지인은 독재자를 인정하는 반민주적인 태도가 아니냐고
|
했다. 다양성을 인정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소리다. 그러나 헛소리,
|
횡설수설, 잡소리를 다양성이라는 으름으로 포장할 수 없다.
|
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현명하고 선량하라는 말이 있다. 사람이
|
현명한지 선량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자유를 구가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.
|
현명하지 못하고 선량하지 못한 자들이 누리는 자유의 결과는 당연히 현명하지
|
못하고 선량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. 온갖 헛소리, 횡설수설, 잡소리도 따지고
|
보면 현명하고 선량하지 못해서 나오는 소리들이다. 그것들은 자유를 누릴
|
가치가 없는 것이다. 뿐만 아니라 설사 스스로 현명하고 선량하다고 판단하고,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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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탕 위에서 어떤 소리를 한다고 믿고 있어도, 지나치게 그것에 매달려 자기 말을
|
즐기면 참된 진리를 잃고 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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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자는 "재유편"에서 이에 대해 말했다. 재유란 천하를 스스로 너그럽게 있게
|
하는 것을 뜻한다. 그것을 읽어 보면 자기가 아는 것을 지나치게 즐기는 것이 왜
|
문제가 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. 재유편의 일부분을 대강 옮기면 아래와
|
같다.
|
|
눈이 밝음을 즐기는 것은 색깔에 빠지는 것이요, 귀가 밝음을 즐기는 것은
|
소리에 빠지는 것이며, 인을 즐기는 것은 덕을 어지럽히는 것이요 의를 즐기는
|
것은 도리를 어기는 것이다. 또한 예를 즐기는 것은 기술을 조장하는 것이요
|
악을 즐기는 것은 방탕함을 돕는 것이며, 성을 즐기는 것은 속된 학문을 돕는
|
것이요 지, 바로 지식을 즐기는 것은 시비를 따지는 병을 돕는 것이다.
|
세상이 장차 그 성명의 진실에 편안할 수 있으면 명을 비롯한 여덟 가지는
|
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겠지만, 세상이 장차 그 성명의 진실에 편안할 수 없다면
|
그 여덟 가지는 사람을 얽매고 바쁘게 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 것이다.
|
그러하거늘 사람들은 그 여덟 가지를 숭상하고 아끼니, 참으로 미혹됨이 심하다.
|
더구나 그것들을 존경하는 정도에 그치면 그만이겠지만,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
|
깨끗이 씻은 후에 그것을 말하고, 꿇어앉아서 그것을 주고 받고 북치고 노래하며
|
떠들어대니 이것들을 어찌해야 하겠는가.
|
|
올바른 지식이라도 지나치게 즐기면 시비를 따지는 병이 될 뿐이라고 장자는
|
지적했다. 올바른 지식도 그러할진대, 그릇되고 비뚤어진 지식을 온갖 헛소리,
|
횡설수설, 잡소리를 늘어놓으면 그 폐해가 어떠하겠는가.
|
세상을 공연히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사람은 말이나 어떤 이론을 내세우기에
|
앞서 자신이 현명하고 선량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. 더불어서 자기의 말이나
|
이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. 책임을 진다 함은 삶 속에서 실천을
|
해야 함을 뜻한다. 실천할 수 없는 숱한 소리들은 세상을 혼란스럽게만 할 뿐
|
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. 교묘하게 이론만 앞세우는 사람은 분서갱유라는
|
반문화적 폭거를 단행한 진시황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.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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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증 앓는 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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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사회는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쌓아 온 지식 때문에 심한 갈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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겪고 있다. 지식이 왜 문제일까. 언뜻 보면 지식의 많고 적음 때문에 사회가
|
갈등한다고 하겠지만, 그건 아니다. 지식이 너무 넘쳐서 혹은 지나치게 모자라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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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가 갈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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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지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를 보면 부러움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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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끼고, 때로는 그 부러움이 지나쳐 마음 상처를 입기도 한다. 그러나 부러움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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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등의 요인이라기보다는 발전의 원동력으로 봐야 할 것이다. 자기 분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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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다는 것이 부러움마저 갖지 말아야 함을 뜻하지는 않는다. 그런데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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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지식의 많고 적음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. 거기에는 이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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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학벌을 지나치게 중시하기 때문이다. 여러 개인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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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정으로 인해 좋은 학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사회적인 차별을 경험할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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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노하고, 때로는 열등감에 빠지기도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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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거기에서 사회적인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. 그러나 그런 현상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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능력이나 실제적 가치보다 우선적으로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의 폐단일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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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식 그 자체의 많고 적음 때문이 아니다. 왜냐하면 학벌이 곧 지식의 많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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적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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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사람은 다 살면서 배운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고 거기에는 차등이 있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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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련이다. 그러나 학교에서만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 아니다. 가정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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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. 학벌이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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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금 떨어지는 사람이건 각자가 세상에서 담당하는 분야가 있고, 거기에서 얻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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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식이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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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식이 철철 넘쳐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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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것이다. 모두 제각기 자기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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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이다. 예를 들어 나이 어린 고졸 여사원이 특정 분야의 유명한 박사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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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학에 대한 지식이 훨씬 높을 수 있다. 그건 이상한 게 아니다. 특정 분야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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넘어선 보편적인 지식 역시 학벌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. 그렇기 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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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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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밀히 말해 지식의 많고 적음이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. 그렇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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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대체 지식이 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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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제는 지식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. 그래서 온갖 사회적 갈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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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러일으킨다. 왜 제 구실을 못할까. 정신과 갈등하기 때문이다. 배워서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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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식과 마음의 알맹이인 정신이 어긋나, 그 둘은 서로 물어뜯으며 다투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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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. 잠시 한눈을 팔면 시대에 뒤떨어질 정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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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는 빠르다. 어찌나 빠른지 정신없다거나 어지럽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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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깜짝깜짝 놀라 간이 떨어질 정도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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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세상이니 지식이란 것도 홍수처럼 밀려와 쌓인다. 세상이 급속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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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명이 빠르게 밀려온다는 뜻이고, 새로운 문명이란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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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것이다. 새로운 문명이니 새로운 지식이니 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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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 그 새로움은 긍정적인 면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전에 보지 못했던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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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는 뜻이다.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밀려와 사람들을 압박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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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,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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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기 위해서 사람들은 마구 지식을 섭취한다. 세계 각지에서 밀려오는 지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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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도록 빨리 또 많이 섭취하려고 허겁지겁 먹어댄다. 급히 먹는 밥이 체하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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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허겁지겁 지식을 받아 들이다가 체증에 걸린 게 이 땅에 사는 요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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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초상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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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라는 것에는 과정이 있고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. 머릿속에 지식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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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운다고 능사가 아니다. 우리의 생활과 의식을 향상시키고, 우리의 정신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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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를 제대로 세우면서 지식을 쌓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. 마치 변화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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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체가 중요하고, 지식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인 양 급히 섭취하기에 바빠 지식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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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식대로 따로 놀고, 정신은 정신대로 따로 노는 이상 상태가 된 것이다. 그러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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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증에 걸려 가슴에 어떤 풀 수 없는 응어리를 갖고 있는 게 당연한 결과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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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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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은 정신으로 생활 문명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을 때 정상적이고 희망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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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을 유지할 수 있다. 정신의 통제권을 벗어난다면 그 어떤 것도 혼란만 줄 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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삶의 질을 결코 높일 수 없다. 삶의 질이 낮아지니 당연히 문화와 역사는 새로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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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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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의 현대사를 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. 외견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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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면 많은 발전도 이루었다. 폐쇄사회에서 개방사회로 가고, 생활의 궁핍함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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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요로움으로 가고 있다.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작금에는 다이어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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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경을 쓰고 있으니 식생활만 따져도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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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전을 이룬 만큼 부정적인 변화도 무수히 겪으며 살고 있다. 인간으로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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존중할 태도와 바뀌어, 순수하고 따뜻한 정보다는 냉정하고 이기적인 욕심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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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세우거나, 남성이 여성화되고 여성이 남성화 되기도 하고, 속옷과 겉옷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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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차림새가 달라지기도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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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변화에는 갈등이 따르게 마련이다. 여러 갈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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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지식과 정신의 갈등이 가장 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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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업사회, 그것도 한강의 기적이니 무슨 기적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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급속도로 달라지는 산업사회에서 교육마저도 그것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. 학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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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의 교육도 그랬다. 그러니 지식은 기능적으로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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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용을 하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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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전통 문화를 올바로 승계해 발전시키는 것이 참된 문화 창조라는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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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는 사람은 없다. 지식의 하나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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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국의 문화가 우리 문화를 제치고 주인 행세를 하는 불행한 현실을 엄연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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벌어지고 있다. 왜 그럴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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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정신을 가지고 그 외국의 문화들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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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우리의 실패요 비극이다. 삶의 실패는 자기가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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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기는 것이다. 모를 때는 알도록 노력하면 되지만,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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때는 실패밖에 기다리지 않는다. 말로는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앵무새처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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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복하지만, 정신이 미치지 못하니 앵무새 소리를 지식의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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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 나아가서 지식마저도 이제는 왜곡되어 있다. 외국 문화의 침투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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농락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식도 외국의 것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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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물론 외국과의 교류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. 그러나 따라가기에 급급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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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자기를 잃는 것이다. 자기를 잃은 상태에서 무슨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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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인가. 어쨌거나 지식은 그것이 제대로 배운 것이건, 왜곡된 채로 받아들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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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건 정신과 갈등을 빚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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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대 사회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이라고 변명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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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 아니다. 변화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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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것을 다 누리려는 욕망이 앞서서,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이건 다 흉내를 내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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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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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의 알맹이인 정신으로 무엇이 소중하고, 무엇을 지키고, 무엇을 받아들여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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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았다. 일단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보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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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이었다. 얼핏 봐서 좋게 보이거나 욕심이 가는 것에는 생각할 필요성도 느끼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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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고 손을 뻗었다. 미련하게 밥을 먹는 아이와 다를 게 없다. 어느 날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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집에서 먹지 못하던 남의 집 음식을 본 한 아이는 생각도 없이 미련하게 마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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퍼먹었다. 이것도 맛있는 것 같고 저것도 맛있는 것 같아 수저를 정신없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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놀려댔다. 그렇게 입에 퍼넣는데 체하지 않고 배기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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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련한 아이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사회 변화를 무작정 받아들이다가, 어느 순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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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를 돌아보고는 스스로 놀란다. 도대체 왜 있는지도 모르는 것들에 자기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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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위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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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증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면 빨리 그 체증을 풀어야 한다. 그런데 가슴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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답답할 뿐 체증을 풀 방법을 알지 못한다. 그래서 엉뚱한 곳에서 빗나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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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법으로 풀려고 시도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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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자에 우리나라에서 향락산업이 번창하는 이유도 나는 거기에서 찾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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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증을 앓는 사람들이 풀 길을 찾지 못하자 향락 속에 묻혀 잊으려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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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시는 향락 산업이 숲을 이루고 있다. 체증을 앓는 가련한 영혼들이 가슴이 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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뚫리기를 기대하며 그 숲으로 간다. 그러나 그 숲은 순간적인 마취 구실을 해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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뿐 결코 체증이 내려가게 하지는 못한다. 애초에 향락으로 풀 체증이 아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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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런데도 사람들은 순간적인 마취일 뿐임을 알면서도 부지런히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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숲으로 간다. 그 숲으로 가는 길밖에 모르기 때문이다. 그러나 왜 길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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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겠는가. 현재 앓고 있는 체증을 내리고 앞으로 또 체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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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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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정신의 숲을 가꾸어야 한다. 지식이 갈등 없이 와서 어울리고, 문명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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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화라는 것이 머무르면서 참된 인간적 가치 속에서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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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의 숲을 가꾸어야 한다. 이 미 황폐화된 숲이라고 좌절할 것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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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의 숲을 가꿀 수 있는 싹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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길에서 만난 두 사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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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.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할 만큼 숱한 만남들이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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앞에 있었고, 또 기다리고 있다. 비록 무인도에서 홀로 살다가 하늘을 바라보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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죽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어떤 만남의 결과로 태어났고, 그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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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 것이다. 만남에는 잠시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도 있고, 오래도록 지속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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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장한 강물 같은 것도 있다.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도 있고, 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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떠올리며 그 향기를 맡아보고 싶은 것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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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은 대개 필연이라 하기엔 우연에 가깝고 우연이라 하기엔 필연에 가까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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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들이라, 만남의 대상을 사람이 스스로 선택할 수만은 없다. 인생의 그 많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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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은 오히려 언덕 위에 서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다가 만나는 바람과 닮아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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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헌데 잠시 스쳐가는 바람일지라도 향기를 몰고 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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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취를 담고 불어 오는 것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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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게도 숱한 만남들이 있다. 그 가운데 사소하기 그지없는 만남처럼 보이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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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도 잊지 못하는 두 만남이 있다. 두 만남 모두 길에서 우연히 이루어져 금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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끝난 것이었지만, 하나는 불행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행스런 것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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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당에서 공부하던 어린 시절의 일이다. 나는 괴나리 봇짐 하나 짊어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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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. 무작정 상경인 셈이었다. 서울에 대한 막연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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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대로 어린 가슴은 채워져 있었다. 거기에 나를 자극시키는 말까지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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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약용은 장안에서 삼백리 밖을 벗어나지 말라는 글을 남겼다. 그 영역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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벗어나면 사람도 문화도 달라진다는 것이었다.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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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주도로 보내라는 말과 다름없는 뜻이었다. 도대체 서울이란 곳이 어떻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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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가 하고 나는 잔뜩 호기심에 들떠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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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행열차를 타고 내린 곳이 용산역이었다. 댕기머리에 한복을 입고 괴나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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봇짐까지 매었으니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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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선 땅에서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느끼며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, 불안한 마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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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래기 위해 더욱 몸을 꼿꼿이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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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으로 그리던 서울로 오기는 했는데, 당장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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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막했다.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. 나중에 생각해 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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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역 광장으로 나온 나를 줄곧 따라붙어온 것이었다. 남자는 내게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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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로 오게 됐는지를 아주 상냥하게 물었다. 외지에서 나는 솔직한 심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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털어놓았다. 그러자 그 남자는 부처님을 흉내낸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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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가 모든 편의를 봐 주겠다고 했다. 직장도 알아봐 주겠다고 하니 나는
|
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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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함께 남산과 창경원 구경까지 했다.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왠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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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. 오후가 되어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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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 데가 있다고 말했다. 그러자 역시 친절하게 바로 앞에 아는 누나 집이 있으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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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짐을 맡기고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. 서울에서 돈이 든 짐을 들고 다니는
|
것은 위험하다고까지 했다. 그는 이미 내 짐 속에 하숙비가 들어 있음을 알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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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나는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. 그 남자는 내 짐을 들고 아는
|
누나의 집으로 들어갔다. 나는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. 헌데 시간이 꽤
|
흘렀는데도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. 조금 불안해진 나는 그 집 안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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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어갔다.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. 그 남자는 내 짐을 들고 뒷문으로
|
도망간 후였다. 아는 누나의 집이 아닌 것은 물론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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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머니에는 서당으로 돌아갈 차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. 잔돈까지 다 털어
|
대전까지 가는 기차표를 겨우 끊을 수 있었다. 밤 열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는
|
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허전했다. 사기꾼에게 속은 스스로를 책망하며, 서울에
|
대한 호기심마저 다 버리고 어둠 속을 질주하는 기차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.
|
새벽에 대전에 도착해 친구 박완식의 집을 찾았다. 친구에게 차비를 얻어
|
서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. 당시 내 나이 열 여섯 살이었다.
|
부처님 얼굴을 흉내낸 그 사기꾼은 내 돈만이 아니라 서울에 대한 순수한
|
기대감마저 가져가 버렸다. 남의 꿈마저 훔쳐간 그 사기꾼과의 만남은 삼십 년
|
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불행한 만남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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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행한 만남이 있으면 다행스런 만남도 있는 것이다. 그렇지 않으면 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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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이란 것을 기대하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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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었다. 우리의 정신과 전통에 대한 강연을 할 기회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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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겨서 찾아간 곳이었다. 나를 초청한 측을 대표해서 박 기자가 공항으로 마중을
|
나왔다. 우리가 공항을 막 빠져나가려는데 한국인인 젊은 부부가 다가와 인사를
|
했다. 초면이지만 갓을 쓴 나를 보고 그들은 반가워했다. 이역만리 머나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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땅에서 도포를 만났으니 나 역시 반갑기 그지없었다. 그러나 그들은 부모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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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중나온 처지였고, 나 역시 갈 길이 있는 몸이었으니 우리는 가볍게 인사만
|
나누고 헤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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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. 박기자가 매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찾아와 술을
|
마시러 가자고 했다. 우리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술집에서 자리를 잡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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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저런 얘기를 나무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밤 열한 시가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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술집에서 나온 나는 호텔을 혼자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. 비록 빌딩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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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호텔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. 박 기자는 자신하는 나를
|
두고 자기 집 방향으로 먼저 갔다.
|
깊은 밤에 낯선 이국의 도시를 걷노라면 약간의 두려움은 생기게 마련이다.
|
술기운으로 두려움을 털어내며 호텔로 걸음을 재촉했다. 별 어려움 없이 호텔
|
앞에 도착하기는 했는데,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. 문지기 흑인이 나올
|
때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. 출입문의 생김새도 아주 딴판이었다. 건물의
|
모양새를 보면 분명 그 호텔인데 어찌된 셈일까.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. 낯선
|
문지기 흑인에게 다가가 물어 볼 수도 없었다.
|
당시 나는 흑인 공포증 같은 것이 있었다. 흑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가
|
되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. 왜냐하면 밤거리에서 흑인들을 조심하라는 소리를
|
너무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.
|
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. 문지기야 교대를 해서 낯설다 할 수 있어도, 몇 시간
|
사이에 출입문이 아주 딴판으로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. 나는 혹시나
|
하며 호텔 주변을 빙빙 돌며 찾아 보았다. 비슷한 건물을 내가 호텔로 착각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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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. 그러나 아무리 찾아 봐도 내가 찾는
|
호텔은 보이지 않았다. 그렇다고 출입문이 달라진 그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도
|
없었다. 거리를 헤매다가 나는 길마저 잃고 말았다.
|
어두운 뉴욕의 거리에서 공포감이 밀려왔다. 미로 속을 헤매다가 영원히 국제
|
고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는 몸을 부를 떨었다. 달해 보지
|
않으면 그 심정을 모른다. 국제 고아도 국제 고아지만 불량배들에게 당장 무슨
|
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.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두세 시간을 헤맸다.
|
이미 새벽이 되었다. 그러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.
|
공포감 때문에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다. 설사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도 그 밤을
|
어떻게 보낸단 말인가.
|
망연히 이리저리 걷고 있는데, 어떤 차가 내 뒤에서 경적 소리를 냈다. 드디어
|
불량배들이 나를 먹이로 삼은 것인가.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. 그런데 이게
|
누군가.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자였다. 아내와 함께 부모를 기다리던 그
|
사람이었다. 깊은 밤이었지만 그는 한복을 입고 있는 나를 알아본 것이었다.
|
나는 너무도 반가워 한숨까지 푹 쉬었다.
|
그가 왜 그 시간에 그 거리를 지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, 결국 나는 그이
|
도움으로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. 내가 처음에 찾아간 바로 그 건물이었다.
|
문제가 생긴 것은 내가 그 호텔 정문이 아니라 후문으로 갔기 때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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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출입문 모양도 다르고 문지기 흑인도 다른 것이었는데, 낯선 도시에서
|
당황하다 보니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그 고생을 한 것이었다. 어쨌거나
|
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그 남자와의 우연한 재회는 다행도 그런 다행이 없었다.
|
우연한 만남에는 이렇게 불행을 가져오는 것이 있는가 하면, 다행스런 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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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 것도 있다. 그렇다면 만남의 그 불행과 다행은 우연과 재수가 좋고 나쁨에
|
맡길 수밖에 없는 것일까.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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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이 있다. 아무리 좋은, 다행스런 만남만
|
가지려 해도 나쁜, 불행한 만남을 피할 수는 없다. 또한 뉴욕의 밤거리에서 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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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험한 것처럼 우연한 행운의 만남을 늘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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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움이 되는 길은 있다. 만남이란 바로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면 된다. 부처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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흉내내는 사기꾼에게 내가 속았듯 사람을 바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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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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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국지에서 나오는 제갈량도 자기 나름대로 사람을 알아보는 지인법을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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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상대의 사람 됨됨이를 보는 일곱 가지 방법이다.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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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회 분위기가 오늘날과 달라 지금 그대로 적용해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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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지만 참고 사항은 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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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--상대에게 시비를 따져서 그 사람의 뜻을 알아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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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--상대에게 말을 궁벽하게 몰아가서 그 사람의 임기웅변을 알아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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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--상대에게 꾀를 물어 그 사람의 지식을 알아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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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--상대에게 급작스런 변란을 만들어 그 사람의 용맹을 알아본다.
|
하나--상대에게 술을 마음껏 먹여 그 사람의 본성을 알아본다.
|
하나--상대에게 큰 재물을 다루게 해서 그 사람의 청렴성을 알아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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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--상대에게 어떤 약속을 주어 그 사람의 신용을 알아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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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수하고 고귀한 만남이라면 제갈량의 지인법 같은 것들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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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만남의 순수함과 고귀함은 그저 생기는 행운만은 또한 아니다. 사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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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으면 잊고 싶은 만남보다 늘 기억하고 싶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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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남을 더 많이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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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당에서 만난 요즘 아이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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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마다 방학 때가 되면 도시의 아이들이 청학동 서당으로 찾아온다. 비록 짧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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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간이지만 나와 그 아이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함께 보내게 된다. 아이들을
|
보노라면 한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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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소에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우리 것을 알고 싶어 찾아왔으니 고마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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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이기도 하다. 한문에 대한 기초 소양과 함께 우리 문화와 예법에 대해
|
가르치노라면 어떤 희망 같은 것도 느껴진다.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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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차츰 우리의 정신을 살리는 서당의 분위기에 젖어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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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연하다.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서양 문물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도 피까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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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꿀 수 없다. 피 속에 흐르는 민족의 기질과 정신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는
|
것이다. 교육만 제대로 방향을 잡으면 언제든지 살아나는 우리의 정신과 기질이
|
있으니 어찌 희망적이지 않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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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요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희망도 희망이지만, 안타까움을 떨칠 수가
|
없다.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정과 학교에서의 잘못된 교육을 절로 통탄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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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아이들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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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. 이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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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흉내와 모방은 잘한다. 컴퓨터를 배워서인지 기계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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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작 같은 것에도 과거의 아이들과 비교해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. 그런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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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작 중요한 창작성은 떨어지는 것이다. 아이를 가르친다 하는 것은 세상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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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 아니겠는가. 홀로서기를 하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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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서는 창작성이 있어야 가능하다. 이미 만들어진 것을 흉내내는 것으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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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스로 설 수 없다. 남이 우뚝 서야 겨우 그 옆에서 기생할 수 있을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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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에게 청소를 시켜 봐도 알 수 있다. 서당 주위의 마당을 청소하라고
|
하면 아이들은 열심히 쓰레기를 줍기는 한다. 그러나 줍기만 하고는 그만이다.
|
손에 쓰레기를 들고 서서는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. 아마 청소를 할 때는 늘
|
주변에 쓰레기통이 있어서 거기에 넣었던 모양이다. 그런 쓰레기통이 보이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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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으니 어찔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. 통을 구해 오든지 태워 없애든지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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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책을 생각해내지 못한다. 아니,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보인다. 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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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랬던 것처럼 있어야 할 쓰레기통이 없으니 그저 손에 쥐고 서서 누군가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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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령이나 도움을 바랄 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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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모은 쓰레기를 태우라 하면, 그제사 방법을 알았다는 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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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만으로 또 그만이다. 태우려면 당연히 성냥이건 뭐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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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하고 태울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할 일이다. 그런데 아이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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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다. 왜 태우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때서야 성냥이 없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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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답을 한다. 적극적으로 태울 장소와 성냥을 찾지 않는다. 결국 성냥까지 손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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쥐어 주고, 쓰레기를 태울 장소까지 말해 주어야 청소를 겨우 끝낼 수 있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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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소의 전 과정은 결국 지시의 연속일 뿐이다.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해 보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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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 따라 방법을 찾아내 처리하는 기본적인 능력마저도 갖고 있지 않다. 스스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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탐구하고 만들어내는 창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. 간단한 청소마저 제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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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리하지 못하고 쩔쩔매니 창작성이 없으면 손도 못 댈 일을 앞에 두고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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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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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의 청작성은 점점 퇴보하라는 듯이 보인다. 거기에는 중요한 이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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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 있다. 자연 속에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. 아니, 특별히 교육이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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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것도 없다. 자연을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. 대자연은 아이들에게 가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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훌륭한 교육장이 된다. 자연은 창작의 현장이다. 대지에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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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라고, 숱한 변화를 겪으며 살다가 진다. 지는 것은 그 바탕 위에서 생명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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씨앗은 다시 피어나 영원한 자연의 일부분이 된다. 그 과정이 자연 속에 그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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펼쳐져 있다. 인간 역시 그 일부분이니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자연 속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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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노라면 가슴을 열고, 보고, 듣고, 느끼고, 생각하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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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나 요즘 도시의 아이들은 자연을 접하기 못하기에 그 창작성을 배우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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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한다. 학교에서는 현장 교육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저 책 속의 자연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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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한다. 학교에서 나와 거리에서 보는 것은 또 무엇인가. 사고의 위험 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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늘 조심해야 하는 차와 인공적인 건물들과 상혼으로 동심을 멍들게 하는 유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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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경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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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골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학교 밖의 자연은 교육의 현장이지만 도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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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에게 학교 밖의 거리는 다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해야 하는 위험 지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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된다. 그러니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위험한 짓을 하지 말고, 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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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심하라는 것을 주로 가르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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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환경에서 창작성을 배울 수는 없다.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아이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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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까이 있는 차를 비롯한 위험 요소만을 보고 긴장해야 하는 아이는 느끼는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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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. 책 속에 그려져 있는 꽃 그림에 만족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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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밖에 없는 아이와 그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직접 보고 향기를 맡아보는 아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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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우는 게 틀리다. 비록 도시 아이들이 직접 보지도 못한 채 꽃 이름과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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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징을 달달 외워 시험 성적을 높일 수 있다 해도, 그것은 죽은 지시게 불과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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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운 것으로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조금 흘러 외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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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잊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. 그러한 죽은 자식은 아무리 머릿속에 넣어봐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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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작성을 키우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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창작성의 부족과 함께 아이들의 홀로서기에 장애가 되는 것으로 또 하나 짚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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넘어갈 것이 있다. 지나친 과보호로 아이들을 부모 자신에게 지나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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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존하게끔 조장하는 문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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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. 그런 아이들을 보호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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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다.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아이들은 단순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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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육당하는 동물과 다름이 없어진다. 자식들이 늘 자기 품안에 있는 것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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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기는 부모들이 있다. 바르게 키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생각지 않고, 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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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 귀한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. 학교에서 자식이 선생에게 매 좀 맞았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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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, 그 교육적 가치는 생각지 않고 당장 난리를 부린다. 어떻게 남의 집 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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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을 때릴 수 있냐는 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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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선생이란 사람들도 가지각색이라 체벌도 교육적이라 가치가 있는 것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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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고, 그렇지 못하고 폭력의 사용이라 부를 만큼 잘못된 체벌도 있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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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육적으로 가치가 있는 체벌도 요즘 부모들은 참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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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이 품안에 있는 것만을 즐기는 부모들은 잘못된 교육마저도 사랑이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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착각한다. 사 달라는 것은 다 사주고,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, 입고 싶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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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다 입히는 걸 사랑으로 안다. 또한 버릇이 없게 굴어도, 산만하고 이치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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닿지 않는 행동을 해도 내버려두고 감싸기만 하는 것을 사랑으로 한다. 그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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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이 아니라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일 뿐이다.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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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종 회초리를 들곤 한다. 서당에 며칠 있다 보면 나의 교육 방법을 알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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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은 회초리 맞을 준비를 한다. 그렇게 마음으로 맞을 준비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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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잘못을 스스로 깨우치게 해 주고 회초리를 대면 그 교육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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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과는 아주 크다. 회초리는 신경세포를 일깨우는 데 아주 특효한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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헌데 회초리를 맞은 아이 가운데 아주 가관인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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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물을 줄줄 흘리고 엉엉 울면서 집에 전화를 건다. 그리고는 회초리를 맞았다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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맞은 수치까지 고한다. 당장이라도 달려와 자기를 좀 안아 달라는 듯이 그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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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아이의 부모 가운데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 자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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회초리로 좀 때리지 않을 수 없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. 그런 전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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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으면 나는 당장 자식 데려가라고 호통을 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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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 귀한 건만 알았지, 어떻게 귀하게 키워야 하는지는 모르는 부모들이 많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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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저 감싸고 돌면 되는 줄 안다. 그것은 자식을 망치는 길이다. 아이가 크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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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게 될 것이다. 그러나 그때 알아서 후회한들 이미 때는 늦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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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계적인 도시 교육 환경이 주는 창작성의 결여와 부모의 과보호로 인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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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타적인 태도 같은 것으로 요즘 아이들은 시들어 가고 있다. 흉내는 내면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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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로봇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. 로봇은 그것이 아무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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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도의 기술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해도 로봇일 뿐이다. 세계 최고의 로봇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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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코 창조적인 인간과 비교될 수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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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단 결과가 나왔으면 처방은 그에 따르면 된다. 대자연과 자주 접하게 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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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의 노력으로 아이들의 창작성을 높이고, 과보호의 굴레를 벗겨내 스스로 서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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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을 보게 만드는 게 요즘 아이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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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행히 아이들은 언제나 희망이다. 천진난만하기 때문에 좋은 면은 그대로 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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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릴 수 있고 나쁜 면은 가정과 사회에서 고치면 또 좋은 면으로 만들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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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제 불능의 어른들은 있어도, 희망이 없는 아이들은 없다. 아이들에 대한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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희망은 바로 미래를 보는 사람의 희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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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자식이 상팔자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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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자식 농사 잘 짓는 것을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 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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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후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는 보람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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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이니, 자식 농사 잘 짓는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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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모의 보람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축복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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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요즘 세상은 변해도 아주 이상하게 번해 버렸다. 자식을 부부의 행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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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로막는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 풍조도 일부에서 있는 모양이다. 신문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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딩크족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. 영어 그대로 해석하면 수입을 두 배로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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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이는 갖지 않는 부부를 가리킨다는 것이다. 아이들 갖지 않고 부부가 맞벌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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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서 수입을 두 배로 늘려 행복을 누리겠다는 족속이란다. 외국에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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족속들이 많고,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비슷한 부류들이 생기는 모양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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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생을 아주 실리적으로 살겠다는 의도일 것이다. 자식 키우는 일에 힘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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쏟으면 시간을 보내면 짧은 인생을 언제 즐기며 살겠냐는 계산이 깔려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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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하기야 우리도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한탄을 곧잘 하곤 했다. 자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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키우는 일이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. 그래서 딩크족까지는 가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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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더라도,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자식 하나만 낳겠다고 말하는 이들을 많이 볼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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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젊은 여자들 가운데 자식 서넛 낳으면 좋겠다고 누가 말하면 자기가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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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 낳는 짐승이냐고 눈을 흘기는 이들도 있다. 짐승이라니? 그러면 과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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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머니들은 짐승이었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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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기야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. 누구나 인생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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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 그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, 그것은 문명의 변화와 함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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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. 요즘 세상에서 대책도 없이 자식을 줄줄이 만들어 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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흥부 부부는 조롱의 대상이 될지언정 그 다산성을 칭찬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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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잘해야 '자식 하나'를 고집하면서 자식을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쯤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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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는 풍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다. 생각 자체의 문제도 문제지만 '자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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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'로 인해 숱한 부작용들이 뒤따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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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으로 태어나 자식을 낳는 것은 자기 행복을 위한 권리이기도 하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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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무이기도 하다. 종족을 이어가는 것은 인류의 의무요, 한 국가로 말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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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된다. 국민이 없는 국가가 있을 수 없고, 인류가 없는 세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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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상할 수 없다. 그런데도 자신만은 그 의무에서 빠지겠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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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인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. 그들은 어쩌면 의무라는 말에 코웃음을 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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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자기가 자식을 낳지 않는다고 뭐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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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빠지겠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. 차라리 낳지 않는 게 보탬이 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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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. 산아제한이란 것이 한동안 맹위를 떨쳤으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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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도 나름대로 논리는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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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세상에 인구가 많기 때문에, 진정 인구 문제를 걱정해 자식을 낳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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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겠다는 것일까. 요즘 젊은이들은 그게 아닐 것이다. 단지 보다 편히 즐기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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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기 위해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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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구가 많아야 집안이 풍요로워지듯 인구가 많아야 국가도 풍요를 누릴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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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물론 인구가 많다고 무조건 국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. 그러나 작정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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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구를 갖추어야 국력을 키울 수 있고, 그 국력을 바탕으로 보다 살기 좋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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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를 만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.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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온갖 혜택을 주며 아이 낳기를 장려하는 것은 그런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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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재와 같은 풍토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유럽의 나라들처럼 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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낳기를 장려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. 사람들이 저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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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인주의를 앞세운 행복관만을 고집 한다면, 울 수도 차마 웃을 수도 없는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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날이 찾아올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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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럼에도 불구하고 '자식 하나'풍조가 만연해 누구나 그것을 고집 한다고 가정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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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자. 그러면 남자와 여자 둘이 만나 하나를 낳는 셈이 된다. 하나를 낳은 둘은
|
죽을 것이니, 세상은 결국 두 생명이 사라지고 하나의 생명이 남게 된다. 그것이
|
반복되다 보면 인구는 점점 줄어들 것이 아닌가. 인구에 관한한 요즘 세상에서
|
문제가 되는 핵심은 인구 과잉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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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그러나 요즘과 같은 자식 하나 풍조가 점점 위세를 떨치게 되면 미래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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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결과가 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닌가. 먼 곳을 바라보며 사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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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관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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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자식이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상팔자가 될 수 있다. 국가가 어떻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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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건 인류가 어떻게 되건 자기만 잘살다가 죽으면 그만 이라는 식으로 보면 그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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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도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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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, 개인적으로 본다고 무자식이 정말 상팔자일까. 행복관을 너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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편의적으로, 얄팍하게 갖고 있어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닐까. 참다운
|
행복이란 것은 오랜 수고와 인내 속에서 그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다. 수고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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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내를 거부하는 쪽으로만 살아서는 행복의 참맛을 느낄 수 없다. 자식을 낳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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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르는 것은 단순한 수고와 인내만은 아니다. 사랑이라는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
|
거기에 배어 있는 것이다. 그것마저 거부하면서 찾는 행복이란 것이 도대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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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인가. 최대한 즐기면서 살겠다고 하는데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큰 즐거움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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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면하고 무엇을 즐기겠다는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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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자식 하나만 낳는 풍조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. 그 하나로
|
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양성의 조화를 깰 정도로 왜곡된다는 점이다. 뿌리깊은
|
남아선호의 풍조 탓으로 하나를 낳되 너도나도 남자 아이 하나를 낳겠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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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선다. 그 결과는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. 통계에 따르면 남자 아이에 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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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 아이들이 그 수가 턱없이 적다고 한다. 이런 현실을 두고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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농담삼아 앞으로 여자가 없어서 장가 못 갈 남자들 많을 거라고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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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지어는 전쟁이 터져 남자들이 많이 죽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고도 한다.
|
아무리 농담이라지만 전쟁을 해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니, 이 무슨 망발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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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히 농담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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실제로 상황은 그렇게 심각해질 수 있다. 지구상에서 온갖 일을 저질러 온
|
인간은 이제 나성과 여성의 균형마저도 허물어 버리려 하고 있다. 낙태와 같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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반인륜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그러니, 여기서 무자식이 상팔자니 아니니
|
하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닌 듯싶다.
|
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집안에서 그 자식은 어떻게 자랄까. 형제라는 말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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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전에 있지만 아이는 경험해 보지 못한다. 형제를 통해 배울 것도 배우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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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고 나눌 우애도 나누지 못한다. 오로지 저 하나만을 생각하게 된다. 인류가
|
가정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상당 부분을 모르고 살게 된다.
|
그런 자식은 어쩌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자기 세계를 개척해 나가려 하지
|
않을지도 모른다. 부모의 재산을 곧 자기 재산으로 여길 터이나, 땀흘려 일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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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. 어떤 부모는 오히려 그것을 반기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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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것이다. 우리 재산이 있으니 너 만은 고생하면서 세상 살지 않게 해주마,
|
하면서 말이다.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 바로 그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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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식이 하나뿐이니 부모가 그 자식에게 거는 기대 또한 그 만큼 클 것이다.
|
물론 모든 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많더라도 모든 자식에게 기대를 크게 갖게
|
마련이다. 그러나 키우다 보면 각자의 개성과 특질을 알게 되고, 그에 따라
|
교육을 시키고 기대를 조절하게 된다. 그러나 자식을 하나만 둔 부모는 제
|
자식이 무엇이건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. 자식의 재능과 소질을
|
따져보기에 앞서 최고가 아니면 견디지 못하게 된다.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
|
있다.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일꾼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. 그런데 하나뿐이 제
|
자식만 돋보이는 일을 해야 하고,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면 어떤 일이
|
벌어지겠는가.
|
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잘못된 풍조는 더욱 드세질 것이고, 참다운 경쟁의
|
의미는 사라진 채 오로지 남을 딛고 서야 하는 맹목적인 경쟁 풍토만 남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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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전쟁터로 내몰 것이다. 단순한 노파심리 아니라 충분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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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견될 수 있는 상황이다. 인류 공동체의 이상과 희망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릴
|
수가 있는 것이다.
|
온갖 문제점들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행복의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
|
이상한 풍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런 세상이 올 것이다. 무자식이 상팔자가
|
아니라 자식 많은 사람이 상팔자라고 한탄하는 세상 말이다. 자식이 없거나
|
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의 한탄은 지금도 들을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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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은 시대의 그릇된 풍조나 편협한 개인주의적인 태도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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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인류의 자산 속에서 보다 긴 안목을 가지고
|
찾아야 한다. 그릇된 풍조와 태도에 경박하게 일단 몸을 맡기면 그 늪에서 다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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헤어나기가 어렵다. 다산성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짐승의 짓이라고 말하는 젊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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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자들은 이미 그 늪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. 늪에 빠져 뭐가 뭔지도 모르는
|
상태에서 경박하게 자기 주장이랍시고 내세우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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젊은이들이여, 자식을 많이 낳아 길러 보라. 그러면 사람으로 사는 참된 행복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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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. 자식 넷을 낳아 기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
|
아무런 사심없이 권유하는 말이니 그저 웃어 넘기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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싶다. 무자식은 쓸쓸한 인생의 담보물이 될지언정 결코 상팔자가 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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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당 다섯 / 세계의 꽃으로 필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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밀알이 썩어 새싹이 나듯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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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풀이 시대가 끝나면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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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 비로소 사랑과 화합의 시대가 열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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밀알이 썩지 않으면 새싹은 돋아나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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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역시 풀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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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우리는 한 풀이의 과정을 겪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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깨어나서 빛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.
|
세계의 꽃으로 피기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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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화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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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남 유자가 강북 가면 탱자 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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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국에 오자서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. 그가 어느날 사신의 몸으로 어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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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에 갔다. 그 나라에서도 오자서의 명성은 자자했다. 이에 그 나라의 몇몇
|
사람들이 자부심 높은 오자의 콧대를 꺾으려고 술수를 부렸다. 함정을 만들어
|
오자서의 부하를 도둑으로 만든 것이다. 그 부하는 꼼짝없이 도둑의 누명을
|
뒤집어썼다. 그렇게 해 놓고 그들은 오자서를 노골적으로 비꼬았다. 부하가 그
|
모양이니 오자서라고 다를 게 있겠느냐는 식이었다.
|
그러자 오자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. 강남 유자가 강북 가면 탱자가
|
된다. 이치가 그와 같다. 내 부하는 본래 선량한 사람이었는데, 도둑이 많은
|
당신들 나라에 와서 도둑이 된 것이다.
|
오자서는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오히려 술수를 부린 사람들의 콧대를 꺾어 놨다.
|
임기응변도 뛰어난 것이었지만 오자서는 중요한 지적을 했다. 강남에서 유자였던
|
것이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될 수 있음을 말했다. 사람은 그렇게 환경에 의해서
|
만들어지는 존재다. 환경에 따라서 유자였던 사람이 탱자가 될 수 있고, 탱자였던
|
사람이 유자가 될 수 있다.
|
맹자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의 이사를 한 것은 지혜가 아닐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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맹자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만약 묘지 근처에 산다면 무덤 파는 인부들의 흉내를
|
많이 낼 것이고, 시장 부근에 산다면 장사꾼 흉내를 자주 낼 것이고, 서당 인근에
|
산다면 예법과 독서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것이다.
|
만약 자기 자식을 훌륭한 음악가로 만들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, 먼저 그 부모가
|
음악을 좋아하고 집안에 늘 음악이 흐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. 그런 환경
|
아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키울 수 있다.
|
그런 것을 무시하고 자식을 음악가로 키우겠다는 태도는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
|
잡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.
|
나무 하나를 심어도 토양과 기후 등 환경을 고려해 심는다. 그렇지 않으면 잘
|
자랄 수 없거나 아예 죽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. 하늘을 나는 새가 날아가고
|
싶은 곳이면 어디든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. 자유를
|
만끽하기 위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다니는
|
것이다. 사람도 그러한 세상 만물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.
|
환경은 주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. 특히 사람은
|
만들어 가는 환경에 더욱 비중을 두면서 역사를 이루어 왔다. 그것이 만물의
|
영장이라는 사람의 돋보이는 면이기는 하지만, 가장 큰 문제점이 되기도 한다.
|
주어진 환경과 만들어 가는 환경, 그 둘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. 조화를 이룰
|
때 가장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.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그 조화를
|
깨버리곤 한다. 일단 조화가 깨지면 환경 그 자체가 일그러지고, 그 일그러진
|
환경 아래서 사람은 조화를 깬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.
|
한민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지구상 어디를 가더라도 한민족이다. 한민족에게는
|
그 나름의 특성이 있다. 주어진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. 고양이는 태어났으면
|
고양이의 개성대로 살아야 하고 개로 태어났으면 개의 개성대로 살아야 한다.
|
한민족으로 태어났으면 한민족의 개성을 살려 사는 것이 가장 잘사는 길이다.
|
우리 민족이 우리의 정신과 전통을 따르지 않고 다른 민족을 모방하는 것은
|
만들어 가는 환경이 주어진 환경을 왜곡시키는 경우가 된다. 그러면 두 사이의
|
조화가 깨져 온갖 병적인 현상이 나타난다. 고양이로 태어났으면서 개로
|
살겠다는 태도와 다름이 없다. 그 때 그 고양이가 온전한 고양이로 살 수
|
있겠는가. 물론 개로는 더더욱 살 수 없다.
|
우리 문화를 압도하며 외국 문화가 이 땅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잘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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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어진 환경이 주어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이다. 거기서 우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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숱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. 가치관의 혼란과 그로 인한 도덕성의 상실 그리고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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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과물들인 온갖 범죄와 타락과 무질서가 판을 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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또한 창조성의 결핍이 뒤따른다. 우리 문화를 제대로 살려야 창조성을 발휘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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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다. 우리 문화를 외면한 채 외국 문화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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흠모하고 모방하면서 무슨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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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국의 유능한 배우가 아무리 춘향의 연기를 잘한다 해도 우리 눈에는 어설프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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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일 수밖에 없듯 우리 배우가 아무리 햄릿의 연기를 잘한다 해도 영국 사람들
|
눈에는 마음에 차는 것이 되지 못한다. 그런 연기들이 평가를 받으려면 외국식
|
춘향 혹은 한국식 햄릿이라는 전제가 붙어야 한다. 한국식 햄릿이라는 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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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. 그러나 우리가 세계에 내놓고 그 창조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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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정받으려면 그것은 한국식 햄릿이나 외국식 춘향이 아니라 한국식 춘향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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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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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주어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전제가 된다면 우리는 이제 만들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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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는 환경에 전력을 바쳐야 한다. 한국식 춘향이라는 것은 어떤 고정된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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뜻하는 게 아니다.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표현이 늘 가해져야 그것의 창조성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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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정을 받을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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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전통 속에서도 잘못된 악습과 같은 것들은 하루 빨리 없애고, 그 장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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키울 수 있는 쪽으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. 사농공상은 일이 다름을 뜻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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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되어야 하지 귀천을 따지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. 헌데 아직도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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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식이 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. 그런 의식은 그 자체가 나쁜 환경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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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의 존엄성을 해체고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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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국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. 그는 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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땅에서 살기 싫은 이유가 하나 있다고 했다.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사회에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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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적인 대접이 너무도 다름을 뼈저리게 느끼는데, 그것이 그렇게 싫다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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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보다는 돈이 앞서는 사회라는 것이다. 그런 환경이라면 사람들은 너나없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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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보다 많은 돈을 벌려고 덤벼들 것이다. 순수한 인간적 가치보다는 돈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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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에서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. 그러면서 환경이 그런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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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쩌겠냐고 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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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이럴 경우 환경이 그렇다고 말하면서, 거기에 자신을 맡겨 버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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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으로 끝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.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. 돈의 가치보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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순수한 인간 그 자체의 가치가 존중되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. 물론 몇몇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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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의 노력으로 될 일은 아니다. 우리 모두가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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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게 부정적인 환경들이 많이 있다. 유자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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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어났어도 탱자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들이다. 이런 좋지 않은 환경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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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꾸지 않고 우리가 우수한 민족이 될 수 없음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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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들어 가는 환경 가운데 가장 먼저 내세워야 할 것이 교육 환경이 아닌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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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지금의 교육 풍토는 인간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통탄스러울 정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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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진하고, 저마다 개성을 살려 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봐도 안타깝기 그지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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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 개혁을 앞장세워 내세우지만 근본적이고 지속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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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혁이 부족해 교육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.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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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로 내세우면서, 모든 국민이 저마다 타고난 개성을 살리며 살 수 있도록 교육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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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장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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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남 유자가 강북 가면 탱자 된다. 이러니 유자가 되고 싶으면 강남에 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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탱자가 되고 싶으면 강북에 가면 된다. 자, 이제 우리의 선택만 나았다. 어디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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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야 하겠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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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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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. 우리의 조상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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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조상 없는 천덕꾸러기일 뿐 그 이상의 그 무엇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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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우리의 정신이 무엇이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빈 껍데기일 뿐 그 이상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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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무엇도 아니다. 우리의 전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길을 헤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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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랑자일 뿐 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. 우리의 문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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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남 흉내만 내는 원숭이일 뿐 그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. 우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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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겉으로 무엇을 내세워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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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는 피부가 하얀 사람, 검은 사람, 노란 사람, 붉은 사람 등 다양한 색깔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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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산다. 하얀 색이 검은 색보다 잘났다고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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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고, 노란 색이 붉은 색보다 귀하다고 할 수 없다. 서로 자기 색깔대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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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울려서 사는 것일 뿐이다. 그런데 하얀 색이 검은 색보다 아름답다고 잘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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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를 하는 무리들이 있다. 그런 무리들이 오만스럽게 자기와 다른 색깔을 지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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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리들을 경멸하고 짓밟는 바람에 세상은 아귀다툼의 수라장으로 전락하곤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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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심한 족속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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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더욱 한심한 족속들이 있다. 검은 색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하얀 색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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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없이 부러워하며 자기 색깔을 부끄러워하는 무리들이 있다. 노란 색을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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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어났으면서 붉은 색을 끝없이 숭배하며 자기 색깔을 스스로 혐오하는 무리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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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족속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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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날 이런 문제를 생각하다가 낙서처럼 쓴 시가 있다. 물론 시의 기본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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형식을 갖춘 것도 아니고, 언어를 다듬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것이니 시라 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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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는 없을 것이다. 그저 떠오르는 대로 "누가 묻거든"이란 제목 아래 적어 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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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염치없는 짓이겠지만 누군가 한번 읽어 보기를 기대해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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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뿌리가 어디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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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메르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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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장 오래된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 선전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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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빌로니아의 그 지방을 가리키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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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발원이 어디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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황하강 언저리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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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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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강 어느 언저리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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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됩니다,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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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뿌리를 묻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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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발원을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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환국천산이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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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제인 환인과 그 아들 환웅 또 아들 단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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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이어져 내려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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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산을 말하소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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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기원이 언제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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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기를 먼저 떠올리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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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천구백구십오 년 전의 그날을 말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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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날이 이 나라를 세운 첫해라 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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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이 나라 역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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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천구백구십오 년이 된다고 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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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됩니다,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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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로 그래서는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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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기원을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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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기를 주저없이 떠올리셔야 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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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천삼백이십팔 년 전의 그날을 말하셔야 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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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날이 이 나라를 세운 첫해라 하셔야 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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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이 나라 역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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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천삼백이십팔 년이 된다고 하셔야 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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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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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천삼백삼십삼 년을 버리시면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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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조상이 누구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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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브라함이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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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분이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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워싱톤이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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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분도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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징기스칸이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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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의 시조가 누구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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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시황이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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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분이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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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자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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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분도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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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성계라 하시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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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됩니다,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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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로 그래서는 아니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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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군이 이 나라의 시조라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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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중하게 말하십시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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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시당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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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군이 계셨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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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나라 이 민족은 생겨난 것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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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시당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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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늘을 연 날, 개천절이 있었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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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겨레는 태어난 것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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애시당초 조상이 계셨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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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가 생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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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이 생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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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가 생긴 것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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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모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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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잊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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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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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존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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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,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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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다운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는 결코 형제가 아닙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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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수주의를 내세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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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주의를 병들게 하지 마십시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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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만 잘났다는 생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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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를 병들게 하지 마십시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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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야, 진정 그래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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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를 세울 수 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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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가 이 나라 종교가 뭐냐고 묻거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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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교라 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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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게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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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독교라 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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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도 아니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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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교라 하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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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이라 대답한들 무엇이 문제겠습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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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습니다, 좋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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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리에 임자 따로 없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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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는 자유로운 것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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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습니다, 좋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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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이라 대답해도 좋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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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스도도 좋고, 부처도 좋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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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자도 좋고, 신선도 좋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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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모두가 근본은 사랑이요 목적은 구원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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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로 다 좋습니다, 진리와 사랑과 구원만 있다면 알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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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서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시는 계속 이어진다. 그러나 그것을 다 열거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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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요는 없다.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. 우리가 누구인지 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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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. 누군지도 모르고 그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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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겠는가. 절망 말고는 할 말도 기다릴 것도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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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사물은 저마다 개성이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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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양 사람들에게도 인삼과 녹용은 보약이 될까. 사람에게 좋다는 것인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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머리카락이 노란 사람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느냐고 짐작할 것이다. 그러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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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지가 않다.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에게 그것들은 보약은커녕 몸을 해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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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 될 수 있다. 도대체 왜 그럴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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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삼과 녹용은 냉체질, 음체질의 사람에게 보약이 된다. 우리나라 사람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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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0퍼센트 가량이 음체질이다. 그들에게는 보약이 된다.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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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0퍼센트 가량이 열체질, 양체질이다. 양체질의 사람들에겐 인삼과 녹용은 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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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를 끼치면 끼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. 사람에게는 이렇게 각자의 체질이 있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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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보약이 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해로움 물질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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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기도 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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변비를 만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데, 어떤 사람은 육식만 하면 변비를 보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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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이 있다. 서양 사람들에게는 드문 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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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증상을 보인다. 그런 사람이 육식을 즐기는 것은 몸을 망치는 짓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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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병을 얻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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음식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체질에 따라 몸에 해가 되기도 하고 득이 되기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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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다. 그래서 지역에 따라 자기 몸에 좋은 음식이 각기 따로 있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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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질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다 보니, 그에 따라 문화적인 특질도 다르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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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자의 개성이 생긴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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크게 나누어 보면 동양의 채식 민족이 보이는 특질과 서양의 육식 민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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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이는 특질이 서로 다르다. 채식을 즐기는 동양이 고도의 정신 문화를 세웠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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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면, 육식을 즐기는 서양은 기계 문명을 세워 세계 역사에 기여했다고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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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이런 구분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대개 그렇다. 채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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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주냐 육식 위주냐 하는 식생활의 개성이 민족성을 달리 만들었기에 나온 결과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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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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채식을 주로 하는 민족은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하면서 종합적, 전체적, 구심적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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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시적, 방어적, 소극적, 협동적, 조화적, 철학적, 이성적, 신비적, 예술적, 명분적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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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적, 여성적, 음성적 특질은 보이면서 알칼리성 체질을 갖는다. 반면에 육식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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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로 하는 민족은 정신보다 물질을 중시하면서 분석적, 개별적, 원심적, 미시적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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공격적, 적극적, 배타적, 정복적, 과학적, 감성적, 합리적, 기계적, 실용적, 동적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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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성적, 양성적 특질을 보이면서 산성 체질을 갖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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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신토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. 그런데 요즘 식생활을 보노라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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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한 자기 개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남이 개성을 흉내내는 이리 비일비재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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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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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령 우리에게는 김치를 비롯해 훌륭한 발효 음식들이 많다. 발효 음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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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수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다. 헌데 요즘 새로운 세대들은 김치와 같은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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음식을 멀리하고 햄버거니 피자니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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콩은 콩이고 팥은 팥인데 콩이 팥이 되고 싶어, 아니면 팥이 콩이 되고 싶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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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. 그럴 것이다. 자기 개성은 모르고 남의 개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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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러워 그럴 것이다. 자기 체질이 어떤 것인 줄도 모르고 그저 좋다니 무조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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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삼과 녹용을 먹겠다는 태도일 것이다. 그래서 과연 콩이 팥이 되고 팥이 콩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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될까.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. 그러한 어설픔 때문에 김치를 멀리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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햄버거를 즐기는 사람들은 김치를 즐기는 우리 민족의 감정도 갖지 못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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햄버거를 즐기는 민족의 강점도 물론 갖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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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개성을 알지 못하고 혹은 무시하고, 남의 개성을 흉내내고 혹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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흠모하는 빗나간 현상은 비단 식생활에서만 볼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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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옷, 즉 한복에는 현대 사회에서 불편함 등의 단점도 있지만 그 장점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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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으로 많았다. 그러나 우리 옷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려는 사람은 몇몇을 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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놓고는 없다시피한 게 현실이다. 국가의 특별한 행사에서만이라도 우리 옷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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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는 정서와 정신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. 아니,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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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어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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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한옥 역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. 방한 방습 효과가 뛰어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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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부의 금실을 배려하는 등 인간적인 특질을 가지고 있다. 가옥에 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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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름대로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. 그런데 아무도 그 장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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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들떠보지도 않는다. 뛰어난 건축가라면 그것을 살리려고 노력해 봄직도 한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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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. 우리의 한옥에 담긴 알맹이마저 무시하면서, 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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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라 거기에 담긴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. 아니, 대부분의
|
사람들은 이미 잃어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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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식생활 또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. 그 가운데 관혼상제의 의례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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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키면 요즘 사회의 혼란과 타락을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. 어느 통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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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니 제사를 모시는 가정과 모시지 않는 가정을 범죄율을 놓고 비교해 보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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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자의 가정에서 범죄율이 높았다고 한다. 관례인 성인식을 하면 나이 스물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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넘어도 망나니 짓을 하는 성인 아닌 성인들은 줄어들 것이다. 그러나 성인식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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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통은 사라지고 발렌타인 데이니 뭐니 하는 서양식 축제만 들어와 판을 치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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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인식으로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장점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. 남의 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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흉내내는 일에 바빠 우리의 미덕을 잃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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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혼상제를 비롯한 우리의 실생활의 이 전통이 주는 장점이 무시되면서, 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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따라 거기에 담긴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다. 아니, 대부분의
|
사람들은 이미 잃어버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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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지금에 와서 양복은 우리 옷이 아니니 입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없고,
|
양옥은 우리 집이 아니니 거기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없다. 그러나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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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떤 변화에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. 우리의 개성과 전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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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리면서,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. 문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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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기서 저기로 흘러가고 저기서 여기로 흘러오는 것이다. 고립된 문화는 발전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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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우리가 외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문화를 외국으로 보내는 것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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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로 당연히 받아들일 문화의 흐름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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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의 흐름은 그러나 일방적일 때 문제가 된다. 모든 사물은 저마다 개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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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는 것이다. 모든 민족도 저마다 개성이 있는 것이다. 자기 개성과 전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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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실하면 문화의 흐름은 흐름이 아니라 침략이 되고, 침략을 당한 쪽은 심각한
|
병을 앓게 된다. 자기 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몸이 될 수도 없는 무서운 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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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이다. 우리가 전통 문화를 등한시해서 우리의 개성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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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고 남도 아닌 기형적인 존재가 된다. 오천 년의 역사를 입에 올릴 수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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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 역사를 입에 올릴 수 없다고 남의 나라 역사를 우리 것인 양 여길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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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까. 어불성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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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세계화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. 제대로 철학을 갖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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얘기하는 것이라면 아주 좋은 말이다. 사람은 그가 어느 나라 어는 민족에 속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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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건 궁극적으로는 인류평화를 삶의 지향점으로 두어야 한다. 그러니 우리도
|
세계화가 되어야 한다. 세계화라면 국제 무대가 전제된다. 국제 무대에 당당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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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서 정회원의 자격을 가지려면 자격증이 필요하다. 그 자격증은 다른 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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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다. 자기 개성과 전통을 지닌 나라와 민족에게 주어지는 것이 자격증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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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성과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국제 무대에서 다른 나라와 민족의 눈치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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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피는 족속밖에 되지 못한다. 그런 족속들이 회원 자격을 가질 수 없는 것은
|
물론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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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우리 자격증을 가질 생각은 하지 않고, 남의 자격증을 빌리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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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솔직한 우리의 동양 철학을 말하라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
|
사람들이 많다. 그들이 우리 자격증을 자질 생각은 하지 않고, 남의 자격증을
|
빌리려는 사람들이다. 문화인들 가운데 서양 문화의 언저리를 좋다고 맴돌면서
|
우리 문화를 보면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이 있다. 멍청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
|
그들이 우리 자격증 대신 남의 자격증을 훔쳐 보는 사람들이다.
|
어찌 지식인과 문화인만 그렇겠는가. 누구든 마찬가지다. 우리의 정신을 팔고
|
매춘녀처럼 남이 정신에 빠져 거들먹거리는 무리들, 우리의 체질을 내팽개치고
|
남의 체질에 기생하면서 뽐내는 무리들, 우리의 개성을 묵살하고 남의 개성으로
|
분칠을 해 쓴 가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미는 무리들, 이 모든 이들이 그런
|
족속들이다.
|
콩이면 콩의 개성을 가져야 콩이 되고, 팥이면 팥의 개성을 가져야 팥이 된다.
|
우리의 개성과 전통을 깔보는 무리들은 너무도 당연한 이 이치를 외면한 채
|
어디를 헤매며 광인의 춤을 추고 있는가.
|
|
지구의 방랑자
|
|
방랑자와 떠돌이들에게는 현주소가 없다. 그저 잠시 머무는 곳이 임시 주소요,
|
발길을 옮기면 그 임시 주소마저 사라진다. 늘상 그런 신세니 누기 현주소를
|
물으면 내세울 것이 없다.
|
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일까. 무엇을 근거로 현주소를 말할 수 있을까.
|
무엇보다 먼저 문화를 말할 수밖에 없다. 우리 문화가 있으면, 그것을 바탕으로
|
우리는 현주소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. 김구 선생도 먼저 문화의 중요성을
|
강조했다. "백범일지"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.
|
|
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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막을 만하면 족하다.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.
|
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
|
때문이다.
|
|
그렇다. 문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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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자고, 얼마나 무기와 병력이 많은가를 따져보는
|
것보다는 우리의 문화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를 살피는 것에서 우리의
|
현주소를 따져보는 것이 보다 유익하리라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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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일까.
|
거리에 나가보면 참으로 막막해진다. 일본 흉내를 내는 젊은 남녀들이 기이한
|
옷을 뽐내고 다닌다. 왜 그런 옷을 입었냐고 물으면, 아무렇지도 않게 멋있게
|
보여서 입었다고 한다. 이 땅으로 다시 침투해 들어온 듯 일본식 술집과
|
음식점이 거리에 깔려 있다. 술집에서 일본 노래가 불려지고, 어린아이들은 일본
|
만화에 넋을 빼앗긴다. 일본이 밉다면서 일본 문화에 혼을 판다.
|
거리에 나가보면 참으로 막막해진다. 서양 흉내를 내는 젊은 남녀들이 기이한
|
잡지를 들고 다닌다. 왜 그런 잡지를 보냐고 물으면,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
|
유행을 모방하고 싶어서 본다고 한다. 이 땅으로 마침내 침투해 들어온 듯
|
영어로 된 간판이 거리를 도배하고 있다. 서양 음악이 무대를 독차지하고, 서양
|
학문이 상아탑의 꼭대기에 서서 호령하고, 서양 문화가 거리를 휩쓴다. 서양
|
사람들을 낯설어하면서도 서양 문화에 정신을 판다.
|
이런 꼴만 보면 정말 막막해진다. 우리의 현주소를 말하려니 너무 막막해
|
말문이 막힌다.
|
물론 거리에서 본 이 풍경만을 두고 우리의 현주소를 말할 수는 없다. 그러나
|
미래의 주역이 되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이니 가슴은 더욱 답답해진다. 모방
|
문화는 아무리 잘나 봐야 이등밖에 되지 못한다.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그리로
|
가고 있다. 일본 멋을 부리고 서양 멋을 부리며 살려고 한다. 우리의 멋이
|
없어서일까. 아니다. 우리의 멋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.
|
간악한 일제의 침략으로, 다시 해방 후 밀려온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문화
|
침략으로 우리는 우리의 멋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. 마음만 먹으면 다시 살릴
|
수 있는 것이지만, 우리는 그 일에 게을렀다. 우리의 멋을 도대체 어떻게
|
잃어버렸단 말인가. 일제 시민지배의 발톱 아래서 우리는 우리를 잃기 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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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는 우리의 장점을 모조리 깔아뭉갰고, 그런 일제에 아부하면서 붙어먹은
|
무리들이 맞장구를 쳤다.
|
단군 신화가 어떻게 깔아뭉개졌는지만을 봐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. 우리의
|
장구한 역사를 시기한 일본 사학자와 그에 맞장구를 친 이 땅의 쓸개 빠진 자들이
|
식민사관으로 단군 신화를 엄연한 역사에서 단순한 신화로 끌어내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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끌어내리고 나서 그것은 신화일 뿐이니 믿을 수 없다고 했다. 목적은 하나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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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부인하고 싶어서였다.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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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부심을 짓밟으려는 목적에서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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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의 교활한 수작 가운데 하나를 보자. 단군 신화를 보면 천제인 환인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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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 환웅이 지상으로 내려와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. 웅녀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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곰이었다가 오랜 인내 끝에 사람이 된 사연을 가지고 있다. 그런데 그걸 가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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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비를 건다. 어떻게 곰이 사람이 되고, 더구나 한 나라의 시조인 아들까지 낳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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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느냐는 것이다. 그렇게 시비를 걸면서 단군 신화를 정사가 아닌 야사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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몰아붙인다. 그렇지 않으면 곰의 새끼들이라고 비아냥거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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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의적인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너무도 한심하다.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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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르되 미국과 같이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는 건국 신화라는 게 있을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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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는 대개 건국 신화를 갖고 있다. 신화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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형식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를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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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군 신화는 우리의 건국 신화다. 신화에서는 곰을 상징물로 내세울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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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 곰만이 그렇겠는가. 신화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. 곰이 조상이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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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아냥거리는 것은 유치한 짓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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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설화를 보자. 박혁거세는 어느 우물에서 발견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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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에서 깨어난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. 그것은 상징을 위해 차용한 말 그대로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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설화다. 알에서 어떻게 인간이 태어날 수 있냐고 유치하게 따질 일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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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설화는 그러나 역사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.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운 것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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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적 사실이다. 신라만이 아니다. 세계의 건국 신화들은 거개가 상징적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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의미의 신화성을 가지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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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도 마찬가지로 이해되어야 한다. 그것은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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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다. 무턱대고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. 중국의 위서를 인용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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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국유사에 엄연히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. 식민사관을 지닌 무리들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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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국유사를 믿지 않는다. 그러면서 다른 증거를 더 내세우라고 염치없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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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구한다. 그런 무리들이 다른 증거를 내세우라고 큰소리를 치는 데는 그럴 만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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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유가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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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역사를 기록한 서사들이 외국의 침략을 받아 수없이 불타 없어졌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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알고 있기 때문이다. 당나라의 침략을 받아 고구려의 사서들이 불태워졌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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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된 백제의 사서들이 불태워 졌고, 후백제 견훤의 침략을 받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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후백제로 옮겨진 신라의 서적들이 왕건의 침략을 받았을 때 불태워졌고, 고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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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서들이 금나라의 침략으로 불태워졌고, 조선의 사서들이 일본의 침략을 받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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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태워졌다. 일제시대에 우리의 오랜 역사를 기록한 책들이 불태워졌음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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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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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현실이고 보니 사서들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. 그래도 삼국유사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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엄연히 기록되어 있고 중국의 사서에도 당당하게 단군신화의 실체라 할 고조선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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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에 찬 일본 학자들과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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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리석게도 그 식민사관에 물든 이 나라의 역사학자라는 무리들이 단군 신화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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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. 식민사관을 버리지 못하는 무리들은 매국노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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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름없는 자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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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건국 신화마저 역사가 아니라고 모독하고 깔보는 식민사관이 무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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짓인들 못하겠는가. 우리의 장점은 눈에 띄는 것마다 없애버리고, 그 자리를 온갖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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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점들로 채워버렸다.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 땅의 혈맥이라 할 곳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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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놈들은 쇠막대기를 박아 이 땅의 기를 끊어놓으려고까지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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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일제 치하에서 삼십육 년을 보내고, 해방 후에는 또 친일파들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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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단하기는커녕 그들을 지배 계층에 두어왔으니, 안타깝게도 왜곡된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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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화상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바로 잡히지 못했다. 악의에 찬 왜곡으로 일그러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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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자화상을 보고,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의 참모습인 양 잘못 알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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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스럽고 위대한 것이지 알지 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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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상태에서 파고든 것이 외국의 문화다.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우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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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바른 자화상을 찾기보다는 쉽사리 외국의 문화에 빠져든다. 거기에 빠져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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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바로 자기 문화요 정신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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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현주소를 물으면 결코 일본의 그 무엇을, 서양의 그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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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을 내세우지는 못한다. 그저 모방과 흉내만 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것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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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주소를 말할 수 있겠는가. 그러나 그들은 우리 문화에서 현주소를 찾을 능력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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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그러니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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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주소가 없으면 떠돌이요 방랑자일 뿐이라 했다. 가장 소중한 문화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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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주소를 갖고 있지 못하면 우리는 친구의 방랑자로 헤맬 뿐이다. 자기 문화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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현주소를 갖고 있는 나라들을 기웃거리며 아무런 기약 없이 떠도는 방랑자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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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그렇게 되어도 좋겠는가. 역사와 문화와 전통은 우리가 스스로 인정할 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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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생하는 것이지, 부정해 버리면 몇천 년이 흘러도 문화와 전통은 우리에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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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만심과 열등 콤플렉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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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하에 우스운 꼴이 두 가지 있다. 하나는 자만심에 빠져 거들먹거리는 꼴이요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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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하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푹 숙이는 꼴이다. 천하에 한심한 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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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 가지가 있다. 역시 하나는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헛기침하는 꼴이요, 다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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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는 열등감에 절어 한숨을 쉬는 꼴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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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만심과 열등감이 우습고 한심스러운 것은 그것들이 모두 자기의 본 모습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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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리가 있는 허상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. 허상의 얼굴을 세상에 내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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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드름을 피우거나 의기소침해 하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다. 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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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은 그 허상을 이미 알고 있는 데 그 앞에서 허상인 줄도 모르고 얼굴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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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미니 어찌 우습고 한심하지 않을 것인가. 그런 모습은 개개의 사람에게서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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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. 국가와 민족을 단위로 해서 봐도 그런 우습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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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심한 꼴을 볼 수 있다. 우리 민족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.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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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상을 끌어안고 있을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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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저 자만심을 보자. 우리 민족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만심의 허상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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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밀며 살아왔을까. 아니다. 자만심의 흔적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. 어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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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처럼 자기들이 유일하게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며 선민 의식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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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로잡힌 적도 없고, 자만심을 주체하지 못해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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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랑캐라 하여 이웃 민족들을 경시하기는 했다. 그러나 선민 의식에 사로잡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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모든 이웃을 이유없이 경시한 것은 아니다. 자기들 이득을 위해 이 땅에 침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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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삼고, 평가의 잣대가 되는 문화적 수준이 낮았기에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. 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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괴롭히기 좋아하는 못되고 질이 낮은 이웃을 나무라고 경시하는 것은 자만심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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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로가 아니라 정당한 평가요, 필요한 자기 주장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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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민족은 타민족을 침략해 괴롭힌 적이 거의 없다. 늘상 침략을 받아왔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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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을 물리쳤을 뿐이다. 자만심의 허상에 사로잡힌 민족들은 거개가 침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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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삼는다. 침략을 통해서 자만심의 허상을 만족시키고 이득을 취하려 하기
|
때문이다. 세계사는 자만심에 사로잡힌 민족들의 침략사라 할 수 있을 만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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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이 유발시킨 피로 얼룩져 있다. 그러나 우리에게는 타민족을 침략한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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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가 거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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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컸지만 그것이 질 낮은 자만심으로 떨어지지 않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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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릴 만큼 예의를 숭상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예의를 아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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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이라는 자만심으로 전락하지도 않았다. 자만심에 빠져 자기 과시욕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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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로잡히거나 남을 경시하고 괴롭히기는커녕,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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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익인간 사상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해 왔을 뿐이다. 자만심의 늪에 빠지지 않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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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민족은 그리 흔한 게 아니다.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자랑할 수 있는 민족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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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점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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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면 열등감은 어떨까.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열등감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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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축되는 그런 민족은 아니었다. 사대라는 것은 있었다. 주로 중국을 대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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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 것이었는데, 강한 세력을 가진 나라를 섬기면서 나라의 안녕을 구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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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도였다. 그러나 힘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을 꼭 열등감의 표현을 볼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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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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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대는 결코 올바른 태도라 할 수 없다. 그러나 중국에서 학문을 받아들인 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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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조선들은 그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학문을 이루기도 했고, 예술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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받아들인 후 그들보다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. 열등감에 사로잡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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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대라면 결코 그런 일을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. 조공을 바치기는 했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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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을 팔아 바친 것은 아니었다.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의 정신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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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를 가지려고 노력했다. 그것은 열등감을 가진 민족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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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는 자부심의 또 다른 모습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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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밖에 달리 우리가 열등감에 빠진 민족이라는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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침략을 받으면 분연히 싸워 스스로를 지켰고, 문화적인 자부심으로 일본과 같은
|
나라에 수준 높은 문화를 전파해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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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. 근대에 들어와서 해괴한 소리들을 하는 사람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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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겨났다. '엽전들이 그렇지 뭐' 하거나 '조선 사람이 별 수 있어'라 하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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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스로를 비하하는 이들이 적지않아졌다. 일본 식민지배의 영향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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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인들은 어떻게 하든 우리 민족을 비하하려 했다.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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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 역사를 왜곡까지 하며 그랬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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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타까운 것은 그 간교한 일본의 책략에 부화뇌동하는 부끄러운 존재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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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겨나 자기 비하의 늪에 빠진 것이다. 그 이후로 비뚤어진 정신 구조가 좀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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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. 요즘도 무슨 일만 있으면 '조선 사람은 그저 맞아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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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을 차린다니까' 하거나 '우리는 아직 멀었다' 라고 자조를 하는 사람들을 흔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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볼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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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시대에 악의적으로 잘못 뿌려진 씨앗이 자라 스스로를 비하하는 열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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콤플렉스에 빠진 것이다. 우습고 한심스럽다기보다는 통탄스러운 일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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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우리는 아직 멀었어' 라는 말이 끝없이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하는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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확인이라면 더없이 좋은 말이다. 그러나 그게 아니다. 앞날을 위해서 반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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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고 새로운 기운을 얻자는 그런 뜻이 아니다.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 자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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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하를 하는 무리들이 내뱉는 자조일 뿐이기에 통탄스러운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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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등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자들의 자조는 비생산적인 푸념일 뿐이다. 물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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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인이건 민족이건 엄격한 자기 비판과 반성을 하지 않으면 발전을 기대할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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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다. 비판과 반성이 없는 것은 자만심의 발로로 앞날의 희망을 차단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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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비생산적인 자조 역시 그것과 마찬가지로 희망이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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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사람들은 위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단점만을 긁어 모아 입을 놀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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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점은 보이지 않고 단점만 가득찬 허상, 그 왜곡된 자화상을 끌어안고 있으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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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. 무슨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갖고 살겠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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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인가. 침략한 자들의 왜곡된 세뇌 교육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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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민족이 지난날 외부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보자. 복고 취미나 좋은 면만을
|
보려는 또 다른 왜곡으로 치부하지 말자. 우리의 왜곡 된 자화상에 낀 때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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벗겨내자는 것이다. 중국의 서적들에 기록된 우리 민족의 모습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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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
군자의 나라가 동쪽에 있는데,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다투는 일이
|
없다.--"산해경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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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방은 어진 나라라 군자들이 살고 있는데 예의가 바르고 서로 사양하기를
|
좋아한다.--"산해경"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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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서로 칭찬하기를 좋아하며 헐뜯지 않고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
|
죽을 데라도 뛰어든다.--"동방삭신이경"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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체격이 크고 용감하며 남의 것을 빼앗는 일이 없으며 밤낮없이 모여 노래
|
부르기를 좋아한다.--"후한서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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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인간성이 곧고 용감하다--"후한서"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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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성품이 착하고 염치를 안다.--"삼국지"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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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고 집도 문을 잠그지 않으며 부인들은 정조가
|
강하여 음란하지 않다.--"한서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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계속 열거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은 말들이다. 단순히 좋은 말 들었으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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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분이 좋다는 것이 아니다. 단점도 없지 않지만 우리는 이런 숱한 장점을 지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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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보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. 그 장점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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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은 인간성이 곧고 바르고 좋다는 것이다. 그 장점의 대부분은 인간성이
|
곧고 바르고 좋다는 것이다. 다른 그 무엇보다 인간 그 자체가 장점이다. 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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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디에 있어도 찬사를 받을 만한 민족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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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제의 왜곡과 그 이후로 겪은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생긴 혼란으로 잃어버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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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자화상이 그런 말들 속에 숨어 있다. 그런데 왜, 무엇을 위해 왜곡된
|
자화상만을 보려 하는 것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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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이 우리를 어떻게 봤냐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. 남들의 칭찬이 아니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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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많은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다. 다른 것 다 생략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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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글 하나만 보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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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문을 쓰면서도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낸
|
민족이다.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글의 우수성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
|
것이다. 그것은 또한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 할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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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그 완벽하고 다양한 표현 능력은 국어사전만 펼쳐 봐도 알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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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랗다고 하는 표현을 보면 파랗다만 있는 게 아니다. 파랗다, 퍼렇다, 푸르다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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푸르께하다, 푸르데데하다, 푸르무레하다, 푸르스름하다, 푸르죽죽하다,
|
푸르퉁퉁하다.... 이렇게 찾다 보니 내 눈에는 스물 일곱 개가 들어왔다.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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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을지도 모르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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같은 소리 글자이면서 세계의 공용어라는 영어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
|
다양한 표현력을 한글은 가지고 있다. 완벽하고 다양한 표현력은 단순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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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용성이 뛰어나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. 다양한 표현 속에서 정서와 느낌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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섬세하게 가질 수 있다. 그것은 보다 높은 수준의 문화 창조로 이어짐을 뜻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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언어는 문화 창조의 주역이기 때문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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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등 콤플렉스에 빠져서 스스로의 장점을 키울 생각은 않고, 단점에만 짓눌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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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면 희망이 없다. 하기야 우리가 그런 상태에 빠져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
|
있기는 하다. 열등 콤플렉스에 넋을 놓고 있는 틈을 타고 들어와 자기 나라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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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와 경에를 심어놓고 이득을 보려는 외국 사람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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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경제 전쟁을 넘어서 문화 전쟁을 치르고 있다. 어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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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가 주도권을 잡고 세계를 이끌어갈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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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모든 산업은 세계적으로 평균화되어 가고 있다. 이제는 보리개떡이라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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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것을 가지고 나가야 국제 무대에서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이다. 그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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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에서 자만심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열등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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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은 창과 방패를 버리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과 다를 게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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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도 계속 자기 비하의 태도를 고집하겠는가. 아니면 우리의 장점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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살려서 문화 전쟁의 승자가 되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겠는가. 선택은 바로
|
우리 자신의 몫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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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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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민족에게 치떨리는 통을 몰고온 부류들이 있으니, 미친놈과 호로새끼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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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잡년이 바로 그들이다. 민족의 심장을 도려내듯 금수강산을 반으로 찢어 피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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흘리게 한 이들이 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들이다. 그렇게 반으로 찢어 놓고도,
|
그 안에서 숱한 사람들이 울부짖게 만들어 놓고도 희희낙락하는 것들이 미친놈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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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로새끼, 개잡년들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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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들인가. 미친놈은 미국이라면 사족을 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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쓰는 미친 것들을 가리키고, 호로새끼는 러시아라면 간 빼고 쓸개 빼고 좋아하는
|
호로 자식들을 가리키고, 개잡년은 주체성 없이 이것 저것 뒤섞인 채 문화를
|
혼란에 빠뜨린 개잡년을 이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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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의 정기를 끊어놓은 일제, 그 악랄한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되었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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좋아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했다. 식민지의 고통은 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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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굴레로 이어졌으니, 남한에서 주로 설쳐댄 미친놈과 북한에서 주로 설쳐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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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로새끼들 때문에 우리는 분단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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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8선으로 갈라선 나라 일을 생각하니 하늘 보기 민망하고, 민족 일을 생각하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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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상 뵙기 부끄럽고, 세상 일을 생각하니 살아 있기 한심하다. 한숨 쉬고 하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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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니 떠 있는 저 구름도 남북 하늘 왕래하고, 한숨 쉬고 강산 보니 오는 바람
|
가는 물도 제 길 따라 오고가고, 한숨 쉬고 쳐다보니 날짐승 들짐승도 서로 쫓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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즐거워하건만, 다시 한숨 쉬고 돌아서서 우리 민족 살펴보니 그 모습 기가 막힌다.
|
저기 있건만 우리 하늘 날지 못하고, 저기 있건만 우리 땅 다니지 못하고, 저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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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건만 우리집 가지 못하고, 저기 있건만 우리 식구 만나지 못한다. 우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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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수아비인가, 장승인가. 눈 떠 있고 발 달려 있어도 오도가도 못하니 애달프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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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통하다. 우리 민족 성한 몸이 어찌하여 이토록 모진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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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의 하늘은 잘도 날으면서 어찌하여 우리 하늘은 날아갈 수 없으며, 남의 땅은
|
잘도 다니면서 어찌하여 우리 땅은 오도가도 못하며, 남의 집은 잘도 가 보면서
|
어찌하여 우리집은 가 보지 못하는가. 슬프기가 한이 없고 원통하기 그지없다.
|
우리 민족 7천만은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. 뜬 구름만 못한 운명,
|
짐승만도 못한 인생, 어찌 가련치 않으리요.
|
우리 동포 형제들아! 이 아픔, 이 슬픔, 이 원통, 이 분함을 풀어 버리고
|
없애려면 남의 부귀 믿지 말고, 남의 권세 두려워 말고, 남의 세력 의지 말고,
|
남의 위엄에 굴복 말고, 민족 정신 서로 찾고, 민족 힘을 서로 모아 우리 하늘, 우리
|
땅, 우리 조국, 우리 역사, 우리 함께 찾게 되면 어느 누가 멸시하랴. 그런
|
후라면 우리 어찌 성공하지 못하랴.
|
분단 50년 잘못으로 우리의 오천 년 역사를 버릴 수는 없다. 세상이 어떻게
|
변하든 우리 민족 합심하면 그날부터 대운 얻어 세계 제일 부강국이 될 것이니,
|
어찌 미국을 믿으며 러시아를 두려워하며 일본을 친애하며 중국을 겁내리요.
|
우리는 민족 정신을 일깨워 통일 독립을 해야 하는 최대의 난제를 안고 있는
|
민족이요, 금세기 어느 나라에도 비할 수 없는 비운이 민족이다. 남과 북이
|
분단되어 남의 사상과 남의 말에만 귀를 기울여 음흉한 계략으로 공포만을
|
조성하고, 남의 이론으로 식민지화 하였으니 나라도 방향을 잃고 민초들도 중심을
|
잃어 모두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.
|
과연 이 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민초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.
|
외세를 등에 업은 권력 상인과 권력을 등에 업은 경제 상인 등이 비리를 조작하고
|
공명을 사칭하니 민초들도 현혹되어 권력 투기, 황금 투기, 인생 투기에 빠져
|
범죄와 실상이 만연하는 세상이 되었다. 세상이 그리 변하자 어른이나 아이나
|
못할 짓이 하나 없게 되었다.
|
미친놈과 호로새끼가 갈라놓은 땅에 개잡년까지 나서서 혼란과 타락은 더욱
|
심각해졌다. 서양의 과학기계 문명을 받아들이겠다면 그것만 받아들이면 될
|
터인데 음란외설, 폭력, 사치, 무례방탕의 풍조까지 받아들여 우리의 전통 사상과
|
문화를 부정하고 매도해 왔다. 어찌하여 외국이 쓰다가 버린 쓰레기 문화까지
|
수입하여 나라를 오염시키고 민족 혼을 짓밟아, 한없이 뻗어갈 국운을 패망으로
|
몰아가는가. 외국에 넋을 판 개잡년들은 도대체 누구를 조상으로 알고 있는가.
|
오늘날 토일 독립과 문예 부흥을 남의 것에만 의존하고, 오천 년 우리의 가치를
|
무시하고, 권력에 도취되고 당파에 치우치고 황금에 병들어서, 국가와 민족은
|
이데올로기의 제물이 되어 버렸다. 오래 풍조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. 진정 남의
|
것에 빌붙어서 살겠다는 말인가.
|
갑오경장 후로 외국 문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필요성을 오늘날에 의심하고
|
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. 그러나 어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능사일 수
|
있겠는가.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가 문제였다. 그런데
|
그만 우리는 맥을 놓고 말았다.
|
지금의 세계 기류는 서서히 자기 조국, 자기 민족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국제
|
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다. 더 이상 남의 사상과 남의 문화로 방황할 때가 아니다.
|
각자의 개성과 특성을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.
|
인류의 공통된 과제는 평화에 있다. 진정한 평화는 각국이 독립되어 제자리를
|
지킬 때, 그 독립을 바탕으로 성숙된 하나의 지구촌이 될 때 이루어질 수 있는
|
것이다. 우리는 어떤가. 과연 독립하여 우리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가. 아니다.
|
나라는 있으되 뿌리가 없고 국민은 있으되 민족이 없다. 혼을 잃고 전통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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잃었는데 어찌 민족이 있고 뿌리가 있다고 우길 수 있겠는가. 우리의 혼과 넋을
|
잃고 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들이 설쳐대는 세상이 되었다. 껍데기는 민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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닮았으되 알맹이는 외국 물에 변질되어 그 형체조차 확인해 보기 어렵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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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은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를 베개처럼 늘 가까이 두고 그
|
가르침을 배웠다고 한다. 꼭 목민심서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. 우리에게는
|
외국의 지도자까지 나서서 배우고 싶은 그러한 문화적 정신적 자산이 풍부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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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체성을 갖고 우리 자신을 보았다면 현대사의 격랑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면서
|
우리를 바로 세울 가치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다. 그럴 힘을 너끈히 가질 수
|
있었다.
|
그러나 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들은 주체성을 잃고 외국의 갈보가 되어 민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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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통의 수렁 속으로 빠뜨려버렸다. 갈보처럼 구는 것들을 기회만 노리던 외세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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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대로 두겠는가.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단맛이란 단맛은 다 짜내려고 이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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드러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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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도 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들은 좋다고 그들을 반겼다. 갈보짓을 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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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. 외세를 등에 업고 온갖 권세와 부를 누리고, 쓰레기까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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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함된 외국 문화를 등에 업은 채 온갖 교태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, 그러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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쌍수를 들고 그들을 반겼다. 친일파와 다름없는 매국노들이다. 친일파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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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전히 활개를 치고 살 듯 미친놈, 호로새끼, 개잡년들은 갈라진 땅 위에서 여전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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호사를 누리고 있다. 해괴한 춤을 추며 이 땅을 자기들의 춤판으로 만들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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절망이다. 그 꼴만 보고 있으면 정말 절망이다. 그러나 절망만은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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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친놈과 호로새끼와 개잡년이 추는 춤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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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운이 일고 있다. 우리의 주체성을 찾고,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찾아야 한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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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리가 일고 있다. 그 소리가 소리에 머물지 않고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, 거기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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절망을 넘어선 희망이 다가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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갓 쓴 시위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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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65년 단오 때의 일이다. 당시 내 나이 열두 살이었다. 나는 선배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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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른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. 구경삼아 간 나들이가 아니었다. 세상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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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. 모두 한복을 입은 갱정유도교 교인들인 우리는 정부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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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말이 있었다. 오백 명 가량 되는 인원이었는데, 모두 비장한 각오를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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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다. 단순히 할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결연히 요구할 것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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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의 요구는 민족의 존망이 달린 문제였다. 크게 네 가지를 요구하며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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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작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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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, 미국과 소련의 꼬임에서 벗어나고 남과 북의 백성이 화합해야 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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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, 이데올로기로는 백 년이 흘러가도 통일이 되지 않는다. 민족 도의를 세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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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일을 이루고 진정한 독립을 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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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, 충효가 나라의 간성이 되어야 세계 평화가 온다. 원자와 수소가 간성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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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면 세상은 망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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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나, 서양 문화를 선별하고 전통 미풍을 되살려야 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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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먼저 미국과 소련의 꼬임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한 것은 민족주체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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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. 두 강대국이 남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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북으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만들어 놓고 자기들 무기를 팔아먹으려는 속셈을 갖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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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음을 우리는 간파하고 있었다. 강대국의 무기 장사에 우리 민족이 놀아날 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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없었다. 그렇게 되면 민족이 망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. 무기 장사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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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적이 아니라 두 강대국은 우리에게 분열을 강요하고, 민족 문화의 파괴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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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추기고, 민족 생존까지 위협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려 했다. 그들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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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도에 말려들면 통일을 이룰 수 없기에 우리는 이데올로기 대신 민족적 도의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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통한 접근을 주장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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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치관도 지위가 높건 낮건 나라에 봉사와 희생을 바치는 충의 정신과 효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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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신이 강대국의 논리라 할 수 있는 인간 파괴의 무기보다 앞서야 한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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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장했고, 덧붙여서 우리의 전통 미풍을 살려야 민족이 살 수 있음을 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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특히 충을 강조한 것은 민초들의 태도만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. 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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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제 이익만 좇을 게 아니라 봉사와 희생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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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라에 충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기 때문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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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우리의 요구에 대한 반응은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뿐이었다. 갓 쓰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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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복 입은 우리들은 경찰의 연막탄과 곤봉 세례를 받았다. 또한 예나 지금이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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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찬가지인 모양이다.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. 정부는 우리를 빨갱이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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몬 것이다. 당시에 남한에서는 미국 것이라면 똥이라도 좋다고 받아들이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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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절이었다. 그런데 미국을 멀리하라 하니, 정부는 우리의 본 뜻도 제대로 알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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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에 그 말만으로 용공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.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비장 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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각오를 하고 올라온 우리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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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대문 경찰서로 몰려가 백차를 뒤집어버리고 경찰서에 불을 질렀다. 곤봉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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휘두르고 연막탄을 쏘는 경찰에게 우리는 맨손으로 대항했다. 시위장은 졸지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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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수라장이 되었다. 백성으로서 민족의 살길을 전하려고 하는데, 빨갱이로 몰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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귀를 막는 정부 앞에서 순순히 물러설 수 없었다. 악이 받치는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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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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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자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. 우리들이 도술을 부린다는 소문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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떠돌았다. 당시 신문들은 우리의 시위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. 신문 기사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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붙여진 제목들도 가지각색이었다. '갓 데모', '백일 난동', '청포 데모'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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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앙가즈망'하는 말들이 붙어 있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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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복 입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는 태도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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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우리가 한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살려 살 길을 찾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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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지 현대로부터 도피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. 살 길을 찾자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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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자비한 탄압을 하니 어찌 참을 수 있단 말인가. 절대 왕권이 나라를 이끌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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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조 시대라 하더라도 그냥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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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빨갱이로 몰린 데에는 오해도 있었다. 우리의 요구 사항은 한자로 적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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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는데, 한문을 제대로 모르는 경찰이 미국을 멀리하고 소련을 가까이 하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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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었다. 우리는 미국과 소련 모두 경계하자는 소리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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했는데, 그렇게 잘못 읽힌 것이다. 경찰은 계속 우리를 빨갱이로 의심하며 자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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출처를 조사하고, 우리의 글을 한자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장안의 유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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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자에게 보여 그 정확한 뜻을 알려 했다.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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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금 출처를 조사한 결과 외부 세력에 의해 조달된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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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고 논 팔아 마련된 자금임이 드러났고, 해독을 의뢰 받은 학자도 우리의 요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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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용이 순수한 민족 주체성의 발로임을 경찰에 가르쳐 주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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빨갱이 시위대가 아님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던 경찰은 우리를 임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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열차에 태워 남원으로 내려보냈다. 그리고는 그만이었다. 우리의 요구는 당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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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론 지금까지도 무시되고 있다. 지금의 현실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. 미국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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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련의 양극 체제가 소련의 사회주의 붕괴로 무너졌지만, 강대국의 논리는 모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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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금 바꾸어 여전히 우리 민족을 압박하고 있고, 민족적 가치 역시 왜곡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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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시당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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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 국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정상 회담이란 것의 실체가 무엇일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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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정으로 인류 평화를 위해 정상 회담이란 것을 하고 있을까. 아니다. 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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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보지 않는다. 정상 회담은 인류 평화를 내세우며 그것을 담보로 잡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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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지만, 실상은 장사 회담이라 할 수 있다. 장사 가운데서도 강대국의 군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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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업이 은밀하게 얘기되면서도 가장 중요한 거래 내용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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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대국에서 군수 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. 그 군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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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업이 불경기를 맞으면 그들 나라의 전체 경제가 흔들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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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그들은 온갖 술책과 교묘한 논리를 다 동원해 제 나라 무기를 다른 나라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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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아먹으려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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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 곳곳에서 위기를 조성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, 전쟁을 노골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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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추기기도 하면서 자기들 이익을 좇기에 급급하다. 다른 나라에서 위기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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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성해 선거에도 이용해 먹고, 무기도 팔아먹으니 그들로서는 일거양득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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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의 나라들은 그들의 술수에 놀아난다.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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분단으로 동족이 대치하고 있으니 미국을 비롯한 무기 장사꾼들이 손쉽게 공략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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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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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약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정상 회담이 진정 인류 평화를 위해 열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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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라면 그들은 먼저 핵을 지상에서 없애려고 노력할 것이다. 무기를
|
대대적으로 감축하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비롯해 기아에 허덕이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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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류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할 것이다. 말만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가 주체가 될
|
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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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지금의 정상 회담은 결코 그렇지 않다. 핵과 무기를 없애기 위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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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지하게 고민하는 회담이 아니다. 기아를 비롯해 인류의 온갖 고통을 몰아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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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해 힘을 모으려는 모임이 아니다. 이미 핵을 가진 국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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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기하지 않으려 한다. 포기하기는커녕 그것으로 이득을 보려 한다. 그러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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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른 나라들도 핵 무기 개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. 또한 무기 파는 것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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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국의 주요한 이익으로 삼는 강대국은 그것을 무역의 논리로만 따진다. 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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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아먹는 것과 무기 팔아먹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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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과연 그게 같은 것인가. 무기는 인류를 전쟁으로 몰아가고 죽음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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몰아가는 것이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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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란 것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. 군수 산업을 필두로 하는 대상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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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. 유엔에 대해서는 나는 썩 신뢰하지 않는다. 진정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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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화를 위한 세계 기구라고 믿을 수가 없다. 거기서도 강대국들, 거대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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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사꾼들의 논리가 지배적이다. 그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평화라는 이름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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포장하는 곳이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가 아닌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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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대국의 술수에 말려드는 모든 국가가 이를 경계해야 하지만 특히 분단이 된
|
우리 민족은 이런 세계 현황을 냉철하게 파악해 우리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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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대국의 논리대로 짜여진 세계 구도가 인류 평화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지만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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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에게는 당장 민족을 죽이는 것이 될 수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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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 후에 이 땅의 민초들은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고, 이에 대비해야 함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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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음과 같은 노래로 다짐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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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놈 믿지 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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소련놈 속지 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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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본놈 일어선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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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사람 조심하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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단순하게 들리겠지만 그 안에는 핵심적인 의지가 깔려 있다. 민족 주체성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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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져야 우리가 살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. 세상이 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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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라진 것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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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주의를 이미 흘러간 사상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, 그들은 진정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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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의 고통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.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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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적인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. 그 고통을 치유하지 않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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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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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족이 주체가 되기 위해 대오각성을 하지 않으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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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. 강대국의 술수로 짜여진 세계 구도 속에서 우리
|
민족의 의사는 무시당하고, 엉뚱한 이해득실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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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는 안 된다.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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명실상부하게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은 미래를 낙관해도 좋다. 방향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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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게 제대로 잡으면 저 앞에 평화가 기다리고 있는데, 여전히 민족의 살 길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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외면하는 세력들이 있다. 그들이 끝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갓을 쓰고 다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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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위라도 해야 할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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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시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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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가올 세상은 인간시대다. 다가와야 할 세상 역시 인간시대다. 우리에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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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 말고 내세울 것은 없다. 그러나 그 시대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.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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스스로 그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.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요건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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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나는 그것을 인간시대의 4대 원칙이라 부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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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대 원칙은 인간 존중, 독립 정신, 노예 해방, 문화 균형, 그 네 가지를 가리킨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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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인간시대는 오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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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 존중은 사람을 믿고, 사람을 섬기고, 사람을 존경하고, 사람을 사랑하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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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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독립 정신은 스스로 서고, 스스로 행하고,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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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예 해방은 선과 종교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, 권력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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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질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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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적 균형은 철학과 과학의 균형,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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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시대가 되려면 특히 문화가 그 근본을 지켜야 한다. 우리 사회의 뼈대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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되는 각종 문화가 제 근본을 알고, 자기 위치로 돌아가지 않으면 사회는 늪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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빠져 안정을 이룰 수 없다.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.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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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가 자기 위치로 돌아가려면 그것을 창조하는 인간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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않으면 안 될 것이다. 우리는 여덟 가지 주요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.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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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의 근본은 이렇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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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학의 근본은 진이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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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학의 근본은 지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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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의 근본은 정이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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법률의 근본은 의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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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제의 근본은 부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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종교의 근본은 애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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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술의 근본은 미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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학문의 근본은 행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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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간 사회를 치장하기 위해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. 그 근본을 망각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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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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참이 없는 철학은 입을 닫아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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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기 없는 과학은 더 이상 실험하지 말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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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름 없는 정치는 자폭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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옳음 없는 법률은 더 이상 잣대가 되지 말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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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유함 없는 경제는 망해 버려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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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랑 없는 종교는 지옥으로 가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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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름다움 없는 예술은 더 이상 분칠을 하지 말라
|
행함 없는 학문은 쓰레기장으로 가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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철학을 비롯한 여덟 가지 문화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다. 사람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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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본을 세울 주체다. 요즘 세상을 보노라면 자기 위치를 잃어버린 문화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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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란스럽게 떠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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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사람들은 철학은 우습게 보고, 과학은 경시하고, 정치를 불신하고,
|
법률을 조롱하고, 경제를 비웃고, 종교를 의심하고, 예술을 천시하고, 학문을
|
가벼이 여기곤 한다.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않고, 독립
|
정신을 버리고, 스스로 노예가 되고, 문화의 균형을 잃어 안타깝게도 인간은
|
스스로를 자조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.
|
세계는 그래서 혼란에 빠져버렸다. 말세의 증후군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
|
있다. 우리가 나서서 문화의 근본을 찾고 인간의 원칙을 찾아 인간시대를
|
선도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있겠나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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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계의 꽃으로 필 우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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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코리아는 죽은 듯이 보였다. 많은 사람들은 죽은 것으로
|
알고 절망하고 한숨을 쉬었다. 그러나 선각자들은 코리아의 부활을 예견했다.
|
부활해서 세계를 밝히는 민족이 될 것임을 믿었다.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
|
운동가들의 신념이 그랬고, 탁월한 혜안을 가진 민족 종교인들의 예언이 그랬다.
|
동족만이 그런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. 인도의 시인 타고르, 그는 참으로
|
탁월한 혜안으로 우리의 미래를 노래했다. 나는 그의 시 "동방의 등불"을 가끔
|
떠올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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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
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
|
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,
|
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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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
|
마음에는 두려움이 없고
|
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,
|
지식은 자유스럽고
|
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,
|
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,
|
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,
|
지성의 맑은 흐름이
|
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,
|
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,
|
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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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
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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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는 지금 깨어나고 있다. 아직 완전히 깨어나 동방의 등불이 되지는
|
못했지만 그래도 깨어나려고 몸부림을 하고 있다. 깨어나기 위해서는 과정을
|
거쳐야 한다. 우리는 요즘 한풀이의 과정을 겪고 있다.
|
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억눌러 한을 만들어 왔던가. 가난의 한,
|
약자의 한, 사랑의 한, 이별의 한, 천대받음의 한, 외국으로부터 받은 핍박의 한,
|
유교적 억압을 비롯한 온갖 지배 논리에 당한 한, 없는 자의 한.... 우리 가슴에
|
켜켜이 쌓인 것이 한이었다.
|
우리는 그 한을 풀고 있다. 요즘은 한풀이 세상이라 할 수 있다. 한이
|
쌓였다는 것은 무엇인가.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에 한이 쌓이는 것
|
아닌가. 우리는 그 욕망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. 한풀이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
|
보는 것이다. 뒤돌아보며 무엇을 원망하고 한탄하고 저주하는데 그치는 것이
|
아니라 진정한 한풀이는 다시는 한풀이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.
|
밀알이 썩어 새싹이 나듯 한풀이 시대가 끝나면, 즉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
|
욕망이 채워지면 그때 비로소 사랑과 화합의 시대가 열린다. 밀알이 썩지 않으면
|
새싹은 돋아나지 않는다. 한 역시 풀지 않으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. 그래서
|
우리는 한풀이의 과정을 겪고 있다. 그러나 한만 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.
|
깨어나서 빛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. 세계의 꽃으로 피기 위해
|
개화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.
|
이미 새로운 시대, 새로운 문화는 열리고 있다. 지구상의 주도적 문화는
|
주기적으로 일정한 방향을 따라 이동하면서 꽃핀다. 음양오행을 말하지 않아도
|
당장 그 현실이 그러함을 알 수 있다.
|
인류 문화의 발상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. 그것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
|
이전되었고, 유럽에서 다시 아메리카로, 아메리카에서 다시 태평양을 건너 이
|
땅으로 오고 있다. 보다 세밀하게 말하면 이제 막 일본을 지나 이 땅으로 오고
|
있는 것이다.
|
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아가지만 문화는 그렇게 동쪽에서 서쪽으로
|
이동하는 법이다. 지구의 지난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것이 공연한 소리가
|
아님을 알 수 있다. 태평양 시대가 열렸다는 말은 누가 멋대로 지어낸 것이
|
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철한 관찰의 결과일 뿐이다.
|
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하루로 보면 아침이요, 일 년으로 보면 봄철에
|
해당된다. 다가오는 21세기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해 이끌고 가는 시대가
|
된다. 그것을 의심할 것이 아니라, 이동해 온 문화의 주도권을 어떻게 제대로
|
이어받아 꽃으로 피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.
|
인류 문화를 동과 서로 나누면 동양은 정문화요, 서양은 동문화라 할 수 있다.
|
정문화는 정신 문화요, 동문화는 물질문화다. 태평양 시대가 열렸다는 것은
|
상대적으로 대서양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다. 유럽적 르네상스 시대가 가고
|
아시아적 르네상스 시대가 피어난다는 말이다.
|
서 있으면 앉고 싶고, 앉아 있으면 일어서고 싶은 게 상대성 원리요, 동과 정의
|
관계다. 동문화에 지쳐 있는 인류는 휴식할 수 있는 정문화를 찾고 있다. 달리
|
말하면 동문화의 물질로 편리를 얻은 세계는 정문화의 정신으로 행복을 추구하고
|
있는 것이다. 물질은 편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이 행복이 되지는 못한다.
|
행복은 정신 세계에서 얻는 것이다. 물질도 세계 인류에게 편리를 준 동문화는
|
그 나름의 사명을 이미 마쳤고, 이제 찾아야 할 것은 행복을 주는 정문화다.
|
우리가 만약 정문화를 바로 세우지 못해 인류에게 행복과 안정을 주지 못한다면
|
그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요, 시대의 흐름에 위배되는 것이니, 우리는
|
살아 있는 생명이라 할 수 없다.
|
우리는 21세기의 사명을 부여받은 민족이다. 윤리와 도덕으로 세계인류의
|
질서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. 이는 하늘의 뜻이요, 인류의 요망이 아니겠는가.
|
19세기를 제도 개혁 시기로, 20세기를 산업경쟁 시기로 본다면, 다가올 21세기는
|
땅에 떨어진 인간의 가치를 회복시키고 정신으로 행복을 누리는 인간시대가
|
되어야 한다. 우리가 선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.
|
새로운 세기에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이유와 보람이 거기에 있다. 그러나
|
세상의 그 어떤 성과물도 우연으로 얻을 수 없다. 우리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
|
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.
|
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가 그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
|
우리를 알아야 한다. 우리의 뿌리, 우리의 주체, 우리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
|
그것을 바탕으로 현대 문화를 다시 선별하고,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부터 일깨워서,
|
양심으로 자제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독립성을 갖도록
|
해야 한다. 그렇게 되면 물질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생활 풍토가 조성되어,
|
사회악은 사라지게 되고, 그동안 인간을 억압해 온 이데올로기의 굴레도 벗게
|
된다. 세상 문제는 인간에게 있으니, 역사와 문화의 질을 높이려면 먼저 인간의
|
질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.
|
우리가 먼저 달라지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그 임무를
|
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.
|
민족적 가치를 바로 정립하고 통일을 한시라도 빨리 앞당겨야 하는 이유가 우리
|
민족만 잘살자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. 넓게 봐서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
|
가져오는,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. 그것을 외면하면 우리는
|
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는커녕 버림받는 가련한 존재가 될 뿐이다.
|
다행스럽게도 그 선택은 남에게 맡겨져 있지 않다.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
|
것이다.
|
맹자는 이렇게 말했다.
|
|
구하면 얻게 되고 내버려두면 잃게 되는 경우라면 구하는 것이 얻는데
|
유익하다. 구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. 구하는 방법이 있고,
|
얻는데 명이 있는 경우라면 구하는 것은 얻는데 무익하다. 구하는 것이 나 밖의
|
다른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.
|
|
사람에게는 스스로 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있고, 스스로 구해도 남이 인정하는
|
등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있다는 말이 되겠다. 달리 말해
|
얻는데 작용하는 명이 구하는 일과 어긋나지 않기만 한다면 구하는 것은 얻는데
|
유익할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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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려 하는 것은 명에 어긋나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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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문화의 이동으로 세상은 이미 태평양 시대, 우리나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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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대를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. 세상은 태평양을,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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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니 이제 구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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구하면 세계의 꽃으로 피어 인간의 가치가 중시되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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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 있다. 우리가 스스로를 바로 세워 구하면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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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다. 그래도 구하는 일을 망설이고 주저하겠는가. 구하는 일은 언제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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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.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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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상사람은나를보고웃고 나는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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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정석 |
